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산은 1972년생으로 지난 1994년 연극 무대를 통해 데뷔했다. 이후 20년 넘게 조명받지 못하는 무명 시절을 견딘 그는 소극장과 연극 무대에서 묵묵히 공연하며 내공을 쌓았고, 생계를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도 병행했다. 긴 무명의 터널 속에서도 연기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으며 무대 위에서의 정직한 연기로 차근차근 연기력을 인정받은 그는 결국 2017년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문래동 카이스트" 역으로 대중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뒤늦은 재조명을 받았다.
이후 '나의 아저씨', '응답하라 1988', '빈센조', '시지프스: the myth', '방법' 등 굵직한 드라마뿐 아니라 다양한 영화와 연극 무대를 넘나들며 활발히 활동했다. 그의 탄탄한 연기 내공과 신뢰감을 바탕으로 "믿고 보는 배우"라는 평가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동료 배우와 연출진 사이에서도 "인생을 연기에 쏟아부은 배우"라는 찬사가 이어지며, 연기파 배우로 확고한 위치를 다졌다.
박호산의 무명 시절엔 오랜 시간 삶의 무게가 함께 했다.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는 이혼 후 두 아이를 혼자 키우며 안 해본 일이 없을 만큼 치열하게 살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혼하고 애 둘을 제가 맡았을 때가 제일 힘들었다. 큰 애가 5학년, 작은 애가 1학년일 때 방이 없는 큰 원룸에서 셋이 살았다"라고 힘들었던 당시를 회상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연극 무대 외에도 다양한 일용직들을 전전하며 매일 경제적 어려움과 현실을 감당해야 했다고.
이어, 박호산은 "무려 55층 고층 빌딩 유리닦이까지 해봤다"라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당시 낮에는 고층 건물 외벽에 매달려 유리창을 닦고, 밤에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틈틈이 연극 연습까지 병행했다는 것. 55층이라는 고층에서 무서울 틈도 없이 쉴 새 없이 삶의 무게를 버텨낸 그는 "무대에 한 번 서면 또 버틸 힘이 생긴다"며, 힘든 현실에서도 연기만큼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동료들은 "인생을 연기에 통째로 쏟은 사람"이라고 평가했고, 박호산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가족을 위한 책임과 꿈을 지키며 긴 터널을 건너왔다.
이후 박호산은 새로운 인연을 만나 막내아들까지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최근까지 드라마, 영화, 예능, 연극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꾸준함을 이어가고 있다. "내려놓으면 관계도, 연기 인생도 다시 선명해진다"는 그의 말처럼, 박호산은 현재 가족과 함께하며 무대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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