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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암말 연도대표마에 대해 알아보자
[시리즈] 연도대표마 모음 · 역대 최초의 연도대표마에 대해 알아보자 · 더비 역사상 최고 착차로 우승한 연도대표마를 알아보자 · 최초의 올스타전에서 이긴 일본도에 대해 알아보자 · 역대 최초의 미국 중상 우승마를 알아보자 · 최초의 형제 연도대표마에 대해 알아보자 · 최초로 선정에 논란이 생긴 연도대표마에 대해 알아보자 · 경마의 인기를 폭발시킨 토키노 미노루의 재림에 대해 알아보자 · 신마의 재림에 가려진 조용하지만 강한 연도대표마에 대해 알아보자 · 최초의 지방 경마 출신 연도대표마에 대해 알아보자 · 현재까지도 유일한 연도대표마 동시 수상마들을 알아보자 · 황제 이전, 일본 경마의 정점이였던, 최강의 전사에 대해 알아보자 · 비극과 벽마에 가려진 조용한 강자에 대해 알아보자 · 노웅의 강함을 보여준 시대의 선구자에 대해 알아보자 · 국화만을 피운채 빠르게 쇠한 귀공자에 대해 알아보자 · 역대 최강의 올라운더로 불린 원조 괴물에 대해 알아보자 수많은 명암말들이 배출된 현대의 시점으로는 암말이 연도대표마를 수상하는 것이 그리 이상해보이지 않을 수는 있지만, 사실 암말과 수말의 실력평균화가 일어나기 전인, 2000년대 중후반 전 까지만 해도, 암말 연도대표마는 단 두마리 뿐이였을 정도로 암말이 연도대표마를 수상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쿠리후지는, 당시 연도대표마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가넷은 윌 딜에게 밀려서 실패, 스타 로치는 무패 2관마 코다마에게 밀렸다)물론 그 전에도 더비 우승마이자 역사상 유일한 변칙 무패 삼관마 쿠리후지나, 최초의 천황상 가을과 아리마 기념을 동시에 우승한 가넷, 최초의 3세 암말 아리마 기념 우승마인 스타 로치 등 같은 기라성 같은 암말들이 있었으나, 모두 연도대표마 수상에는 실패했다.1960년 스타 로치 이후, 2관마 메이즈이와 3관마 신잔, 스피드 심볼리 같은 강호들이 연이어 나오면서 암말 수상자는 당분간 안 나온다고 생각되었으나,1971년 스피드 심볼리가 은퇴한지 1년이 지나, 최초의 암말 수상마가 나오게 된다.1966년 5월 17일, 홋카이도 시즈나이의 타니오카 목장에서 태어났다. 부마인 시프리아니는 나스룰라계 말인, 영국 리딩 사이어 네버 세이 다이의 자마로, 당시에는 별 활약이 없었으나, 토메이와 이후 2관마 히카루 이마이를 배출하며, 종마로 성공한 말이였고, 모마인 토시 만나는, 현창마 메이지 히카리의 자마로, 모계 4대조 만나 역시, 제실어상전을 이긴 명마였지만, 본인 자체는 좋은 말을 배출하지 못한 방류계였기에, 당시에는 명혈통마가 아니였으나, 혈통이 적절히 섞인 준수한 혈통마였다.전년도인 1965년에 목장장인 타니오카 마스타로는 사육중인 토시 만나를 10번의 레코드와 11연승을 한 현창마 토사 미도리와 교배시키려 했지만, 체격이 작다는 이유로 거절당해, 다른 종마를 찾다가, 목장 근처에 있는 경종마 농협 종마장에 사육되던 시프리아니의 근육질과 유연성을 보고 교배를 시키게 된다.그렇게 탄생한 토메이, 체구는 작았지만 균형 잡힌 체격과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점차 성장 속도가 멈춰, 마체가 작은 말이 되어, '쥐 같다' 라는 말을 듣게 되지만, 성격은 지는걸 싫어하는 성격을 보여주었다.(당시 낙찰 평균액은 300만엔이였다)이후 타니오카 목장은 토메이를 판매하기 위해, 다른 말과 세트로라도 판매하려 했지만, 팔리지 않았다. 이때 구매를 권유받았던 마주 중, 다이신 볼가드의 마주인 다카하시 킨지도 있었는데, 훗날 토메이가 활약한 뒤, 타니오카 목장주에게 '아, 추천받았을때 살껄, 그때 그 말이 이리 될줄은 몰랐어' 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1967년 가을, 경매장에 상장 되었고, 오이 경마장의 다카키 키요시 조교사가 165만엔에 낙찰되며, 삿포로에서 파칭코 체인을 운영하던 콘도 카츠오가 마주가 된다.마명은 본래 메이토우(명도)로 신청했지만 거절당해, 이름을 뒤집어 토메이로 확정된다. 이후 토마코마이의 후지사와 목장으로 이동, 경주마가 되기 위한 훈련을 개시하나, 위탁 예정이던 다카기 조교사가 췌장암으로 급사한다. 체격이 초라해 대신 맡아줄 조교사가 나오지 않았고, 결국 1968년 한신 경마장의 시미즈 시게지 조교사가 경매장에서 구매를 권유한 책임을 지는 형식으로 받아드리게 된다.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도저히 능력이 나아지지 않자, 조교사 시미지는 육성에 든 비용에 사과금을 더해 300만엔을 콘도에게 지급해 토메이를 지방으로 이적시키려 했으나, 인수자를 찾지 못해 취소되었고, 어쩔수 없이, 계속 목장에 두기로 한다. 이후에도 토메이를 담당할 구무원을 찾았으나, 맡으려는 사람이 안 나왔고, 결국 훈련 보조였던 시미즈의 동생이 돌보게 된다. 이후 경주마 데뷔를 위해 삿포로로 이송되었지만, 성격이 거칠고, 사람에게 친근하지 않아, 적극적으로 돌보는 사람이 없었기에, 모두가 별 기대를 안하게 된다.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1968년 8월 30일, 삿포로 신마전에서 데뷔한다. 6번 인기라는 낮은 인기를 받았지만, 2착으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고, 다음 경기인 9월의 신마전을 우승하자, 구무원들의 평가가 바뀌며, 담당 직원도 선임된다. 이후 하기 특별에서는 5착으로 패하나, 130만 이하와 오픈, 칸기쿠상을 연승하자, 그 해 암말 클래식 유력 후보가 된다.(00:31~00:47)이듬해인 1969년, 신잔 기념에서 2착으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3월의 교토 4세 특별에서 첫 중상 우승에 성공한다. 이러한 모습에 클래식 1관인 오카상에서 1번 인기로 출전한다. 5위로 레이스를 진행하던 토메이는 마지막 직선에서 선두에 섰으나, 골 직전에 히데 코토부키에게 추월당하며 2착으로 패한다.(17:10~20:20)불행인지 다행인지, 오카상 이후 히데 코토부키는 오른 앞다리 부상으로 인해, 오크스에 출전을 못했기에, 오크스에서는 다시 1번 인기를 받는다, 그러나, 앞서 가던 라이트 파레를 따라잡지 못하고, 샤다이 터킨에게 추월당하며 3착으로 패한다. (당시 암말 중상 경주는 클래식을 제외하면 암말 특별 정도가 최고 목표였다)클래식을 얻는것은 실패했으나, 6월의 오픈전을 우승 한 뒤, 삿포로로 이동한다, 메지로 타이요와, 메지로 아사마에게 각각 2착으로 패했으나, 오픈전을 우승 한 뒤, 복귀한다. 이 시기에 시미즈가 급사, 토메이는 릿토 경마장의 사토 이사무를 거쳐 사카타 마사유키의 마구간으로 이적하게 된다. 11월, 교토로 복귀해 오픈전을 4착으로 패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나, 교토 암말 특별과 한신 암말 특별을 각각 3, 2착으로 입착하며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준수한 모습을 보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중상 1승으로 끝났기에, 절치부심한, 1970년, 3월의 오픈과 4월의 마일러스 컵에서 연승하면서, 중상 우승도 성공한다. 이후 출전한 5월의 한큐배에서도 2착으로 입착하나, 오른쪽 뒷다리발굽에 백선열이 발병하면서, 휴양을 한다. 당시 팀은 복귀를 목표로 토메이를 치료하나, 경마 팬들과 언론은 '그 정도의 저가 말이 저정도로 많이 벌었는데, 충분하지 않냐, 아직도 돈을 벌 생각이냐' 라며 비판을 한다.수개월의 치료 뒤, 1971년 1월의 교토 경마장 오픈전에서 복귀하나, 5착으로 패한다. 그러나 2월과 3월의 오픈에서 2착을 기록하며, 점차 좋은 모습을 보이다, 3월 28일의 오픈전에서 복귀 후 첫 승을 거뒀고, 거기에 마일러즈 컵에서 킷카상마 다테 텐류를 꺾으며 연승, 거기에 한큐배를 58kg의 부중으로 우승하게 된다. 이때 기수인 사카타는 부중에도 불구하고 레이스를 우승했기에, '이거 혹시 장거리도 정복 가능한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게 된다.이후 휴양을 보낸 뒤, 진영은 관동 원정을 결정, 10월의 한신 경마장의 오픈전에서 복귀, 레이스는 2착으로 패했으나, 암말 도쿄 타임즈배에서는 59kg의 부중에도 압승을 거두면서, '마일의 여왕'이라는 칭호가 붙는다. 이 우승으로 인해, 진영은 천황상 출전을 결정, 3번 인기로 출전하게 된다.(03:38~07:27)당시 천황상은 봄, 가을 관계없이 장거리인 3200m, 토메이가 첫 장거리 레이스를 어떻게 버틸지 관심이 집중 되는 가운데, 경마의 신 오오카와 케이지로는 킷카상마인 아카네 텐류와 더비 우승마 다이신 볼가드 등을 상대해 우승하는 건 불가능 하다고 평했지만, 토메이는 이 두마리를 제치고 우승에 성공한다. 428kg으로 역대 최저 마체중 우승. 이 우승으로 인해, 팀은 아리마 기념 출전을 결정, 그동안은 원정마가 들어오는 외마장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그렇게 아리마 기념 직전 진영에서는 좋은 소식이 들리는데, 첫번째는 스피드 심볼리와 혈전을 펼쳤지만, 아리마 우승에는 실패했던, 올해 투표 1위 아카네 텐류가 말 인플루엔자로 출전을 못하는 거였고, 두번째는 메지로 아사마와 카미타카 역시 출전을 취소한 것이였다.(케이슈샤는 이 해를 마지막으로 수상을 끝냈기에, 마지막 케이슈샤 주최 연도대표마다)진영측에 운이 따라주는 가운데, 아리마 기념은 역사상 최저인 6마리로 개최된다. 레이스는 후방에서 레이스를 진행하던 토메이가 4코너에서 스퍼트, 그대로 선두에 서면서 우승하게 된다. 스타 로치 이후, 11년만의 암말의 아리마 우승이였고, 그 해, 케이슈샤상 연도대표마이자 최우수 5세 이상 암말에 선정된다. 거기에 이 우승으로 인해 암말 역대 상금 1위를 달성하게 된다.다만 레이스 이후, 말 인플루엔자 확산 방지를 위해, 릿토로 돌아갈수 없게 되어, 그대로 도쿄에 머물렀고, 3월부터 경마가 재개되어, 돌아가나 했으나, 번식 암말이 되기로 예정되어 있어, 홋카이도로 가면서, 은퇴식이 열리지 않았다. 이후, 진영은 관서에서 은퇴 레이스에 출전하려고도 했으나, 토메이가 독감에 걸리면서, 결국 취소되게 된다.(암계 후손은 2008년 하네다배 우승마인 닉 바냔쪽으로 이어지고 있다)은퇴 후에는, 콘도의 소유마들 중, 암말을 양육하기 위한, 마쿠베 목장으로 이동했고, 많은 산구마들을 낳았다. 은퇴 후의 토메이는 상당히 조용해, 다른 말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현역때는 성격이 거칠고, 사람과 친근하지 않으며, 다른 말들이 다가오면 차기도 했고, 시미즈에 의하면, 레이스 중에 채찍을 휘두르면 화를 내면서, 달리지 않았다고도 한다. 그래서 인지, 산구마들도 거친 성격을 많이 보여주게 된다.그 중, 활약마는 루이스 데일과의 산구인 텐메이로, 1978년에 역대 최초로 천황상 모자 제패를 성공하게 된다. 마주인 콘도는 유족들에게 경주마를 소유하지는 말고, 다만 토메이만은 죽을 때 까지 돌보라는 유언을 남기고, 1991년에 죽는다. 콘도의 사후, 토메이를 제외한 남은 번식 암말들은 모두 매각된다.이후 1997년 3월 초, 몸상태가 악화되어 식욕을 잃은 토메이는, 같은 달 말 부터, 식사를 거부해, 영양이 부족해 지면서, 4월 7일에 사망하게 된다. 토메이는 콘도의 유언대로 목장 안에 세워져있던 묘지에 안장되었고, 마쿠베 목작은 토메이의 사망 이후 폐업했지만, 묘지를 찾는 팬들을 위해 목장의 간판은 걸려있다.토메이는 역대 최초의 암말 연도대표마라는 엄청난 업적을 가지고 있지만, 꽤나 묻히는 편인데, 1960년 아리마 우승마인 스타 로치가 최초의 3세 아리마 기념 우승마고, 여러 명마들을 배출했기에, 스타 로치 이후의 아리마 기념 우승마를 2008년의 다이와 스칼렛으로 알고있는 사람이 많을 정도다.그러나, 경마의 신 오오카와 케이지로는 토메이에 대해 '평생을 대패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경주마로서 최강마 중에 상위에 해당한다' 라고 평하기도 했고토메이 이후, 3200m 천황상과 아리마 기념을 제패한 암말이 나오지 않고, 이후 암말 연도대표마 또한 1997년의 에어 그루브가 수상하기 전 까지, 28년이 걸린걸 생각하면토메이를 당대 최고의 명마 중 한마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어제 술 먹다가 취해서 그냥 잤습네다대신 30분 안에 한편 더 올리겠습니다 히히
작성자 : 아무개이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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