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시 감옥. 언데드와 목각 인형은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에.. 그러니까 그 유스타니 성도회가 죄다 아저씨의 작품이였단.. 말이죠? 지금까지 마담이 무덤에서 되살려낸 뭐 그런 걸로만 알았는데."
"그래, 그 놈은 내 힘을 빌리고도 실패했지. 그 녀석의 무능함은 몇 번을 언급해도 부족할 정도다."
그 짧은 사이에 친해지기라도 한 걸까. 소녀는 마에스트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두려움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뭐... 그런데 지금은 또 다시 세상을 위협할 만한 힘을 얻었으니.. 이를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허, 몇 번이나 말하지만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일 뿐이다. 베아트리체는 결코 색채의 힘을 감당할 수 없어."
"......그 보라색 구체를 말하는 거에요? 그거 살아움직이고 있었어요. 막 꿈틀꿈틀거리고. 그 때 촉수한테 묶여있었는데, 지금은 제가 묶여있네요..."
한숨이 절로 쉬어졌다. 어지간히 답답한지 소녀는 자신을 묶은 촉수를 자신의 손으로 쥐어뜯으려 하지만 촉수는 생채기만 날뿐 전혀 뜯어지지 않고 있었다.
"으으... 뭔가 잡아당기면 당길수록 힘이 빠지는 거 같아..."
"기이하군."
"네?"
그리고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마에스트로는, 양손을 양 턱에 들이밀고는 굉장히 흥미로운 듯 바라보는 것이었다.
"너희들은 대체 몸이 어떻게 되어먹은 거냐? 죽은 시체에 영혼을 붙들어놨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베아트리체가 그 이상의 짓을 했단 말인가?"
"아, 이거요?"
소녀는 자신의 팔을 들어올렸다. 소매가 찢겨나간 부분에서는 피부가 보여야 하겠지만, 연분홍빛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소녀의 피부에는 짙은 어둠만이 대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피부가 검게 변했다는 이유만으로 마에스토로가 흥미를 가지겠는가. 그가 놀란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한 번 죽고 나니까 이런 게 되더라고요. 지금 베아트리체 밑에 있는 애들은 전부 할 수 있을 걸요...?"
소녀의 팔이 고무인형처럼 늘어나고 있다. 팔뿐만이 아니라 손가락도 기괴하게 늘어트리며 마에스트로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미 인간의 범주는 벗어났군."
"이런 것도 할 수 있어요. 뭐 저는 소질은 없지만..."
말하는 사이, 소녀의 손부분은 날카롭게 벼려진 칼같은 형태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빵을 썰어내는 것처럼 촉수를 잘라보려 했지만, 이번에도 되지 않았다.
"역시 안 되나..."
"몸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킬 수 있는 건가. 꼭두각시 인형이 아니라 찰흙인형이었나?"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도, 나름 찰흙보다는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요."
"그래, 어떤 걸 할 수 있지?"
소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자신이 아는 것을 전부 말하기 시작한다.
단단해지기도 하고 물렁해지기도 하고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하고 부풀기도 하는 거 같고 흐물흐물해지기도 하고... 막 이것저것들로 변하기도 하고.."
소녀는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지금 어떤 걸 할 수 있는 지 마구잡이로 이것저것 전부 다 늘어놓는다.
"찰흙이잖나."
하지만 마에스트로의 대답은 똑같았다. 조금 더 많은 조건을 넣어봤지만 돌아오는 결과값은 아까와 같은 찰흙이었다.
"그렇네요."
그리고 소녀도 고개를 이를 수긍했다. 어떻게 보면 영양가 하나 없는 대화라고 할 수 있었다.
"뭐 신체에 대해선 그쯤 이야기하고, 다른 정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지?"
"네.. 뭐.. 상관없죠..?"
대화를 나누는 것빼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어차피 소녀는 생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대화라도 하는 게 그나마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 질문 하나 해보지. 너희들은 얼마나 기억이 남아있는 거냐?"
"네?"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소녀에게, 마에스트로는 부연설명을 붙여준다.
"예전에 그 여자가 이렇게 말하더군."
"인연이나 추억같은 건 장기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녀석들이 내게 반항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때문이죠. 하지만 이번에 내 수족이 될 녀석들은 다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완전한 망각에 빠트린드먼, 오로지 살기 위해 내게 충성을 바칠 수밖에 없겠지."
"실로 그 여자다운 발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자세한 건 너를 통해 들어봐야 알 수 있겠군."
소녀가 그 말을 듣자, 곧바로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아.. 그런 거 말이구나. 네.. 일단 아는 데까지는 전부 말할 게요."
그리고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베아트리체에게 수족으로 부려지고 있는 자들에 대해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 기억이 전부 날아갔아요. 그 애들은 아리우스에서 자신이 뭘 했는 지, 어떻게 살아왔는 지조차 전부 모르고 있어요. 심지어는 마담이 그동안 아리우스를 지배해왔다는 사실도 말이죠. 말 그대로 그냥 텅 비어버렸다고 해야 할까....."
"그래, 텅 비어버렸다면 무언가를 새로이 넣는 것도 쉽겠군."
".....모두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을 거에요. 거스르면 죽는다는 걸. 하지만 그걸로 부족했는지 몇 명을 직접 터트려버렸어요. 자신을 거스르는 자의 결말은 이렇게 될 거라고... 말했죠."
"...반항해볼 생각은 없었나?"
"손짓 하나에 영혼이 빠져나가는 데 그럴 생각을 어떻게 품겠어요... 아마 그 누구도 베아트리체를 진심으로 섬기진 않아요. 다만 마담을 거스를 수 없을 뿐이지..."
반항의 의사는 곧 죽음. 생사여탈권은 완전히 베아트리체에게 쥐어진 것이었다. 살고 싶다는 생존본능은 소녀들이 감히 다른 생각을 품지 못하게 만들었다.
"비참하군.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 여자의 꼭두각시라니. 죽는 게 더 나은 인생이 아닐까 싶군."
"하지만 그래도... 다들 살고 싶죠."
소녀가 목소리를 흐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마에스트로는 손의 관절을 삐걱대며 꺾었다.
"근데 뭔가 이상하군. 너는 친구니 뭐니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베아트리체를 기억하는 거 보면 과거를 제법 멀쩡히 기억하던 것같던데."
소녀의 말을 부정하는 건 다름 아닌 소녀의 존재. 그녀는 과거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지 않았던가. 마에스트로가 이 모순점을 지적하자, 소녀는 고개를 다시 끄덕였다.
"아... 그것도 지금 이야기할게요. 이상하긴 한데, 우리 셋은 기억이 남아있었어요. 과거의 기억도, 우리가 친구였단 사실도. 전부 기억이 남아 있었어요. 그리고 어떻게 죽었었는지도.. 전부 기억했죠. 하나만 빼고요."
"....그 하나가 뭐지?"
"이름이요."
소녀는 아까보다 더 낮아진 목소리로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다.
"다른 건 다 떠올랐는 데도 이름만큼은 유독 기억할 수 없었어요. 제 이름뿐만 아니라 제 친구들의 이름도 무엇 하나 떠오르지 않았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지어줬던 것까지 기억하는데, 정작 제일 중요한 걸 기억하지 못하네요."
"....이름이라."
"적어도 제가 죽기 전까지는 기억해내고 싶은데, 하다 못해 제가 아니더라도 친구들의 이름이라도 기억해내고 싶은데. 계속 생각을 해 봐도 좀처럼 떠오르지가 않네요..."
"거 참 희한하군, 다른 건 다 기억하면서 이름은 기억을 못한다라. 뭐 어찌 되었던 간에, 지금 결론을 내리자면 너를 포함해 나머지 둘이 돌연변이라는 셈이로군."
"그리고 그게 들켜서... 제가 이렇게 묶여있기도 한 거고요."
"흐음."
마에스트로는 양 얼굴을 삐걱대며 계속해서 소녀를 바라보았다. 이전에는 그저 시간이 하도 무료해 그냥 심심풀이로 대화를 나눌 대상으로만 보았지만, 어쩌면 생각보다 더 중요한 존재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느꼈던 걸 그 여자가 느끼지 못할까.. 애초에 별 위협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이리도 감시가 느슨한 게 아닌가.'
저 소녀를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기보단 기대를 않는 것이 마에스트로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할 것이다.
'하지만 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내 성미에 안 맞는군. 베아트리체가 날 비웃기 위해 파둔 함정인들 덫인들 뭐 어떤가, 이 이상 떨어질 바닥이 있나?'
이대로 기다리고 있어봐야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에스트로는 그리 생각하였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조용할까요...? 원래 밖에서 발자국 소리라든지 사람 소리라든지 들리곤 했는데."
"이봐."
"네?"
선생과 베아트리체가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온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선생만 바라보기에는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이 상한다.
"어디 한 군데 잘라서 나한테 던져라. 연구를 해봐야겠다."
"네?!"
***
한편...
"축제가 열린다고 하더니 준비가 한창이네~ 우리 쪽에도 모모프렌즈 관련해서 축제를 연 적이 있었나?"
"없었죠? 그리고 축제를 열 분위기도 딱히 아니었고 말이죠."
"그런가. 좀 즐거운 일이 많았었으면 했는데~ 아니었나 보네. 뭐.. 지금까지 즐거운 일은 거의 없었긴 했다만. 별로 여기서도 즐거운 일은 없을 것같기도 하고. 이래저래 터지는 게 많아. 그리고 이 난리통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람은 코빼기도 안 비치고 있고..."
그리고 남자는 선글라스를 벗어 상의주머니에 넣더니, 바닥에 반파된 채 스파크를 튀기고 있는 오토마타의 머리를 붙잡으며 묻는다.
"왜 안 보일까. 너는 해답을 알고 있니?"
"끄으으....."
"뭐, 알고 있을 리가 없겠지."
남자는 한숨을 쉬고는 이내 다시 오토마타의 머리를 바닥에 짓이기듯 내리쳐버렸다.
"자.. 그러면. 거기 벽에 기대고 있는 놈. 너는 어때. 선생이 왜 숨어있다고 생각해?"
양팔과 다리가 전부 뽑힌 채 완전히 전투능력을 상실해버린 오토마타는, 겨우 고개만 들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네가..선생.."
하지만 그 말에 남자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비아냥대듯 목소릴 올렸다.
"아냐, 아냐. 네가 그렇게 생각할 뿐이지 아니라고. 나는 그냥 밤산책을 나왔을 뿐인데 너희들이 멋대로 나한테 총을 갈긴 거잖아."
"....무슨 개소..리. 그 태블릿..."
"아니래도? 음.. 아니지, 그냥 이렇게 말할 게. 네가 생각하는 건 맞는 데 네가 생각하는 건 아냐. 이걸로 대충 이해가 가니?"
".......?"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 오토마타는 고개를 올려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 역시 팔짱을 끼며 오토마타를 쳐다볼 뿐이었다."
"우리 서로 못 본 체했다면 결과가 나았을텐데."
"끄으으으...."
"어쩔까요?"
태블릿 안의 소녀가 묻자, 남자는 피식거리며 대듭했다.
"압축시켜버려.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자고."
"뭐.."
그 순간, 오토마타의 주변에 붉은 보호막이 쳐지더니, 그대로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오토마타는 그걸 보고 기겁하며 남자에게 소리쳤다.
"뭐, 뭘 하려는 거야..."
"아이 뭐...난 성인군자는 아니라서. 나 죽이려고 했던 놈을 내가 왜 살려둬야 해. 반대 입장이었으면 너희들은 내 시체 위에서 춤이나 췄을 거 아냐?"
보호막의 축소는 계속해서 이루어져, 어느새 오토마타에 딱 맞는 크기가 되었다. 어떻게든 안간힘을 쓰며 머리로 보호막을 쳐보지만, 오히려 그 머리 부분이 파손될 뿐이었다.
"이, 이러지 마. 살려줘. 못 본 척하고 그냥 갈 수 있잖아."
"너희들은 내가 살려달라고 하면 살려줬을 것도 아니면서. 군인이잖아. 죽음 앞에서 좀 의연해져. 저승 가서 네 부하들 보기 쪽팔리지 않게."
-콰득.
보호막이 계속해서 축소한다. 안에 있는 물체는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든 듯? 거침없이 축소를 이어갔다. 그리고 오토마타는 점점 신체가 압축되고 압축되어 이내 박살나기 시작했다."
"이 저주받을 새끼! 개새끼! 상놈의 자식!"
"칭찬 고마워."
"이 망할 새--"
-콰드드드드드득.
그게 끝이었다. 오토마타는 더이상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압축되고 압축되어 손바닥 크기만큼 줄어들어버린 오토마타였던 것을 남자는 주워들고는, 마치 농구를 하듯 슛을 쏘는 자세를 취하더니,그대로 근처에 있던 쓰레기통에 던져넣어버린다.
"여기의 선생은 저런 녀석들도 용서해줄 수 있는 사람이려나."
"됐고, 전 잠이나 자렵니다. 그러니 빨리 돌아가기나 하세요."
"알겠어. 금방 갈게."
박살나버린 기계들을 뒤로 하고, 남자는 유유히 길을 떠났다.
***
밤이 지나 다시 아침이 찾아오고, 어둡기만 한 폐건물에서 빛이 새어들어와 건물 안을 밝게 비춘다. 그리고 그건 마치 스포트라이트와 같이 한 곳을 집중적으로 비추고 있었다. 아니, 한 사람을 비추고 있다는 표현이 더 걸맞을 것이다.
"............"
"..........."
선생과 사오리는 그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고,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검은 후드티, 붉은 빛이 도는 갈색 단발머리, 검은 스타킹에 하얀 치마까지. 그들이 알던 소녀와는 너무나 다른 패션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미사키?"
"뭐! 왜!"
선생이 이름만 말했을 뿐인데, 소녀는 곧바로 반사적으로 버럭였다. 그리고 부끄럽기라도 한 듯, 마스크까지 벗어던진 얼굴은 빨갛게 변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한 소녀는 싱글벙글 웃더니 양 손을 미사키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짜자잔! 무츠키 님의 대역작, 히구치 마도카입니다! 어때, 예쁘지?"
"와~오."
소녀의 변신은 무죄라던가. 선생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질렀다.
-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한동안 과제에 치여 살 거 같네요. 많이 부족하지만 또 이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그림(마도카화 미사키)은 문제될 시 바로 지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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