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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높이,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삼일월야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3.10 12:58:45
조회 266 추천 12 댓글 1
														

내가 지금 떠 있는 곳은 별의 바다. 인류가 가지고 있는 호기심의 원천이며 언제나 갈망해 온 꿈의 영역이기도 하며 그리고, 내가 그토록 바라는 있는 희망이 있는 곳. 나는 이 검은 우주에서 비아를 만날 것이다. 나를 이곳까지 이끈 비아를, 두 눈으로 다시 볼 것이다.


“다시 만나자.”


받아들이기 힘든 이별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후유증은 예상 이상으로 크게 다가왔다. 세찬 강물을 따라 퍼져나가는, 한 때 비아였던 존재를 보고 있으면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서 나는 도무지 고개를 똑바로 들 수 없었다. 비아를 떠나 보낸 날, 그와 함께 오는 비아가 없는 날. 아무 생각없이 시간의 흐름에 올라타려 해도 나는 자꾸만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려 했다.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같은 건 없는데.


엄마와 아빠는 그렇게 추억 속을 표류하기만 하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마음이 실질적인 행동으로 변하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었고, 우리는 달 거주구로 이사했다. 그 때 아빠는 달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이야기했었지만, 내가 어른이 되고서야 진짜 이유를 들려주었다.


“네가 비아를 잊기를 바랬어. 지구에 있다면, 지구의 중력에 이끌린 채라면 넌 늘상 그 아이를 생각할테니 말이다.”

가짜 구름과 가짜 태양이 그려진 돔이 있는 인공 중력 아래에서의 생활, 내가 비아를 추억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사라진 장소. 그제서야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시간의 흐름에 올라탈 수 있었다. 하염없이 앞을 향해 흐르는 무상한 물길을 타고. 눈을 떠 맞이한 어느 날의 아침, 나는 어느새 아버지와 비슷한 키를 가진 채로 브래지어의 후크를 차고 있었다. 비아는 옛날에 적은 일기장의 페이지를 넘겨야 간신히 찾을 수 있는 흐려진 글자로만 남아있었다. 스스로의 무정함에 쓴 웃음을 지으면서도, 나는 일기장을 덮었다. 나는 그렇게 아빠가 원했던 모습으로 커가는 듯 했다.


‘이리로 와. 높은 곳, 더 높은 곳으로…’


그것은 착각에 불과했지만. 어느 날부터 내 머리 속을 메우는 나를 부르는 목소리. 아직 앳된 떨림이 있는 그 목소리는 분명 어린 날의 비아가 내는 것이었다. 비아는 재가 되어 저 지구에 산산이 흩뿌려졌는데도, 내 신경을 가득채우고 있었다.


못 들은 채 하려 했다. 그리고 또 순간의 악몽이라 생각하며 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헛된 시도에 불과했다. 어느 순간 나는 비상용 우주복을 입은 채로 천장을 올라, 가짜 태양 뒤에 감춰진 작업용 출구의 해치를 열고 있었다.


비아의 목소리는 나를 재촉했다. 높은 곳, 더 높은 곳으로. 해치를 열고 맞이한 천정은 끝이란 없는 머나먼 바다. 내게 들리는 비아의 목소리는 저 천정의 끝에서부터 오는 듯 했다. 나를 그곳으로 인도하듯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 주는 듯이. 당장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로프에 묶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손을 뻗는 것이었다. 결코 닿을 수는 없지만, 언젠가 도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 그렇게 내 두 팔은 구조대가 올 때 까지 아득한 하나의 점을 향하고 있었다.


“네 꿈이 그렇다면 말리지는 않으마. ...다녀오렴.”


어딘가 슬픈 눈을 한 아빠를 뒤로 한 채로 나는 우리 은하 바깥의 탐사를 위한 훈련소로 향했다. 내가 팔을 뻗은, 그리고 비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오로지 별의 반짝임만이 존재하는 어두운 우주였으니. 중력 가속에 몸을 맡기고 속을 게워내는 훈련의 연속.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고통으로 점철된 달력을 냅다 던져버리곤 했지만, 곧바로 다시 주워 탁자에 올려 놓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정말 그 말대로. 내가 당긴 방아쇠를 통해 뻗어나간 전류가 유전자 조작 토끼의 목숨을 빼앗았을 때, 나는 최신예 탐사선의 1인 승무원으로 선발되었다. 나 이외의 후보가 전부 훈련을 포기했다는 간단한 이유에서였다.


“모쪼록 잘 부탁하네.”


우리 은하 바깥 조사를 위한 최신예 탐사선의 1인 승무원, 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붙었지만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다른 지적 생명체와 접촉한다거나 인류의 새로운 주거지를 찾는 그런 위대한 임무와는 거리가 있었다. 역사상 최초로 탑재된 축퇴 동력원이 얼마나 안정적인지, 또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 지를 측정하는 것이 내 목표다. 즉, 나는 뒤이어 올 사람들을 위한 선행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전부로, 그것을 암시하듯이 이 탐사선에는 장기간 항해를 위한 자체 식량 생산 시설을 제외하면 그럴싸 할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거기에 동력원의 안정성마저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으니, 실험쥐라고 한다면 부정할 수 없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임무.


그래도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지을 수 있었다. 어느 날 부터 바랜 내 소원에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었으니. 몰려든 취재진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도, 그리고 갈비뼈를 부러트릴 정도로 몰려드는 가속에서도 들려오는 비아의 목소리는 너무도 또렷하고, 또 생생했다.


‘높은 곳, 더 높은 곳으로…’


외로이 얼어붙은 지옥의 신을 뒤로한 것은 머나먼 나날. 반복적으로 하는 지구와의 통신에 일차가 발생한 것 또한 한참 전의 일이다. ...언젠가 지구로 돌아간다면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언젠가 사라질 얄팍한 환영에 매달려 머나먼 여행을 떠난 광인을 기다리고 있을 사람은 없겠지. 나는 눈을 감고, 비아와의 만남을 상상한다.


좁디 좁은 탐사선 안을 표류하는 나를 달래주는 것은 이따금 들리는 똑같은 목소리와 나중에 대한 상상이었다. 내가 정말로 비아와 다시 만나다면, 우리는 다시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아니, 그전에 육체를 잃고 목소리만 남은 비아는 정말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까? 이루어질 지 확신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이런 공상이야말로 외로이 무중력을 떠다니는 내게 남은 위안이자 즐길거리였다.


어느 날의 유성은 검은 도화지를 찢어 가르고 있었다. 또, 어느 날의 검은 바다는 푸른 빛의 별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그렇게 변하는 우주의 한 구석에서, 나는 살아가고 있다. 디스플레이에 비친 모든 수치는 안정을 표하는 녹색빛을 발하고 있는 채로, 나는 낡은 일기장을 꺼내 읽으며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 그러던 중,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노란색으로 점등하는 불빛. 외부 카메라로 전환된 디스플레이는 무엇인가에 긁혀 금이 간 외피를 보여주고 있었다. 내부에서 조작으로 외피를 보강하고 싶었지만 절묘하게도 드론의 가동 범위를 벗어난 위치에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항해 최초로 탐사선을 고정시키고, 해치를 열어 우주로 향했다.


로프에 몸을 맡긴 채, 무중력의 계단을 밟아 올라가 도달한 손상부위. 카메라로 보았을 때도 느꼈지만 실제로 간단한 처치만 한다면 문제없을 그런 상처였다. 어째서 이런 게 생겼을까. 문득 의문이 들었지만 무중력의 해방감을 즐기며 나는 도구를 들었다. 그 순간, 내 귀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가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어.’


그 목소리와 함께 나를 둘러싼 공간은 일순 검은 우주에서 새하얀 빛으로 둘러싸인 기묘한 곳으로 바뀌었다. 이해의 영역을 벗어난 변화. 도무지 받아들 일 수 없을 때 저 멀리서 익숙한 실루엣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내 꿈의 체현.


“반가워...정말 오랫만이야.”


이따금 귀의 들리던 목소리는 분명한 형체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 모습은 내 기억과는 조금 달라져서.

“이건 어때?”

비아는 중학교 때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입학식에조차 오지 못한 비아가 교복을 입고 있었다.


“아니면 이런 모습이 좋아?”

또 지금의 비아는 언젠가 내가 상상했던, 나와 함께 캠퍼스를 거니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일렁이는 머릿결은 빛에 반짝여, 정말 내가 아름다울 거라 생각했던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내가 정말 보고 싶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건 그 날의 비아였다고.


“원래대로 돌아와줘.”


“재미없게.”


툴툴대면서도 비아의 키는 점차 작아져, 다시금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로 돌아왔다. 허리까지 내려오던 머리카락도 줄어 어깨 정도의 숏컷으로 변해. 입고 있는 옷은 병상의 환자복으로 바뀌어.


“머리를 깎기 전이네?”


“네 앞에서는 아름다운 채 있고 싶으니까.”

“어떤 모습이건 상관없어.”

“그래도 그게 내 마음이야.”


확실히 비아는 치료가 시작되고 나서, 잘라내버린 머리를 싫어했다. 병문안을 갔을 때의 나는 그런 모습도 좋다고 이야기했지만 비아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추려고 했었다. 언젠가 내가 선물로 준 가발을 보고 쏟아낸 눈물은 알아챌 수 밖에 없는 마음이 흘러나온 것이었으니.

“...사실 내가 미쳐버린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었는데.”


“그런데?”

“이렇게 만나서 다행이라고.”


나는 내 말을 듣고 웃는 비아의 모습을 분명 볼 수 있었다. 내 상상 속에서 비아가 그랬던 것 처럼. 우리는 그 뒤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내 경험을 말해주었다. 이 머나먼 우주로 오기 위해 어떤 훈련을 받았는 지, 그리고 이따금 바라보는 우주의 신비란 얼마나 아름다우면서 쓸쓸한 것이었는지. 비아는 사후 세계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죽은 사람의 혼이 어떻게 우주로 흘러오게 되는 지. 온갖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우리는 슬픈 표정 같은 건 짓지 않았다. 겨우내 만난 지금 이 순간은 웃어 행복을 표하는 것만으로도 짧았으니까. 그렇게 몰두해 있던 어느 순간, 우리가 함께 있는 공간은 우주의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네게 울리는 메아리로 돌아가.”


이 짧은 만남의 끝을 고하는 말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도 괜찮을거야.”


나는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내게 건네는 비아의 마지막 말은, 그 옛날과 같이.


“다시 만나자.”


점차 어둠과 하나가 되어가는 비아는 마지막까지 내게 미소를 지어주며 그렇게 우주로 돌아갔다. 눈을 떴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별의 빛으로 반짝이는 아득히 넓은 하늘. 나는 로프에 감긴 채 탐사선 외벽에 고정되어 있었다. 천천히 해치를 열고 들어온 탐사선 안은 놀라울 정도로 고요하고, 또 변한 것은 없이. 계기판에 두고간 일기장에 새로 새겨진 글귀 또한 없이.


내가 지금 목격한 것은 꿈일까, 그도 아니면 환청이 만들어 낸 신기루에 지나지 않을까. 내 손으로는 아무 것도 쥘 수 없었고, 남아있는 것 또한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모든 게 진짜라고 믿고 싶다. 이 막막한 우주에서 죽어 쓰러져도, 언젠가 지구권으로 돌아가 재가 되어도 내 영혼은 드넓은 하늘의 품에서 비아와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비아와의 만남은 그런 미래의 체험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문득 바라본 탐사선의 밖에선 수많은 빛이 꺼져가고, 또 빛나고 있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


이제 그 얼어붙은 지옥의 신은

명왕성입니다

명왕성=플루토=하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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