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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EBS외전)비합리적인 선택(下)

LL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3.04 00: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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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와 친해진 이후로는 학교에 다니는 날들이 다시 즐거워졌다. 아니, 즐겁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였다. 대화할 친구가 생기는 것만으로도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 지를 다시 느끼게 되었다.


 "좋은 아침이야."


 "안녕."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그 얼굴을 찾게 되고, 없으면 들어오기 기다리게 되는 존재가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예전에는 상상조차 못한 상황이지만, 이젠 친구 한 명만 있어도 떨어져나갈 여럿 있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단순하게 같이 어울리기보다 무엇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소중한 친구. 이젠 아리가 없는 고교 생활은 상상하기조차 싫을 정도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상황은 내 뜻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내가 처음에 아리를 밀어내려고 했던 불안감은 현실로 금방 다가왔다. 쉬는 시간에 잠시 화장실에 나갔다가 교실에 들어오기 직전, 큰 목소리가 문 너머로도 들려왔다. 차마 손잡이를 돌리지 못하고 그 자리에 우뚝 서게 만드는 목소리.


 "유리랑 그만 좀 어울려 다니지 그래? 다른 친구가 없다면 소개해 줄 테니까."


 아리의 약점 중 하나였던 적은 친구를 해결해주면서 나를 떼어 놓으려는 작전이었다. 작년에 있었던 일 가지고 아직도 괴롭힐 정도로 치졸한 모습에 이가 뿌득 갈렸다. 동시에 저렇게 해서 떨어져 나간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왈칵 올라올 것 같았다. 아리마저 나를 떠난 다면 나는….


 "싫어."


 "뭐, 뭐라고?"


 "다른 친구는 필요 없어."


 잠시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똑 부러지게 거절하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어디서 저런 용기가 난 것일까?


 "너, 너 그거 몰라? 걔 레즈야!"


 "본인이 아니라고 했는걸! 걔가 레즈라는 증거는 어디 있는데! 아니 설령 그렇다고 해도 내 소중한 친구야! 오히려 너야말로 걔를 고립시키고 싶을 뿐인 거 아냐?"


 그대로 교실 앞에 서서 손등으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야 했다. 동시에 그동안 떠나갔던 다른 친구 여럿보다 아리 한명이 특별히 소중하게 느껴졌다. 어서 들어가서 아리를 난처하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 눈물로 부어오른 눈가를 보이기 민망했다. 다 듣고 있었다는 티를 내면 안 되는데, 울컥하는 감정이 도저히 제어되지 않았다.


 "후, 후회할 거야!"


 마지막 으름장과 함께 교실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날카로운 인상의 그 얼굴과 바로 마주쳤다. 도발하듯 승리의 V자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아리를 생각해서 차마 그러지는 않았다. 저 얼굴… 당시엔 기억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잊고 있었지만 이번엔 확실히 기억해 두었다. 이젠 나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으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된 다면 필사적으로 대응해야 하니까.


 "언제까지 쳐 웃을 수 있는지 두고 봐."


 그런 나지막한 중얼거림을 끝으로 내 뒤로 달려가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아리 앞으로 다가가 평소와 같이 앉아서 수다를 떨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때부터 전에 없었던 정체 모를 감정이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며 살아나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저기… 괜찮아?"


 단발머리를 한 단정한 얼굴… 선도부원인 예림이였나? 아리 말고는 이름을 제대로 기억 못하고 있어서 이것대로 문제였다. 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리 앞으로 다가와 보였다. 친하게 지내진 않지만 대놓고 나를 멀리하지도 않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 아마 선도부 특유의 의무감 같은 것이겠지.


 "아무 일도 아니었는걸."


 "무슨 일 있으면 말해 줘."


 "응. 고마워."


 이젠 옆에 아리가 없으면 불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없는 곳에서 혹여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을까, 그 괴롭힘에서 저 아이가 구해준다면 아리를 빼앗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다양한 것들이었다.


 아리가 평소와 같이 거리감을 못 재서 가볍게 팔짱을 껴 오면 당시와 달리 이젠 되려 진정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하하… 말도 안 돼. 결국 레즈라는 그 소문대로 되어버린 걸까 나는. 터무니없는 순간에 이 마음을 받아들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기로에 놓여버리고 말았다.


 아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받아들이면 안 되었다. 만에 하나라도 고백했다간 나를 믿어주고 있는 아리를 배신하는 것과 같으니까. 그리고 만약 맺어진다면 아리도 그 추문에 휩쓸려서 고달픈 고교생활을 보낼 것이 분명했다. 나의 하찮은 이기심으로 소중한 학창생활을 먹칠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나 혼자만 괴로운 것이 아리도 함께 불행해지는 것보다 합리적이니까.



 결국 그 이후로는 학교에서 아리를 보는 것이 괴로워졌다. 곁에 있고 싶은 마음과 감정을 제어할 자신이 없는 두려움이 내 안에서 늘 싸우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내 감정을 정리하다가 새로 알게 된 것은, 아리에게 차이는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리도 괴로워지는 것도 싫지만, 차인 뒤에 친구로도 남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너무도 무서웠다.


 "유리야. 얼마 전까진 친구가 생겼다고 얼굴이 폈더니 새로운 걱정이라도 생겼니?"


 엄마는 아무래도 내가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중학교 막바지를 최악의 형태로 마무리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걱정은 그 때와는 전혀 다른 형태라는 게 문제였다. 추가로 가족들이라 해도 도저히 밝혀서는 안 되는 감정도 포함 되어있었다.


 "괜찮아요. 요즘 친구가 다른 애들에게 괴롭힘 당할까 오히려 걱정이라서요."


 "그럼… 오빠가 도와줄까?"


 "오빤 나서지 마!"


 운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고작 미용사인 오빠가 나서봐야 도움이 될 그림도 안 보이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여고생들에게 얻어맞고 질질 짜는 상황이 걱정일 정도. 그리고 어디서 여고에 슬쩍 들어오려고 밑밥을 깔아!


 "쳇."


 하지만… 내가 직접 해결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오빠가 직접 개입하진 않더라도 다른 도움을 받을 여지는 있으니까.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다른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어?"


 "부탁?"


 "응. 부탁."


 오빠는 어렸을 때부터 왠지 부탁에 약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간접적인 도움을 받기는 좋았다. 원래 중 3때부터 이 일은 스스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아리라는 지키고 싶은 존재가 생겨버렸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카드는 하나라도 더 필요했다.


 "가능한 범위에서라면."


 "고마워!"


 이것만 있다면… 아리를 바로 지킬 수는 없지만, 다시는 괴롭히지 못하게 커다란 으름장이 될 수 있었다. 제발 아리만큼은 함부로 건들려 하지 말기를.



 그러나 안 좋은 예상은 언제나 너무도 쉽게 맞아떨어져 왔다. 다음 날 바로 등교하고 나니 아리의 책상 안에 누가 터진 우유를 넣어 놓은 상황이었다. 범인은 안 봐도 그 녀석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심증뿐이었다.


 "너무해."


 아리의 얼굴이 울상으로 물들자, 나도 머리가 새하얗게 되는 기분이었다. 건드리려면 나를 건드리지, 이렇게 제 3자를 건드려도 되는 것일까? 음습하고 잔인했다. 아니, 그래도 아직은… 무언가의 착오였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오해일 가능성이 희박하게나마 있으니까.


 그러나 괴롭힘은 살짝 집요해졌다. 체육 시간이 되자, 등교할 대 신었던 운동화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려 실내화로 체육 수업을 듣기 시작한 것이었다. 확증도 없어서 함부로 나서면 안 되는 건 알지만… 점점 기분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설마 그걸 이렇게 빠르게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무래도 간을 볼 때가 아니었다.


 체육 수업이 끝나니, 아리의 교복 치마가 사라져 있었다. 이 정도면… 선전포고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괴롭혔다는 확증이 나오지 않는 한, 나서지 않는 쪽이 합리적이었다. 실제로 괴롭힌 쪽은 전혀 다른 쪽일 수도 있으니까. 아직은 심증만 있을 뿐이니까. 하지만 물증이 없으면 만들면 되었다.


 "아리야. 미안하지만 오늘은 혼자 밥 먹어도 되지?"


 "으응."


 아마 괴롭힘이 지속되는 가운데, 나마저 같이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은 조금 잔인한 그림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조금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지금 당장은 미안했지만 한시라도 해결하기 위한 거니까 어쩔 수 없었다. 교복 치마 아래 체육복을 입고 수업 듣는 학생은 제법 있지만, 아예 이런 사태로 체육복만 입고 수업을 듣는 경우는 초유의 사태였다.


 그 기억해둔 얼굴을 찾아 각 반을 찾아다녔다. 어차피 같은 학년일 테니 범위는 그리 넓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찾는 데는 많은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었다. 결국 그 망할 얼굴을 찾아낸 나는 그 교실로 쳐들어갔다. 그리고는 평소에 없던 용기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그 년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너지?"


 "무슨 소린 지 모르겠네?"


 역시 녀석은 예상대로 시치미를 떼 왔다. 다른 녀석들을 시켜서 분산해서 일을 했든 범인은 자명했다.


 "뭐 됐어. 증거는 내 폰에 있으니까. 교무실에 제출하는 게 쫄린다면 점심시간에 뒷문 앞으로 나와 줄래? 안 오면 재미난 일이 벌어지겠지?"


 물론 허세였다. 상식적으로 그런 증거가 있으면 내가 나서지 않고 교무실에 제출 했을 테니까. 하지만 켕기는 일이 벌였다면 만에 하나라도 증거가 진짜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아마 집단린치를 생각하고 나올 것이다. 그렇기에 연약한 나는 무기를 챙겨둘 수밖에 없었다.


 운명의 점심시간이 되었다. 쓸쓸해 보이는 아리의 모습을 뒤로 하고 피의 결전장으로 다가갔다. 이걸로 모두 끝내버릴 생각이었다. 비장미넘치게 도착한 약속 장소에는 예상대로 대여섯 명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전혀 무섭진 않았다.


 "역시 쫄렸나봐? 나왔네?"


 "아니? 너 조지려고 나왔거든?"


 "아리에게서 훔쳐갔던 거 지금이라도 순순히 돌려주면 용서해 줄 의향은 있거든."


 "아마 지금 쯤 소각장에 있지 않을까? 찾으려면 우릴 모두 쓰러트리고 가야겠지?"


 그 말이 떨어지자 슬슬 나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진 예상 대로였다. 이걸로 물증 확보는 완료였다.


 -역시 쫄렸나봐? 나왔네?

 -아니 너 조지려고 나왔거든?

 -아리에게서 훔쳐갔던 거 지금이라도 순순히 돌려주면 용서해 줄 의향은 있거든.

 -아마 지금 쯤 소각장에 있지 않을까? 찾으려면 우릴 모두 쓰러트리고 가야겠지?


 나는 바로 폰에 녹음된 내용을 틀어주었다. 이걸로 물증 확보는 완료. 더불어 나를 집단린치 하려고 한 정황까지 확실했다. 이런 골이 빈 녀석들은 단순해서 참 좋았다.


 "이 새끼가! 얘들아! 조져!"


 "덤벼!"


 나는 주머니에서 비장의 무기인 가위와 바리깡을 꺼내들었다. 그냥 몽둥이로 때리는 건 아프지만, 그 잘난 헤어스타일 한 번 밀리면 최소 몇 달간은 답이 없으니까 이만큼 적절한 무기도 없었다.


 "머리 먼저 밀리고 싶은 년부터 나와."


 내가 으름장을 놓자, 모두 반걸음씩 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다. 먼저 한 대 때리더라도 바리깡이 스쳐서 눈썹이나 이마 부근을 잘못 밀리면 학교 다니기 쪽팔릴 테니까 그럴 수밖에 없겠지.


 "쫄려? 이거 교무실에 제출 되어도 좋아?"


 양아치들의 의리는 이렇게도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바리깡을 본 녀석들은 바로 등을 돌리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물론 증거가 녹음 된 한 년만 빼고.


 "증거가 녹음만 안 되었으면 너도 도망갈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 되었지?"


 "제, 젠장!"


 그 이름조차 기억할 가치가 없는 녀석은 막대기를 어디선가 집어들고 휘둘러 왔다. 하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걸 피한 다음 바로 바리깡을 머리에 대고 스위치를 켜자, 한 쪽이 가볍게 밀려 나갔다. 하지만 이걸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씨, 씨발! 뒤지고 싶어?"


 이성을 잃은 그 년은 막대기를 마구잡이로 휘둘러 왔다. 그걸 모두 피할 자신은 없었다. 그러니 작전은 심플했다. 가위를 들고 있던 왼 팔을 내주고, 오른 손에 든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어버리는 것이었다.


 "으윽!"


 왼쪽 팔이 살짝 아팠지만, 아드레날린이 잔뜩 분비되어서 그럴까? 통증은 거의 없었다. 이거면 공격이 가능했다. 이번엔 정수리 한가운데를 싸악 밀려고 바리깡을 댈 때였다.


 "자, 잠깐만! 유리! 너 '착한 아이'였잖아! 이런 애 아니었잖아! 응?"


 "착한 거랑, 일방적으로 갈취당하는 거랑은 다르다고 생각해. 최소한 소중한 것은 지켜야지. 그리고… 가만히 있던 '착한 아이'를 왜 굳이 건드려서 이 사단을 만들어?"


 말을 마치고는 거리낌 없이 전원을 켠 다음 일직선으로 시원하게 밀어주었다. 착하다는 평판 따윈 개나 주라지. 그딴 거는 아리보다 소중하지 않으니까.


 "고속도로가 생겼네?"


 "흐, 흐윽! 씨발년!"


 녀석은 전의를 완전히 상실했는지 털썩 무릎을 꿇고 눈물을 짜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하나도 동정이 가지 않았다. 어떻게 요리할까 고민하던 중, 아직 왼팔이 잘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가위로 교복 상의를 잘라보았다. 미용실 가위는 의외로 예리하지 않아서 단추를 뜯는 정도밖에 못했다.


 "뭐 됐어."


 이 이상의 괴롭힘은 무의미했다. 빨리 소각장으로 가서 아리의 물건을 되찾아오면 미션 완료였다. 방해받긴 싫었기에 마무리로 무릎으로 녀석의 얼굴에 세게 한 방 먹였다. 이건 내 친구들을 빼앗아 간 몫까지 담긴 것이었다.


 녀석의 몸이 허무하게 쓰러졌고, 혹시라도 아리의 치마가 소각장에서 타고 있을 경우를 대비해서 녀석의 치마를 벗겼다. 어차피 안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있어서 팬티바람까진 되지 않았으니 괜찮겠지?


 그리고 서둘러 소각장 앞으로 달려갔다. 언제 불을 피우는지는 모르지만 늦지는 않았기를…. 주변에 쓰레기들이 있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리의 물품들을 서둘러 찾아보았다. 그리고 한 구석에 익숙한 것들이 보였다. 아직 태우기 전이라서 다행이었다.



 "이렇게 된 거에요."


 교무실에 있는 모두에게 그 경과를 설명해 주었다. 부모님은 호출되고, 이제 알았는데 나영이었나? 그 망할 년이 부모님에게 일러바쳐서 걔네 학부모도 찾아오고 난리도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당한 게 어지간히 억울했는지 나한테 녹음 당했다는 사실도 잊은 모양이었다. 바로 걔네 부모님도 듣는 곳에서 스마트폰으로 증거를 틀어주었다.


 -역시 쫄렸나봐? 나왔네?

 -아니 너 조지려고 나왔거든?

 -아리에게서 훔쳐갔던 거 지금이라도 순순히 돌려주면 용서해 줄 의향은 있거든.

 -아마 지금 쯤 소각장에 있지 않을까? 찾으려면 우릴 모두 쓰러트리고 가야겠지?


 "애가 장난한 것 치고 너무한 거 아냐!"


 그러나 녀석의 부모는 반성하는 기미 하나 보이지 않고 있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옛 말을 어느 때보다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저런 폐기물을 심었으니 폐기물이 나오지.


 "아이 교육 이야기는 우리끼리 합시다."


 아빠가 모처럼 근엄한 표정으로 자리를 잡고 앉자, 상대의 부모님도 그 압력에 살짝 눌려 바로 앞에 착석했다. 그 사이에 엄마는 내 어깨를 살며시 붙잡고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나도 한 마디 쏟아내고 싶었지만, 아빠에게 맡기면 어떻게든 되겠지.


 "친구를 지키기 위해 한 거였지?"


 "네."


 "그래. 잘 했단다. 친구가 괴롭힘 당하는 걸 방관하는 딸로 자라지 않아서 엄마는 자랑스럽단다. 정도는 조금 지나쳤지만…."


 그리고는 살며시 나를 포옹하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렇게 나와 아리는 평온한 학교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다행히 아빠가 잘 수습했는지 내가 저지른 일은 아리의 귀에까지 들어가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바리깡의 임팩트가 생각보다 강했는지, 이후에 보복을 하러 오는 일도 없어서 학창 생활은 무사태평했다.





 "그러고 보니 아리는 그 때 기억나?"


 "언제?"


 "다른 반 애가 나랑 친구하지 말라고 으름장 놓았던 거."


 그러자 내 가장 소중한 친구… 아니 이젠 연인이 된 아리는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아무래도 기억나는 반응이었다. 나도 며칠 전 일처럼 기억하는 일이니까 당연한 거겠지. 내 입장에선 그게 아리에게 반하게 된 계기였지만.


 "그, 그 때 듣고 있었어?"


 "물론이지. 당시엔 정말 여자를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내 말에 아리도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푹 숙였다. 당시엔 레즈가 아니라고 했는데… 정말로 둘 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사실 아리와 한 걸음 딛는 데는 친구로서의 지위도 잃을 각오도 동반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잘 되어서 다행이었다.


 "그, 그럼 오늘은 졸업 앨범을 보면서 고1때 기억나는 얼굴들이라도 찾아보면서 추억을 살려볼까?"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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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번 편을 기점으로 유리에 대한 호감도가 올랐을 지 내려갔을 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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