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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번역] CROSS ROAD 제2장

물붕이 2021.11.09 23: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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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선생님


어릴때는 득의양양 했다. '요우쨩은 뭐든지 금방 배우네'나 '요우쨩은 뭘 하든 잘하네'같은 걸 어른들에게 들은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치카쨩에게서도 '요우쨩은 뭐든지 할 수 있네!'라고 칭찬받아서, 그런 자신을 물론 아주 좋아했다.


하지만 점점 변해갔다. 뭐든지 능숙하게 해내버리는 자신과 타협할 수 없게 되었다. 살짝 다르려나. '뭐든지 능숙하게 해내니까', 어쩌라고? 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주변 여자 아이들이 잘 하지 못하는 부분을 서로 보충해 나가며 지내는 가운데, 나는 친구가 없어 곤란했던 적은 없는 주제에 점점 보이지 않는 고독을 느끼게 되었다.


고 2때도 자신이 요령 좋은 것이 치카쨩에게 폐를 끼치고 말았지 않은가, 라는 생각마저 했다. 와타나베 요우라는 퍼즐 조각은 딱 맞는 조각이 없는 채, 완전히 동그란 채로 혼자였다. 그러니까, 나는 자신이 전혀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인간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악기를 정말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다든가. 예를 들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음표를 나열해 새로운 곡을 탄생시킨다든가.


어쨌든, 리코쨩과 만났을 때, 리코쨩의 피아노나 작곡의 재능에 놀랐을 때, 자신이 완전히 동그란 조각이 아니었단 것을, 할 수 없는 일도 엄청 많은 불완전한 인간이었단 것을, 제대로 '자각'할 수 있었기에 기쁠 정도였다.


그 기쁨은, 어느새인가 리코쨩이라는 조각에 붙고 싶다는 마음으로 변해 갔다. 그것은 치카쨩에게도 품어본 적 없던 감정으로, 미숙한 자기 판단이긴 해도 나는 이것을 '첫사랑'이라 이름 붙였다.


………


"코토리 씨? 저기? 왜 반바지인가요?"

"요우쨩은 다리가 예쁘니까 바지로 가리고 있는건 아깝잖아?"


카페 'Little Cage'의 밤 12시. 새 모양을 하고 'CLOSED'가 써진 판을 문에 달아둔 후 나는 마스터인 코토리 씨가 만들어 준 제복을 입어 보고 있었다. 제복이라 해도 통일된 것은 아니고, 코토리 씨는 바쁠텐데도 위부터 아래까지 전부 손수 만들어 주었다.


흰색 셔츠와 짙은 파란색의 보타이. 같은 색을 하고 무릎 위까지 오는 카페 앞치마. 그런데 앞치마 안쪽이 그것과 다른 길이의 쇼트 팬츠인데다가 덤으로 짧게 옆을 터두기까지 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넓적다리 한가운데 즈음부터 맨다리가 완전히 드러나 버렸다. 거기에 까맣고 짧은 양말과 끈이 없는 캐주얼 슈즈.


"우와, 이거 풍속법 아슬아슬하지 않아?"


에리 씨가 웃으면서 파란 핸드백을 손에 쥔다. 네모난 모양의 은빛 시계를 빛낸다. '먼저 갈게!'라면서 힐이 있는 구두 소리를 울리며 문 밖으로 빠져 나간다. 3살 아래인 여동생과 둘이서 살고 있는 맨션까지 여기서부터 30분 정도 걸려서 돌아간다. 내일도 아침부터 평범하게 일을 하러 오는 그녀는, 40층 높이의 오피스텔에서 사무직을 하며 거의 매일 막차가 아슬아슬할 때까지 도와주고 있다.


코토리 씨와 둘이 된다. 텀블러에 약한 하이볼을 만들어 받는다.


가까운 곳에서 하숙하고 있는 나는 마지막까지 남는 경우가 많다. 물론, 코토리 씨 혼자 남겨두는 것이 왠지 미안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 공간에 오래 있고 싶다는 생각이 날을 더해갈수록 강해져 갔다. 술을 마시며 카운터에 앉아 이야기하는 것은 주에 3일 정도 찾아오는 귀중한 시간이 됐다.


"그러고보니, 에리 씨의 제복도 역시 손수 만든건가요?"

"응. 그렇단다~"


'요령 좋음'이 장점인 내가, 오랜만에 자신의 요령이 좋은 것에 감사했던 것은 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거의 70 종류는 되는 드링크를 외우는 것도, 날마다 변덕스럽게 바뀌는 요리 메뉴를 외우는 것도, 그것을 서빙하는 매너를 몸에 익히는 것도, 거의 고생을 하지 않았다.


'할 수 있으니'까 있기에도 편했다. 그것은 일하는 곳이기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첫 아르바이트였지만 그렇게 느꼈다. 전혀 일을 배울 수 없었다면 분명 발길을 향하는 것 조차 싫었을거라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코토리 씨도 에리 씨도 마음에 들어한 것 같아서 종종 술을 마시게 해주고, 맛있는 안주도 먹게 해준다. 그러고 있자면 혼자서 정보로 쫓기고 있던 하숙집 따위는, 집세 7만정도 하니까 아깝기는 해도 샤워 하고 잠 자기 위해서만 돌아가도 괜찮겠다는 취급이 되어 버린다.


"에리 씨의 제복, 완전 딱 맞네요. 주문 제작한 것 같아요"

"그치? 후후후. 기합이 다르니까~"


무척이나 기뻐하는 듯 했다. 나도 스쿨 아이돌을 하던 시절에 의상을 만들고 있었으니까 그게 잘 어울린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코토리 씨는 (패션)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요리 전문학교에 다시 들어가 레스토랑에서 1년 정도 수행한 뒤, 이 가게의 주방에 서 있다. 리뷰 사이트에서는 '맛은 평범'이라고 평가받고 있지만, 이 가게의 매력은 절대 그 쪽이 아니다.


이 가게의 '주인'은 코토리 씨의 어머니로, 고등학교 이사장을 은퇴했을 때의 퇴직금으로 오픈해줬다는 것 같다. 가끔씩 카운터에서 마시긴 해도, 닮은 점은 회색빛이 섞인 머리카락 색 정도 뿐이고 어딜 봐도 커리어 우먼이라는 분위기가 풍겨 느긋하고 상냥한 코토리 씨와는 꽤나 다르다.


참고로, 어머니는 좀 떨어져서 살고 있고 코토리 씨는 이 가게의 위에 있는 맨션에서 혼자 살고 있다. 주말이 되면 에리 씨가 대부분 묵고 간다는 것도 요 며칠 전에 알았다. 코토리 씨의 방을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 소원은 역시 간단히는 이룰 수 없을 것 같다.


"요우쨩,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아? 내일도 학교 가야 하잖아?"

"내일은 1교시 없으니까 괜찮아요. 있어도 괜찮긴 하지만"

"좋네~, 젊음이란 건"

"코토리 씨도 아직 젊잖아요"


앞치마와 모자를 벗고 몸이 가벼워진 코토리 씨는 청소를 마친 카운터에서 직접 칵테일을 만든다. 진의 양을 재고 있는 표정도, 셰이커를 섞는 표정도, 웃으며 접객하고 있을 때와는 정반대로 조용한 우수로 가득해 있다. 회색 콕 셔츠를 입고 셰이커를 흔드는 손놀림은 선명하고 다이나믹한 에리 씨와 대조적으로 깔끔하고 품위가 넘쳐 잔상이 눈에 새겨져 버린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기분마저 블렌딩 해버릴 듯이 주의 깊게 칵테일 글라스에 따른다. 폐점 이후 코토리 씨가 자신의 칵테일을 미소 지으며 만드는 것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어째서 그런 얼굴을 하는 건가요'


그것을 묻기에 나는 아마 어려서 코토리 씨의 '김렛'이 완성되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이 사람은 자신과 비슷하다. 다만, 무엇이 어떻게 비슷한지는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단 둘이서 보내는 시간에 경험한 적 없는 공감을 느끼고 있다. 왁자지껄함을 희미하게 남겨놓고 있는 가게의 공기 속에서, 카운터의 건너편에 유리잔을 기울이는 코토리 씨와 이쪽에 앉아 텀블러를 쥐고 있는 자신이 마치 거울 세계에 있는 듯이 서로를 비추는 느낌이 든다.


"요우쨩, 좋아하는 사람 있어?"


갑작스레 물어 왔다. 하지만, 정말로 갑작스럽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말로 하지 않아도 좋을 다양한 서론을 이야기하고 거기서부터 물어온 듯한 인상을 받았다. '있어요'. 누군가에게 그렇게 대답한 것은 처음이었다. '짝사랑이긴 하지만'. 덧붙여 이야기했더니 공연히 리코쨩을 만나고 싶어졌다. 전화해볼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은 그런 일을 할 정도로 자유롭지 못해서, 그러니까, 생각할 뿐이었다.


"코토리 씨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돌이켜보면, 이런 식으로 다른 이에게 간섭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술 때문일지도 모르고, 이런 어른스러운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가장 큰 이유는 코토리 씨에 대한 것을 '알고 싶다'라는 마음, 아니, 좀 더 깊게, 서로 품고 있는 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라는 마음이었다.


"있어. 짝사랑이긴 해도"


코토리 씨가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그 사랑이 시작됐을 때로 돌아간 듯이 웃었다.


그리고 나는 확실히 보고 있었다. 코토리 씨와 같은 것을 보고 있었다.


금발의 포니테일이, 등을 돌리고 서 있는 모습을.


………


'기적'이라는 녀석은 매일같이 바다를 헤엄치다가 해파리에 쏘일 정도의 확률로 일어난다――라는 의외의 법칙을 알게 된 것은, 골든 위크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날씨 좋은 일요일에 나는 코토리 씨, 에리 씨와 세명이서 쇼핑을 하러 가게 되었다. '가게 되었다' 정도였으니 내가 권유한 것은 아니다. 4월이 종반에 접어들었던 차에 에리 씨로부터 지적받았던 것이다. '슬슬 말해도 괜찮을까? 그 사복은 좀 어떻게 안돼?'라고. 의미를 알 수 없었기에 무슨 뜻이냐고 묻자, '요약하자면 너무 촌스러워'라고 단칼에 잘라 말했다.


마침 4월의 중간 정도에 생일이 있다는 것도 겹쳐져서, 둘이서 생일 축하로 옷을 사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0시 반 즈음에 가게에 모여서, 마냥 백화점이나 숍을 돌며 옷 갈아입히기 인형처럼 이것 저것 시험 삼아 입어보고, 1만엔 정도 하는 원피스를 2벌이나 받았다. 심플하고 산뜻한 여자아이스러운 하얀 원피스와 상쾌한 라이트 블루의 품이 넓은 아가씨 같은 원피스.


"고맙습니다. 원피스 같은 건 처음이에요"

"그치만~, 항상 파카에 바지라니 좀 그렇잖아?"

"코토리는 너무 물러. 촌스러운 건 '촌스럽다'고 말해줘야해. 회사에 나간다면 '당신, 촌스럽네'라고 누구도 절대 이야기 해주지 않고. 학생 시절에 수정해두지 않으면 일생 아웃이라고?"

"그렇네~. 그 '니트 스카프' 같은 티셔츠, 고향에서 유행했던거야?"


코토리 씨마저 웃는 얼굴로 질려했다. 아무튼, 코토리 씨는 전문으로 복식 디자인을 공부했을 정도에 에리 씨는 학생 시절에 독자 모델을 했을 정도고, 그런 멋쟁이에 미인인 두 사람 사이에 있자니 역시나 자신의 복장을 다시 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고등학교 때 줄곧 입었던 좋아하는 옷이에요"

"그러면 '와타나베 기념관'에 전시해두렴. 티셔츠를 3년씩이나 계속해서 입지는 말고"

"그러고보니, 역시 대학생이면 화장하는 편이 나은가요?"

"건강한 피부니까 스킨 정도만 발라도 돼. 아무튼 일단은 옷이야!"


에리 씨가 예쁜 눈살을 찌푸린다. 우치우라에 있던 시절, 누구한테서도 복장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말이지. 고개를 갸웃하며 종이 봉투를 두 개, 양손에 들고 거리를 걷는다. 약간 늦은 점심도 얻어 먹는다. 3시 정도가 되었고, 코토리 씨와 에리 씨는 가게의 준비를 해야 한다며 돌아갔다.


"그럼, 나중에 봐~"

"두리번 거리는 촌놈으로 보였다가 괜히 헌팅당하지 말렴"


같이 돌아가도 되지만, 나는 저녁 7시부터 담당이었다. 뭔가 거리에 나오는 것이 오랜만인데다가, 이렇게 이끌려 나오지 않으면 도쿄의 도심은 딱히 나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기도 하기에 좀 더 돌아보기로 했다. 그런 조잡한 마음이었으니까, '기적'의 조짐같은 건 없었고, 당연히 마음의 준비같은 건 하지 못한 채, 조금 쉬고 싶어져서 스타벅스에 들어가 아이스 코코아를 받고 자리를 찾고 있었다.


꽉 찬 안쪽 자리, 마주 보게 되어 있는 고급 가죽 소파.


하얀 벽을 캔버스로 해서, 와인 색의 긴 머리카락을 만지며 음대생 리코쨩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청초한 핑크 원피스. 우치우라의 거리에 있었단 것이 거짓말인 것 처럼, 도시의 품위 있는 아가씨가 되어 있다. 아니, 아마 '돌아온' 것이다. 아무튼 나는 도쿄에 있을 적의 그녀에 대한 것은 하나도 모른다.


돌연 심장의 고동이 빨라졌다. 흥분해버려서 제대로 된 대화 같은 건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지만, 언젠가 리코쨩 자신이 말했던 것 처럼 1300만명이 살고 있는 대도시에서 이렇게 만나다니, 말을 걸지 않고 있는 것은 무리였다. 트레이에 올린 아이스 코코아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일단 진정하자라고, 뛰쳐나갈듯한 마음을 가라앉혀본다.


"리코쨩"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반응해서 리코쨩이 고개를 들었다. 속눈썹이나 눈 주위를 꾸미고 있다. 우윳빛 뺨에는 옅은 볼터치를 했다. 연분홍색이었던 입술에도 윤기 나는 립스틱을 발랐다. 치켜 올라간 눈과 처진 눈썹으로 이쪽을 향해, 허나, 그래도, 그렇다 하더라도, 리코쨩은 분명히 당황한 얼굴을 했다.


"요우쨩? 어쩐 일이야?"

"뭐 좀 사러 나왔다가, 어쩌다 보니"


어쩐 일이야. 제일 먼저 그런 말을 들어서 움츠러들 정도로는 미소를 기대하고 있었다. 리코쨩은 미소를 짓지 않은 채 나를 응시했고, 그런 얼굴을 보았기에 비어 있다곤 해도 건너편의 소파에는 앉을 수 없었다. 트레이를 든 채로 목적지도 없이 서 있었다. 뭔가 계기를 찾고 싶어서 리코쨩의 다리 주변에 놓여 있던 토트백에 눈을 두었다. 바다 느낌이 나는 테두리 무늬만이 아주 조금 '바다'의 자취를 느낄 수 있게 했다. 거기에 얇은 책자가 몇 권인가 들어있는 것이 보였다.


"리코쨩은? 쇼핑?"

"응. 점심때까지 아르바이트 하고, 점심 먹고, 그러고 조금"

"아르바이트, 뭐 하고 있어?"

"오늘은 결혼식에서 피아노 치고 왔어"


마치 신환회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2년이나 함께했던 동료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벽'이라고 할 것 까지는 없지만, 마음과 마음의 사이에 거대한 '칸막이'를 둔 것 같았기에 슬펐다. 그렇지만, 이조차도 '기적'이라고 생각했더니,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어서 가방에 눈을 향했다.


"가방, 악보가 들어있는거야?"

"엣? 아, 응"

"좀 보여줘"

"요우쨩이 봐도 모르잖아?"


치켜 올라간 눈에서 짜증을 느꼈고, '기적'이라는 마법은 어이없이 효과를 잃었다. '미안해'라고 중얼거리며, 마침 근처의 자리가 비었으니까, 리코쨩에게 '또 봐'라고 말하며 떨어진 그 쪽에 걸터 앉았다. 마주보고 앉는 것도 불가능한 현실에 정말로 울 것 같아졌지만, 입술을 깨물며 코코아에 입을 댔다. '커피랑 헷갈린거지!?'라고 클레임을 걸고 싶어질 정도로 썼다.


그렇지만, 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야.


리코쨩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도록 일부러 안경까지 벗고 코코아를 마시던 나는, 그녀쪽에서 들린 '미안해'라는 목소리를 듣고 순간 안경을 다시 썼다. 그 정도는 의식하고 있었다. 만약 대화하는 것이 싫었다 해도, 의식 정도는 해줬으면 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씁쓸할 뿐인 코코아 따위는 거의 남겨둔 채 곧바로 가게를 나가는 것이 정답이었다.


"선생님!"


그것은 2년 정도 같이 있으면서 들은 적 없던 목소리였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손꼽아 기다린 목소리였다. 리코쨩에게 말을 건 것은 코토리 씨와 비슷한 연배 정도의 언니였다. 하얀 니트에 감색과 하늘색의 체크무늬가 들어간 스커트를 맞춰 입고, 분명 명품임에 틀림없는 가죽 핸드백을 갖고, 물론 화장도 제대로 해서 도쿄의 아가씨 같이 품위있는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선생님? 선생? 새롭고 예리한 정보가 마음을 찔렀다. 붉은기가 도는 어깨까지 오는 머리카락, 리코쨩과 비슷하게 치켜 올라간 눈. 그렇지만, 정돈된 눈썹에서 도도한 느낌이 들어서 조금 다가가기 어려워 보였다. 그런데도, 그런 사람을 향한 리코쨩의 표정은 본 적 없을 정도로 밝았고.


"기다렸어?"

"괜찮아요. 쇼핑하고 있었으니까"


치사한 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흘끗흘끗 곁눈질로 엿보았다. 리코쨩은 내가 가까이에 있다는 것 쯤은 잊어버린 것 같았다. '선생님'이라 불린 사람은 당연한 듯이 마주보며 앉았다. 그러고선 갑자기 손을 뻗어 리코쨩의 근처에 있던 토트백을 가볍게 자기 곁으로 끌어당겼다.


"앗, 안돼"


스타벅스 안이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비명을 지른 리코쨩을 무시하고 '선생님'은 가방 안을 들여다봤다. 내가 '악보'라고 들은 것을 훑어보더니, '여전히 무뚝뚝하네'라며 코웃음, 그러더니 '일단은 18살인거네'라고 귀에 거슬리는 말투로 계속했다.


"제대로 18살이에요"


리코쨩은 벚꽃색이라기보다는 토마토 색의 얼굴이 되었다. 몸을 내밀고 팔을 뻗어 가방을 돌려받으려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놀리는 듯이 리코쨩의 턱을 쥐고 꾸욱 하고 들어 올렸다. 부끄러워 하고 있던 리코쨩의 얼굴이 이번엔 울 것 같이 되었다. '정말'이라고 입을 삐죽이며, 소파에 다시 앉았다. '선생님'은 사과하는 기색 없이 리코쨩의 가방을 무릎 위에 정중한 몸짓으로 돌려 주었다.


그런 어처구니 없는 주고 받기가 정말로 어처구니 없어서, 다시 말해 황당할 정도로 어처구니 없어서, 말이 안될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몸도 마음도 둘 곳이 없었기에 입술을 깨물며 벌떡 일어났을 때, 리코쨩은 겨우 나에 대한 것을 생각해낸 듯이 시선을 돌리고 이제와서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곧바로, '선생님' 앞에서 그런 얼굴을 해버린 자신을 깨닫고, '아차!'하는 표정을 더욱 짙게 했다.


"누구? 아는 사람?"

"네. 고등학교 때의. 그냥. 친구에요"


그냥. 친구. 그걸 듣고 '선생님'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얼굴을 부드럽게 풀며 가까이 다가왔다. 용기 내서 일어난 나는 다시 앉을 수도 없었기에 일어선 채로 있었다. 나보다 조금 키가 큰 '선생님'은, '니트 스카프' 티셔츠를 입은 '친구'를 위부터 아래까지 대충 훑어본 뒤, 입꼬리만으로 살짝 웃었다.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시선만으로 한껏 얕봐진 기분이 들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K대 의학부인 니시키노입니다. 2년 정도 리코의 가정교사를 했었습니다."


압도적인 여유로 자기 소개를 받아 뱀에게 노려진 개구리가 되었다. 새로 도착한 정보가 너무 진해서 목이 막혔다. 니시키노. 니시키노・마키. 이 사람이 그 'μ's'에서 작곡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금세 생각해 냈다. 그런데, 리코쨩은 'μ's'에 대한 걸 '몰라'라고 확실히 말했다. 아니 이제, 그런 먼 과거는 어찌되었든 좋은 일이었다.


리코쨩의 그녀를 바라보는 눈이 단순한 '동경'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 치사량의 대미지였다. 그런 얼굴을 하는 리코쨩을 우치우라에서는 본 적이 없었다. 'P대, 경제학과, 와타나베라고 합니다'라고, 숨을 끊어가며 이름을 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아까는 씁쓸했지만, 지금은 너무나 써서 마음속으로 몸부림쳤다.


사랑 같은 것은 후지산과 마찬가지로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좋다고 확신했다. 가까워지면 흙과 바위만이 가득한 건조한 덩어리로, 험한 언덕길이 이어져있을 뿐이라고, 확실히 알아버리고 말았다.


"앗, 저기, 급한 일이 있어서"


다시 만날 생각 따윈 없으면서, '다음에'라고 낮은 목소리로 신음하며 두 개의 종이 봉투를 한 손에 들고 등을 돌렸다. 트레이를 돌려주고 빠른 발걸음으로 스타벅스를 뒤로 했다. 도중부터 분해서 울 것 같았지만, 인구 밀도가 낮은 우치우라와 달리 어디를 걸어도 사람이 잔뜩이라 몰래 슬퍼하는 일 같은 건 할 수 없었다. 전차에 타서부터는 종이 봉투를 두 개 끌어안고 가까운 역까지 몇번이고 눈꺼풀을 꾹 감으며 참았다.


역에서부터 하숙집까지의 길에 'Little Cage'는 존재하고 있었다.


'준비 중'. 새롭게 만든 새 모양의 판을 보자 눈물샘이 뚝 하고 끊어졌다. 눈꺼풀의 힘으로는 억누를 수 없었다. 누군가의 앞에서 훌쩍훌쩍 우는 캐릭터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모두와 아이돌을 했던 것이 좋은 일이었던 건지 나쁜 일이었던 건지, 어린 시절보다 훨씬 눈물도 많아졌다.


"기적은,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네요"


물수건을 받고 눈 주변을 누르면서 중얼거렸다. 코토리 씨와 에리 씨는 일하는 복장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도 않고 맞은 편에 앉아 있었다. 소화하기 어려운 정보를 듣고 숨이 막혀버린 나는, 지금은 무언가를 물어와도 제대로 대답할 수 없을 테니까, 두 사람의 말 없는 상냥함에 감사했다.


조용히 울고 난 이후, 에리 씨가 일어서선 톡 하고 어깨를 두드렸다.


"기적은, 틀림없이 좋은거야"


당혹스런 얼굴로 올려본 나에게, 푸른 눈으로 능숙하게 윙크를 했다.


"기적의 반댓말은, '악몽'이라고 해. 7시까지는 눈을 뜨렴"


미소를 지어오기에 겨우 웃을 수 있게 돼서, 나는 '네!'라고, 힘껏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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