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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올해의 인물 선정', 이타카를 향해

kcv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12.09 00:41:30
조회 2456 추천 22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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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이야기 19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올해의 인물 선정



21세기 오디세이아의 선장, 일론 머스크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집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그의 재산을 팔고 있다. 그는 위성을 궤도에 올리고 태양을 활용한다. 가스를 사용하지 않고 운전자가 거의 필요치 않은 자신이 만든 자동차를 운전한다. 그의 손가락 한 번으로 주식 시장은 급등하거나 급락한다. 신자들의 군대가 그의 모든 발언과 함께한다. 그는 네모난 턱과 불굴의 자세로 지구를 가장 잘 활보하며 화성을 꿈꾼다. 최근,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쓰레기를 라이브 트윗하기를 좋아하고 있다.’


 2021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일론 머스크는 세계에서 가장 부자다. 2위와의 격차도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의 손가락에 따라 출렁거리는 주식 시장에 의해 파도가 일지만, 그 자신만큼은 항상 평온하다시피 항해를 계속한다. 일론 머스크의 인생은 어려움과 위기가 가득했으나 테슬라, 스페이스X 등을 향한 집념을 보여주며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을 보여줬다.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을 가지고 있기에 그의 행보에 대해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트위터 인수 후 대량 해고에 대한 비난, 평소 보여주는 언행불일치, 주가에 미치는 부정적인 표현들. 그를 이분법적으로 볼 수는 없으나 마더 테레사마냥 선한 인물이라 평할 수는 없다. 그는 하자와 결함이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 모든 걸 차치하더라도 일론 머스크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인물 중 하나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일론 머스크는 자신을 둘러싼 시간과 공간을 모두 자기가 쥐고 가고자 하는 인물이다. 주변에서 그를 흔든다 하더라도 자신의 시공간을 계속 쥐고 있기에, 독선적일지언정 자신을 잃지 않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 일론 머스크는 신과 괴물들에 의해 시간과 공간을 모두 잃어감에도 끝까지 자신의 시공간을 쥐고 나아갔던, 오디세이아의 오디세우스와 같다. 목표지향적인 그는 자신의 이타카에 도달할 수만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에 시공간을 모두 쥐고 주위의 모든 것들을 무시하며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의 이타카를 향해 나아가는 그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과 같을 것이며, 만약 그곳에 도착하게 된다면 그리스 신화의 신과 같아질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현대의 잣대에서 봤을 때 얼머나 비도덕적이지만 얼마나 거대한 시공간을 지배하고 있던가?



일 년을 지배하는 자


 일 년을 지배할 수 있는 인물은 오디세우스와 같은 힘을 가져야만 한다. 시간과 공간을 강하게 잡을 수 있는 힘. 앙겔라 메르켈, 도널드 트럼프, 프란시스코 교황과 같은 지도자들도 그러하며 기자들, 그레타 툰베리, 시위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오디세우스의 힘, 자신의 시공간을 자신이 쥐고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가지고 있는 힘이라면 '일 년을 지배하는 자'라는 존재 자체가 나올 수 없다. '일 년을 지배하는 자'는 다른 사람들도 가진 시공간을 뒤틀어버릴 정도로 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힘을 위해선 사회적 지위와 장악력을 가지는 게 필요하다. 지위와 장악력을 가져야만 그걸 함선으로 삼아 방향을 지시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고 자신의 이타카를 향하는 배에 모든 걸 싣고 앞으로 용진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인물은 대부분 지도자다. 간디, 하일레 셀라시에, 히틀러, 스탈린, 처칠,아데나워, 드골, 사다트, 호메이니, 덩샤오핑,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푸틴 등. 그들은 한 사람으로서의 개인이 아닌 항상 더 큰 집단을 이끌며 그들을 대표한다. 인도, 에티오피아, 독일, 소련 등 국가와 개인이 등치되었다. 호메이니가 곧 이란이며 덩샤오핑이 곧 중국이다. 타임지가 있는 미국조차도 오바마의 미국과 부시의 미국으로서 다르게 보여지곤 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대표자로서 우뚝 서서 세계를 바라본다.


 반대편에 선 사회운동가들도 마찬가지다. 타임지는 종종 베이비붐 세대, 중산층과 같이 매우 포괄적인 존재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곤 했고 헝가리 혁명 당시에는 헝가리 자유 용사들을, 아랍의 봄 당시에는 시위자들을 선정해왔다. 그들은 국가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지만 어느 세대,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들로 선정되었다. 그레타 툰베리의 경우도 그레타 툰베리 개인으로서가 아닌 시대의 환경운동가들을 전부 포괄하며 그녀가 그들 중 가장 도드라졌던 것이다. 그렇기에 모두를 대표하는 자로서 정면을 마주보고 있거나 더 높은 곳을 향하는 자세를 잡고 있어왔다. 



오디세우스적 인간들


 그들을 향한 날선 비난은 언제든 가능하다. 일국의 대통령은 세계의 절반이 좋아하고 절반이 싫어하며, 간디나 교황과 같은 인물조차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들을 불편하거나 날카롭게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 그들 역시 사람인 만큼 비난의 칼날을 피할 수 없다. 오디세우스의 행적조차 동료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고난도 있으나 오디세우스의 오만으로 인해 벌어진 고난도 분명 존재한다. 폴리페무스 눈을 굳이 찔러놓고는 자기 이름을 밝혀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 고생길을 스스로 열었다. 스탈린도 대숙청으로, 처칠도 갈리폴리로, 메르켈도 대러정책으로 흉터가 강하게 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다른 자들과 다른 점은 분명 존재하며, 그들은 주변에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목표를 위해서는 주변을 돌아보지 않았다.


 때문에 올해의 인물 디자인은 사람의 얼굴이 붉은 틀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일 년을 지배한 자들의 얼굴에서는 그 결의가 느껴진다. 어떤 과정과 갈등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곳에 닿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 다른 건 모두 부차적이다. 그의 얼굴이 진흙으로 만들어졌건, 정복을 입고 있건 중요치 않다. 그가 논란의 중심에 섰건 도덕적 결함이 있건, 약소국의 인물이건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의 강한 눈빛으로 도달하고 싶어하는 지향점이다. 오디세우스를 빛나게 한 건 동료들과 바다가 아니라 이타카를 향한 열정인 것처럼 말이다.


 2022년 올해의 인물도 무엇을 향하는지 선명하게 드러내는 자에게 돌아갔다.



젤렌스키는 왜 남았는가?


 2022년 올해의 인물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뽑힐 거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올해도 세상은 흉흉하였다. 대법관들, 새로운 총리, 새로운 왕, 새로운 엔터테이너들이 나왔고 각자 일 년을 지배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그 자신감도 전쟁이라는 사건 앞에서는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2022년을 강타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전세계의 시선을 끌었고 우크라이나가 생각 이상으로 잘 버티고 대응하며 현재까지 전쟁이 이어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만약 초기 예측과 같이 러시아의 전쟁이 전광석화와 같았다면 올해의 인물은 블라디미르 푸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블라디미르 푸틴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살아남았기에 그가 선정되었다.


 개전 직후, 젤렌스키는 자신의 시공간이 위협받았다. 젤렌스키는 전쟁 초기 미국으로부터 키이우를 떠나 서방으로 망명을 떠나는 걸 제안받았다. 러시아의 공격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부터 떠나는 쪽을 권한 셈. 그러나 젤렌스키는 망명을 떠나지 않고 자신의 각료들과 함께 키이우에 남아 항전 의지를 불태웠다. 실제로 그 당시 러시아군은 키이우 대통령 집무실 근처까지 진입하였고 교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호스토멜 공항이 러시아 공수군에 의해 장악되었다면 대규모 부대가 들아닥치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남아서 키이우 시민들과 함께하기로 결심했다.


 그렇다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대체 무엇을 위해 키이우에 남은 것일까? 대통령이라는 책임감 때문일 수도 있고 망명을 떠나고 싶어도 아직 너무 이르다 생각했거나 망명을 떠나도 행복한 결말이 남지 않을거란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아직 전쟁 초기 젤렌스키 대통령의 행보와 결정에 대해서는 빈 공간이 많아 이유를 단언하기 어렵다.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타임지에서는 젤렌스키가 남았던 이유를 ‘우크라이나의 정신’을 수호하기 위해서라 생각한 것 같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의 시공간을 수호하고자 했다.


 젤렌스키가 키이우에 남기로 결정한 뒤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다. 전쟁 직전까지는 개그맨 출신의, 탁상물림에 가깝고 코드인사로만 내각을 채운, 전쟁에 무심한 인물로 비춰졌지만 전면 개전이 이루어진지 1년여에 가까워지는 지금은 전쟁의 시간과 공간을 자신의 손에 쥐고 키이우란 성채에 결연히 앉아있는 자유세계의 방패로 인식되고 있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 정도로 한 인물에 대한 시선이 극적으로 변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는 그를 보는 시선을 다르게 할 정도로 결연하기 때문일 것이다.



Road to Kherson


 타임지가 젤렌스키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칼럼을 읽어보자. 타임지 기자 사이먼 셔스터는 젤렌스키가 막 해방된 남부 전선의 도시, 헤르손으로 향하는 발자취를 함께 따라간다. 푸틴이 아직도 자신의 지배 아래에 있다 주장하고 있는 도시를 향하는 길. 젤렌스키를 향해 주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보낸다. 당시 헤르손은 아직 러시아 포병들의 사정거리 안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젤렌스키의 안전을 보장하기 힘들었다. 아직 헤르손 내부에 러시아군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조금 더 상황이 나아진 뒤에 찾아가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다. 그러나 모두가 만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젤렌스키는 헤르손행 열차에 탑승한다. 젤렌스키는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헤르손으로 정했고, 주변의 반대는 모두 물리친다.


 젤렌스키가 발길을 서두룬 이유는 러시아 지도자들이 정복과 제국의 영광을 이야기하며 만들어낸 정당성에 구멍을 뚫기 위해서다. 러시아는 자신들의 전쟁이 네오나치로부터 우크라이나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라 주장하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주기 위한 조치라 주장한다. 세계의 대부분은 그 주장을 믿지 않지만, 러시아는 그걸 선전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젤렌스키는 가장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던 헤르손에 도달하여 오랜 전쟁으로 힘들고 지친 헤르손 시민들에게 우크라이나로 돌아왔다는 안심과 확신을 심어주고 러시아의 선전이 틀렸다는 걸 선언하고자 한다.


 헤르손 가는 길은 당연히 즐겁지 않다. 언제든 러시아군의 폭격이 있을 수 있고 열차는 안락함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그건 젤렌스키의 젊은 시절에 앉았던 시베리아 횡단열차보다도 더 조잡하다. 그 당시 젤렌스키는 배우와 코미디언을 꿈꾸던 한 명의 이방인이자 한 명의 평범한 청년에 불과했다. 열차에 타는 순간까지도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조잡한 열차가 타 헤르손에 도착하는 순간, 그 이방인과 청년은 우크라이나의 중심에 선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로 바뀐다. 원하지 않던 지혜로부터 얻은 결과물이지만, 그 결과물이 우크라이나가 아직도 생존하고 있도록 만들고자 사람들 앞에 선다.


 헤르손 중앙 광장에서 선 젤렌스키는 AK 소총을 들고 방탄헬멧을 쓴 상태로 사람들을 마주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든 위성전화료를 받아낼 각오가 된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 단말기와 아이폰을 들고 사람들 앞에 선다. 패딩 점퍼를 입은 젤렌스키의 모습은 그렇게까지 위엄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모습은 대통령궁 기자회견실에 들어온 말쑥한 국가지도자의 모습보다는 사람들 많이 모인 광장에 서서 소음공해를 유발하는 중년의 모습과 더 유사하다. 그러나 그 중년의 모습에 헤르손 사람들이 모여든다. 젤렌스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만큼 우크라이나어도 크게 들린다. 해방의 목소리가 들리자 더욱 열광적으로 반응한다. 모두가 돌격소총을 들고 있는 와중에도 홀로 돌격소총을 들지 않고 앞에 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대통령의 등장에 사람들은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 되어 그의 곁에 선다. 2022년 거의 내내 헤르손은 러시아의 지배 아래 있었지만, 해방된 지 단 며칠 만에 우크라이나의 품에 확실히 들어온다.


 헤르손이 함락당하기 전의 우크라이나와 헤르손을 해방한 후의 우크라이나는 똑같은 국명을 가진 우크라이나다. 그러나 전혀 다른 우크라이나가 되어 있었다. 그건 젤렌스키가 떠나는 여정이 주변의 시공간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패턴 브레이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를 지키기로 결심했기에 키이우에 남았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지금 이 모습 그대로의 우크라이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달라진 우크라이나‘를 지키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남았다. 젤렌스키가 바라는 이타카는 ‘앞으로 달라진 우크라이나’인 셈이다. 이타카가 정해졌다. 이타카를 향하기 위해선 자신의 시공간을 구축하고 항해를 시작할 채비를 해야 한다. 우선 젤렌스키 본인이 달라졌다.  "그는 그 배우로서의 삶을 버렸고, 그는 보스로 변했다."는 측근의 말처럼, 그는 전쟁 이전에도 대통령이었고 전쟁 이후에도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잘 꾸며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대본을 읽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든 자신의 주장을 던지고 있다.


 전쟁 이후로 젤렌스키를 둘러싼 환경은 훨씬 열악하다. 러시아군의 침공, 전파방해, 암살 시도 등이 도사리고 있으며 그를 향한 호의만큼이나 그를 향한 의혹의 눈초리도 있다. 빨리 전쟁을 끝내는 것이 모두가 편한 일이라는 말도 자주 들려왔다. 일론 머스크는 스타링크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지만 자신의 항해에 우크라이나가 거슬린다면 언제든 호의를 그만 보여줄 수 있다. 머스크는 머스크대로의 항해를 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젤렌스키는 물러서지 않고 자신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연결해 의견을 내고 있다.


 젤렌스키가 동분서주하며 노력하는 이유는 달라질 우크라이나를 위해서는 ‘우크라이나가 대대로 갇혀온 억압과 비극의 고리를 끊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 지금껏 소련의 일부 공화국, 러시아 제국의 영토로 기억되던 우크라이나가 국민국가로서 새롭게 탄생하고 러시아에게만 연결되어 있던 고리를 끊어야 항해를 시작할 수 있다. 그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전쟁에서의 승리만이 아니라 ‘자유 세계가 우크라이나를 주권, 독립, 평화의 다른 방향으로 이끌도록 설득’하고 ‘무기 이상의 것으로 지금껏 우크라이나가 처했던 패턴을 깨는 것’이 필요하다.


 보통 난이도의 문제가 아니다. 소련 해체 이후 수많은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이 시도했고 무위로 돌아갔던 일이다. 우크라이나는 자신들의 지향점, 이타카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NATO와 서방과의 연대를 향할지, 러시아와의 연대를 향할지가 매번 바뀌었다. 우크라이나 스스로가 뭉치지 못했기에 시공간을 스스로 잡을 수 없었고 러시아와 유럽에게 끌려다닐 뿐이었다. 젤렌스키도 평범한 지도자라면 불가능했을 거라 생각된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자신이 가진 언변과 연기력으로 모두에게 그를 설파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그를 윈스턴 처칠에 비유하며 젤렌스키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동시에 젤렌스키는 자신의 행동을 “찰리 채플린의 본보기를 보여줬다”고 평한다. 처칠과 채플린은 공통점이 있다. 둘은 모두 위대한 문장가이자 발언가다. 젤렌스키는 지도자로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한 뒤 자신의 문장을 발언한다. 그 발언은 영상과 마이크를 통해 우크라이나인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간다. 마음 속 안착한 단어와 문장은 우크라이나인 몸 속 어딘가 갇혀있던 억압과 비극의 고리를 끊어버린다. 젤렌스키가 보여주는 이타카는 선명하다. 국민국가 우크라이나이자 달라진 우크라이나. 점차 젤렌스키를 향해, 파란색과 노란색의 깃발을 향해 뭉쳐진다. 서로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시간과 공간이 그곳에 뭉친다.



우크라이나의 정신


 젤렌스키가 처음에 서 있던 시공간은 아주 협소한 시공간이다. 매번 언급하듯, 러시아가 조금만 더 기민하였다면 젤렌스키는 살아있기 힘들었다. 지금도 젤렌스키는 그에게 주어진 시공간이 많지 않다. 푸틴은 포세이돈만큼 전지전능하지 못하지만, 미사일은 전지전능하지 않는 대신 정확하다. 그렇기에 젤렌스키에게 주어진 시공간은 여전히 넓지 않다. 나무판자 위에 서서 항해하는 건 매우 힘들듯이 젤렌스키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데 시공간이 넓지 않다. 그는 조급할 수밖에 없다. 만약 혼자 항해한다면 자신의 시공간을 알차게 쓰며 더 빨리 목표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으로 비춰볼 때 젤렌스키는 자기 혼자서 이타카에 갈 생각이 없다. 젤렌스키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 많은 영토, 많은 마음과 함께 나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들이 뒤따라오기보다는 그들과 함께 달라진 우크라이나에 도달하고 싶어한다.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에 도달하는 여정 동안 동료를 모두 잃었고 일론 머스크, 조 바이든, 그레타 툰베리 등도 동료와 영토, 마음의 상실이 있어왔다. 올해의 인물로 뽑혔던 이들은 대부분 그러했다. 대의를 위하는 과정 속에서, 지향점을 향하는 과정 중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젤렌스키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정신을 만들고자 한다. 자신이 정면에 서는 건 사실이지만, 다른 사람들도 함께 곁에 서는 것이다.


 물론 이게 젤렌스키가 아키노, 간디 같은 인물보다 더 도덕적이고 고결하다는 의미를 가지는 건 아니다. 레흐 바웬사가 솔리다르노시치를 등한시했다는 뜻도 아니다.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그런 정신들을 자주 들어보았다. 레흐 바웬사의 솔리다르노시치가 보여주던 폴란드의 정신, 간디가 보여주던 인도의 정신. 호메이니가 보여주던 이란의 정신. 그러나 우리는 시대적 한계 때문에 그 정신의 실체를 두 눈으로 보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타임지의 붉은 테두리 안을 가득 채운, 가장 강력한 시공간을 쥐고 있던 단 한 사람에게서 그 정신이 무엇인지 만날 수 있었을 뿐이다. 그의 눈동자는 우리가 볼 수 없던 것들도, 그가 이 자리에 서서 일 년을 지배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달려왔고 함께할 수 없었던 모든 걸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걸 통해서만 그가 바라는 이타카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시대는 이제 다르다. 젤렌스키가 스타링크와 아이폰을 통해 헤르손과 만나고 발리와 만나고 다보스와 만나듯, 우리도 그 스타링크와 아이폰을 통해 젤렌스키를 직접 만날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정신은 젤렌스키의 눈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설사 젤렌스키가 아니더라도 젤렌스키의 시공간에 이끌린 다른 우크라이나인에게서 얻을 수 있다. 우리는 1981년 솔리다르노시치에 열광하던 폴란드인들보다, 1986년 아키노에게 열광하던 필리핀인들보다 더 강하고 넓은 시공간을 통해 젤렌스키의 이타카로 가는 여정을 만날 수 있다. 그럼 더욱 더 커지고 무거워지고, 젤렌스키의 시공간은 작지만 매우 강한 중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나 둘 그의 시공간에 끌려가고 함께 배에 올라 달라진 우크라이나를 함께 향하고 싶어하게 된다. 어느 순간이 된다면, 젤렌스키가 설사 무너지거나 사라진다 해도 그 정신은 살아남아 젤렌스키가 바라던 이타카로 계속 향할지 모른다. 젤렌스키는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그 정신과 함께하도록 하고 있다. 그는 일 년을 지배하는 자인 동시에 앞으로도 지배할 수 있다.


 추운 겨울의 아침, 신문 가판대에서 젤렌스키의 얼굴이 담긴 타임지를 꺼내들어 값을 치룬 뒤 표지를 쳐다본다. 젤렌스키는 더 높은 곳, 이타카를 향한 얼굴이다. 그가 무엇을 함께 담고 있는지 깊게 돌여다보려 했더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눈동자 밖에서도 젤렌스키가 꿈꾸는 우크라이나의 정신이 보인다. 젤렌스키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우크라이나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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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렸던 부분에서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어 다시 업로드하였습니다.


세줄 요약

1.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바꾸고자 하고 있다.

2. 오늘날 사람들은 젤렌스키가 꿈꾸는 달라진 우크라이나에 동조하고 있다.

3. 그렇기에 젤렌스키와 그가 꿈꾸는 우크라이나의 정신이 올해의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이번 주제는 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매번 새로운 주제를 담아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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