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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문학] 바다 - 下

ㅇㅇ(49.174) 2023.07.01 20:49:28
조회 731 추천 48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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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 단애에 홀로 서있는 통제사 영감의 뒷모습은 평소의 위엄어린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늘 곧게 펴고 다니던 양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으며 그의 등은 어딘가 구부정해보였다. 그가 쓰고 있는 전립에 달린 붉은 장식술이 해풍에 맥없이 휘날리고 있는 것이 어딘가 처연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아까 초저녁 무렵만 하더라도 여느 때처럼 근엄한 표정을 짓고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군관들을 이끌고 군영을 시찰하며 병졸들을 돌아보던 그가 아니었던가. 헌데 지금의 이 초라함마저 느껴지는 이 모습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대는 나를 믿는가..."



한참을 소리없이 바다의 수평선만을 바라보던 통제사 영감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그의 힘없어 보이는 육신만큼이나 맥이 빠진듯한 목소리였다.



그의 시선이 향한 수평선의 멀리 그 어딘가 쯤에는 어느 붉은 불빛 두어개가 명멸하며 번뜩이고 있었다. 아마도 적군의 정찰선일 것이었다.



아마도 출정준비를 하는 듯한 수군의 낌새를 눈치채고 다시금 동태를 확인하러 염탐하러 왔을 터였다.




일단은 사뭇 다른 분위기의 통제사 영감의 물음에 어찌 대답을 해야할지 망설이던 김 아무개였다. 아마도 그는 그가 결정지은 내일의 예정된 전투에 대해 묻는 것이리라.



사실, 김 아무개의 속내야 망설일 것 없이 내일의 전투는 자멸행위라고 쏘아 붙이고 싶었으나 통제사 영감의 처연한 모습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물론 일개 병졸로서 감히 통제사가 내린 군령에 왈가왈부하는 것에 대해 뒤따를 후과의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였으나 그의 처량함에 연민의 감정이 생긴 것 또한 부정할 수는 없었다.



"소인의 의견 따위야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요... 저를 포함한 수졸들은 그저 내일을 무사히 보내길 바랄 뿐입니다.."



사실상 반대의 의미를 내포한 완곡한 표현이었다. 그리고 통제사 영감도 김 아무개의 그러한 뜻을 알아차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김 아무개를 쳐다보았다. 몸을 비틀고 발을 움직이는 그의 모습이 어딘가 어색해 보이다 못해 불편해 보였다.



아, 그랬지. 그러고 보니 통제사 영감은 고문을 당했더랬지. 그래서 거동도 저리 불편한게로구먼.



김 아무개는 문득 통제사 영감과 처음으로 조우하였던 그 날을 떠올렸다.



보성에서였던가, 백의를 입고 나타난 통제사 영감은 시체마냥 초췌한 몰골이었다. 다리를 절뚝이며 이따금 곁의 시종들의 부축을 받던 그였다. 듣기로 육신이 부서져라할만큼 모진 고문을 받았다던 통제사 영감이었지만, 칠천량에서의 패전으로 으깨어져 흩어진 수군 병졸들을 다시 모으러 왔다는 그의 눈빛에서는 결연함과 날선 의지가 엿보였기에 왜적의 날카로운 창검에 대한 공포도 잊고 그에게 홀리듯이 따라 나선 김 아무개였다.



그리고 이곳 벽파진에서는 별다른 부축도 없이 홀로 걸어다니는 것으로 보건대, 몸이 다 나아 거동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구나 하였는데 현재의 모습을 보아하니 그마저도 아닌 듯 하였다. 아마도 부하들 앞에서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는 홀로 있을 때는 여전히 뿌리깊게 남아있는 고문의 잔재를 추스리며 숨기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승리를 기약할 수 없는 싸움에 내몰게 하여 면목이 없네 그려."



씁쓸한 미소가 통제사 영감의 입가에 처량히 걸려 있었다.



"아, 아닙니다요! 소인이 그만 실언을 하였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김 아무개는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황망히 외치듯 말했다.



그러자 통제사 영감은 희미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하는 것이었다.



"되었네. 나라고 하여 내일의 전투가 두렵고 떨리지 않겠는가.. 나 또한 일개 한 사람으로서 수많은 날들을 고민하고 고심해왔네. 그러나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오직 이 길 뿐이야."



이 길 뿐이다.



그것이 통제사 영감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면 김 아무개 또한 이론의 여지 없이 따를 뿐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 통제사 영감이 내린 결단이 아니던가.


물론 어제를 포함하여 당장 전투를 하루 앞둔 오늘까지도 김 아무개를 포함한 병졸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연전연승을 거듭해온 통제사 영감이 이번만큼은 실책을 저지르는 것 같다라는 것이 중론이었으나 이번 통제사 영감의 확신에 찬 어조로 살펴보건대, 비록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긴 하였으나 필경 그 결정을 뒷받침할만한 모종의 필승의 계책이나 전략을 세워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다른 이도 아닌 바로 그 통제사 영감이 아니던가.



"...소인이 감히 여쭈어 볼 수 있는 일은 아니긴 하오나... 영감께서는 필승의 묘책이 있으신게로군요...?"



조심스럽게 물으며 반색하듯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김 아무개를 바라보던 통제사 영감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애석하게도 그런 것은 없네. 몇날 며칠을 궁리해 보아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지. 내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적을 바다에 쳐넣어 쓸어버리는 일 뿐일세."



내심 그의 입에서 유려한 계책이 흘러나오길 바라던 김 아무개는 예상 밖의 대답에 낯빛을 흐릴 수 밖에 없었다.



절망이었다. 승전을 거듭하던 그도 내놓을 수 있는 답이 없다며 고개를 저을 정도면 내일의 싸움은 정말 끝인 것일까.



통제사 영감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그런 김 아무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동안 우리가 연승을 이어올 수 있었던 데에는 내가 짜놓은 판에 적이 말려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대와 같은 부하들 모두가 나를 믿고 따라주어 힘껏 싸워주었던 것이 컸다네. 그리고 내일, 나에겐 다시 한번 그대들의 믿음이 필요해."



말을 마친 통제사 영감은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는 것이었다.


초겨울에 접어들기 시작한 밤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별들이 수놓고 있었다.



"....비록 지금 이 순간에도 휘하의 군관들은 물론이고 그대와 같은 병졸들까지도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흘겨보고 있다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네. 물론,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기도 하지. 허나,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그대들의 신뢰가 절실해..."



말을 흐리는 통제사 영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고문의 잔재 때문인지 아니면 곧 닥쳐올 전투의 두려움 때문에서인지는 몰라도 뒷짐을 진 통제사 영감의 손 또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처음 접하는 생소한 모습이었지만 김 아무개는 자신이 통제사 영감과 공명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서 묻어 나오는 농부나 어부와 같은 냄새가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고개를 내린 통제사 영감은 김 아무개에게 다가와 다시금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대, 낯이 익은 것이 대장선에 속한 것 같구먼. 그렇다면 나를 믿어주게. 그리고 믿게나. 내일 바다에 신뢰를 제외한 두려움과 그 모든 것을 적과 함께 쓸어 넣어버리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통제사는 가볍게 김 아무개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리고는 발걸음을 돌려 사라졌다.



그리고 김 아무개는 그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이내 손에 칭칭 감아둔 헝겊을 다시금 풀어냈다.



왜놈들의 쾌속선 마냥 한기가 빠르게 저며들었지만 생각만큼 그리 춥지는 않았다.




벽파진의 밤은 깊어만 간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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