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오카 텟슈는 9살 때 처음으로 진영류眞影流(직심영류의 이명異名입니다.)에 입문했고, 이후에 치바 슈사쿠의 현무관에서 북진일도류를 배웠고, 아사리 마타시치로(나카니시 종가의 아들이 아사리 가문에 양자로 갔습니다.)에게서 중서파 일도류를 배웠고 양인교봉불수피 법구로 크게 깨달은 후에 아사리 마타시피로에게서 몽상검의 인가를 받았고, 이 깨우침을 바탕으로 무도류를 엽니다. 그리고 오노 와자오로부터 오노 본가의 구미타치와 종가의 증명인 주인태도朱印太刀(주사朱砂로 일도류의 가르침을 쓴 목도), 만자인卍字印(卍문양에 살인도와 활인검이 새겨져 있는 도장), 병할도甁割刀와 각종 전서들을 전수받고 일도류의 정전을 이으면서 무도류 앞에 일도정전을 덧붙여서 비로소 일도정전무도류가 되었습니다.
수련 기간이 짧았더라도 텟슈의 검술의 기초가 되었던 것은 직심영류인 것입니다. 물론 일도류는 이토파 전서를 보면 수월水月, 연타延打, 진묘검眞妙劍이라고 해서 직심영류의 카타나 ‘8촌의 연금’을 변형해서 자기 유파의 극의로 삼았습니다.
http://tsukuba.repo.nii.ac.jp/?action=repository_uri&item_id=33205&file_id=17&file_no=1
직심영류는 나가누마中沼 종가 계열, 막부의 무술 훈련소였던 강무소講武所 소장이었던 오다니 노부토모 계열, 후지카와 계열로 나뉘어 진다고 합니다. 텟슈가 수행했던 게 어떤 계열인지는 모르겠으나 공통적으로 법정이랑 죽도형은 했던 것 같습니다. 전에도 이야기 했듯이 죽도형은 법정의 변형, 쿠다키碎이고, 하비키刃引는 법정의 원형입니다.
저 논문에 나와있는 나가누마 종가의 전서를 보면 법정의 효과는 몸을 똑바로 세워서 스스로의 치우치고 바르지 못한 부분을 깨우치며, 호흡과 기합을 단련하며, 스스로가 똑바로 서는 것으로서 상대가 똑바로 섰는지 안 섰는지 허실과 그 형세를 알게 된다고 합니다.
https://www.bilibili.com/video/av11467944?spm_id_from=333.338.b_5f5f626f667169.20
무도류 연무를 보면 일도류의 다른 계파 연무에 비해서 스탠스가 좁은 것도 텟슈가 직심영류를 배운 것에서 유래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무도류 연무를 보면 키리오토시를 하는 사태도仕太刀는 타태도打太刀가 드높이 상단에서 치켜들었다 내려치는 검을 맞받아치지 않고 중단에서 검이 부딪힐 때 살짝 하단으로 미묘하게 검선을 내리는 것으로 타태도打太刀의 검이 빗겨나가고 중심을 점하고, 이겼다는 의미로 상대의 거대한 호완, 오니코테鬼小手를 칩니다.
위의 영상은 마니와 넨류의 오모테 카타로서 키리오토시 연습인데 무도류와 같은 받아내는 느낌의 키리오토시를 보여줍니다.
이 영상에서 2분까지는 일도류 극초기의 오모테表 카타 三重으로 대태도 56본을 비롯한 현재 유파의 체계가 완비되기 전에 수행했던 카타로 이후에는 의식용으로 연무하는 구미타치입니다. 상대가 3척8촌의 대태도로 내려치는 것을 나는 3척2촌의 정촌으로 받아내면서 키리오토시의 이치를 몸에 새기는 카타입니다.
이 영상은 오노파 일도류에서 날을 뺀 진검, 하비키刃引로 하는 구미타치입니다.
셋 모두 무도류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키리오토시에 있어서 저런식으로 찌르기나 받아내기와 비슷한 방식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시라이 토오루가 남긴 천진일도류의 전서에서도 키리오토시를 쓰키突, 찌르기로 이야기했고요.
고전 무보에서 란나찰攔拏扎에서 란攔이 도검술의 용어로 쓰일때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베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직심영류에서는 영검좌우라고 해서 좌우 가사베기를 하고, 정중면 내려베기를 하는 의식이자 후리기 연습법이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창의 란나찰攔拏扎 발력 연습과 의미가 같다고 할수 있겠네요.
여기서 이거 후리면서 척추를 연동해서 直을 터득하는 거나
이렇게 란나찰로 발력하는거나 비슷한 소리라는 겁니다.
참고로 ‘검의 정신지’를 보면 직심영류의 방계인 무주심검에서는 참장 비슷하게 서서 멀리 쳐다보면서 기를 다리 아래로 기르는 연습을 했다네요. 창술에서 ‘팔촌의 연금’이 유래한 것도 그렇고 뒤져보면 내가권과 통하는 게 참 많습니다.
텟슈는 ‘검법삼각구’가 검술의 ‘체’라고 했는데 무도류와 직심영류의 카타를 보건대 야마오카 텟슈의 ‘검법삼각구’는 결국 1자 척추, 직直이 확립이 되어야지 가능한 것입니다. 이른바 춘풍관 규율에서 입문후 3년간 타류시합을 금한다는 것은 이 ‘검법삼각구’, ‘체’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야마오카 텟슈’는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검법삼각구’를 확립하기 위한 야마오카 텟슈의 방법론은 원간대기로 우치코미打ち込み나 연격切り返し을 3년간 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텟슈는 ‘대공포의 비술’이라는 글에서 목수가 기둥을 깎는 것에 검술수행을 비유하면서 처음이 힘든데 처음의 자세를 계속 견지하다보면 어느샌가 상달해있다고 하다보면 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메이지, 쇼와에 걸쳐서 무도류는 뛰어난 검사들을 배출했습니다. 중서파 일도류의 종가이자 현대검도의 창시자들 중의 한사람인 다카노 사사부로도 텟슈의 도장, 춘풍관에서 수련했습니다.
하지만 무도류는 200인 연속대련과 같은 지나치게 살벌한 수행과 이로 인한 족저근막염, 인대파열, 뇌진탕 같은 부상을 입고서 도중에 떨어져나가는 사람들도 많았고, 3척2촌의 두껍고 짧은 죽도로 풀스윙으로 내려쳤기 때문에 ‘장작패기 검술’ 요즘말로는 ‘도끼칼’로 타류가 기피했으며, 짧은 죽도길이 때문에 시합성적도 좋지 못했습니다(...). 인자강이 아니면 상달하기가 힘들었고, 이러한 살벌한 수행에 대해서 ‘일본검도사’를 지은 직심영류 15대종가 야마다 지로키치는 “삼엄함에 치우쳐서 검술의 본의를 잊었다”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텟슈는 본인은 어려서부터 직심영류 법정을 비롯한 여러유파를 수련하고, 타류도 견식하면서 검술의 ‘체’, ‘검법삼각구’를 제창했으나 막상 이를 확립하기 위한 방법론은 지나치게 근성론 일변도로 당시 사람들에게도 비판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저는 ‘검도의 이념’을 제창했으며 오늘날의 텟슈(이마텟슈今鐵舟)라고 칭송받은 ‘오가와 츄타로小川忠太郎’를 언급하겠습니다. ‘오가와 츄타로’가 모치다 10단과 검도수련 경험을 엮어서 쓴 ‘백회계고’는 정발은 되지 않았지만 웹에 번역본이 나돌고 있고, 검선일여 운운 하면서 다들 한번씩은 훑어 보셨을 겁니다.
http://ja.wikipedia.org/wiki/%E5%B0%8F%E5%B7%9D%E5%BF%A0%E5%A4%AA%E9%83%8E
->오가와 츄타로小川忠太郎
검도강화나 검과 선, 백회계고와 같은 오가와 츄타로小川忠太郎의 책들을 뒤져보면 오가와 츄타로는 오노파 일도류와 무도류도 배웠지만 직심영류 법정을 배우면서 ‘기합이 발끝까지 들어가고’, ’점차 뻣뻣함이 줄어들고 기가 부드러워져서 상대에게 통하게 되고’ 진정한 검도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것은 직直, 입원立圓이 법정을 하면서 제대로 단련이 되었다는 것 같습니다.
우치코미打ち込み나 연격切り返し은 검도 하면서 지겹게 했을 거고, 일도류, 무도류도 익힌 오가와 츄타로였지만 검법삼각구, 직直, 입원立圓을 전문적으로 숙습하는데는 직심영류 법정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일도류의 고상극의高上極意 오점五点은 전에도 이야기 했듯이 키리오토시의 이치와 단계를 다섯가지 구미타치로서 나타낸 것입니다.
원래 이 오점은 이토 잇토사이의 스승이었던 카네마키 지사이가 깨우친 고상금강도 高上金剛刀(또는 고상금강검高上金剛劍)의 우라裏 구미타치 5본 -묘검妙劍, 절묘검絶妙劍, 진검 眞劍, 금시조왕검金翅鳥王劍, 독묘검獨妙劍-을 말하는 것으로, 오모테表 카타 5본은 오모테 고단表五段이라는 이름으로 이토 잇토사이의 초기 제자가 일으킨 유심일도류 唯心一刀流의 전서에 카타의 수순이 전해집니다.
->고상극의高上極意 오점五点, 스가루전 오노파 일도류 종가 사사모리 타케미(사사모리 슌조의 아들, 목사, 현재 사망.)
신도무념류와 시라이 토오루가 남긴 전서에 드문드문 조동오위(정중편, 편중정, 정중래, 겸중지, 겸중도)의 이름이 나오기는 하나 이를 해설하는 것은 금기였고, 야마오카 텟슈도 본인이 양인교봉불수피兩刃交鋒不須避의 게송에서 깨친 것을 바탕으로 무도류를 만들었다고 하거나 남긴 불교관련 서적에서 오위의 불교적인 해설이 나오는 것을 제외하고 딱히 자세하게 풀이하지는 않았습니다.
오가와 츄타로에 이르러서야 조동오위와 고상극의高上極意 오점五点의 관계를 풀어서 밝혔습니다.
http://moyangsung.blog.me/220203605024
->불교적 의미에서 조동오위의 해설입니다.
正中偏정중편
三更初夜月明前 삼경초야월명전
莫怪相逢不相識 막괴상봉불상식
隱隱猶懷舊日嫌 은은유회구일혐
달빛 하나 없는 깜깜한 밤에
서로 만나 알아보지 못하는 걸 괴이타 말라
품은 뜻은 있어도 몸에 익은 버릇을 따라가나니
이것이 묘검妙劍의 단계로서 수행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달빛 하나 없는 깜깜한 밤)에서 시작해서 키리오토시切落을 위한 ‘체’, ‘검법삼각구’를 갖추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를 위한 방법론으로 텟슈와 오가와 츄타로는 원간대기 遠間大技로 우치코미, 키리카에시 3년으로 몸을 버리는 수행이나 법정을 수행해라고 합니다.
오점 묘검의 카타에서는 최초로 배우는 키리오토시 그 자체입니다.
偏中正편중정
失曉老婆逢古鏡 실효노파봉고경
分明覿面別無眞 분명적면별무진
休更迷頭猶認影 휴갱미두유인영
눈 어두운 노파가 큰 거울 앞에 앉아
얼굴 들여다 바라봐도 새로울 것 없더라
자기 머리를 그림자로 잘못 보지나 말아야지
오가와 츄타로에 따르면 正中偏정중편, 묘검妙劍의 단계로 ‘체’, ‘이치理’는 갖추어졌으나 쓰임, 용用과 기술事에 있어서 미진하기 때문에 偏中正편중정, 절묘검 단계에서는 갖추어진 ‘검법삼각구’를 굳히면서 이를 응용하는 법을 배운다고 합니다.
이 때부터 일도류나 야규류 같은 고류의 카타를 배우면서 시합을 하거나 좌선을 하면서 스스로의 잘못된 점을 고치는 수행을 하는데 이를 비절非切이라고 합니다. 하나의 잘못됨을 고치면 다른 잘못됨이 튀어나오고, 갑갑하고 힘드나 꾸준히 노력해서 도력道力을 기르며 검법삼각구를 잃지 않는 것이 절묘검絶妙劍, 偏中正편중정의 뜻입니다.
오점의 절묘검絶妙劍 카타에서는 내 키리오토시切落가 상대에게 통하지 않았을때 멈칙거림없이 물러났다가 다시 키리오토시切落를 하는 것입니다. 이름 그대로 묘검妙劍, 키리오토시切落가 끊긴絶 곳에서의 키리오토시切落입니다.
오가와 츄타로에 따르면 이 절묘검 수행이 가장 괴로우며 10년 걸린다고 합니다. 앞의 2단계는 묘검妙劍, 절묘검絶妙劍은 자기자신의 기초 확립과 응용이라는 기술적 완성, 이기利己에 관한 것이고, 뒤의 3단계 진검眞劍, 금시조왕검金翅鳥王劍, 독묘검獨妙劍은 이타利他, 이러한 기술적 완성이 상대에게 어떻게 통용되는 가에 관한 것이라고 합니다.
正中來정중래
無中有路隔塵埃 무중유로격진애
但能不觸當今諱 당능불촉당금휘
也勝前朝斷舌才 야승전조단설재
없는 것 속에 세상일 벗어날 길이 있도다
오늘날의 금계禁戒를 범하지 않을 수 있어야
혀 잘린 재능을 가진 이보다 뛰어날 수 있으리
正中來정중래, 진검眞劍은 이때가지 쌓은 도력을 바탕으로 체體와 용用이 하나가 되기 시작한 단계입니다.
기법적으로 전서에서는 이토파, 오노파 상관없이 일관되게 상대를 미발未發의 기미機로서 ‘찌른다’, ‘꿰뚫는다’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창술의 이치와도 통한다고 합니다.

전에 올렸던 그림인데 이 원 5개가 겹쳐진 그림은 나와 상대가 일족일도에서 중단을 잡고서 검법삼각구로 서로의 검선을 맞대고 있는 모습입니다.
오가와 츄타로는 이를 양경대조兩鏡對照, 두 거울이 서로를 비추고 있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서로의 역량이 비등한 상태에서는 이를 타파할 방법이 없습니다. 일심으로 수행한 끝에 상대의 중단을 부수고 상대의 칼위에 올라타고 내 검끝이 상대를 꿰뚫는 역량이 붙게 되는 것이 진검眞劍인 것입니다.
망령되이 계를 범하며 정도를 벗어나 샛길로 가면서 야부리만 털면 혀 잘리는 것을 피할수 없습니다(...).
오점의 진검眞劍 카타는 신검信劍, 상단 카스미霞, 하단 자세에서 3번 키리오토시를 하는 것인데 이 때 상대의 검선위에 상태도上太刀로서 올라타면서 감아 떨구며 찌르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兼中至겸중지
兩刃交鋒不須避 양인교봉불수피
好手猶如火裏蓮 호수유여화리연
宛然自有冲天志 완연자유충천지
칼날끼리 부딪칠 때도 피하려고 하지 마라
솜씨 좋은 사람은 불꽃 속의 연꽃 같아
하늘이라도 찌를 큰 뜻 완연하나니
이제 텟슈가 무도류를 깨우친 양인교봉불수피兩刃交鋒不須避에 도달했습니다.
불꽃 속의 연꽃이 향기를 더욱 강하게 내뿜는 것과 같이 사리일치事理一致, 체體와 용用이 하나가 된 사람의 드높은 기백은 하늘을 뚫는 것과 같아서 역경계逆境界에서 더 강하게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금시조金翅鳥는 가루라, 새들의 왕으로 공중에서 노닐다가 바다에 사는 용, 나가를 먹이감으로 잡아먹습니다. 이와 같이 금시조왕검은 대상단大上段에서 상대를 위압하면서 내려칩니다.
한 번에 갈라버리면 좋겠지만 상대, 용은 약싹 빠른지라 바다속으로 숨습니다(뒤로 빠집니다.). 범상한 검사라면 대상단의 일격이 실패하면서 낭패를 보겠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불 속에서 더욱 향기를 내뿜는 연꽃과 같이 하늘을 꿰뚫는 기위氣位로 계속 상대의 검선에 얽히며 상대의 중심을 빼앗으며 상대를 위압하는 것이 바로 체와 용을 아울러中 겸兼한 것이 지극한至 겸중지兼中至, 금시조왕검金翅鳥王劍의 대의大意입니다.
처음에는 금시조金翅鳥가 바닷 속의 용을 위압해서 솟구치게 해서 잡아먹는다고 하나, 나중에는 금시조金翅鳥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용을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르러서는 꿈틀거릴 기미도 안준다는 것으로 웅대한 기위로 위압하는 것이 지극한 것입니다.
兼中到겸중도
不落有無誰敢和 불락유무수감화
人人盡欲出常流 인인진욕출상류
折合還歸炭裏坐 절합환귀탄리좌
유무에 떨어지지 않으니 누가 감히 화답하랴
사람들 모두 속진번뇌 벗어나기 바라지만
결국에는 불타는 집으로 돌아가느니라
드디어 최후의 독묘검獨妙劍, 兼中到겸중도에 이르렀습니다. 체와 용이 하나가 되어서 지극함에 이르러서 이제는 그것조차 잊어 버렸습니다.
상대를 점으로 찔러 관통하고(진검眞劍), 선으로 갈라서 베어버리며(금시조왕검金翅鳥王劍) 웅대한 기위로 덮어버리니 승부는 하지 않고서도 알고, 굳이 죽일 필요없이 제압할수 있습니다. 이에 고요히 홀로獨 나의 묘妙함을 깨우치며 간합間合을 분명히 하며 상대를 관조합니다.
오점의 독묘검獨妙劍 카타는 키리오토시로 앉았다가 일어서면서 혼카쿠本覺 자세로 상대를 바라보는 것이 바로 홀로獨 묘妙를 깨우치며 관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있음有과 없음無, 옳고是 그름非 한쪽에 떨어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형이상학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무언가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을 벗어나고자 했으나 도리어 불타는 석탄과 같은 사바세계에 돌아가 앉게 되는 것이지요炭裏坐.
일도류에서는 묘검-절묘검-진검-금시조왕검-독묘검을 목-화-토-금-수의 오행에 비유했는데 오행이 서로를 생生하는 것처럼 독묘검은 다시 묘검을 생生하며 수행은 계속되고, 현실도 계속됩니다.
야마오카 텟슈는 유파명을 無刀라고 한 이유에 대해서
“무도無刀란 마음 밖에 칼이 없다는 것으로 삼계유일심야三界唯一心也, 내외본래무일물內外本來無一物인 고로 적을 대할 때 앞에 적이 없고 뒤에 나가 없고, 묘응무방妙應無方하여, 짐적朕迹을 남기지 않는다. 이것이 무도류의 뜻이다.”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신도무념류의 전서의 무상검無上劍(무소켄으로 몽상검夢想劍과 발음이 같고, 일도류도 전서에 따라서는 무상검無上劍이라고도 했습니다.)의 그림을 표현한 것입니다.

일원상을 향해 중단을 잡은 저 검에 앞에는 상대가 없고, 뒤에는 내가 없습니다. 수행 끝에 저와 나가 하나 되어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저번에 말씀드렸듯이 몽상검夢想劍은 이토파에서는 오점 등의 구미타치組太刀를 통해서 숙습된 키리오토시의 이치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구미타치와 격검을 겸수해서 꾸준히 수련하는 정신 그 자체 아니면 선수출신이나 고단자들이 검도의 본이나 고류 카타 배우면 그게 바로 현대의 몽상검夢想劍, 무상검無上劍일 것입니다.
여기에 무슨 신비할 것이 있으며, 현실을 초극한 무엇이 있습니까?
분명히 텟슈는 일반인이라면 하지 못할 무시무시한 수행을 했고, 참선의 대오大悟를 바탕으로 무도류를 열었으며, 오점과 조동오위를 연관지어 설명한것은 참 오묘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제시절 무도의 무아無我의 가르침이 카미카제를 비롯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자국민과 타국민을 전쟁에 내모는 그럴듯한 구실이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이른바 당시 크게 깨닫는 경험을 했다고 자부하는 선지식이라는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http://ja.wikipedia.org/wiki/%E8%8D%89%E9%B9%BF%E9%BE%8D%E4%B9%8B%E4%BB%8B
->쿠사카 류노스케草鹿龍之介
http://ja.wikipedia.org/wiki/%E5%AF%BA%E6%9C%AC%E6%AD%A6%E6%B2%BB
->데라모토 다케지寺本武治
일도정전무도류를 수행했던 ‘데라모토 다케지’는 텟슈, 전투경, 일본서기 등을 언급하면서 해군학교에서 정신론을 고취시켰고, 무도류 4대종가 쿠사카 류노스케는 연합함대 참모장으로서 카미카제를 지시한 해군 지도자들 중 한명이라는 것은 유명합니다. 스가루전 오노파 일도류의 종가 사사모리 슌조는 법무부대신으로서 본토 결전에 대비해서 죽창과 식칼로 부녀자들과 노인, 어린애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무술을 고안했습니다.
http://zairai.egloos.com/5672022
->본토결전도법
http://ja.wikipedia.org/wiki/%E7%AC%B9%E6%A3%AE%E9%A0%86%E9%80%A0
->사사모리 슌조
http://ja.wikipedia.org/wiki/%E5%8A%A0%E8%97%A4%E5%AE%8C%E6%B2%BB
-> 가토 칸지
http://ja.wikipedia.org/wiki/%E5%A4%A7%E6%A3%AE%E6%9B%B9%E7%8E%84
->오모리 소겐
직심영류 15대 종가 야마다 지로키치의 제자였던 오모리 소겐은 승려이자 야마다 지로키치의 수제자였던 신분으로 황도파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뒤에서 여러 음모를 획책했고, 오가와 츄타로에게 직심영류 법정을 가르친 가토 칸지는 관동군 대령으로서 만주와 몽골에 일본 농민들을 옮겨서 만주국과 몽골의 일제 지배를 강화하는 계획을 실행했습니다. 이후에 소련의 ‘8월의 폭풍 작전’으로 일본이 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잃으면서 그 농민들 중에서 고향 땅을 밟지 못하는 사람들이 몇 만명이나 됩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괴뢰들이 그런 꼴 당하는 거야 꼬시다고 볼 수도 있겠는데 제 눈에는 오만하고 무책임한 지도자들이 무지하고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민중들을 뼛골까지 빨며 착취하고, 이용해먹고, 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전후에도 이 사람들은 일본의 정신문화 운운하면서 고류 가르치면서 사회의 지도층으로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야스쿠니 신사에서 직심영류 단체들이 합동으로 직심영류의 전체 카타를 연무하는 영상입니다.
여기는 일본농업실천학원이라고 가토 칸지가 전후 일본농업의 부흥을 도모한 단체인데 이렇게 가토 칸지의 숭고한 뜻을 기리면서 가토 칸지가 남긴 직심영류 법정형을 교수합니다. 시마즈 서방에는 가토 칸지가 남긴 서적들이 내려오는데 그중에서 '무도의 연구'라는 책에 가토 칸지가 만주, 몽골에서 일본농민들을 식민하면서 직심영류 법정과 황국농민의 정신에 대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걸 가지고 "이러니, 쪽바리 무술은 안돼~ㅋㅋ"거리는 사람들 있을 것 같은데 언제나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이 문제였지 달은 문제없었습니다. 무술은 문제 없어요. 다만 그 무술을 올바르게 배우고 전승해야할 지도자들이 가르침을 오용, 남용한 것이 문제였지요.
멋대로 상상속의 전통무술을 만들고, 없는 스승도 만들어내고, 오직 몸으로 수행하라고 얼버무리고, 국민들이 피땀흘려 번 세금으로 국록과 높은 지위를 꽁으로 타먹기를 바라고, 엉터리로 무예도보통지 복원하고, 궁금한 거 질문하면 배우러 온 사람을 질타하고, 일본이 무도를 정규과목으로 지정하니마니 이야기 나오니까 자기네 허접한 무술도 국민정신의 고취를 위해서 정규과목이 되어야 한다고 떠들어대고, 어디서 허접하게 번역된 중국, 일본무술의 원리 등을 바탕으로 부족한 기술을 보충하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창작하고, 정종의 무술이 부러워서 없는말 지어내서 까고, 바른 말 좋은 말 폼 내면서 하고 의미없는 엉터리 권가치고, 자기는 하지도 않은 고련을 수련생들에게 강요하며 고수연하며 수련생의 시간과 정성, 돈을 우롱하며, 이외에도 지저분한 짓들 많이 하는 당신들 말입니다. 당신들이 일본 제국주의 무도의 조악한 파쿠리로 보이는 것은 저의 기분 탓일까요?




이것은 텟슈가 오노 종가로부터 받은 전서 중에 하나로 원래는 종가의 전승자나 그야말로 신실한 사람이 아니면 전수받는 게 금지되었습니다.
대충 내용은 키리오토시를 할 때의 날각도(하스지刃筋)와 중요한 포인트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른바 중단을 잡을때 상대의 왼쪽 눈을 겨눠라는 검도의 가르침 자체가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상대의 칼의 옆면을 감아 떨구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설령 일도류에 입문했다고 하더라도 많은 문인들이 키리오토시의 이치조차도 제대로 설명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구미타치組太刀 연구를 위해서 치바 슈사쿠가 제자 사쿠라다 에이마로櫻田櫻麻呂에게 준 카타 해설서입니다.
구미타치 연구자료가 부족했던 중서파 일도류 종가이자 다카노 사사부로의 아들인 다카노 히로마사는 이것을 얻기 위해서 사쿠라다 에이마로의 후손을 도장에 불러들여서 예의를 깎듯이 갖추어 대접을 하고,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이게 무려 전후의 이야기입니다.
전전의 이야기지만 데라모토 다케지 저 인물은 해군소장씩이나 되어가지고 무도류의 전서를 훔치려다 파문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도장에서 선생님께서 중요한 포인트를 지적받으면서 자세를 교정받는 게 차곡차곡 모이면 얼마나 큰 차이를 낳는지를 여러분들은 아실 겁니다. 이른바 정종의 공력없는 사이비는 그런 포인트들을 모른 채로 수련하면서 제자 받으려니까 그렇게 되는 거고요.
그런 점에서 하나하나 물으면 대답해주시고, 자세 교정해주시는 우리 선생님들이 얼마나 자상하시고, 자체에서 직直과 횡橫을 깨우치면서 홀로 익힐 수 있게 구성된 정종의 중국무술이 얼마나 체계적이고, 양생에 좋습니까?
본인은 검법삼각구의 정법을 깨우쳤으며 자기가 배운 중서파 일도류의 오행의 형, 직심영류 법정과 같이 기초입문을 위한 형이 있었음에도 근기가 낮은 사람을 친절하게 교도하지 못하고 근성론 일변도였던 야마오카 텟슈랑 비교하면 중국무술의 이런 점은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돈줘도 구하지 못했던 자료들을 상당히 싼 값에 외국에서 이렇게 주문해서 구할수 있으니 세상많이 좋아졌습니다. 굳이 dvd 살 필요도 없이 인터넷에 많이 공개되어 있고요.
어쨌든 뭐 검선일여는 이런 느낌으로 기술의 숙습에 대해서 불교적인 용어로서 해석했다고 할수 있습니다. 도교적인 용어로 해석한 손록당이랑 비교하면 표현이 다르면서도 본질은 제법 비슷한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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