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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미소
'그래. 어차피 한가하고'
리코쨩의 답장은 겨우 9글자 정도였다. 라인 답장을 할 때의 기분은 분명히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어쩌면, 마키 씨에게 권유받으려고 애쓰다 실패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가하고. 그런 표현은, '더 마음에 드는 권유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그쪽을 선택했을거야"라고 밖에 읽을 수 없다. 그래도 괜찮다. 19일에 19살이 되는 리코쨩과 지낼 수 있는 것은 나 뿐이니까.
"다행이네~. 원하는 자리를 선택해도 돼. 하지만, 6인용 소파는 곤란할거 같아"
"둘인데 그런데 고르진 않는다니까요"
전날, 손님의 자격으로 'Little Cage'를 예약했다. 주방 옆의 2인용 테이블을 선택했다. 여기라면 주방에서도 카운터에서도 보이지 않고, 내 서투른 접근법을 관찰 당하지 않고 마칠 것 같으니까. 그렇게까지 싫다면 다른 가게에 가는게 좋을텐데. 코토리 씨가 '여기로 와'라고 하면 거절할 수 없다. 그리고 만약, 내 과감한 돌격이 아름답게 부서졌을 때, 이 가게에 있으면 금방 위로를 받을 수 있을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당일.
아침부터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을 억누르며 나는 수영을 가거나 하며 저녁까지 시간을 보냈다. '찌부러뜨렸다'고 해도 좋다. 한시라도 빨리 이 이벤트를 맞이하고 싶었다. 물론 리코쨩을 만나고 싶기도 했지만, 하이 다이빙 대회보다 훨씬 긴장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뭐랄까. 하이 다이빙 경기의 좋은 점이란 상대가 '자신'뿐이라는 것이라 생각한다. 압박감으로 폼마저 무너뜨리지만 않는다면 안정적인 성적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타인을 항상 신경쓰는 내 성질에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연애'는 나와 맞지 않는다. 상대가 있다는 것도 그렇다. 상대가 하나뿐인 것도 그렇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좋아하게 된 쪽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있다는 것.
모처럼만의 시간을 '불리'하단 식으로 생각하면 안되지만 말야. 예를 들어, 옷을 하나 고르는 일 조차도 리코쨩이 촌스럽다고 생각하면 끝장이야, 라든가, 어찌 해도 마음이 나약해지잖아? 더구나 리코쨩에게 있어서의 비교 대상은 종합 병원의 영애로, 멋쟁이고, 전 가정교사고, 의학부생이고, 피아니스트인 그 마키 씨밖에 없으니까.
'상대가 아가씨니까 자신 있는 보이시한 노선으로 가면 돼. 하지만, 의미를 알 수 없는 캡은 절대로 쓰지 마. 그 캡은 둘 다 본가에 돌려보내는게 좋다 생각해. 본심을 말하자면, 바로 다음에 있는 타는 쓰레기 버리는 날에 버리는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
전날 밤, 에리 씨와 문자로 작전 회의를 했다. 자켓을 입기에는 조금 더워서 베이지색 반팔 워크셔츠와 청바지를 입었다. 크로스 바이크를 타고 통학할 때 쓰기 위해 맨해튼 메신저백을 샀기 때문에, 그걸 매치하기로 하고 선물을 신중하게 넣었다. 코디가 끝나고 사진을 찍어 문자로 보냈더니 에리 씨가 '다음번에 진지하게 데이트할까?' 라고 칭찬해줬다.
오후 6시를 넘은 때.
해가 졌지만 아직 밝은 신기한 시간.
"좀 헤맸어"
빠른 걸음으로 나타난 리코쨩은 네이비 컷소에 헐렁한 와이드 팬츠 차림이었다. 마치 대학에 가지고 갈 듯한 사각형 토트백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리코쨩이 스커트나 원피스 차림이 아닌 모습을 보는 것은 이쪽에 오고 나서 처음이었고, 적어도 기합을 넣은 복장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뭐, 고등학교 시절의 '그냥 친구'를 상대로 잘난체할 필요는 없긴 하겠지만.
"아르바이트 하는 곳이긴 한데, 괜찮으려나?"
"왜 그런걸 묻는거야?"
리코쨩이 와인색의 머리카락과 함께 고개를 갸웃했다. 전에 마키 씨와 왔을 때, '선생님의 동창회인가요?'라고 비아냥대는 듯이 들렸으니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걸까 하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건 말할 수 없어서 '그냥 왠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내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긴장하고 있다.
딸랑딸랑 하고 귀에 익은 종소리가 울린다.
어서오세요. 모두의 목소리가 들린다. 평일 치고는 붐비고 있고, 어떤 박스석도 가득 차있다. 하얀 앞치마 차림의 하나요 씨가 예약석으로 안내해 준다. 잘 생각해보면, 이 가게에서 누군가와 함께 마시는 것은 일하기 시작하고 난 뒤로 처음이었다. 학과의 친구가 와준 적은 있지만, 그 때는 아르바이트 중이었고.
"사람이 많네"
"이 시간부터 붐빈다니 별일이야"
하나요 씨가 주문을 받으러 와서 나는 하이볼을, 리코쨩은 글라스 와인을 주문했다. 요리는 내가 고르기로 했다. 코토리 씨의 특기인 아히죠와 오마카세 샐러드, 피쉬 앤 칩스. 곧바로 음료가 와서 '건배'라고 외치며 생각한 것은, 리코쨩과 둘이서 밥을 먹은 적이 있던가?라는 자신에게의 질문이었다.
"좋은 의자네. 이거. 뭔가 몸에 딱 맞아"
"응. 나도 좋아해. 이 2인용 테이블과 입구에 가까운 4인용 테이블은 북유럽의 다이닝 세트로, 이건 에리 씨의 취향. 한 가운데의 모던한 소파는 이탈리아 메이커고, 오너의 취향. 그쪽 코너의 묵직한 소파는 아메리카 홈 드라마를 이미지하고 있어. 근데 카운터는 아이리쉬 펍을 모티브로 해서 앉는 장소에 따라 다른 기분을 맛볼 수 있게 했대"
단숨에 설명하자 리코쨩은 와인잔을 손에 들곤 멍하니 있다. 취하지도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아 초조해진다. 그러고 있자니, 이번에는 쿡쿡 하고 웃기 시작해 변덕스러운 표정 변화에 당황한다. 생각해 보면, 고향의 동료를 제외하고 누군가와 단 둘이서 식사를 하는 일 자체가 희귀했다. 치카쨩이나 카난쨩 상대라면 신경쓰지 않을만한 일마저 신경쓰여 버린다.
"요우쨩이 뭔가를 열렬히 얘기하는게 신선해"
"그래?"
"고등학교 시절에는, 뭘 해도 '나는 진심이 아니야'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가?"
그런 식으로 생각되고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럴지도'라고 목소리를 낮추자, 리코쨩은 이번 기회에 얘기해 두자, 같은 느낌으로 계속해 왔다.
"솔직히, 꽤 거북했어"
"엣?"
얼굴을 들었다. 리코쨩은 진지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코쨩에게 '거북'하다고 들어서, 아마 인생에서 최악의 일 3위 안에 들 정도로 의기소침 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칠 정도는 아니지만, 선물을 건넬 용기는 많이 줄어 버렸다. 그야, 그런가. 피아노를 진지하게 연주하고 있던 리코쨩이 본다면, 모든 일에서 균형을 잡고 있을 뿐인 나 같은건 어중간한 놈의 전형 같은 것일테니까.
"그래서,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좋겠다'라고 생각했어"
완전히 뒤집혀서 힘이 빠질 정도로 안심했다. 내가 생각해도 리코쨩의 말에 일희일비 하고 있다. 벽 건너편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코토리 씨나 카운터에서 맥주잔에 맥주를 따르고 있는 에리 씨나 노조미 씨나 마키 씨도 그렇지만, 모두 어떤걸까. 이미, 그런 어린 시간은 지나버린 걸까.
요리가 온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라며 코토리 씨가 직접 운반해 온다. 피크 타임이라 바쁜 듯 했지만, 평소처럼 부드러운 미소로 '철판이 뜨거우니까 조심해"라고 주의를 준다. 리코쨩이 아히죠의 새우를 포크로 찔러 벚꽃색 입술로 후후 하고 식혔다.
"맛있다. 전에 왔을 때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까"
"마키 씨랑 왔을 때?"
응. 리코쨩이 끄덕인다. 그 일에 대해서는 알고 싶은 것이 산처럼 있었지만, 미숙한 나는 무엇을 어디까지 물어야 좋을지 몰랐고, 그래도 가장 먼저 알고 싶었던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리코쨩이 조금이라도 경계심이나 불쾌감을 표출하면 바로 그만두려고 생각하면서.
"물어봐도 돼? 마키 씨한테 가정교사 수업을 받고 있었으면서 'μ's'에 대한 걸 몰랐어?"
"몰랐어. 선생님은 스쿨 아이돌을 했단 걸 숨겼으니까. 고등학교 때는 '평범'하게 공부하고 있었다고 태연히 거짓말을 했으니까. 그러니까, 치카쨩이 동영상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진짜로 몰랐어"
리코쨩은 아쉬운 듯이 와인을 마셨다. 동경하는 사람이 무언갈 비밀로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일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어쩌면 그 무렵의 마키 씨는 성실한 피아니스트였던 리코쨩에게 피아노로 '아이돌 노래'를 만들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동영상을 본 시점에 눈치 챈거지?"
"눈치 챘다구? 그래서, 뭐? '이 사람에게 가정교사 수업을 받았었어'라고 말하면 됐던거야? 그 'μ's'의 니시키노 마키에게 가정교사 수업을 받았던 사쿠라우치 리코라는 칭호를 원했으면 됐던거야?"
리코쨩의 눈에 확실히 짜증이란 감정이 떠올랐고, 그래서 '미안'이라고 사과했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무엇을 이야기하면 기뻐해 줄지 모르겠어서 괴로웠다. 그 정도로 나는 리코쨩을 알지 못했다. 어떤 기분으로 우치우라에 있었던건지, 마주하고 알려 하지 않았다. 리코쨩이 가끔 입에 담았던 '이 마을이 좋아'라는 말을 그냥 받아들이고, 거기에 안주하고 있었다.
확실히, 나와 리코쨩은 2년이나 같이 있었지만, 같은 그룹에서 노래하고 춤췄지만, '요우・리코'라는 관계만 보았을 땐 이제서야 겨우 스타트 지점에 섰다고 통감해 버렸다.
"미안해. 요우쨩에게 화풀이해 버렸어"
"괜찮아. 그래도, 마키 씨를 엄청 동경하고 있나보네"
정말 좋아하니까 괜찮아. 그래 그래. 뭔가 이곳 저곳 아프지만 기분 탓일거라 생각해. 상처받은 김에 나도 와인을 시켜서 리코쨩의 핵심에 다가가보기로 했다. 화이트 하우스 와인을 두 잔. 마침 잔이 빈 리코쨩과 함께 주문하자, 평소에는 이미 따라진 상태로 가져오는데 에리 씨가 직접 새로운 잔 두 개와 병을 들고 와서 따라 준다.
"저희 가게의 백포도주는 이탈리아 소아베 지역에서 나옵니다. 순한 신맛과 신선한 과일맛의 밸런스가 잡힌 질리지 않는 맛으로, 마리네나 사시미 같은 생선 요리에 잘 어울립니다"
에리 씨의 시선이 나와 리코쨩의 짐으로 쏠린 느낌이 든다. '아직도 선물을 주지 않은거야?'라고 말하고 싶은 얼굴을 한 느낌이 든다. 그런 얼굴을 하면, 기합을 넣어서 세워 뒀던 플래그가 벌써 쓰러져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처음에 건넸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후회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었다.
에리 씨가 떠나고 나서 리코쨩이 방금 전의 질문에 대답한다.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아마 연애가 서투른 사람이 하는 짓이겠지 하고 속으로 쓴웃음을 짓는다. 그도 그럴게, 모처럼 둘이서 있는데 리코쨩의 짝사랑 상대를 일부러 대화의 도마에 올려놓는다니 상식 밖인것도 정도가 있잖아.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은 도내 콩쿨에서는 무적이었어. 선생님의 피아노를 처음 들었을 때, 선생님은 중학교 1학년이었고, 그런데도 중학생의 콩쿨에서 우승했어. 내가 타인이 연주하는 피아노에 감동해 눈물을 흘린 건 선생님이 처음이었어. 그러니까, 그 때부터 선생님이 나오는 콩쿨은 반드시 들으러 갔어"
리코쨩은 표정을 무표정으로 꾸미고 있었다. 우윳빛 얼굴의 안쪽에서 감정이 끓어오르는 것이 전해져 왔다. 가정교사 수업을 받기 전부터 마키 씨를 동경해 왔다니, 10년이나 계속 동경해 왔다니, 그런 건 알지 못해서, 다시 '용기'의 파라미터가 뚝 하고 떨어진 느낌이 났다.
용기를 쥐어짜서 무언가를 하는 것을 '기요미즈의 무대에서 뛰어내릴 생각으로'라고 하지만, 중학교의 수학여행에서 가이드에게 들은 이야기대로라면 분명 기요미즈의 무대 높이는 12m 정도였다. 10m 높이의 하이 다이빙을 매일같이 반복하던 나로서는 기요미즈의 무대라면 용기가 부족하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선생님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갑자기 콩쿨에 나가지 않았어"
이야기의 시간축이 현재에 가까워졌다. 리코쨩의 목소리가 단번에 가라앉은 것 같았다. 그러니까 필사적으로 상상했다. 이대로 이야기를 계속해 '지금'을 따라잡는 것이, 리코쨩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일지를 생각했다.
"아이돌을 해서 그런게 아냐. 피아니스트가 되는 걸 허락하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완전히 길이 끊어졌으니까. 하지만, 선생님은 'μ's'의 악곡을 만드는 것으로 자신의 피아노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음악을 그만두진 않았어. 오토노키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부모님과 같은 K대 의학부에 들어갔어. 그리고 대학 1학년 때, 고등학교 입시를 돕는 가정교사로 내 눈 앞에 나타나게 되었어"
그랬구나. 이야기를 끊듯이 힘있게 납득했다. 이 이상은 리코쨩에게 이야기하도록 하면 안된다고 확신했다. 마키 씨의 인생 절반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리코쨩의 짝사랑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역시 오늘, 리코쨩은 마키 씨를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꾀어내고, 그런데도, 거절당해 상처입어 버린 것이다.
리코쨩의 잔이 벌써 비었다. 이대로라면 리코쨩에게 있어 인생 최악의 생일로 만들어 버리고, 나는 그걸 프로듀스한 최악의 연출가가 되어 버린다. 안된다. 시간은 있지만 없다. 취기가 돌아 고삐가 풀리면 끝나버린다. 그렇게 되어 버린다면 리코쨩이 어떻게 될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생일 선물을 전할 수 있을만한 경사스러운 분위기는 날아가 버린다.
"저, 저기, 리코쨩!"
너무 갑작스러웠다. '엣?'라며 리코쨩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각지 않은 전개라는 것은 내가 서투른 것 중 하나였다. 예상 외의 해프닝이 적으니까 혼자서 연기하는 하이 다이빙이란 경기를 좋아했다. 같은 높이에서 같은 폼으로 뛰어들면 비슷하게 착수(着水)할 수 있으니까. 갑자기 바람이 불어 오거나, 수면에 파도가 일거나, 옆의 선수에게 영향을 받거나, 그런 불안정한 요소가 거의 없으니까.
그런데도, 스스로 전개를 뒤섞어버렸다. 평범하게 상정하고 있던 '1시간 정도 마시고 서로 기분이 좋아진다면 선물을 건네자' 같은, 형편 좋은 전개로는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기는 커녕 앞으로 10분 정도만 있으면 리코쨩의 감정이 넘쳐서 돌이킬 수 없어질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제, 서투르다고 알고 있어도 스스로 행동을 일으켜 흐름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선물, 사왔는데"
메신저백의 지퍼를 열고 리본을 단 종이 봉투를 꺼냈다. 그 움직임은 매끄러운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못생긴 '풋내기' 캐릭터의 선물 장면 같았다. 와타나베 요우가 '요령 좋다'는 말을 듣는 것은, '냉정'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옳지만 사실은 올바르지 않다. 초조해 하거나 동요하거나 패닉에 빠지거나 하는 전개를, 미리 냉정하게 간파해 약삭빠르게 눌러왔을 뿐이다.
"나한테? 요우쨩이?"
"응응. 취향에 맞을진 모르겠지만"
'어째서?'라고 듣지 않았던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종이 봉투를 양손으로 받쳐 들었다. 아직 멍하니 있는 리코쨩에게 내밀었다. 좀 더 스마트하게 건네야 했을텐데 마음만 조급해지고 숨까지 가빠져 틀림없이 상당히 형편없는 모습이었다. 리코쨩은 어리둥절한 표정인 채로 종이 봉투를 받았다. '열어도 돼?'라고 물어서 '응응'하고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리코쨩은 하나씩 종이 봉투에서 꺼내서 가만히 바라보고는 봉투에 도로 넣었다. '필요 없어'라고 퇴짜 맞는게 아닐까 하고 굉장히 무서워졌다. 스스로도 한심할 정도로 부정적이 되었다. 4개의 아이템을 대강 보곤 리코쨩은 종이 봉투를 다시 봉하더니 물어왔다.
"비싼거 아냐?"
"아냐. 충분히. 아르바이트. 하고 있으니까. 완전. 괜찮아. 게다가. 고등학교 때. 생일이라든가. 의식하지 않았고. 응. 3년분. 이라고 생각해줘"
지금의 대사를 녹음해서 나중에 다시 들려준다면, 나는 부끄러움으로 기절할지도 모른다. 다진 고기처럼 말이 조각난 채 몇 세대나 전의 로봇 같은 목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겁내면서 리코쨩의 반응을 살펴보니 일단 퇴짜 놓을 낌새만은 없는 듯 했다.
"고마워, 요우쨩"
리코쨩이 감사를 표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영혼까지 빠져나갈듯이 안심했다. 짝사랑이라든가 정말 살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사병이라든가, 정말 초등학생 때 예방접종을 해줬으면 좋갰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든다면 써줘"
"응"
리코쨩이, 마침내 웃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의 목적은 이룬 것 같았다. 좋지 않은 비유이지만, 만약 리코쨩이 캬바쿠라* 같은 데서 일하는 여자아이고, 내가 그녀에게 반한 샐러리맨이었다면 월급을 거의 갖다 바칠 것 같았다. 좋아하는 사람이 선물로 웃어준 것만으로도 너무나 기뻤다.
* 유흥업소의 일종
"여기 치워도 괜찮을까요?"
인생에서 베스트 3에 들 정도의 대사업을 끝냈을 때, 하나요 씨가 빈 접시를 치우러 왔다. 긴장하면서 말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식에 손이 갔고 요리는 모두 텅 비어 있었다. 하나요 씨는 접시를 치우면서 리코쨩의 무릎 위에 내 선물이 놓여 있는 것을 확인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때부터 10분 정도 지났을 때.
파스타라도 먹을까 하고 메뉴를 고르고 있었을 때. 아직 10시가 되기엔 한참 남았는데 바 타임이 된 것처럼 전체 조명이 꺼졌다. 갑자기 어둑어둑해지고, 주위가 웅성거리고, 발 밑에 있는 몇 개의 간접 조명이 켜져 분위기 있는 조명이 되었을 때, 마이크를 통해 코토리 씨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오늘은, 생일을 맞은 해피한 손님이 계십니다!'
엣!? 아무것도 듣지 못했어서 두리번거렸다. 어리둥절해있는 사이에 스피커에서 생일 축하 노래가 흘러 나왔다. 그리고 주방쪽에서 매우 신묘한 얼굴을 한 에리 씨가 초를 꽂은 케이크를 천천히 옮겨 온다. 그런 건 둘이서 먹을 수 있을 리가 없겠죠?라고 할 정도의 홀 케이크가, 과자 만들기를 취미로 갖고 있는 코토리 씨의 작품이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해피 버스데이. 리코 씨"
푸른 눈을 가진 인형같은 에리 씨가, 나를 향해 너무나 능숙한 윙크를 했다. 나는 더 이상 뭐가 뭔지를 모르겠었고, 리코쨩은 깜짝 놀라 두 손을 입에 댄 채 굳어 있었다. 식기가 정리되고 깔끔한 테이블 위에 케이크가 놓이고, 흔들리는 초의 불빛이 리코쨩의 얼굴을 오렌지색으로 비추고 있었다. 해프닝에 약한 와타나베 요우이지만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리코쨩, 불어서 끄라구"
전혀 몰랐던 주제에 주동자 같은 대사를 내뱉었더니, 리코쨩은 긴장했는지 가슴 위에 양손을 교차시키고 '후우'하고 내 얼굴에 닿을 정도로 마음껏 숨을 내쉬었다. 여섯 자루, 서 있던 촛불은 깨끗하게 꺼졌고, 'Little Cage' 속은 잠시 정적에 휩싸였다.
'여러분, 박수로 축하합시다!'
코토리 씨가 활기찬 목소리로 분위기를 돋우고, 이름도 모르는 손님 모두가 박수를 쳐 주었다. 에리 씨와 하나요 씨도 짝짝 박수를 치고, 불이 반짝 하고 디너 타임의 조명으로 돌아왔다. 모두들 각자의 환담을 재개해서 나와 리코쨩만이 마치 백일몽을 보여진 듯 멍해져 있었다. 하지만, 눈 앞에는 딸기가 잔뜩 올려진 데코레이션 케이크가 있고, 'HAPPY BIRTHDAY to RIKO'라고, 초코로 예쁘게 쓰여져 있다.
"요우쨩?"
"미, 미안. 나도, 아무것도, 몰라서"
솔직히, 솔직히 코토리 씨와 다른 분들에게는 무척이나 감사하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다른 손님까지 끌어들인 화려한 서프라이즈를 하면 리코쨩이 질색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연인도 아닌 그냥 친구인데, 이런 대담한 연출을 해도 되는걸까?라고 불안해 하고 있었다. 과한 이벤트를 해서 미움 받으면 어떡하지 하며 심장이 벌렁벌렁하고 리코쨩의 표정조차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한심하긴 하지만 작은 목소리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싫었, 어?"
"아니, 엄청 기뻐"
리코쨩은 울 것 같은 얼굴로 웃어 주었고, 그래서, 내가 울 것 같아져서 참았다. 조금 진정했을 때, 수레에 접시와 나이프를 싣고 회색 콕셔츠를 입은 코토리 씨가 주방에서 나타났다.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나와 리코쨩을 번갈아 보곤, 부드럽게 웃었다.
"그럼, 다 같이 먹을까. 아침부터 만든 자신작이야"
조용히 말을 걸더니, 케이크를 그대로 주방에 들고 돌아갔고, 금세 잘려진 케이크가 나와 리코쨩과, 그리고 카운터나 소파에 있던 손님 모두에게 대접되었다. 에리 씨와 하나요 씨도 일손을 멈추고 포크를 쥔 채 코토리 씨의 케이크를 즐기고 있었다. 그건 무척이나 따뜻한 공간으로, 도쿄에 왔을 때의 허무함이나 고독을 생각해보면 인생이 뒤집힌 듯한 느낌이었다.
멋진 케이크를 먹자 배가 가득 찼다. 아마 긴장으로 위도 움츠러든 탓이라고 생각한다. 반씩 나눠서 내고, 코토리 씨와 사람들에게 배웅받으며 나는 리코쨩을 역까지 바래다 줬다. 모두가 귀가하는 시간이어서 우리는 인파를 거스르듯이 걷고 있었다. 부딪히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팔이 맞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와인색의 머리카락도, 우윳빛 뺨도 손이 닿는 곳에 있었다.
"오늘, 고마워. 요우쨩 덕분에 즐거웠어"
"으응, 나야말로. 리코쨩이 즐거워 해줘서 기뻐"
뭔가 영문을 번역한 듯한 어색한 대화였지만, 곧바로 헤어지지 않고 개찰구 근처에서 마주보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인파에 휩쓸리지 않도록 비즈니스 호텔의 광고가 걸린 사각형의 기둥에 기대어 있었다. 리코쨩은 조금 생각하더니 말하기 어려운 듯이 진상을 이야기했다.
"사실은 말이지, 선생님한테 초대받고 싶어서 말을 걸어봤는데. 잘 안됐어"
노조미 씨와의 데이트 때문일지도 모른다. 문득 떠올라서, 그래도, 역시 말로 할 수는 없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리코쨩은 마키 씨에게 연인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단 느낌도 들었으니까. 설령 모른다 해도 깨닫는 건 시간 문제겠지. 하지만,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 내가 털어놓아도 되는 진실이 아냐.
"선생님 있지, 혹시 특별한 사람이 있는걸지도 몰라"
"그런 이야기, 해본 적 없어?"
"응. 물어보는 거, 무서우니까"
점점 더 말할 수 없게 되어 입을 다문다. 말해버리는 편이 유리할 것이 분명한데도, 리코쨩을 상처입히고 싶지 않으니까 말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코토리 씨가, 에리 씨를 마키 씨와 마주하지 않게 했던 것처럼. 하지만, 자신이 코토리 씨만큼 강하지 않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미안. 선생님의 일은 관계 없네. 오늘, 초대해줘서 고마워"
"응. 다음에 또 마시자. 리코쨩과 있는거, 즐거우니까"
"정말? 엄청 긴장하지 않았어?"
"그건, 그치만, 2년이나 있었으면서 둘이서 밥 먹는게 처음이었으니까"
마지막은 웃으면서, 웃으면서 리코쨩을 배웅할 수 있었다. 길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혼잡한 개찰구를 통과해, 그래도 한 번은 돌아보곤 우윳빛 얼굴에 미소를 띈 채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게 엄청나게 기뻐서 모두에게 감사를 표해야겠다고 생각해 종종걸음으로 역까지의 길을 되돌아가 다시 'Little Cage'의 문을 열었다.
딸랑딸랑 하고 종이 울렸다. 시간은 8시를 넘어 있었다.
피크 타임은 지났고, 손님들도 한창 이야기를 하는 중인 것 같았다. 카운터 건너편에서 에리 씨가 묘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주방에 얼굴을 내밀자, 코토리 씨는 '에?'라는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둘이선 나를 협공하면서 전혀 생각치도 못한 것을 물어왔다.
"어라? 요우쨩? 잊은 거 있어? 리코쨩과 같이 있던거 아냐?"
"그렇다기보다, 왜 돌아온거야? 연어야?"
리코쨩은 돌아갔으니까, 감사하단 말을 하러 왔습니다. 그대로 전하자, 코토리 씨는 멍하니 있고, 에리 씨는 손바닥을 자신의 머리에 대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상황을 잘 몰라서 당황하고 있자, 이번엔 둘이서 표정도 말투도 난폭할 정도로 다그쳐왔다.
"그만큼이나 띄워줬는데 1차에서 헤어진다니, 무슨 일이야!?"
"뭐야? 겁쟁이야? 방에 초대 안해? 아가씨는 통금 시간이라도 있어?"
"엣? 그치만, 선물도 건네줬고, 리코쨩도 기뻐해 줬으니까"
감사합니다. 정중히 고개를 숙이자, 둘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짓고 '요우쨩은, 요우짱이네'라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납득했다. 코토리 씨가 '오늘 밤은 좋은 꿈을 꾸면 좋겠네' 라고 말해서, 무척 뿌듯한 마음으로 'Little Cage'를 뒤로 했다.
역 앞 어딘가에서 2차를 한다든가, 내 방에 초대해서 조금 더 마신다든가, 좀 더 접근하면 좋았던 걸까나?라고 멍하니 생각하면서 그 날은 기분 좋게 잠들었다. 그 생각이 '접근 했으면 좋았잖아!?'라고 격한 후회로 변했던 것은, 다음 날 아침, 눈을 뜨고 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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