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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번역] CROSS ROAD 제1장

물붕이 2021.11.09 23: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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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돌아가기 / CROSS ROAD 링크 모음: https://gall.dcinside.com/mini/llss/345



제1장. 도쿄


'××선・△△선과 도쿄 메트로로 환승할 수 있습니다'


만원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사람의 홍수에 떠밀려간다. 저쪽 계단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저녁 6시 무렵의 사람들이 만드는 파도는 너무 거칠어서 휩쓸리고 말아 버린다. 파도라기보다는 소용돌이 같다. 프레임에 팔꿈치를 찍히지 않도록 조금 아래를 향한다. 허리를 낮추고 럭비처럼 돌파해도 되는 걸까. 그렇지만 키가 작은 자신이 덤비는 정도로는 체격이 좋은 샐러리맨이나 발이 빠른 사무직 여성을 밀쳐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쓸려가는 채로 숄더 백을 움켜쥔 채 개찰구를 빠져나간다.


나가고 싶어, 이쪽 출구가 아니긴 해도.


어쩔 수 없이 멀리 돈다. 이 건물은 술집뿐이네 라든가, 이 편의점엔 들른 적이 없네 라든가, 여기 약국이 더 크네 라든가, 이 라멘집은 사람이 가득하긴 한데 맛있긴 한 걸까 라든가, 이런 곳에도 스키야가 있네 라든가, '걸즈 바'는 여자들이 가볍게 들르는 바인 걸까 라든가, 하나하나 눈짓하며 걷는다. 한 눈 팔지 않고 걷는 편이 빠를 텐데도 빛이 번쩍이거나 소리가 나거나 하면 무심결에 의식을 향해 버린다.


4월부터 시작한 도쿄에서의 생활은 전에 살던 우치우라에서 보낸 18년과는 너무나 달랐다. 아무튼 다양한 정보가 줄지어서 날아든다. 뭐가 필요한 거야? 뭐가 필요하지 않은 거야? 그걸 생각하고 있는 중에도 속속 새로운 정보가 눈앞에 나타나서,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가 스마트폰이나 머릿속, 집 안에 어질러져 있다.


'대학 데뷔용 메이크업!' 이나, '자취생의 15분 쿠킹!', '촌놈이 도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10가지!' 라든가. 블로그를 즐겨찾기 해둔 것. 포스트잇을 붙여둔 잡지의 기사. 신입생의 OT에서 들은 지식. 무엇이든 일단 저장하고는 있지만 복습할 틈조차 없다.


'사람'은 더 굉장하다. 학과만 해도 400명을 넘는 동급생들 사이에 섞이게 됐다. 하지만, 그중에서 99% 정도는 완전히 모르는 채로 그저께 5명 정도를 겨우 기억했고, 지난번에 노래방을 갔던 애들은 이미 다른 친구를 고른 듯했다. 그랬더니 또 다른 아이가 서클 견학을 권유해서, 스마트폰 안은 남자든 여자든 얼굴과 이름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의 데이터로 가득해졌다.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엄청난 양의 정보를 갖고 있으니까, 머릿속 메모리는 이미 한계를 넘어 버렸다.


7층 높이 맨션의 3층. 계단을 종종걸음으로 올라 자신의 방에 도착한다.


일단 숄더 백을 침대에 던진다. 파카를 벗고 옷장의 옷걸이에 건다. 바지도 벗어서 침대의 보드에 건다. 안경도 테이블에 올려두고, 티셔츠와 속옷 차림으로 시트에 몸을 던진다. 운동한 것이 아닌, 90분짜리 강의 2개를 들었을 뿐인데도 엄청나게 지친다.


향수병 정도까지는 아니긴 해도 평화로운 우치우라의 거리가 그리워졌다. 고등학교는 한 학급에 20명도 되지 않았다. 자연히 모두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모두도 나를 알고 있었다. 도쿄는 기억하고자 하지 않으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기억되려 하지 않으면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것 같다. '지쳤네'라고 이야기할 상대조차 듣는 강의가 다르면 찾지 못하게 된다.


일어나서 창문을 연다. 창문으로 새파란 바다가 보였던 본가의 방과는 다르게 이 방은 창문을 열어도 옆 맨션의 잿빛 벽만이 보인다. 엿보여질 일이 없다고는 해도 개방감이 전혀 없다. 창문을 올려다봐도 바로 위 정도만 보인다. 화장실에 탈의할 곳이 없으니까, 목욕할 때에는 방에서 옷을 벗을 수밖에 없다. 이건 반대로 개방감이 있지만, 알몸으로 진정할 수 없으니까 딱히 기쁘거나 하진 않다.


모처럼 만의 자취인데도 본가에 있을 때보다 전혀 편안하지 않다.


멍하니 편안하게 있고 싶다고 생각하는 주제에 머릿속은 언제나 '정보를 찾아봐야 해'라며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 일단 TV를 튼다. 중독된 것처럼 정보를 찾아 헤맨다. 저녁 뉴스를 보면서 이번엔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낸다. 자기 자신도 조급하단 걸 알고 있다.


치카쨩에게서 라인이 와있다.


'요우쨩, 골든 위크 때 와? 온다고 하면 하루 휴일 받아 놓을게'


아마 가지 않을 거야. 한 손으로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면서 한 손으로 답장한다. 차가운 답장을 해버리는 것도, 지금 기분으로 갔다가는 도쿄로 혼자 돌아오기 싫어져 버릴 것 같아서다. 치카쨩은, 절친한 소꿉친구는, '일본 제일의 귤 농가가 될 거야!'라고 호언장담하며 이쪽의 농대를 지원했지만, 합격에는 턱없이 부족한 점수로 떨어져서, '역시 고향에서 일하고 싶은걸'이라고 2초 만에 노선을 변경해, 선배 인맥을 통해 고향의 고급 호텔에 취직하여 지금은 거기서 신입 연수를 받고 있다.


후우. 한숨을 쉬면서 아까 편지함에서 가져온 전단 묶음을 정리한다. 이런 종이 쪼가리도 전부 '정보'라, 모아서 버리면 되는데도 일단 한번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버린다. 피자랑, 피자랑, 수도 수리업자랑, 성경 이야기랑, 피자랑, 배달 스시랑, 뭔진 모르겠지만 플로어 레이디 모집이랑. 정말, 하루 만에 왜 이리 많이 쌓이는 건지. 전부 쓰레기통에 넣는다.


스마트폰이 울리고 라인이 왔음을 알린다. 다시 스마트폰으로 돌아온다. 한가한데도 바쁘다.


'그저께 본 서클의 신환회, 가볼래? 입부하지 않아도 괜찮은 거 같고'


클라스메이트인 사이토 씨다. 사이토 씨는 어떤 사람이었지. 갈색 머리에 쇼트 컷을 한 아이였던가. 규슈에서 온 아이였던가. 그건 카토우 씨였나. '정보'가 머릿속에서 엉켜 혼란스럽다.


우치우라에 있을 적, 조금은 유명인이었던 탓인지 남들이 자신을 기억해주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기억하는 쪽은 별로 익숙하지 않다. 치카쨩은 여관집 딸이라 그런지 그런 일이 특기여서 대부분의 사람을 1번만 만나도 기억한다. 그러니까, 치카쨩과 함께 있으면 도움받을 때도 있다. 그런데 그 상대인 사람이 '함께 있던 자신' 쪽을 기억한다거나 해버리니까 방심할 수는 없다.


사이토 씨. 사이토 씨.


그런 나는 스마트폰의 주소록 앱을 활용해서 모두의 특징을 메모해 뒀다. 머리카락 색이나 길이, 키나 체형, 얼굴의 특징 같은 것들을 간단히 메모했다. 몇 번 이야기했다면 좀 더 자세한 정보도 메모해 둔다. 가장 좋은 것은 라인의 아이콘을 얼굴 사진으로 해두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라인방에 얼굴이 표시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이 주소록에도 사진을 넣을 수 있으니까, 친한 고향 친구들은 사진을 같이 등록해 뒀다.


사이토 씨. 사이토 씨. 키무라. 쿠사노. 쿠니키다. 쿠리하라. 쿠로사와. 쿠로사와. 이렇게 늘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시간 있을 때 '고향' '대학'처럼 그룹을 나눠두는 편이 좋아 보인다. 서클이나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면 더 늘어날 테니. 코지마. 콘도. 사이토. 있다 있다.


겨우 사이토 씨를 찾았을 때, 우연히 그 아래에 있는 이름에 시선이 빨려 들어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손가락으로 누르고 있었다. 와인색의 긴 머리카락과 맑은 우윳빛의 얼굴이 화면 가득히 나타났다. 인상적으로 치켜 올라간 눈과 그것과 대조적으로 처진 눈썹이 수많은 기억을 불러냈다. 치카쨩 집의 개에 겁먹은 표정이 떠올랐다. '요소로'라며 당혹스레 나의 흉내를 낸 포즈가 생각났다. 사람이 다가가기 힘든 진지한 눈빛으로,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속도로 음악실의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졸업한 후로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사람. 동급생 중에서 딱 한 명, 똑같이 도쿄에 사는 사람. 그런데도 문자 한 통조차 주고받지 않은 사람. 가벼운 메시지를 보내는 것조차 망설이게 되는 사람. 치카쨩에게 품고 있던 마음을 '사랑이 아니야'라고 알려준 사람. 인간은 애가 탈 만큼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준 사람.


그건 다시 말해, 와타나베 요우의 '첫사랑'인 사람.


'사쿠라우치 리코'


전화번호를 탭 하자 '발신'이라고 표시돼서, 황급히 취소했다.


………


토요일. 번화가의 와타미*에서 서클의 신환회에 참가했다. 대학에 들어온 후 5번째 정도의 모임이었지만, 규모는 지금까지 갔던 것 중에 가장 컸다. 넓은 객실을 전세낸 것 같았다. 아무튼 약속 시각이 된 시점에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전교 집회보다 확실히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 일본의 외식 체인


총원 100명 정도인 이벤트 서클이라고 설명하며, 모두 함께 꽃구경을 하거나, 해변에서 바비큐를 하거나, 소규모 그룹으로 여행을 가거나,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은 풋살을 하거나, 수다 떨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자 모임을 하거나 하며 자유롭게 노는 듯했다. '대학'이라고 하는 거대한 무리 속에, 좀 더 작은 무리를 만들어 거기서 단짝을 찾으라는 컨셉인 걸까나.


그렇다고는 해도 대학생이란 자신의 거처를 몇 군데인가 갖지 않으면 외톨이인 채 4년이 지나버릴 것이다. 일부러 시즈오카의 국공립을 거절하고, 집세도 학비도 비싼 도쿄의 사립대에 와서 그런 어둡고 쓸쓸한 건 절대 싫다고 생각해서 일단 얼굴을 비춰봤다.


그렇지만, 시작하고 10분 만에 그만두는 편이 좋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정치학과의 타케다입니다. 고기를 좋아합니다'. '법학부의 키무라입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싶어서 면허 따러 다니고 있습니다'. 'M대에서 온 오오우치입니다. 바바군과 같은 고등학교였습니다'. '吉田*라고 씁니다만 키치타라고 읽습니다'. '경영학과의 아이자와라 합니다. 취미는 영화 감상과 맛있는 디저트를 찾으러 다니는 것입니다'. '문학부의 요나미네입니다. 오키나와 출신의 어부입니다. 아와모리**를 좋아해요!'. 수십 명의 동아리 사람들이 차례차례 자기소개를 한다. 정보가 난무해서 쫓아가는 것조차 힘들다.


* 일반적으로 요시다라 읽음

** 오키나와 산 술


테이블 단위로 모여서 누군가가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근처의 사람들과 건배를 하고 맥주를 마시고 있다. 잔이 비면 선배들이 병에서 맥주를 따라준다. 스마트폰에 수첩을 준비해서 특징 같은 것을 메모하려고 생각했지만, 전혀 쫓아갈 수가 없기에 정보의 대량 방수에 숨이 탁 막혀 포기한다.


"경제학과의 와타나베입니다. 고등학교 때는――"


스쿨 아이돌을 했습니다. 라고 말하려다가, 과도한 주목을 받기 싫어서. '수영부였습니다'라고 말한 뒤 앉는다. 티셔츠에 파카. 고등학교 3학년 때 드디어 산 유니클로의 청바지. 여하튼 저지나 스웨터를 입고 있는 일이 많았으니까, 사실은 청바지 1벌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건배하고 맥주를 마신다. 이어서 50명이 넘는 선배들의 자기소개가 이어진다.


그리고 들으면서 느낀 것은 자신이 그다지 타인에게 흥미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Aqours'로 활동하고 있었을 때는 모두와 친하게 지내자고는 생각했지만, 모두에게 관심이 있었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애매했다. 결국 이야기하자면, 치카쨩과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도중부터 '리코쨩과 3명이서'가 되어, 마지막 즈음에는 또 다른 마음이 되어 있었다.


'법학부 3학년의 오오무라입니다. 성대모사 합니다!'. '문학부 3학년의 오카다야. 히토미라고 불러줘'. '시라이 입니다'. '누마타라고 합니다'. '콘도우'. '이시게'. '타마이'. 점점 선배의 이름과 얼굴을 외우는 것이 귀찮아져서, 그래도 스마트폰 같은 것을 만지작거리는 것은 실례라 생각했기에 요리를 안주로 삼아 맥주를 마시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정보 차단 피난처'에 틀어박힌 듯이 조금씩 눈꺼풀의 안쪽이 막 같은 것으로 덮여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테이블을 옮기는 일 없이 1차가 끝나고 흐르는 듯이 2차로 이동했다. '가자'라고 들어도 거절하지 않았다. 거절하고 돌아가 봤자, 5평의 원룸에 돌아가서 TV 소리를 켜놓고 멍하니 시간을 죽일 뿐이니까. 그대로 잠들어서 일요일이 되고, 세탁하고 청소하고, 다시 월요일이 될 뿐이니까.


누군가와 있는 편이 낫지 않을까 라고, 주말을 충실하게 보낸 기분이 들지 않을까 라고 그냥 생각해서, 20명 정도의 그룹으로 체인 술집에 갔다. 몇 군데의 테이블 석에 나눠 앉아서 다시 1시간 반 정도 술을 마셨다. 하이볼이나 컵에 담긴 일본주, 칵테일도 마셨다. 나에게 권유했던 '사이토 씨'는 다른 집단과 다른 가게에 2차를 간 듯이 보이지 않아서, 그렇다고 라인으로 따로 행동하기로 했다는 것을 전해준 것도 아니어서. 결국, 요약하면, 어딘가로 가버렸다.


혼자서 참가하는 게 싫었던 거라고 생각하면 자신도 결국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교 1학년의 최초는 모두 비슷한 심경으로, 아무튼 '있을 곳을 찾자 동맹' 같은 것을 즉흥으로 만드는 것이 시작인 걸까. 그럼, 여기가 있을 곳이야? 라고 물어보면, 역시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같이 있는 멤버들의 이름을 겨우 기억한 정도다.


"3차 가자, 3차! 전화해서 자리 비어 있으면 근처 카페 바에 가지 않을래? 또 다른 새로운 가게인데! 엄청 이쁜 바텐더랑 귀여운 마스터가 하는 가게야!"


100명 정도 있던 군단은 3차가 되어선 6명이 되어 있었다. 선배는 남자만 3명. 1학년이 나를 포함한 3명으로, 여자는 나 말고도 한 명이 더 있었다. 그 아이는 '카가미' 씨로 고향이 도쿄인 통통한 아이였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나에게 그다지 흥미가 없어 보여서 라인도 아직 교환하지 않았다. 그렇다기보다, 2차에서 본 느낌으로 카가미 씨는 마시거나 먹거나 할 뿐이고 아무에게도 흥미를 느낀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누군가가 쏘는 거니까 잔뜩 먹고 마시자는 속셈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의 행동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시즈오카의 해변 마을에서 혼자 올라온 나는, 처음으로 고향의 친구들과 떨어진 자신은, 어쩌면 도쿄에 많은 수의 친구가 있을 그녀와는 전혀 다르다. 누군가 잘 맞는 사람을 빨리 찾아야 한단 생각을 하며, 아마 인간관계에 대해 인생에서 가장 조급해하고 있다.


"여기야, 여기"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센다' 선배가 가리킨 것은 맨션의 1층을 터서 만든 카페였다. 저녁에는 카페지만, 밤 10시를 넘기면 불을 끄고 바처럼 된다는 듯하다. 아직 9시였다. 야무진 나무문이 달려 있어서 거기에서 가게의 안은 보이지 않는다. 체인 카페밖에 가 본 적이 없으니까 어떤 장소일지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다.


'Little Cage'


나무로 된 문에는 새 모양의 간판이 걸려 있고 가게의 이름이 필기체로 쓰여 있다. '4월에 오픈했는데 3번이나 왔어'라며 선배가 문을 연다. 딸랑딸랑하는 종소리가 난다. 긴장하기에는 너무 멍하고, 두근두근하기에는 텐션이 낮다. 나는 분명 좀 더 요령 있게 '기대된다'라고 할 수 있을 텐데도, 5시 반부터 이어진 정보 교환회에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


안에 들어가자 '어서 오세요'라는 여자의 젊은 목소리가 들렸다.


밝은 오렌지빛이 전신을 감싼다. 오른쪽에는 카운터석이, 왼쪽에는 테이블과 소파석이 늘어서 있다. 상은 나무판을 늘어놓은 듯한 디자인으로, 칸막이 주변에 많은 수의 화분이 놓여 있다. 안쪽을 보고 있자 또각또각하는 소리와 함께 여성 바텐더가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어서 오세요"


키는 크지 않지만, 눈이 휘둥그레지는 비율. 까만 조끼에 하늘색의 셔츠, 빨간 나비넥타이, 그리고 까만 양복바지. 안성맞춤인 의상 전부가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어울려서, 조금은 의상을 만들던 나의 시선을 고정했다. 어쩌면 주문 제작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어울렸다.


옷맵시뿐만이 아니다.


금발의 포니테일과 비쳐 보일 듯 하얀 뺨과 푸른 눈동자.


외국인인 건가 하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센다 님. 6명이네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고 정중한 일본어 인사를 받았다. 그러고선 뒤를 돌아 금색의 포니테일을 좌우로 흔들며 막힘없이 안쪽 소파까지 안내해준다. 이 사람만을 보고 있자면 문턱이 높은 가게라고 생각되지만, 분위기는 굉장히 집에 있는 듯한 느낌이라 손님들은 모두 편안하게 술을 마시고 있는 듯했다.


곧이어 다른 여자아이――학생처럼 보이는 아이가 귀여운 연두색 셔츠와 하얀 앞치마를 입은 채로 주문을 받으러 왔다. 칵테일 같은 건 전혀 모른다며 맡기자, ㄷ 모양의 소파석 옆에 앉은 '우타가와' 선배가 살펴보며 주문해줬다. 이 선배는 고향이 나와 같은 시즈오카로 감색 자켓을 입고 키가 크고, 1차 때부터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었고 '우라노호시 여학원'이라는 모교 이름을 알고 있었다.


"바텐더 엄청 예쁘지!? 러시아인 쿼터래! 그리고, 지금 저쪽 테이블에서 파스타를 나르고 있는 게 마스터야! 우리보다 연상이긴 해도 말야, 엄청 귀엽지 않아!?"


센다 선배는 남자애들과 왁자지껄했다. 화제의 방향을 바라보자, 조금 전 금발의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대범한 느낌의 언니가 옆 테이블에 파스타를 서빙하고 있었다. '까르보나라입니다~'라는 목소리는 어리다기보다 달콤했지만, 귀에 거슬리지 않고 부드럽게 들려왔다. 바텐더도 마스터도 치카쨩의 큰언니와 비슷한 나이로 보여, 왠지 신기한 가게라고 생각했다.


그런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눈앞에는 역삼각형으로 길고 가느다란 목을 가진, 드라마 같은 곳에 나올 듯한 유리잔이 놓여 있었다. 입을 대니, 2차에서 마셨던 무제한 칵테일과는 완전히 다르게 입에 머금자마자 확 하고 열이 난 듯했다. 목으로 넘겨도 강한 여운이 남아서 어쩐지 어른의 술 같은 맛이 났다.


카운터 안쪽을 보면, 푸른 눈동자의 바텐더는 눈앞의 손님에게 쿨한 웃음을 지으면서 술을 만들고 있다. 잘각거리는 도구를 흔들거나, 쿨한 얼굴로 유리잔의 칵테일을 섞거나 하며.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그림이라 센다 선배가 과장하는 기분을 알 것만 같다.


"와타나베 씨, 술 좋아해?"

"엣? 이제 막 마시기 시작해서 잘 모르겠어요"


밀려드는 정보로부터 피난하기 위해 묵묵히 마시고 있어요, 라고는 말하지 못하고, 우타가와 선배의 질문에 적당히 대답했다. 술은 그럭저럭 마실만 하긴 했지만, 아직 맛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역삼각형의 유리잔이 비어서, 우타가와 선배는 같은 것을 웨이트리스에게 주문했다.


그리고, 2잔째의 그것을 반 정도 마시곤 화장실에 섰을 때, 똑바로 걸으려고 의식하지 않으면 똑바로 걸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변기에 걸터앉은 채로 멍하니 있어 버렸다. 그러니까, 선배들에겐 죄송하지만 먼저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취한 것 같아서 슬슬 돌아가 보겠습니다'라고 설명하자, 우타가와 선배가 '근처까지 바래다줄게'라고 말했다.


"10분 정도면 도착하니까 괜찮습니다"

"취했다고 자각하고 있는 애를 혼자 보낼 수는 없잖아"


강하게 말하기에 바래다 주는 것으로 했다. 지갑을 꺼내자 '오늘은 전부 사주는거라구'라며 선배들이 웃었다. 카가미 씨는 배가 고픈 것인지, 묵묵히 봉골레를 먹고 있었다. 그 봉골레의 바지락이 무척이나 커서, 조금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1차 도중부터 머릿속에 펼쳐지고 있던 얇은 막이 꽤나 두껍게 되어 의식을 나른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런저런 것들이 연극처럼 멀리 보였다. 숄더 백을 갖고 일어나려고 한 순간, 또각또각하고 마루를 밟는 소리가 나고 쿼터인 바텐더가 물수건을 두 개 들고 왔다.


"이제 곧 바 타임에 들어갑니다. 돌아가신다면 '따뜻한' 물수건을 부디"


무표정이었다. 무표정인 채, 나와 우타가와 선배의 앞에 펼친 물수건을 내밀었다. 손에 집은 순간, 오싹해져서 무의식적으로 언니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말았다. 선배는 김이 나는 물수건으로 손을 닦고 있었다. 그런데, 내 물수건만은, '따뜻한'이라고 말했음에도, 냉동고에 넣어둔 듯이 딱딱하고 엄청나게 차가웠다.


"만약 근처에 계신다면 다시 오세요"


그리고, 미소 없는 표정으로 건네준 숍 카드에는 가게의 이름이나 전화번호, 약도 등의 여백에 빨간 볼펜으로 '순수한건 바보나 마찬가지'라고 예쁘지만 조잡한 문자로 써있었고, 푸른 눈을 보자 봄인데도 얼어 붙을 듯한 차가움을 느껴 등에서부터 벌벌 떨었다.


"죄송합니다. 저기, 역시 혼자서 돌아가겠습니다. 정말 괜찮으니까!"


동요를 감추지 못한 채 백을 어깨에 걸쳤다. 안경을 벗고 차가운 물수건으로 얼굴을 쓱쓱 닦아 술을 깨곤, '안녕히 주무세요!'란 말을 남기면서 카페의 문을 열어 젖히고 밤거리로 뛰쳐 나갔다. 10분 정도 걸릴 밤길을 조깅화로 3분 정도만에 달렸다. 기합으로 집중력이 돌아온 탓인지 똑바로 달리지 못하지는 않았다.


3층의 방에 도착했을 때 힘이 다해서, 닫힌 문에 기대 웅크렸다.


'혹시 노려진거야?'라고 자신에게 물어봐도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바래다 줄게'라고 말해 준 선배를 의심한다든가 하는건 싫었다. 하지만, 바래다 졌다고 하면, 만약 문 너머에서 '방에 들어가고 싶어'라고 억지로 요구하면, 제대로 거절할 수 있으리라 자신할 수는 없었다.


아니, 억지로 요구할 필요도 없다. '와타나베 씨랑 방에서 좀 더 이야기하고 싶어'라고 상냥하게 요구한다면, 솔직히 말해서 쓸쓸하기도 하고 방에 들였을것이다. 그리고, 그건 분명 후회만을 남기고, 분명 여러가지를 경험한 언니가 보기에 '바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거, 모르는거잖아!?


비틀비틀 원 룸의 실내를 걸었다. 샤워할 생각도 들지 않아서 안경을 테이블에 대충 벗어 던지고 침대에 쓰러졌다. 실수를 했다면 지금쯤 이름과 출신지 정도밖에 모르는 사람과 이 침대에서 야한 짓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인 것일지도 모르지만, 사람을 '당연한 듯이 의심하는' 것을 배워버린 충격 쪽이 더 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처음으로 숙취를 겪은 나는, 아무한테도 라인이 오지 않는 것을 보고 어제의 신환회는 대체 무엇이었을까?라고 허탈해져서, 갑자기 늘어난 스마트폰의 수첩을 어플리케이션채로 삭제했다.


………


일요일.


도쿄에서 인간관계가 '제로'로 돌아가서, 예정도 없기에 세탁과 청소를 하고 부족한 것을 샀다. 점심을 먹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뉴스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했다. 너무 스마트폰만 보고 있으면 눈이 더 나빠질 것 같아서, 도중부터는 북오프에서 산 만화를 테이블 위에 쌓아두곤 그것을 뒹굴거리며 읽는 것으로 저녁을 보냈다.


이렇게 생각만 해도, '외톨이 학생'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자신이 싫어졌다. 스쿨 아이돌을 마치고, 치카쨩과도 뿔뿔히 흩어져서, 도쿄에 아는 사람이라곤 한 명밖에 없고.


'요우쨩은, 치카쨩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침대에서 눈을 감고 있자니, 문득 리코쨩에게 들었던 대사가 떠올랐다. 본가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시즈오카의 대학을 선택하려고 했던 때. 농대에 떨어져서 진학을 포기한 치카쨩에게 끈질기게 '도쿄로 가자'고 권유했던 때. 리코쨩은 나를 치켜 올라간 눈으로 어이없단 듯이 쳐다봤다.


그것땜에 분발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도쿄로 왔는데도 일요일을 혼자서 보내고 있다. 스마트폰을 쥐고 '사쿠라우치 리코'와 주고 받은 메시지를 열어 '놀래?'라고 보내려 했지만, 개인적인 문자의 마지막 날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기에 손이 멈춰 버렸다. 치카쨩이나 '모두'를 방파제로 해서, 리코쨩과의 거리를 한 걸음도 좁히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주제에 '좋아'라는 마음만 부풀어 오르는게, 그게 진짜로 '좋아'하는 것인지 쓸쓸하니까 신경써줬으면 좋을 뿐인 것인지조차 모르게 돼서, 스스로 묻는 것도 싫을 정도로 꼴사나웠다.


"저녁 준비라도 할까"


말로 하자 공연히 공허해졌다. 근처 슈퍼에 가려고 지갑을 열었을 때, 어제의 카페에서 받은 카드가 언뜻 보였다. 꿈이 아니라 '순수한건 바보나 마찬가지'라고 써있다. 도움 받았기에 예를 표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 생각해서, 가까우니까 걸어가기로 했다.


'Little Cage'


파카를 겉에 입고 조깅화를 신은 나는, 티셔츠 이외에는 어제와 다름 없는 모습으로 가게 옆에 있었다. 옆으로 돌아 세로로 긴 창문으로 엿보니 어제의 언니들이 소파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보였다. 입구 앞에 서자, 새 간판이 붙은 문에는 영업 시간이 적혀져 있고 '수요일은 정기 휴일'이라는 정보가 나열되어 있었다. 지금은 개점 전이니까, 딱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무로 된 문을 천천히 당겼다. 스윽 하고 소리도 나지 않은 채 열리고, 그러고선 딸랑딸랑 하고 종소리가 울렸다. '죄송합니다!' 하고 소리를 지르자, 둘이서 발을 맞춰 이쪽으로 걸어 왔다. 가게 내부를 빙글 하고 바라보니, 어젯밤에는 눈치채지 못했던 인테리어가 잔뜩 있다. 역시 술에 취해 있었고, 나는 '도움'받았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5시부터에요~"


'마스터'라고 불리는 상냥해보이는 언니가 달콤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거절했다. 바텐더 언니는 딱 맞는 작업복을 입은채 내 얼굴을 보곤, '아아, 어제의'라고 아무렇게나 중얼거렸다. 주눅들 것 같은 자신을 격려하면서, '도와주신 것에 대한 답례를 하고 싶어서'라며 말을 이었다.


"엄청 취했었으니까. 감사합니다"

"괜찮아, 그런거"


바텐더는 담배를 피며 말을 이었다.


"귀중한 로스트 버진의 찬스를 빼앗았을 가능성도 있었고"

"정말, 에리쨩은 금세 그런 식으로 말을 한다니까"


마스터가 나의 눈을 보고 '미안해'라며 머리를 숙였다. 회색 빛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바텐더는 '에리' 씨구나. '제로'로 리셋한 정보의 수가 빠르게도 '하나'가 되었다.


사과하러 왔을 뿐인 나는, 어이 없이 할일이 없어져서, 개점 전의 휴식 시간을 방해한 것이 죄송스러워졌다. '저, 그것 뿐이에요'라고 말하고 돌아가려 하자, 마스터가 나를 불렀다.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애플 파이를 구웠어. 하나 먹지 않을래?"

"엣? 일요일? 이니까? 에요?"

"코토리가 케이크나 과자를 만들어서 메뉴에 추가해. 일요일에만"


에리 씨가 보충해서 마스터의 이름이 '코토리' 씨라는 것을 알았다.


블론드 헤어에 무척이나 미인인 에리 씨와, 폭신폭신 상냥한 분위기의 코토리 씨를 이제서야 떠올렸다. '아야세 에리'와 '미나미 코토리'를 알고 있었다. 목표로 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인터넷에서 라이브 동영상을 본 적도 있고, 금세 본인이란 것을 확신했다. 그렇지만, 그녀들에게는 꽤나 옛날 이야기다. 간섭받고 싶지 않은 귀중한 기억일 테니까, 생각치 못한 접점이긴 해도 건들지 않기로 했다.


"먹어보고 싶어요. 어... 저는 와타나베 요우라고 합니다. P대의 경제학과 1학년입니다"

"엣? 자기소개? 혹시 면접보러 온 거니? 그런거라면 마침 잘 됐다"


에리 씨가 쿡쿡하고 웃었다. 어제의 차가운 표정과는 다르게 아이처럼 웃었다. 코토리 씨가 애플 파이를 잘라서 하얀 접시에 올려 갖고 왔다. '앉으렴'이라고 앞의 테이블석에 안내 받았다. 밝은 다이닝 느낌의 공간에 놓여 있던 것은 몸에 달라붙듯이 편안한 나무 의자라 깜짝 놀라 등받이를 돌아 보았다.


"면접 보러 왔구나~? 하나요쨩을 주 6일 일하게 하는 것도 미안하지~"

"시급 700엔이랑 밥 무제한은 위법인거 같고 말이지"

"열심히 하면 시급 1000엔 정도는 줄 수 있어~"

"아 저기, 그, 면접으로 온게"

"생각한것보다 바빠서 말야. 건강한 스태프를 1명 모집하고 있는데"


힐끔거리며 진정하지 못하고 있자, 좌석 건너편에서 둘이서 웃는다. 애플 파이는 생지가 사박사박하고 사과의 향이 얼굴 가득히 퍼질 정도로 맛있었고, 무엇보다 돈을 내는 외식 이외에 다른 누군가가 만든 것을 먹는것은 4월이 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일부러 예를 표하러 올 정도로 성실하고 정직하지, 목소리도 밝고 시원시원하지, 얼굴도 귀여우니까 와타나베 씨가 여기서 일한다면 환영이야~"


코토리 씨가 손가락을 모으고 빙긋 웃었다. 카페는 사람이 부족했고, 나는 슬슬 아르바이트를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하숙하고 있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이런 가게가 오픈해 있었고, 고2 때부터 이름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일하고 있고, 우연히 신환회의 3차에서 방문했고, 오늘 이렇게 다시 찾아왔고.


'기적이야!'라고, 치카쨩이라면 말했을것이다. 기적이란 것은 분명, 긍정적인 기분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단순한 우연으로 끝나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저 같은 사람도 괜찮다면 아르바이트 하게 해주세요"


진지한 얼굴로 대답하자, 코토리 씨는 모았던 손을 뺨에 대곤 기뻐하고, 에리 씨는 '바보네'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눈 앞의 호의를 의심하는 것은 역시 무리라 결국 기세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으로 결정해 버렸다. '바보인가요?'라고 묻자, '싫다고 하진 않았어'라며 에리 씨는 푸른 눈으로 눈웃음을 지었다.



다음 글 / CROSS ROAD 제2장: https://gall.dcinside.com/mini/llss/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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