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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한숨만 나옵니다" - 정지태 고려대 명예교수

전대한의학회장(122.44) 2024.03.25 20:23:28
조회 171 추천 33 댓글 0

"깊은 한숨만 나옵니다"



간만에 새벽에 병원을 나갔다. 오늘 전체 교수가 모여 사직서를 내는데, 비대위에서 한 마디 해달라고 해서 이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막지 못한 선배 의사로 반성문을 읽고 왔다.


반성문 ㆍ깊은 한숨만 나옵니다.


제 인생에 이렇게 무거운 자리에 나서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내가 지지했던 보수에게 발등이 찍혀 가슴앓이 하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늘 이런 일로 교수님들이 모여 수심 가득한 얼굴로 저를 쳐다보고 있으니, 앞서 이 길을 가며 잘 못된 것을 바로잡지 않고, 무기력하게 눈 감고 살았던 한 사람으로 송구스러운 마음 가득합니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를 수습하면서, 정부는 보건의료기본법이란 법도 만들고, 의료수가도 정상화하겠다고 하고, 의과대학 정원도 줄이는 조치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 따른 후속 조치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정부는 모든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집어 던지고 의료를 보살피지 않았습니다.

5년마다 세우기로 한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지난 25년간 단 한 번도 세운 적이 없었고, 잠시 올려줬던 수가도 보험재정 압박을 핑계로 취소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의사들의 파업에 밀려, 할 수없이 의대 정원을 줄였다고 주장하고, 그것으로 인해 지금 대한민국의료의 위기가 왔다는 망언을 하며 자신들의 책임을 의사에게 전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온 동네 젊은이를 모두 의사로 만들 혁명적 발상을 통해 의료개혁을 이루겠다는 막말을 하고, 말 안 들으면 법정최고형도 때릴 수 있다는 폭언도 했습니다.


믿음을 줄 수 없는 정부가 사태를 이렇게 끌고 갈 수 있도록, 방치하고 외면했던 의료계 선배로써 국민들에게 죄송하고, 제자들에게 면목이 없고, 오늘 사표를 내고 대학을 그만두겠다고 하는 동료였던 교수들, 후배교수들 앞에서 부끄러울 뿐입니다.

지난 2월 이후 정부가 취한 조치는 의료계를 향한 겁박 뿐, 건설적인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대화하자면서 대화를 할 자세를 보인적도 없습니다. 정부는 그것은 의사 단체의 잘못이라 선전선동하여 국민을 속이며, 그저 국가의 힘이 얼마나 센지, 그것을 폭력적으로 쓰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말로만 듣던 치킨 게임의 마지막 단계에 서 있습니다. 정부는 의사들 가슴에 대못을 박았고, 더 이상 협상의 여지를 없앴습니다.

한동안 입 달린 자들은 모두 말했습니다. 엄숙한 얼굴로... 의사가 환자를 떠나면 안 된다고...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들먹였습니다. 그 정신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살펴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흔히 히포크라테스 선서라 부르는 세계의사회의 제네바 선언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꾸준히 바뀌고 있습니다.

제네바선언 2017년판에 보면…

‘I WILL ATTEND TO my own health, well-being, and abilities in order to provide care of the highest standard.’ 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이를 번역해 보면, ‘나는 최고 수준의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 내 자신의 건강, 행복과 기량 향상에 노력할 것입니다.’라는 말입니다.


이제는 시대가 변해서, 내 한 몸을 갈아 넣어 오로지 환자만을 위해 사는 시대가 갔습니다. 환자가 살자면 건강한 의사를 만나야 하고, 행복한 의사를 만나야 진료 결과도 좋습니다. 간이 침대에서 깊은 수면도 못 취하며, 내 몸을 갈아 넣는다고 의학은 발전하지도 개혁되지도 않습니다.

사랑과 보살핌, 헌신과 희생. 우리는 그것에 대한 대가를 원하지 않았는데, 세상은 우리가 제 밥그릇만 챙긴다고 손가락질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를 정부의 도움 없이 이 땅 위에 이루고도, 정당하게 대우를 받지 못하고 사는 교수님들의 현명한 선택을 저는 지지합니다. 그 선택이 대한민국의 미래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와 존엄, 재산권을 함부로 훼손하고, 국민의 생명권마저 하찮게 여긴다면 그걸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지난 50년간 민중은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며 싸웠지만 결과는 군부독재에서 검찰독재의 시대로 변한 것뿐입니다.

다시 한번 이런 사태가 오는 것을 미리 막지 못한 선배 의사로써, 환자분들께 죄송하고, 후배 의사, 의과대학생들 모두에게 미안합니다. 한없이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전대한의학회회장  정지태 고려대 명예교수



https://blog.naver.com/shyu3/223394741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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