조아라에서 「흑장미 소녀」라는 제목으로 업로드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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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떨어진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머리를 헤집어 놓던 상념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추락의 이미지만이 각인된다.
곧이어 어두운 죽음이 머리에 떠올랐지만, 낙하는 사고의 전환 보다도 빨랐다.
생이 끝나는 순간을 느낄 틈도 없이, 나는 돌바닥에 닿았다.
∙
「꽈득−!!」
일상적으로는 들을 수 없는 소리가 정원에서 울려퍼졌다.
출근하던 시녀가 넘어진 정도로는 저렇게 큰 소리가 나지 않는다.
뭔기 불길한 기분이 들어서 어깨에 숄을 걸치고 방을 나섰다.
계속해서 커져가는 불쾌한 감각에 발걸음을 서둘러 복도를 빠져나와 문을 열었다.
“−헉.”
나 또한 비명을 질러야 할 타이밍이었으나 너무 놀라서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큰 소음의 정체는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사람이 죽은 소리였다.
정교한 패턴의 돌바닥 사이사이로 기분 나쁠 정도로 새빨간 피가 흘러가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길다란 흑색 머리의 소녀가 목이 기괴한 방향으로 뒤틀린 채−
그래, 죽어 있었다.
“으, 응급 처치를…”
무심코 그렇게 말했지만 바보 같은 소리였다.
목이 저렇게 비틀리고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떻게 살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처리하느냐이다.
과연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서 갑자기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고 하는 말을 믿어 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안 그래도 가문의 사정이 어지러운 참이다.
혹시라도 살인의 누명을 쓰게 된다면 상당히 골치아플 것이다.
“으…”
가벼운 현기증에 몸이 휘청거렸다.
사람이 죽어 있는데도 집안의 잇속을 걱정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에 기분이 나빠졌다.
자, 선택지는 두 가지다.
당장 경비병에게 연락해서 사건을 풀어나가느냐, 혹은 스스로 처리해서 상황을 모면하느냐.
“…우선 정체를 알아야겠어.”
정원 한가운데에서 죽어있는 인물은 나와 동년배로 보였다.
어딘가의 제복처럼 보이는 복장은 전체적으로 검은 톤이었는데, 피로 물들어 더욱 어두운 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옷감은… 고급품인 것 같은데…”
시체를 살피며 피웅덩이 주위를 반바퀴쯤 돌았더니 얼굴이 보였다.
순흑색의 머리칼과 대비되는 흰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하지만 혈기가 없어서 마치 대리석 조각에 붉은 물감이 튀어 있는 것 같았다.
고급품으로 보이는 옷과, 이 얼굴을 보고 확신이 들었다.
여기 죽어 있는 이 소녀는 적어도 귀족, 어쩌면 왕족일지도 모른다.
평민 중에도 아름다운 이는 있지만 미용에 들일 수 있는 노력의 차이는 귀족과 비교할 수가 없다.
즉 평민이라면 이렇게 고운 머릿결과 피부를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의 사태가 더욱 심각하다는 뜻이다.
나도 귀족이지만 몰락해가는 귀족이다.
그런 집에서 지체 높은 아가씨가 시체로 발견되었다간 최악의 경우 가세가 더욱 기우는 정도가 아니라 누명을 쓰고 목이 달아날 수도 있다.
“최악이야…!”
경비병을 불러야 하나? 시체를 감춰야 하나?
두 가지 모두 큰 악수가 될 것만 같아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내가 누워있는 시체였으면 마음은 편할텐데…
그렇게 혼란 속에서 스스로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때, 이변이 발생했다.
“무, 무슨…!!”
발치에서 죽어 있던 시체의 목이, 카득- 뿌득- 하는 소리를 내며 복구되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나도 기괴한 현상에 놀라 다리의 힘이 풀렸다.
“아−”
찰박-
아직도 바닥을 타고 흐르고 있는 피웅덩이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차갑고 미끄러운 감촉과 동시에 핏방울이 약간 튀어올랐다.
무심코 떠오른 핏방울을 눈으로 쫓던 중, 선혈보다도 더 붉은 것에 눈이 사로잡혔다.
짙은 홍색과 깊은 자색이 어루러져 섞여 있는 그것은, 태어나서 보았던 어떤 보석보다도 아름다웠다.
상황도 잊은 채 잠시간 그 아름다운 빛깔에 마음을 빼앗겼다.
위협적으로 찬란했고, 치명적으로 요염했다.
그것은…
“−안녕.”
그것은, 그녀의 눈이었다.
내가 안녕하세요− 라고 대답해야 할 차례였지만, 그러지 못했다.
시체가 움직인 것도 심장이 철렁 했는데, 시체가 눈을 뜨고 인사를 건낸 것이다.
심장은 터질 듯이 두근거리고, 아직도 엉덩이에 아픔이 느껴지지만, 꿈인지 생시인지도 확신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스륵..
소녀가 피웅덩이에서 몸을 들어 올리자 젖은 머리가 부드럽게 그녀의 옷을 타고 떨어졌다.
어느새 상처는 아물었지만, 머리칼이 머금었던 피가 그녀의 콧대를 타고 흘러 입술에 스며들었다.
여전히 안 좋은 혈색의 피투성이 소녀는, 상반신만 일으킨 채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곤 핏방울이 매달려 있는 오른 손의 장갑을 벗고, 내 왼 뺨과 귀 부근을 받치듯이 조심스럽게 잡았다.
“저, 저기…”
“미안해.”
미안해-
‘안녕’ 다음에 할 말로는 어울리지 않는 한 마디를 속삭인 그녀는,
내게 더 다가와 입술을 포개었다.
입술이 겹쳐지고, 혀의 온기가 느껴졌다.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 한 채, 비릿한 피의 달콤한 맛을 뇌리에 새겼다.
01.
첫 키스의 뒷맛이 입안을 가득 덮은 피비린내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그 첫 키스의 상대가 여성일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못 했다.
하물며 그 상대가 이름도 모르는 남일 것이라고는 더더욱 몰랐으며, 그게 죽었다가 살아난 괴인일 것이라고는 미치지 않고서야 상상할 수도 없겠지.
…그 정체불명의 괴인을 집 안에 들였으니 정말로 미쳐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내 입술을 덮친 습격자는 키스를 끝낸 직후 내 위로 쓰러져 버렸다.
다시 죽은 건가 싶어서 크게 놀랐었지만 잠이 든 것 뿐인 것 같았기에 일단 내 방으로 옮겼다.
시녀에게 피가 흥건한 정원을 치우라고 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황급히 연락해서 오늘은 나오지 말도록 일러두고 혼자서 피를 닦아야 했는데, 덕분에 평생 만질 피는 다 만진 것 같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문제의 인물은 지금 고운 숨소리를 내며 내 방 바닥에 누워 있었다.
흐르지 않을 정도로는 닦아 냈지만 여전히 피가 묻어있는 그녀를 침대에 눕힐 수는 없었다.
카페트를 두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이 꺾이고서도 멀쩡하게 일어난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지만 죽어 있는 상태보다는 훨씬 나았다.
적어도 대화의 여지는 있을 테니까.
그녀가 눈을 뜨면 물어야 할 것이 많았다.
“하아…”
한숨을 길게 내쉬고서 침대에 걸터 앉았다.
발치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닿아 약간의 피가 묻어났다.
“…당신은 누군가요.”
그녀의 오똑한 콧날을 바라보다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감겨있던 눈꺼풀이 약간 떨리더니, 천천히 움직여 아름다운 눈을 드러냈다.
그녀와 두 번째로 눈이 맞았다.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지만, 입술을 약하게 씹어 마음의 술렁임을 감췄다.
“들으셨나요?”
의식적으로 평온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눈을 천천히 두 번 깜빡였다.
…그렇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대답해 주세요. 당신은 누구신가요?”
“…비밀이야.”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하는 그녀.
“그럼… 우리 정원에 떨어진 이유는?”
“기억이 안 나.”
“분명히 목이 꺾였었는데, 어떻게 살아 난 거죠?”
“…말 할 수 없어.”
“…대답할 수 있는 게 있기는 한가요−?”
내가 신경질적으로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장갑이 벗겨진 오른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더듬었다.
그리곤 상반신을 일으켜 앉아 내 얼굴을 보았다.
“키스 한 이유. 그건 말 할 수 있어.”
“무−”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 한데다, 무심코 나는 한 손으로 입술을 가리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깜빡이더니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아름다우니까.”
“아름… 다우니까, 키스를 했다고요?”
끄덕.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만 보면 키스를 하는 건 가요?”
“모르겠어.”
“모르겠다니요?”
“달리 아름다운 사람을 본 적이 없어.”
“…네?”
‘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도 아니고 ‘세상에서 너만이 아름답다’라니.
스스로 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나와 비슷하거나 뛰어난 미모를 가진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당장 눈앞의 괴상한 여자만 하더라도 나보다 훨씬 아름답다.
난 그녀의 시선을 피하고 이불을 약간 구겨잡았다.
“놀리지 마세요. 제대로 대화 할 마음이 없다는 건 알겠네요.”
“……”
“…방을 나가서 오른 편으로 조금 가면 욕실이 있어요. 옷은 제 걸 빌려드릴 테니 씻은 후에 갈아입고 돌아오세요.”
“…응.”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서 일러준 대로 욕실로 향했다.
*
“키스에 관한 것 말고 말 할 수 있는 건 있나요?”
몸을 깨끗이 씻고서 내 실내복으로 갈아 입은 그녀는 내 방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길고 고운 검은 머리가 흘러내려 의자의 다리 부근까지 닿아 조금 신경이 쓰였다.
“나이. 18살… 일거야.”
“확신이 없는 게 미심쩍긴 하지만… 뭐, 좋아요.”
“너는?”
“저는… 당신보다 한 살 어려요. 이름은 레이라 카르트라고 하고요.”
“그래. 레이라… 기억 할게.”
그 말을 끝으로 침묵이 감돌았다.
계속 눈은 맞추고 있어서 어색한 기분이 들어 침을 조금 삼켰다.
“…더 말 할 게 없나보네요.”
“응.”
“그럼 한 가지만 물어 볼 게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과 얽혀서 제가 위험에 빠질 일이 있나요?”
“무슨 뜻이야?”
“당신, 척 보기에도 신분이 높아 보이는 걸요. 당신을 만났던 일로 정치적인 문제가 생기는 건 피하고 싶네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시선을 내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다시 내 눈을 보았다.
“그런 일은 없을거야.”
지금까지와 다르게 확신이 있는 목소리였다.
그렇다면 내 대답은 정해져 있다.
“그럼 돌아가세요.”
“응?”
“돌아가시라고요. 오신 곳으로.”
“어째서?”
“…몸도 멀쩡한 모양이고, 제가 신경 쓸 문제도 없다면 여기 둘 필요가 없잖아요.”
“그건 안 돼.”
그녀는 꽤나 강한 태도로 그렇게 말했다.
“…이유는? 말 할 수 있나요?”
“네가…”
“제가.. 아름다우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의 눈이 약간의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아니.”
나는 얼굴에 열이 번지는 것을 느끼며 헛기침을 했다.
그렇게 더욱 어색한 기분으로 그녀가 말을 이어갈 것을 기다렸다.
“네가… 위험, 하니까.”
“네…?”
“곧, 네가 위험해 지니까. 내가 곁에 있어야 해.”
그녀는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영문을 모르겠는 소리를 했다.
02.
달이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다.
결국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내가 느끼는 것은 예감이지 예지가 아니다.
그 아이- 레이라가 위험에 빠진 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정확히 어떤 식으로 위험해 지는 지는 모르기 때문에 제대로 설명을 할 수 없었다.
영문 모를 소리를 할 거면 빨리 돌아가달라고 하는 바람에 결국 집에서 나와 지붕 위에 앉아 있는 참이었다.
밤이 깊을 때 까지 그럴듯한 여러 생각을 해 봤지만 내가 이 집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근거가 부족했다.
“…”
시선을 돌려 내가 떨어졌던 자리를 보았다.
레이라는 깨끗하게 청소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내게는 아직 돌바닥에 스며든 내 피의 마력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의 피도 아니니까 그다지 신경 쓰이지는 않지만.
“음…”
내 아랫입술을 살짝 만져보았다.
몇 시간이나 지났기 때문에 키스의 온기는 남아있지 않았다.
이대로 이 집을 떠날 수는 없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호감 말고도, 정원을 더럽힌 것과 옷을 빌려준 빚이 있는 것이다.
오늘 밤의 위협에서 레이라를 구해주도록 하자.
다시 한 번 그렇게 마음먹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 밤을 넘긴 후에도 계속 그 아이와 함께 있고 싶었지만, 그건 그 아이가 판단할 문제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지붕의 녹색 타일에 몸을 편하게 기대려던 차에, 아래쪽이 소란스러워 졌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내려다보니 장정 여럿이 나무 울타리를 타고 넘어 정원에 침입하고 있었다.
양측에 다섯 명 씩 총 열 명이었다.
대강의 행색을 보아하니 납치나 청부살인 등을 일삼는 패거리인 듯 싶었다.
지금의 목적이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으나 막아야 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저택의 양쪽 큰 창문 앞으로 이동한 무리는 품에서 종이를 꺼내 유리에 붙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소리를 지우는 마법이 들어 있는 거겠지.
나는 남자들이 창문을 깨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하고 집 안으로 이동했다.
*
“다시 볼 수 있을까…”
잠기운에 몽롱한 정신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자기가 나가라고 했으면서 정말로 그냥 떠나자 아쉬운 감정을 느끼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하…”
가볍게 숨을 내쉬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
짤그락−
깨진 유리를 밟는 듯 한 소리에 금방 눈이 떠졌다.
시녀 메이리가 낸 소리인가 싶었지만 이미 퇴근했을 시간이 한참 지났다.
아니, 애초에 오늘은 그녀가 출근 하지도 않았다.
“설마 그 사람인가…?”
몇 시간 전에 쫓아낸 소녀가 머리를 스쳤다.
“난 아니야.”
“무-!? 다, 당신! 어떻게−”
내가 큰 소리로 추궁하려고 하자 그녀는 자기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가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침입자가 있어. 열 명 정도.”
“네?”
“들었지? 깨진 유리를 밟고 들어오는 소리.”
순간 정신이 번쩍 든 내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두리번 거리자 구석에 조용히 서있던 그녀가 한 걸음 다가왔다.
흑단 같은 머리칼에 달빛이 반사되어 시선을 빼앗길 것만 같았다.
“저택 양 쪽의 큰 창문으로 들어오고 있어.”
“그걸 어떻게 알죠?”
“지붕에서 봤으니까.”
과연.
위험이 어쩌구 한 것 치고는 순순히 문을 나서는 가 싶더니 지붕 위로 올라가 있었던 건가.
그리곤 누가 들어오는 걸 보고서…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먼저 이 방에 들어 온 것이다.
“대체… 대체 누가 들어온 거죠? 당신을 잡으러 온 건 가요?”
그렇다면 그녀는 거짓말을 한 셈이다.
그녀와 얽혀서 위험한 일이 생긴 것이니까.
하지만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를 노리고 온 거야. 아마도.”
“아마도?”
“적어도 나와 관련 있는 자들은 아니야.”
한밤중에 침입자를 보낼 정도로 누군가에게 원한을 산 기억은 없지만…
그녀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지금 상황이 위험하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나는 반드시 챙겨야 하는 물건들을 몇 개 떠올리곤 뛰어 내리듯 침대에서 내려가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쓸데없이 방이 많은 저택이니 여기까지 오는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다.
“상황을 알려줘서 고마워요. 난 도망칠거니까 당신도 어서 떠나세요.”
“무슨 소리야?”
“침입자가 가녀린 여자는 아닐 거 아니에요? 당연히 도망쳐야죠.”
“어디로? 복도에는 놈들이 걸어다니는 중이고 정원에는 두 명이 망을 보고 있어.”
“…가만히 있다가 잡히는 것 보다는 무사할 확률이 높겠죠.”
“그래.”
짧은 소리를 낸 그녀는 내 손목을 잡고 서랍에서 빼냈다.
강하게 잡힌 것도 아닌데 어째선지 저항 할 수가 없었다.
“무슨 짓이죠?”
“도망칠 필요 없어.”
그렇게 잘라 말한 그녀는 내 손목을 부드럽게 잡아 끌어 다시 침대에 앉혔다.
그리고선 무덤덤한 얼굴로 방을 나서며 말했다.
“기다리고 있어.”
“그게 무슨…”
그녀는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방을 빠져나가 문을 닫아버렸다.
“대체…”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얼른 물건을 챙겨서 밖으로 도망치는 것이 현명할 것 같았지만,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침입자는 열 명이라고 했는데… 두 명이 망을 보고 있댔으니 집 안에 들어온 것은 여덟 명인가?
과연 그녀 혼자서 그 인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혼자서 여러 명을 상대하러 나간다는 것은 지독한 멍청이거나 굉장히 강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제발 후자였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정원에서 내 방으로 옮길 때 느껴진 마른 체형을 봐선 아마 신체적인 능력은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마법?
목이 완전히 꺾이고도 멀쩡하게 일어났으니까, 엄청난 수준의 마법사일지도 모른다.
정말로?
아까 전에도 갑자기 내 방에서 나타난 것을 보면 신빙성이 있을지도 몰라.
그럼 나는 얌전히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걸까?
그러고 싶지는−
“나와도 돼.”
내가 무언가 결심하려고 했을 때, 문 밖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망설이다가 침대에서 일어나 걸었다.
…나간지 3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상황이 끝났다고?
미심쩍은 기분을 느끼면서도 어째선지 정말로 문을 열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특별한 힘이라도 있는 걸까.
정말로 강력한 마법사라면 그럴 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내가 이름도 모르는 첫 키스 상대에게 단단히 홀려 버렸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
꿀꺽. 침을 삼키고 방 문을 열자 달콤한 꽃향기가 코를 간지럽혔다.
“−이, 이건.”
한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이 맴도는 복도에는 일곱 구의 해골과 한 명의 남자, 그리고 소녀가 있었다.
복도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는 해골들에는 군데군데 검은 색의 장미꽃이 자라나 은은하게 달빛을 받고 있었다.
죽음 위에 피어난 꽃들의 아찔한 향기 때문인지, 너무나도 현실미가 없는 광경 때문인지− 머리가 어지러워 져서 약간 비틀거렸다.
그 중간에 서있는 그녀는 자신의 발치에서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고 있는 남자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 녀석이 대장이야.”
“당신이− 당신이 한 건 가요?”
응. 당연한 것을 묻는 다는 듯 그녀는 나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너무나도 태연하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자신이 죽였노라 고했다.
“그렇, 군요…”
“…?”
공포 때문인지 숨을 먹는 소리만을 내며 움츠러들어 있는 남자에게는 약간의 신경도 쓰지 않고서, 그녀는 나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당신, 위험한 사람이군요.”
그 요염하게 붉은 안광이−
견딜 수 없이 매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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