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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사린백) 바느질앱에서 작성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1.25 09:00:10
조회 801 추천 34 댓글 7
														

  여느때와 다름없이 조용한 학생회실에서, 이치가야 아리사는 묘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아~리~사~!"


  "역시냐?!"


  대체 뭘까. 히카와 사요는 학생회 서기의 당연한 듯한 조기퇴장에 한숨을 푹 쉬면서도 재차 들고있던 서류에 눈을 옮겼다.


  여느때와 다름없는 조용한 학생회실에는 약간 이른 감이 없잖은, 조금 거슬리는 히터 소리와 서류 종이 넘기는 소리, 때때로 들리는 학생회 회장의 호흡소리만이 들려왔다. 들이쉬고, 내쉬고. 그녀의 시선은 아까 펼쳤던 서류의 첫 문단을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에 생긴 고민. 그것은 온전히 자신의 내면에서 오는 고민이었으며. 그것은 그녀 자신의 직무, 풍기위원으로써 모순이며 있어선 안 될 일이였다.




  '......일어나셨나요?'


  세밀한 커튼을 투과한 아침햇살은 오히려 시원하게만 느껴졌었다. 분명 한여름의 무더위 속일 텐데도, 눈을 뜨면 초봄의 꽃밭이었다. 푸르고 화려하지만, 고요하고 가라앉은 그것은 틀림없이 사랑이었으리라.


  단지 온라인 게임 이벤트를 위한 밤샘놀이. 그것 뿐이었을텐데. 여름방학, 즉 썸머 시즌 이벤트가 끝나가는데도 라이브 준비 등으로 바빠서 거의 진행을 못 한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더위에 컴퓨터가 맛이 간 탓에 내심 우울해하고 있던 차에 그녀가 말을 걸어주었다.


  '그렇다면, 저희 집에서 같이 하는 건 어떠신지.'


  히카와 사요는 속된 말로 쑥맥이었다. 연애에는 관심은 커녕 직책이 풍기위원장인 탓에 적대감마저 가지고 있었으며, 연애 기술은 물론 성에 관한 지식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다. 보건체육의 점수는 만점에 가까웠으나 말 그대로 생물학적인 지식, 글과 교재용 그림으로만 배워뒀으며 살아오면서 이 세대라면 수 백, 수 천 번은 접할 수 있을 터인 음란 서적이나 음란 동영상에는 잘못하여도 3 초 이상 시선을 둔 적 없는 인간이였다.


  그런데 어째서.


  "히카와 씨."


  자신은 사람의 내면을 읽을 줄 모르기 때문에, 철저하게 상식을 지키고 상식 안에서 행동했다. 그래야만 했다. 남들은 노력하는 것이 힘들고 자신을 통제하는 게 어렵다고 하지만, 히카와 사요는 서툴렀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편했다.


  '예뻐라.'


  그래서 사랑은 어려운 것, 성은 적대해야하는 것, 연애는 귀찮은 것으로 여겨왔다. 한평생 자신과는 연이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감정을 이성으로 누르며 살아왔다. 아니, 바로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누를 필요조차 없었을 터였다.


  거의 쓰러지다시피 이불에 드러눕고나서 잠에 들기까지 세 호흡도 걸리지 않았던 것 같은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눈꺼풀 너머에 의식을 두니 벌써 아침이었다. 아직 눈 뜨기엔 이르다면서 몸이 비명을 지르는 듯 해 10 초만, 1 분만 하고 늑장 부리다보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멎었다.


  청소... 도와드려야 했는데.


  나중에 보답하자. 린코에겐 신세 진 것이 한 두 개가 아니였기에 대체 무얼 해주어야 할지 보통 고민이 아니었다. 감사해야 할 일을 리스트로 적으면 대체 얼마나 길어질까.


  '.......'


  무거웠던 눈꺼풀이 기분 좋을 정도로 가벼워지자, 피로로 막혀있던 귀도 뚫린 듯 세상 소리가 들려왔다. 간밤에 켜둔 채로 잤는지 아직도 돌아가는 컴퓨터 소리, 낮게 깔린 에어컨 소리, 자신의 숨소리, 그녀의 숨소리.


  '......일어나셨나요?'


  사랑에 빠지는 소리.


  "아, 네?"


  정말 눈 깜짝할 새였다. 영원히 더울 것만 같았는데, 가을 옷을 꺼내기도 전에 겨울이 찾아왔다. 마치 제 사랑처럼. 크게 데여서 감추려 해보니 도저히 가려지질 않았다. 손이 멈춘 것이 걱정되었을까. 린코가 제 손을 보는 것이 괜히 저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것을 들킨 것만 같아 마음에 찔렸다.


  "......소매가 거의 다 뜯어졌네요. 제가 고쳐드릴게요, 벗어주세요."


  "아, ...네."


  잠깐 사이에 마른 입술을 깨물어 축인다. 그녀가 건내는 겉옷을 받으면서 제 교복을 벗어 건내준다. 가방에서 재봉 도구를 꺼내고 바늘에 실을 꿰는 모습을 넋놓고 보고 있자니 린코는 고개를 살짝 들어 저를 보곤 멋쩍은 듯이 웃으며 저에게 말했다.


  "손, 멈추셨어요."


  죄송합니다. 그녀는 혼내지도 않았는데 저의 양심이 찔려 꾸지람이라도 들은 것 마냥 재빨리 사과하고 서류철을 고쳐쥔다. 입술을 움직이면서 소리 없이 읽어내리고 있자니, 귀에 거슬리는 바람 소리나 히터 소리 사이로, 그보다 훨씬 작을 터인 그녀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히카와 사요는 제 감정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겪어 본 적이 없다고 해도 누군가 물어본다면 이건 틀림없이 사랑이라고 확답할 자신이 있었다. 착각할 수 없는 뚜렷하고 확실한 마음이었다. 사랑에 빠진 자신에게 원망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 그런 사랑. 창 밖은 이제 겨울인데, 제 마음은 오히려 봄이었다.


  사랑에 빠지면 바보가 된다. 어디까지나 소설 속의 관용구인 줄 알았으며, 그런 것만 머리에 찬 바보들의 변명인 줄 알았다. 그게 전혀 과장이 아니란 걸 사요는 이제야 알았다. 머리를 비우고자 활을 잡아도 린코가 떠오르고, 집중하고자 기타를 키면 어느샌가 사랑을 연주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핫 밀크를 주문해보기도 하고, 단풍이 떨어지면 괜히 그녀가 생각나기도 했다. 요컨데, 히카와 사요의 머릿속에는 항상 그녀가 있었다.


  "자, 여기요. 다 됐어요."


  원래부터 학교라는 장소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충실하게 보내는 편이였기에 좋아한다고도 할 수 있었고, 풍기위원이라는 직책을 맡았을 때부터는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애착마저 붙었다.


  "고마워요. 다음에 꼭 보답해드릴게요."


  지금에 이르러서는 히카와 사요에게 있어서 학교는 떠나고 싶지 않은 장소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교보다는 학생회실을, 제 교실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저, 보답 해주실 거라면...."


  보답 같은 건 바라지 않을 사람. 히카와 사요는 시로카네 린코라는 사람을 잘 알지 못했지만, 잘 알고 있었다.


  "...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사랑하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 속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알지 못해도 사랑할 수 있었다.


  "오늘 끝나고, 같이 식사 하실래요?"


  그렇기에 히카와 사요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솔직하자고.


  "네, 좋아요."


  따뜻한 온기가 뺨을 덮는다. 자는 동안 헝클어졌을 머리칼을 쓸어 정리해주는 손은 향기롭고 굳은 살이 박혀있어서, 마음이 푸근해지는 그런 손이었다.


  '좋아해.'


  숨소리보다 작아서 이불 스치는 소리에도 묻혀버릴 것이 분명했을 속삭임. 혼잣말도 못 될 한숨이었을텐데. 뺨에 닿은 손을 타고 전해져온 말은, 저를 녹이고氷川 단숨에 비춰버릴 만큼紗夜 강렬하고 또 찬란했다.


  "그리고, 좋아합니다."


  새로 지어진 소매의 매듭은 무척이나 따뜻하고 튼튼해서, 두 번 다시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주었다.


  "좋아합니다."


  저에게 들렸던 만큼, 저에게 지어준 만큼 확실하고 솔직하게. 이번에는 돌려줄 차례였고, 시작할 차례였다. 첫 바늘, 첫 매듭. 겨울이지만, 봄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오프 더 레코드 - 한 여름밤의 음란마귀


  박음질


    "......소매가 거의 다 뜯어졌네요. 제가 박음질 해드릴게요, 벗어주세요."


  "네?"


  -히카와 필터 적용중-


  -히카와 씨, 제가 박아드릴게요. 벗어.


  "네, 네!"


  왜 치마를 벗으시나요? 히카와 사요의 뇌가 정상으로 돌아온 건 그로부터 한 시간 뒤, 학생회 서기가 제 꼬리를 달고 '두 두 두 두고간 물건' 하며 문을 열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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