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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발의안에 서명해주세요...!"앱에서 작성

ㅇㅇ(222.117) 2020.06.26 21:09:52
조회 2659 추천 54 댓글 16
														

?

발의안?

대체 무슨 발의안이란 말인가

보나마나 이상한 종교집단이나 환경운동일 것임에 분명했기에 나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그대로 지나가 강의실에 가려고 했다.


그러나 운도 없지


내 순진해 빠진 순둥순둥한 얼굴은 이럴 때 하등 도움이 되질 않는다.



열렬히 소리치고 있던 사람들 중 한 여자의 손에 이끌린 나는 그들이 발의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게 되었다.



총수 인권 보호법 발의를 위한 서명안?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 사람들은 뭐지? 레즈퀸들이 무섭지 않은 건가? 대낮부터 총수 인권 보호법 발의를 위해 서명을 받고 있다니, 레즈퀸들에 걸렸다가는 결코 끝이 좋지 않을 것이었다.


아니, 비단 이 사람들뿐 아니라 이렇게 여기에 붙잡힌 나 역시 들킨다면 좋은 꼴은 보지 못할 터였다.



최근의 잘못으로 하루종일 '벌'을 받은 것이 불과 3주가 채 지나지 않았다.



여기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총수인권? 그딴거 알게 뭔가


여기서 재수없게  들켰다가는 레즈퀸들의 엄포대로 삼일 밤낮은 묶이게 될 수도 있었다.


애써 자리를 피하려는데, 그 여자가 보호법의 필요성에 대한 역설을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총수들이 매일매일 제대로 된 일상도 보내지 못하고 레즈퀸들의 성욕아래 시달리는지, 자신도 매일매일 그렇게 당하다가 큰 용기를 냈다느니, 서명자의 신분 보안은 철저히 이루어지니 조금만 용기를 내서 사인을 해 달라느니, 말은 아주 청산유수였다.


흘깃 보기에도 상당한 서명이 모아져 있었다.


기밀이 유지된다면야, 나 하나쯤은 여기에 더 해도 별 티가 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나는 펜을 쥐고 서명을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일상은 변함없이 계속되었다. 이미 내가 서명안에 이름을 적었다는 것은 기억의 저편으로 날아갈 정도였다.



저녁을 먹고 막 기숙사에 돌아왔을 때 알림음이 들렸다.


「지금 당장 ◎◎ 집으로 올 것」


◎◎은 레즈퀸 중에서도 매우 유복한 편이었고 남들이 기숙사나 자취방을 구해서 쓸 때 아파트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였기에 그녀의 집은 레즈퀸들의 좋은 아지트였다.


제 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했지만 나에게 선택지 따위는 존재치 않았다.


그나마 외출을 할 수 있는 상태에서 문자가 와서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으며 터덜터덜 아파트로 향했다.





평소에 나를 괴롭히기 좋아하는 레즈퀸 3인방이 모여있었고 나는 그녀들이 이끄는 대로 쇼파에 앉아 만지작거려지며 신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야 무슨 일 없었어?"

나를 무릎에 올려 놓고 가슴을 만지던 ◎◎이 물어봤다.


무슨 일?

"아니 별로? 읏, 왜?"

별 다른 일이 생각나지 않았기에 무심하게 대답했다.


"흐음 그래? 최근에 뭔가 잘못하지 않았어?"


도리도리


"마지막 기회야. 지금 고백하면 진짜 없었던 일로 해줄게. 잘 생각해봐"


이건 무슨 유도신문이란 말인가.


여기서 잘못을 인정하는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 분명 이런식으로 협박해서 아무런 잘못이나 말하게 한 뒤에 신나게 괴롭히려는 술책이겠지.

내가 총수를 하루이틀 해본 것도 아니고 이런 장난 역시 하루이틀 당해본 것이 아니었다.


"읏, 아냐. 진짜 아무것도 안했어"

나는 최대한 무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사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어서 이야기하기 어렵지도 않았다. 그때까지는.


"아하, 그래 그럼 이건 뭘까?"


?

그녀는 스마트폰을 꺼내들더니 어떤 사진을 확대해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내가 며칠전 서명하고 잊어버렸던 서명안을 찍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에는 너무나도 뚜렷하게 나의 이름이 있었다.


여기서 인정하면 죽도 밥도 안된다.


그렇게 다짐한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당당하게 말했다.


"아니 ○○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드문 것도 아니고 난 저런 서명 한 적 없어"



흐흐 잘했어, 나! 여우주연상 감인 완벽한 연기었다. 사실 내 이름은 상당히 흔한 편이었다.


◎◎은 내 눈빛을 유심히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정말로?"

끄덕끄덕

"만약 아니면 여기서 어떻게 될 지 모르는데?"

살짝 쫄긴 했지만 뭐 어떻게 할 텐가. 일부러 서명할 때 내 글씨체와는 다르게 했기 때문에 아마 들킬 일도 없을 것이었다.


"그래?"

그녀는 정말로 안타깝다는 듯이 얘기했다. 나를 벌 줄 기회가 사라져서 아쉬운 듯했다.

하지만 나도 본격적으로 총수로 살아온지 5년이 넘은 몸 이렇게 허투루는 당하지 않는다 이거야

그렇게 속으로 자화자찬하면서 살짝 들리려는 입꼬리를 최대한 억누르는데 그녀가 한 영상을 재생시켰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영상에 찍힌건 틀림없이 나였고 나는 당당하게 서명을 하고 있었다.




"어...?"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뭐란 말인가 이 악의적으로 조작된 듯한 악몽은


그러나 불행히도 이것은 여실히 현실이었고 내 얼굴이 헬쓱해질수록 나를 바라보는 레즈퀸들의 표정은 사나워져갔다.


"○○아?"

뭐라 대답하기도 힘들어서 겨우 그녀의 발끝만을 쳐다보았다.

그런 내가 답답했던지 ◎◎은 내 턱을 잡아 내 얼굴을 들어 자신을 바라보게했다.

"이게 어떻게 여기에...?"

나는 결국 내가 궁금했던 것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으니 궁금증이라도 해결해야지.


"하, 총수 인권 보호법? 그게 정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녀 중 한명이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요즘 총수들 중 일부에게서 불온한 사상이 싹트는 것 같다는 기류가 레즈퀸들 사이에 포착되었다고 했다.

그런 발칙한 총수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위와같이 발의안을 만들고 서명하게 했다는 것이다..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대낮부터 레즈퀸들의 눈을 피해 서명을 받을 수가 없지


이제 모든게 이해되었다.



서명안은 나같은 흑우를 낚기 위한 낚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낚인 멍청한 총수들은 지금 나와 같은 처지에 있을 것이었다.



"우린 기회를 충분히 줬어"

"저런 발의안에 서명하고, 거기에 우리들을 속이려 하고, 끝까지 발뺌하여 해?"


"아까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을 때 잘도 알았다고 했지?"




그녀들이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밤은 너무나도 길 것이었다.


아니, 밤뿐만이 아니다.


오늘은 금요일, 내일부터 주말이었고, 내 월요일이 공강이라는 것은 그녀들 모두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그녀들의 손에 이끌여 침대라는 이름의 지옥으로 끌려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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