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로지 생존을 위해 다른 짐승을 사냥하여 잡아먹는다는 야생의 세계에도 간혹 유흥과 재미를 위해 사냥을 한다는 동물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했다.
자신의 유흥과 재미를 위해 약자의 생명을 앗아간다라고 하면 흔히 사자나 호랑이, 곰 같은 사납고도 강력한 육체를 지닌 흉폭한 맹수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의외로 그런 대형 맹수들보다는 고양이 같은 소형동물 녀석들이 그런 재미를 즐긴다고 한다.
그리고 B 병장은 아마도 그런 유형에 어울리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겉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외모에 소대원들의 평균키를 깎아먹는 주범으로 꼽힐만큼 왜소한 키, 그리고 듣는 이로 하여금 어딘가 짜증을 유발하게 하는 하이톤의 앵앵대는 목소리, 위장크림이 덕지덕지 메말라 붙어있는 안경의 뿔테가 아닌 안경알만 열심히 닦는 그는 최근 자신을 즐겁게 해줄 유흥거리로 A를 고른 모양이었다. 내 인식 속에서의 말년병장은 후임들에게 부릴 꼬장조차도 귀찮아서 무기력하게 누워있기만 한다던데, 어찌된 영문인지 B 병장은 예외인듯 했다. 아니, 이유야 어떻든 좋았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말이다.
2주 전, A의 가스조절기 분실사고에 주목한 그는 그때부터 A를 점찍었을 것으로 보였다. 소대장이나 다른 선임들은 의례 흔히 있는 일이다 보니 그냥 형식적인 잔소리 내지 훈계에 그치고 그렇게 넘어갔지만 B 병장은 아마도 그 작다 못해 빠끔한 눈으로 A에 주목했으리라. 그리고 그때부터 B병장의 A에 대한 집요한 괴롭힘과 갈굼이 시작된 것이었다.
"얘, 김XX야! 너 주계장에 가서 부식 좀 가져와라! 이번에도 칠칠맞게 부식도 어디다가 흘리고 오는건 아니겠지?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동물들 중에 악어가 한번 물은 사냥감을 결코 놓지 않는다라고 했던가. 비단 그 놈 주둥이의 치악력이 강해서 때문만은 아니고 그 놈의 성격자체가 난폭하고 끈질긴 탓이라고 한다. 물론, 악어라는 흉포한 맹수의 이미지와 B 병장의 외모와 특히 그 특유의 앵앵거리는 목소리는 그 둘을 동일선상에 놓고 논하기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의 집요하고도 끈질긴 괴롭힘만큼은 악어의 특징에 부합하였기에 그 때문인지 후임들 사이에서 멸칭으로 불리우는 '악어' 라는 별명은 B 병장에 참 걸맞는 별명이라 할 수 있었다.
결코 후임에게 손찌검을 하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대상의 과오를 꼬집고 들먹이며 상대방을 어딘가 무시하고 깔보는 듯한 뉘앙스로 갈구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는데 특히 하등 어울리지 않는 그의 상냥하고도 어딘가 여성스러움과 교양미, 우아함마저 느끼게 하는 나긋나긋한 어조에 비아냥거림이 녹아든 그 특유의 화법이 듣는 이의 속을 긁고 뒤집어 놓는데에 일조하고 있었다.
"어라, 우리 김AA, 표정이 좀 안좋네? 왜, 듣기 띠꺼워? 근데 내가 없는 말 한건 아니잖니?"
오늘도 B 병장의 이유없는 괴롭힘을 묵묵히 받아내던 A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지자 B 병장은 예상했다라는 듯 다음 스텝을 밟는 것이었다.
가스조절기는 이제 A에게 있어서 하나의 트라우마를 넘어선 일종의 역린이 되어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던 B 병장의 의도한 도발이었음은 뻔했다.
사실 2주 전의 가스조절기 분실사건, 아니, 정확히는 나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A의 가스조절기를 훔친 그 날의 일은 결국 진실은 나만 아는 채로 A의 실수 내지 해프닝으로 종결되었지만 그 점을 제외하면 평소 A의 군생활에 특별한 지장을 주는 일은 없었다.
상술한 바와 같이, 선임들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고 또한 바깥에서도 사람들이 모이는 데에 기여하였던 A 특유의 서글서글한 성격 덕택에 녀석은 군대에서도 무난한 군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A에게 있어서도 전입 첫 날부터 겪은 그 일은 나름 상당한 충격을 안겨다 준 듯 했고 그 때문에 늘 평소의 언행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곤 하였던 것이었다. 어쩌면 남들에게 보여지는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에게도 완벽을 기하고 또한 요구하며 철저한 자기관리에서 자부심을 느꼈을 녀석의 군생활에 한 점의 오점으로 남을만한 사건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B 병장의 A에 대한 노골적인 괴롭힘을 불편한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문제는 그들이 B 병장을 제지할 만큼의 힘이 없는 것, 쉽게 말하자면 짬이 안된다라는 것이었다. 대다수는 그냥 그럴만한 놈이 또 지랄한다라는 식으로 무관심했고 행여나 그 중 더러는 B 병장을 아니꼽게 보는 이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상병, 일병의 후임들이었기에 최고 선임들 중 하나였던 B 병장의 그러한 만행에 제동을 걸 이는 없었다. 아니,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마저 악어에게 물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남을 위해 제지할 이가 과연 있겠느냐라는 것이 좀 더 정확한 설명이 될 것이리라.
"....죄송합니다, 말씀대로 이번에는 그런 실수 없이 조심히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그래. 우리 김XX, 형은 믿는다? 설마 그깟 부식도 제대로 못들고 오면 사람새끼겠어? 우리 김XX는 그 정도는 아니겠지?"
이죽거리며 말하는 B 병장과 그런 B 병장과 시선은 못맞추고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내리깔고 있는 A가 대비되는 가운데, 그 둘을 지켜보는 나는 실로 묘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뭐랄까, 이것이 강 건너 불구경이랄까. 아니, 불구경이란 것이 원래 재미난 것이기도 하지만 그 불길이 거세어질수록 희열을 느끼는 나의 쾌감 또한 보다 더 큰 자극을 갈구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내가 사이코 새끼라는 방증일까. 나란 놈은 원래 이랬던 걸까. 이래도 되는걸까? 우리 부모님께서는 당신들의 아들이 이런 놈이었다는 것에 대해 알고 계실까?
하지만, A 쟤가 당하는걸 보니 재밌는걸 어째?
마치 마약 중독자가 점차 망가져가는 자신의 처지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도덕의 일탈이 가져다주는 쾌락에 젖어 차마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마냥 내 스스로도 여태껏 미처 발견하지 못한 탈선의 즐거움과 나도 모르게 내재되어 있던 폭력성과 잔혹함에 당혹스러워 하던 나는 한편으로는 그 배덕감이 가져다 주는 쾌락에 취해 어느새 B 병장과 A 이 두 명 주연의 작은 희극을 조용히 즐겁게 관람하는 관객이 되어 있었다.
배덕감이 가져다 주는 즐거움 앞에서 양심이란 놈은 한없이 무력한데다 작고 보잘 것 없었다.
내가 은연 중에 바라던 대로 어느새 녀석의 날개는 차츰 꺾이고 있는 듯 하였고 나와 같이 범속한 자들이 사는 인세(人世)로의 추락이 눈에 띄게 그 윤곽이 드러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B 병장의 앞에서라는 조건이 달려있긴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교육훈련단에서 익히 봐왔던 힘이 실리고 자신감 넘치던 목소리,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한껏 주눅들어 B 병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긴장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난처한 표정과 더듬거리는 말투는 녀석의 날개가 서서히 찢기고 꺾여가고 있다라는 나의 확신에 더욱 힘을 싣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확신에 힘입어 한껏 더 깊어진 비열한 배덕감에 도취된 나는 즐겁게 그 희극을 감상하면 될 일이었다.
물론,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희극인줄 알았지만.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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