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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도망치는 나와 달라붙는 그 녀석

도킹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3.15 21:00:33
조회 1321 추천 32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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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륵.


"으겍..."


문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빈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 나는 몸을 웅크려 교탁 아래 숨어 있기에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확신했다.


이유하. 그 녀석이다.


그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교실 뒷쪽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설아- 어딨어-? 은설아-"


마치 애완견을 찾는 듯한 녀석의 말투에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빨리 집에 가서 게임을 해야 하는데 저 녀석한테 잡혀버린다면 엄청난 시간 낭비다.


분명 지난번처럼 몇 시간 동안 달라붙겠지. 그런 건 질색이다.


이번에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 순간, 다리에 저릿함이 느껴졌다.


​빌어먹을. 너무 오래 앉아있다 보니 그만 쥐가 나버린 모양이었다.


​"칫, 하필 이럴 때..."


어쩔 수 없지. 살짝만 자세를 바꿔볼까.

​아주 조금만 움직이는 거야, 다리가 저리지 않을 정도로만.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미 감각을 잃은 다리는 내 말을 듣지 않았고---


​어? 어어?


​"아."


결국 쭉 뻗어진 내 다리는 교탁에 기세 좋게 부딪치고 말았다.


쾅, 하는 소리가 빈 교실 안을 가득 채웠고 나는 탄식했다.

그리 큰 소리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안 들릴 리가 있나.


​아니나다를까 곧장 교탁 앞으로 달려오는 유하의 발소리가 들려왔고 곧 내 눈 앞에는 흰 다리 한 쌍이 보이게 되었다.

이윽고 그 다리의 주인은 무릎을 굽혀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리 은설이가 여기 숨어 있었네~ 안녕!"


​"...어, 그래. 안녕."


...


​......


​"그만 가지?"


​"에이~ 이제 찾았는데 무슨 소리야? 일단 나와 봐!"


​갸아아아악. 


​바둥거리며 헛된 저항을 했지만 무의미하게 교탁 밖으로 끌려나왔다.


​그도 그럴 게 내 키는 150cm(<-반올림함).

반면에 유하 이 녀석은 어림잡아도 170은 족히 넘는다.


​게다가 나는 평소에 운동 같은 것도 전혀 하지 않으니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잠시 후, 뭔가 푸근한 느낌에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나는 유하의 다리 위에 앉아있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인정하긴 싫지만 동갑이라기엔 체격 차가 너무 커서 마치 엄마 품에 안긴 아기같다고나 할까. 


​아무튼 이틀 전하고 똑같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때는 청소함 안에 숨어있다가 걸려버렸었지.


​"그래서 왜 숨어 있던 거야?"


​"이렇게 애 취급 하는 게 싫어서."


​쓰담쓰담.

지금 나는 유하에게 내 잿빛 머리카락을 유린당하고 있다.


내 대답을 들은 유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 거 치고는 꽤 좋아하는 거 아냐? 지난번에도 쓰다듬어줬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잖아?"


​누가 좋아한다는 거냐.


어제 머리카락을 만져주자 내가 몸을 떤 건 사실이지만 그건 간지러워서 그랬던 거다.

절대로 기분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다. 무슨 강아지도 아니고.

아니, 진짜라니까.


​이번에는 짐짓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아니거든. 것보다 나 학원 가야 하니까 놔 줘."


​"1학년 때부터 학원 안 다니는 거 다 알고 있어~ 거짓말은 나쁜 거야. 떽."


꼬옥.

오히려 부드러운 속박이 더욱 강해졌다.

그나저나 학원에 대한 건 이 녀석에게 말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아는 거지.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딱히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대화를 나눴던 적이 전혀 없다.


​마음 같아서는 정보의 출처를 묻고 싶었지만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아 나는 입을 다물었다.


​"후후후. 조금만 더 쓰다듬을게?"


​"예... 그러세요..."


​어제도 이런 말을 들었는데 한 30분 정도는 안겨있었다.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체념한 나는 계속되는 쓰다듬을 받으며 유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반짝이는 눈동자와 생글생글한 입가. 그리고 뒤로 묶은 푸른 빛의 찰랑이는 머리카락.

'저런 애도 있었나?'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 나와 정반대로 학생이든 선생님이든 할 거 없이 인기가 많고 신뢰받는 게 이 녀석이다.


​그런 유명인이 왜 나에게 이렇게 달라붙는 걸까.


​"응? 그건 네 어느 점이 좋냐는 소리야?"


​"어... 응?"


​이런 젠장. 무심코 생각하던 게 입밖으로 나와버리고 만 모양이다.

하지만 크게 당황하진 않았다. 어차피 조만간 물어보려 했었던 질문이었고.


​그것도 그럴 게 이상하지 않은가. 방금도 말했지만 유하는 상당한 미인이다.

만약 옆에 카메라 하나만 있다면 사람들은 연예인이 방송을 찍고 있다고 믿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하 다음가는 인기를 가진 혜수는 우리 학교뿐만이 아니라 다른 학교에도 남자친구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정작 유하에게는 그런 소문이 하나도 없다.


​자기자신이 완벽에 가까운 탓에 눈이 지나치게 높은 것일까.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걸까?

아니라고 한다면 왜 아무 특징이 없는 나에게는 이렇게 달라붙을까.


​어느 쪽이든간에 곧 당사자에게 이유를 들을 수 있다.


나는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유하를 바라보았다.


​자, 과연 이 녀석은 뭐라고 대답할까?


​...


​"당연히 전부 다 좋지!"


"...뭐라고?"


​전혀 예상치 못한 유하의 외침에 나는 멍청하게 되물었다.


​그런 내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유하는 한번 심호흡을 하더니---


​"우선 외모. 작아서 너무 귀여워. 꼭 아기고양이 같아. 그리고 머리카락은 별로 관리 안하지? 그래서 오히려 만질 때 기분이 좋달까. 색깔도 예쁘고 말이야. 또 너한테는 뭔가 좋은 냄새가 나서 안고 있으면 편안해지더라고. 비슷한 게 뭐가 있지? 그래, 허브. 가히 인간 허브라고 할 수 있지."


​"어, 어...?"


​큰일났다.

생각보다 훨씬 맛이 간 녀석이다.


유하는 마치 래퍼처럼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속사포로 말하기 시작했다.


​"성격은 또 어떤데. 싫은 척 하면서도 이렇게 안겨 있잖아. 이런 걸 츤데레라고 한다며? 맞다, 어제 지나가다가 봤는데 어느 할머니 짐 들어드리던 게 너였지? 역시 상냥하다니까. 그래도 조심해야 돼. 요즘은 위험한 시대여서 유괴범들이 그런 수법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너는 작고 아담하니까 잘 노려질지도 몰라. 그러니까..."


​유괴범보다 위험한 건 네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유하의 열변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야~ 1학년 때도 너랑 같이 다녔으면 정말로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쉽다니까! 물론 지금 만난 것도 다행이지만 그래도 1년이라는 시간을 허투루 날려버린건 정말 슬퍼. 3학년 올라가서도 같은 반이 되면 좋겠는데 말이지. 아, 대학교는 어디로 갈 생각? 성천대학교? 그럼 같이 기숙사에서 살까? 아니면 자취?"


​...처음에는 당황했는데 듣다 보니 오히려 차분해지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게임 이벤트가 시작하니까 빨리 집에 가야 했었는데. 이 녀석의 폭주는 대체 언제까지 이어지는 걸까.


​옆구리라도 꼬집어서 멈추게 해야 하나?


​...


...


...후우.


​뭐, 됐어.

나는 살짝 들어올렸던 왼손을 다시 내렸다.


​조금. 정말 조금. 

비유하자면 해변가의 모래 한 알 정도로 조금이지만 ​이 품의 온기가 기분이 좋았기에 나는 잠시만 어울려주기로 생각했다.


​어차피 나를 따라다니는 것도, 방과후의 이런 행동들도 어느 정도 지나면 질려서 그만두겠지.

그때까지 약간은 귀찮겠지만 이것도 언젠가는 좋은 추억으로 남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유하의 품에 안겨, 살짝 눈을 감았다.


​.​

​.

.

.

.

.

...쿨쿨




/////



그 애를 처음으로 만난 건 학교 도서관이었다.

아. 물론 같은 반이니 정확히는 처음 말을 건 날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일주일 전의 점심 시간, 친구들과 밥을 먹고 나서 나는 도서관에 들렀다.

목적은 자습 시간에 읽을 만한 책을 찾는 것. 그러나 내 취향에 맞는 책을 찾기가 힘들어 구석진 곳에 있는 책장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그 곳에서---


​"조, 조금만 더...!"


​'낑낑대다'라는 말은 아마 이 상황을 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애를 쓰고 있는 동급생의 모습을 목격했다.


​"쟤 이름이 은설이었던가?"


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무튼 잿빛 머리카락에 매우 작은 체구를 가진 그 애는 꼭대기에 있는 책을 꺼내려고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이런 말 하기는 좀 미안하지만 어린애같은 모습이 너무 재밌어서 잠시 그 광경을 바라본 후에야 나는 은설이에게 다가갔다.


​"찾고 있는 게 이 책이야?"


내 키는 175cm.

여학생들은 고사하고 남학생들 사이에 세워놔도 꽤 큰 키, 그래서 책장 맨 윗층에 있는 책을 꺼내는 것도 나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나저나 무슨 책이길래 이렇게까지 읽으려는 걸까?

흥미가 생겨서 살짝 책 표지로 눈동자를 굴렸다.


​[하루 5분! 키 크는 건강 스트레칭!]


​풉.


​책 제목도 제목이지만 놓인 위치도 어이없었다. 이런 책을 맨 윗층에다가 놓으면 필요한 사람은 어떻게 꺼내라는 건지.


​"자. 여기."


"으, 응."


​나는 마음속에서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은설이에게 책을 건네주었다.

​얼떨결에 책을 받은 은설이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잠시 내 얼굴을 멀뚱멀뚱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곧 상황이 이해가 되었는지 나를 보며 활짝 미소지었다.


​"헤헤, 고마워!"


아아.

나는 그 순간 굳어버리고 말았다.


꾸밈 하나 없는 아름다운 미소.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은설이의 그 얼굴은 마치 사진처럼 내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

소설 속에서만 보던 《온몸에 전류가 찌릿찌릿 흐르는 느낌》이 이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한눈에 반했다.


​뭐. 나랑 은설이 둘 다 여자이긴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을까. 저렇게 귀여운데 안 좋아하게 되는 게 이상한 거지!


​"후후, 후후후..."


​"유, 유하야 왜 그래?"


​만약 내가 그 때 평정심을 유지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나에 대한 은설이의 평가가 지금보다는 훨씬 높아졌겠지.

그러나 아쉽게도 흥분 상태였던 나는 그러지 못했고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운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으, 은설아...?"


"응? 왜 그래?"


​"다시 한번 웃어 볼래? 아까 그 표정 너무 귀여워서 마음에 들었거든!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뭐?"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감사를 표하던 얼굴은 당혹감과 경악이 가득 찬 얼굴로 바뀌었다.

달리 말하면 나를 매도하는 듯한 표정이라고 할까.


만약 다른 사람이 나에게 그런 표정을 지었다면 분명 기분이 나빴겠지.


그러나 나보다 한참 작아서 귀여운, 그리고 웃는 얼굴이 매력적인 동급생이 그런 얼굴을 한 건---​


"그 표정도 마음에 드네!"


"히익!!"


아차. 또 생각나는 대로 말해버리고 말았다.

얼마 후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은설이는 사라지고 난 뒤였다. 도망친 걸까? 하긴 내가 생각해도 조금 전 나의 대사는 오해를 사기에 딱 좋았다.


​귀여워서 사진으로 남기고 싶으니 다시 웃어보라니, 완전 변태같잖아.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 입조심해야겠다.


​마침 수업 예비종이 울려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어느새 12시 55분. 곧 5교시가 시작할 시간이었다.


"그만 돌아가봐야겠네."


별로 이야기를 하지 못한 건 아쉽지만 괜찮다.

어차피 같은 반이니 서서히 친해지면 될 일이니까.


​그리고 완전히 친해진다면 고백하는 거야.

은설이는 여자끼리 사귄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할 수 있다. 나라면!


​벽에 걸려 있는 거울에 비친 완벽한 내 얼굴을 보며,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그나저나 참 신기한 일이다.

여느 때와 같이 도서관에 왔을 뿐인데 지금까지 전혀 연결고리가 없었던 아이와 이렇게 만나다니.


게다가 그 아이가 18년 인생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사람이 될 줄이야. 그것도 웃는 얼굴에 한 눈에 반했다.

정말로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이게 바로 운명이라는 걸까?


"후후, 재미있겠네."


앞으로의 일이 기대된 나는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설레는 마음으로 도서관을 나섰다.




/////




이상하다.

정말로 이상하다.


​최근 일주일 동안이 너무나도 이상하다.


​나는 원래 학교에서 혼자 다닌다.

아, 왕따같은 건 아니다. 반 친구들에게 말을 걸면 대답도 해 주고 발표 조도 같이 짜기도 하니까.

내 말은 같이 붙어다니는 친구가 없다는 말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대부분 있잖아? 항상 노는 그룹이라던가 단짝 같은 게.


​하지만 그런 건 사회성이 결여된 나하고는 관계없는 것이었고 앞으로도 쭉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점심 시간.


​탁.


옆자리에 식판을 놓는 소리가 들리고 의자가 당겨졌다.

그게 누구인지는 이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렇게 빈 자리가 많은데 굳이 내 옆에 앉는 사람은 단 한 명.


이유하, 그 녀석 뿐이다.


"같이 오면 좋을 텐데 혼자서 먼저 오다니 너무해!"


"아니, 같이 먹겠다고 한 적 없잖아."


"그런 건 말 안해도 마음으로 알 수 있는 거지!"


아, 그러세요.


"것보다 너랑 항상 같이 다니는 애들은 어쩌고."


"응? 혜수랑 지민이? 이미 말했어. 앞으로는 네 옆에 붙어있을 거라고."


"뭐, 뭐?"


이런 짓을 계속 할 생각인가.

지금도 힘든데 졸업할 때까지 이러면 그 전에 기운이 빨려 죽을 것만 같다. 

​최근 복도에만 나가면 이름도 모르는 애들이 나를 보면서 수근거린다고. '쟤가 유하랑 같이 다니는 애야?'라고 하면서.


그런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하는 젓가락을 집으며 웃었다.


"그나저나 돈까스라니. 오늘 점심은 괜찮네~ 안 그래?"


요즘 들어 너무 익숙해져버린 저 쾌활한 목소리에 나는 슬쩍 옆자리를 흘겨보고 짧게 대답했다.


"응. 그러네."


분명 퉁명스럽게 들렸을 텐데도 유하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진짜 뭘까. 저 녀석은.


월요일에 도서관에서 만나고 나서부터 이렇게 내 옆을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 

그 때 사진을 찍게 해달랬었지. 당시에는 별 생각 없이 도망쳤지만 설마 이렇게 될 줄이야.


도대체 뭣 때문에 이러는 거지? 한번 추리라도 해 볼까.


으음...


음.


으으.​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사고방식으로는 옆 자리의 괴짜를 이해할 수가 없었기에 나는 포기하고 숟가락을 들었다.


​.

.

.​


덧붙이자면 오후 수업 시작하기 1분 전까지 유하 녀석은 계속 달라붙어 있었다. 좀 떨어지라고.



체육 시간.


"자~ 두 명씩 줄 서라!"


왔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우리 반은 짝수라 혼자 남는 사람은 없지만 역시 이렇게 조를 짜게 되면 너무 어색하다---


....는 건 이제 옛날 이야기.


옛날이라고 해 봐야 지난 주까지지만.


"은설아~ 같이 서자!"


역시 왔군.

평소에는 귀찮지만 체육 시간만큼은 도움이 된다. 나는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유하 옆에 섰다.


오늘은 축구를 할 예정이라는데 언제나 그랬듯이 준비운동만 하고 조회대에 앉아서 쉬어야지. 


"다음은 서로 등을 대고 스트레칭, 시작!"


오랜 컴퓨터 사용시간으로 다져진 내 몸은 준비운동만 해도 뻐근해진다. 

온몸의 뼈가 우두둑 소리를 내는 걸 들으며 나는 스트레칭을---


뭐지,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이 감촉은?


"어딜 만져! 어딜 만지냐고!"


"만지긴 뭘 만져?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 그냥 마사지야 마사지."


"필요없으니까 하던 거나 해!"


"칫."


유하는 혀를 차더니 원래 자리로 돌아가서 준비운동을 했다.

정말이지 종잡을 수가 없는 녀석이다. 지난번에는 머리를 계속 쓰다듬다가 이번에는 몸을 만지다니.

​이 정도면 경찰에게 잡혀가도 할 말이 없을 정도 야냐?


이렇게 생각하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유하는 준비운동을 끝내고 나에게 다가왔다.


"빨간 팀 할거야? 아니면 파란 팀?"


"안 해. 조회대에 앉아서 쉴 거야."


"그래? 그럼 나도 오늘은 쉬어야겠다!"


뭐? 뭐?

체육 시간 내내 나랑 같이 앉아있겠다는 말인가?

당황한 나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아니. 너가 나오는 걸 다들 기대하고 있을 텐데 그러면."


"내가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는 거지. 앉아서 같이 이야기하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하의 손이 내 팔목을 붙잡았다. 작지만 강한 완력이 느껴지는 그 손에는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결의가 베어 있는 듯했다.


아아, 이거 도망칠 수 없겠네.


자포자기한 나는 제발로 터벅터벅 걸어갔고 한 시간 동안 유하와 대화, 라기보다는 질문 공세에 대답하는 꼴이 되었다.


.

.

.


덧붙이자면 수업이 끝나고 탈의실까지 유하 녀석이 딱 달라붙어 와 바로 옆자리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부담스럽다는 눈빛을 보냈는데 모르는 건지, 무시하는 건지.



​​​​​​​​하교 시간.


"안녕!​"


"어... 그래."


청소함 안에 숨어있다가 들켰다.

가방을 옆에다가 고스란히 놔두고 들어가다니.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바보같았다. 다음부터는 좀 더 철저히 숨어야지.


한숨을 쉬며 밖으로 나온 내 가방을 들어주면서 유하는 눈을 반짝였다.


"그럼 오늘은 어디로 갈까?"


월요일, 도주 성공.


그러나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종례와 동시에 검거되어 노래방과 공원으로 끌려갔다.


노래라고는 게임 ost밖에 모르는 나는 기대에 찬 눈빛을 못 이겨 결국 '곰 세마리'를 부르고 말았고 그 영상은 지금 유하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다.

여러모로 흑역사다. 흑역사.


그래서 같이 놀러 가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잡혀버리고 말았다. 


그 와중에 유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신나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래, 볼링장으로 가자!"


"아니. 나 하나도 모르는데."


미안하지만 이건 거짓말이다.

작년에 가족들이랑 여행 갔을 때 묵었던 호텔에 볼링장이 있어서 몇 번 쳐 본 적이 있었다.


"괜찮아. 내가 가르쳐 줄게."


"공 무겁잖아? 배워도 못 던지지 않을까 싶은데."


이건 거짓말 반, 진실 반이다.

근력이 없다시피 한 나는 수박만한 볼링공을 손가락에 끼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나갈 뻔했으니까.


"가벼운 것도 있어~ 그럼 가는 거다?"


이런, 통하지 않다니.

체육 시간 때처럼 유하의 손이 내 손목을 잡아끌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유하와 같이 하교하게 되었다.


.

.

.


덧붙이자면 볼링장 값은 유하가 다 냈다.

생각보다 훨씬 비싸 놀랐는데 유하는 별 반응 없이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서 직원에게 넘겨주었다.

나중에 보내겠다고 말하니까 됐다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데 괜찮은 건가?




/////




아무튼 이런 느낌으로 일주일이 지나갔다.

그야말로 정신없는 일주일. 평소와는 다르게 눈 깜짝할 새에 금요일 저녁, 하교시간이 다가왔다.


"은설아~ 집 가는 길에 같이 카페..."


"안 돼. 집에서 게임할 거야."


내 자리로 바로 다가오는 유하의 요청을 단칼에 컷.

매정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5일 중에 4번이나 같이 놀러가줬으면 충분한 게 아닐까? 내가 느끼기에는 과하기까지 하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족 이외의 누군가와 이렇게까지 엮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는 유하에게 살짝 손을 흔들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조용하네."


집으로 걸어가는 길, 너무 차분한 주위의 분위기에 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난 4일간 옆에서 시끄럽게 떠들던 녀석이 없으니 뭔가 허전한 기분이었다. 마치 혼자 다녔던 지금까지의 내 모습이 거짓말 같다고나 할까.


...외롭다는 건 아니다. 절대로.

어차피 다음 주면 또 달라붙을 게 뻔하잖아? 


그렇게 약간의 적막함을 느끼며 걷기를 10분. 집에 도착했다.

거실 불이 켜져 있지 않은 걸 보니 아직 부모님은 퇴근하지 않으신 모양이다.

이런 날에는 내가 저녁 당번이기에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뭐가 좋을​까? 


카레, 고등어 구이, 계란말이, 김치찌개, 으음...

나는 메뉴를 생각하며 전등 스위치가 있는 쪽으로​ 손을 뻗어 전등을 켰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등장한 것은---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야? 기다렸다고~"


결코 여기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 거실에 떡하니 서 있었다.


뭐지. 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그러나 눈을 몇번이나 깜박이고 비벼 봐도 앞에 있는 건 틀림없이 유하였다.


왜 너가 여기서 나와?


당황한 나는 입을 쩍 벌린 채 굳어버렸다.


"은설아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어?"


너가 문제다. 임마.


해맑은 표정의 유하를 무시하고 나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궜다.


일주일 동안 계속 같이 다니니까 집에서까지 환각이 보이는 걸까. 내일이라도 빨리 병원에 가봐야겠다.


"그나저나 좀 덥네."


놀랐던 마음이 진정되자 목덜미에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방금 전의 충격 때문인지 이마에도, 등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혀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이대로 있으면 찝찝하니 일단 거실의 환각은 제쳐두고 옷부터 벗어야지.


투둑, 투둑. 


익숙한 손놀림으로 블라우스의 단추를 다 푼 나는 방 구석에 있는 옷장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분명 옷걸이가 있어야 할 그 안에는-


"후후. 여기가 네 방이구나!"


"으아아아아악!!!"


마치 공포영화 같은 상황에 나는 엄청난 비명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깼다.




/////




눈을 뜨자 보이는 건 꿈에서도 질리게 봤던 유하와 석양이 지고 있는 창 밖의 모습이었다.


...그래.


오늘은 금요일 저녁. 방금까지 유하를 피해 교탁 아래에 숨어 있다가 들켜서 잡혀있었지.

아마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즉. 아까 꾸었던 꿈은 가짜.

제아무리 이 녀석이라 할지라도 집 안까지 쫓아오다니 그럴 리가 있나.


아, 물론 마지막만 없었던 일이고 나머지는 진짜다.

도서관에서 만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유하 이 녀석은 끈질기게 나를 쫓아다녔다.


이렇게 붙어다니는 걸로도 모자라서 꿈속에서까지 나오다니, 정말이지 무서운 녀석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잠이 덜 깬 멍한 얼굴로 위를 올려다보자 유하는 나를 바라보며 생긋 미소지었다.


"잘 잤어?"


"어... 덕분에."


"그러고 보니 아까 일어날 때 소리를 지르던데 악몽이라도 꾼 거야?"


악몽. 악몽이라.

보통 꿈속에서 나쁜 일이 생기면 악몽이라 하지 않던가.


나에게 있어서 유하가 꿈에 나오는 것, 그것은...


"아니. 조금 놀랄 만한 꿈을 꿨을 뿐이야."


"그래? 자면서 뭔가 찡그린 표정으로 잠꼬대도 하길래 걱정했어."


"잠꼬대? 내가?"


살면서 그런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설마 이상한 소리를 하진 않았겠지?


"응. 웅얼거리면서 말해서 무슨 뜻인지는 못 알아들었지만."


그렇구나, 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유하는 무엇인가가 문득 떠올랐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뭐지? 보여줄 거라도 있나?


유하는 어리둥절해하는 내 얼굴을 보며 방긋 웃더니 잠금을 풀고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유하에게 안겨 자고 있는 내 모습이 찍혀있었다.


"아까 자고 있는 영상 찍어놨는데, 볼래?"


"지워라."


내 살기어린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하는 영상을 재생시켰다. 

세상 편한 얼굴로 자고 있는 나와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유하의 모습이 화면에 비춰졌다.


"좋은 영상이지?"


"그냥 내가 자고 있는 것 뿐이잖아."


"뭐 어때~ 조금만 더 봐봐."


앗.


영상 속의 내가 고개를 안쪽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꾸물꾸물 몸을 움직이더니 이내 유하의 품속으로 더 깊숙히 안겨들었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정확하게 말한다면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는 게 더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그와 동시에 콧노래의 템포는 2배속, 아니 4배속으로 돌린 것 마냥 엄청나게 빨라지기 시작했다.


"후훗, 이때 느낌 좋았어."


무슨 느낌이냐고는 무서워서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이 영상의 나와 유하의 모습, 계속 보다 보니까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이런 말 하긴 싫지만, 마치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어머니 같다고나 할까. 


으으...


부끄럽다. 엄청나게 부끄럽다.

역시 이 영상은 존재해서는 안 돼.


"지워! 지우라고!"


"싫어~"


얼굴이 새빨개진 나는 핸드폰을 뺏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안 그래도 키가 작은데 안겨있기까지 하니 될 리가 있나. 


유하는 이 상황이 재미있는지 큰 소리로 웃으며 핸드폰을 든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후후. 잡을 수 있으면 잡아 봐~"


"으아아아!"


3분 후. 결국 패배한 건 나였다.

팔이 너무 저려서 더이상 버틸 수가 없는 게 패인이었다.


하여간 유하 이 녀석은 조금 마음에 들려고 하면 이렇게 짖궃은 장난을 친다니까.


하아, 한숨을 쉬는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유하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겼으니까 이 영상은 이제 내 꺼야!"


"예... 그러시던가요..."


이제 태클을 걸기에도 지쳤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에게 영상을 퍼뜨린다던가 할 녀석도 아니니 상관없겠지.

만약 그럴 거였으면 이미 '곰 세 마리' 영상은 전교에 퍼졌을 거다.


그 뒤로 이어진 잠시간의 침묵. 하지만 이내 저녁 6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교내에 울려퍼졌다. 


그렇다는 건 앞으로 20분이면 학교 문이 닫힌다는 뜻. 서둘러 나가야 한다.


"그럼 슬슬 가 볼까."


"응. 같이 돌아가자!"


내가 일어나자 유하도 뒤따라 일어났다. 


...음?


일어나 보니 눈에 띄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유하의 뒷모습. 정확히 말하자면 치마에 잔뜩 묻은 먼지가 신경쓰였다.

그러고 보니 나는 다리 위에 앉아있었지만 유하는 교실 바닥에 그대로 앉아 있었겠지.


이거 조금 미안해지는데.


뭐, 정작 본인은 영상을 찍은 걸로 만족해서 저렇게 헤실헤실 웃고 있지만서도.


그래도 이대로 내버려둘수는 없으니 털어줘 볼까.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잠기운 탓에 몽롱한 상태로 나는 유하에게 다가갔다.

가방을 챙기고 있던 유하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허리를 숙인 채로 말했다.


"아, 조금만 더 기다려줘. 이것만 챙기면... 꺄앗!"


"뭐, 뭐야. 왜 그래?"


우왓. 유하의 반응에 내가 더 놀랐다.

그건 그렇고 이런 소리도 낼 수 있었구나.

언제나 능글맞은 모습만 봐와서 몰랐는데 귀여운 비명소리를 낼 줄이야.


"지, 지, 지, 지금 뭐하는 거야?!"


아까 영상을 봤던 때의 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얼굴이 새빨개진 유하는 말까지 더듬으며 소리질렀다.


뭐 하냐니. 치마에 묻은 먼지를 털어줬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당황할 일인가?

내가 남자도 아니고 여자애들끼리는 보통 만지기도... 하지 않나?


솔직히 친구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과민 반응을 보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머지않아 유하는 안정을 되찾았는지 얼굴빛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입을 열자마자 그건 내 착각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을 심하게 더듬기 시작했다.


"까, 깜짝 놀라, 았어. 가브자, 아니아니. 갑자기 만지길래."


은근 귀엽네. 나도 이런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놓으면 좋았을 텐데.


"치마에 먼지가 묻어 있길래 털어준 것 뿐이야. 바닥에 앉아 있었잖아?"


"그, 그러네에... 고, 고마워."


"가방 챙겼으면 이제 나가자. 8분밖에 안 남았어."


"으, 응..."


왠지 모르게 수줍어진 유하와 함께 나는 학교 정문을 나섰다.

이 녀석, 평소대로라면 둘이 함께 있는 것에 신나서 마구 떠들어댔을 텐데 어쩐지 지금은 너무 조용하다.


계속 이렇게 말없이 돌아가는 것도 뭔가 어색하기에 나는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유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봤을 때 제일 효과가 직빵인 말은---


"그러고 보니 아까 꿨던 꿈에서 네가 나왔어."


"어? 정말?"


예상 적중. 

이 한마디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부활한 유하는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데? 알려줘 알려줘!"


"내가 집에 돌아가서 불을 켰는데 거실에 있더라고. 그래서 깜짝 놀랐지 뭐야."


"그래서 놀란 거였구나. 으음, 집이라..."


뭐지? 말꼬리를 흐리는 게 뭔가 생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아무래도 유하는 알기 쉬운 타입인지 이번에도 내 예상은 적중했다.


정확히 5초 후에 유하는 밝게 웃으며 내 손을 잡더니 입을 열었다.


"내일 토요일이니까 집에 놀러가도 될까?!"


생각하던 게 이거였나.


뭐, 딱히 상관없다. 주말에는 시간도 많으니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고. 

논다고 해 봤자 저녁이면 집에 갈 테니 내 게임 일정에 차질은 없다.


그러나 계속 놀림받아서 약간의 오기가 생겼는지 나는 살짝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올 수 있으면 와 봐. 어딘지는 안 알려줄 거지만~"


킥킥킥. 이대로 입을 다물다가 헤어질 때 쯤이 되면 알려줘야겠다. 

지난번 노래방에서 찍힌 영상과 오늘 잘 때 찍힌 영상. 그리고 일주일간 당한 걸 생각하면 이 정도 장난은 쳐도 되겠---


"한솔아파트 101동 802호 맞지?"


?


??


??????


뭐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학원에 안 다닌다는 건 곧장 하교하는 것만 보고 추측할 수 있다고 쳐도 집 주소는 그냥 알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나는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결단코 집 주소를 누군가에게 알려줘본 적이 없다. 그렇기는커녕 전화번호도 정말 극소수의 친구들만 알고 있을 정도니까.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나로서는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경악한 내 표정을 보고 유하는 재밌는지 깔깔 웃어댔다.


"어때, 정답이지? 그럼 안녕~"


"자, 잠깐만! 집 주소는 어떻게 알아낸 거냐니까!"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서로의 집으로 향하는 갈림길이었다.

놀란 나를 내버려둔 채 유하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발을 재빨리 움직여 저 멀리까지 도망가버렸다.


진짜 뭐냐고. 저 녀석.


후다닥 달려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지고 나서야 유하는 멈춰서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은설아, 내일 또 봐!!!"


하하하... 정말이지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다.


그래도 뭔가 싫지 않은 기분이여서, 나도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내일 보자!!!"


주위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유하 역시 저 멀리서 손을 흔들다가 마지막쯤에는 아예 방방 뛰기까지 했다. 


그 때의 유하는 고등학생이라기보다는 마치 순수한 어린이에 가까웠다.

그 모습에서 나를 향한 강한 감정이 느껴졌기에, 눈치챘을 때에는 어느새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하, 정말... 애도 아니고."


인사를 마치고 진짜로 혼자 돌아가는 길, 나는 지금까지 보냈던 주말에 대해서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닥 오래 생각할 것도 없다.


기상. 밥. 게임. 밥. 게임. 밥. 야식. 취침. 기상의 반복. 


가끔씩 가족 여행이라든지 명절 같은 게 아닌 이상은 매번 똑같은 일상이었으니까.


그러나 내일은 다르다. 

아니, 앞으로는 다를 것 같다.


"방도 치우고, 할 것도 생각해 두고. 먹을 것도 준비해놔야지. 아, 방 청소도."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고 말았다.

유하의 하이텐션이 일주일 새 옮겨붙고 만 걸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부끄러워서 본인에게는 절대 말 할 수 없겠지만 이 하이텐션의 이유를 나는 진즉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일 유하가 집에 온다.

그걸 다시금 되새기니 입가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졌다.

나는 석양이 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후훗, 기대되네."


마음이 들뜬 나는 지금까지 없었던 경쾌한 발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어갔다.



/////


백-하


처음으로 소설을 써서 인터넷에 올리는 D-26 군바리입니다.


원래 반말로 글을 올리는데 이번에는 존댓말이 자동으로 나오네요. 긴장했나 봅니다.


백갤에 올라오는 작품들을 참고하면서 써 봤는데 자세한 심리묘사가 나오는 작품들과 다르게 저는 웹소설 작법 팁들을 많이 봐서 그런가 웬지 짧은 문장 위주가 되어버리더라고요.


바꿔보려고 해도 잘 안 되어서 그냥 이게 제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고 써 봤습니다.


아무래도 자기 글은 객관적인 평가가 안되던데 잘 읽히는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댓글로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백-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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