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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a4 한장으로 끝내는 백합 - 9

글쓰는병시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3.04 05:11:15
조회 184 추천 1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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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영화를 보던 중이었다. 전장의 포화 속, 한 부대의 퇴각로를 따라가는 영화였다. 우리는 어깨를 맞대고 포탄이 터지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 폭발음이 들리고, 부대원들의 팔다리가 잘려 나뒹구는 장면으로 전환되었다.

 "잔인하지? 다른거 볼까?“

 눈살을 찌푸리며 나는 너에게 말했다. 내심 네가 동의해주었으면 싶었지만, 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젓기만 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계속해서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여러 장면들이 지나가고 주인공과 남은 부대원들이 드디어 아군의 진지를 발견했다. 적군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적군의 군복을 입고 있었던 주인공과 부대원들은 자신의 군복이 무엇인지도 잊은 채 진지를 향해 뛰어갔다. 그들을 마중나온 것은 아군의 기관총 세례였다. 다른 부대원들이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하고, 마지막 남은 주인공마저 진지를 몇 미터 남겨놓고 기관총에 벌집이 된 채 쓰러져 버렸다. 영화는 동요와 함께 주인공과 부대원들이 서로 장난을 치는 장면을 보여주며 끝이 났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우리는 밤이 깊었기에 침실로 향했다.

 "할래?“

 네가 먼저 말한 것은 오랜만이었다. 너는 말을 마치자 마자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나는 너의 모습을 말 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달은 없었지만 가로등 불빛이 창문을 통해 침실을 밝혔다. 창문 앞에 너는 나체로 섰다.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의 실루엣을 보며 나도 결국 옷을 벗었다. 나는 옷을 벗으면서 생각했다. 도대체 무엇이 너의 입에서 먼저 하자는 말을 하게 만든걸까, 옷을 다 벗고 너에게 다가갈 때 까지 나는 그 대답을 찾지 못했다.

 나는 창문 앞의 너를 뒤에서 껴안았다. 보드라운 너의 살결과 적당히 차가운 체온이 기분이 좋았다. 너는 내 머리칼을 만지작 거리더니 이윽고 뒤로 돌아서 내게 입을 맞추었다. 너의 혀가 내 혀에 얽히려 들어왔다. 관심을 갈구하는 듯 집요하게 내 혀를 탐했다. 그 기세에 나는 뒤로 밀려 침대 위로 넘어졌다. 너의 손이 내 가슴으로 향했다. 나는 저항하지 않고 너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 내 가슴을 괴롭히는 대상이 손가락에서 혀로 바뀌고, 너의 손은 내 배꼽을 쓸어내리곤 음부로 향했다. 너는 겉에서부터 부드럽게 내 음부를 매만졌다. 너의 일방적인 공세에 정신을 못차리던 나도 이때만큼은 정신을 붙잡고 너를 바라볼 수 있었다. 언제나와는 다르게 너의 표정엔 여유가 없었다. 나는 너의 허리를 감싸던 팔에 힘을 주어 너를 꼭 껴안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던거야?“

 너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나를 바라보았다. 너는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말했다.

 "영화를 보니깐, 나도 너도, 저렇게 어이없게, 죽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어서.“

 "그랬어?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여기 있으니깐, 그런 생각 안해도 돼.“

 하여튼 너무 생각이 많은게 탈이라니깐. 나는 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시 처음부터 할까,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너의 위에 올라탔다.

 "내일 일요일이니깐 마음껏 하자.“


 우리는 점심때가 되어서야 침대에서 나올 수 있었다. 팔과 허리가 지끈거렸다. 내가 커피를 타고 있자 너는 어느새인가 일어나 뒤에서 나를 껴안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너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먼저 탄 커피를 너에게 주고 새로 한잔을 더 탔다. 너는 소파에 가서 앉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

 ", 아냐 그냥.“

 싱겁게스리, 나는 그렇게 말하며 너를 따라 소파로 가 앉았다. 커피 향기가 거실에 퍼진다. 너는 커피를 마시다 말고 나를 껴안았다. 어느 사물도 소리를 내지 않는 가운데너와 내 숨소리만 들렸다.

 "그렇게 무서워?“

 너는 아무 말 없이 내 어깨에 머리를 비볐다.

 "그러니깐 후회없이 살라는거야, 어이없게 죽어버리면 나중에 후회해도 어쩔 수가 없잖아.“

 나는 아무것도 없는 벽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커피 두잔이 김을 내며 식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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