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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연애
9월. 계속해 여름 방학인 나는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마음껏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의 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보내주는 생활비를 줄인다'.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해도 강의는 제대로 듣는다'. 이 두 가지를 약속해 부양 가족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치카쨩의 방 말고도 거처가 생겼다면 좋은 일이네'
전화의 가장 마지막에 아버지는 드물게 진지한 목소리로 그런 말을 했다. 거처라는 것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의미하니까, 좀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오픈할 수 없는 나에게 있어서 거처를 만든다는 것은 임시방편의 친구를 잔뜩 만드는 것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비도 잔뜩 들어왔고, 선물이라도 주려는 거지?"
"뭐, 생일도 가깝고, 그런 얘기에요"
첫 번째 일요일, 나는 에리 씨와 둘이서 거리로 나왔다. 내가 에리 씨에게 권유한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반대로, 12일에 생일을 맞이하는 코토리 씨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것에 어울려 달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리코쨩의 생일은 19일이니까, 그럼 나도 뭔가 선물을 사야겠다고 정했다. 뭐, 사는 건 좋지만 그걸 전하기 위해서는 사는 것의 몇십배에 달하는 용기가 필요하겠지.
"그러고보니 그 아이 이름이 뭐야? 마키가 부르긴 했었는데 잊어버렸나봐"
"리코쨩이에요. 사쿠라우치, 리코. 사쿠라는 벚꽃 할때 사쿠라고"
"리코쨩이구나. 전부 설명할 필요는 없어"
전에 쇼핑을 했을 때도 그렇지만, 에리 씨는 대충대충인 모습으로 있어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끌어모으고 있다. 오늘도 하늘색 반팔 블라우스에 블랙 데님이라는 심플한 코디. 그런데도 얼굴은 물론 스타일마저도 일본인이란 느낌에서 멀어져 있고, 무심코 다시 보고 있는 남자도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자면, 고향에 있을 적의 나도 그런 느낌이었다. '사진, 같이 찍게 해주세요!'라고 부탁받은 적 쯤은 몇번이나 있지만, 그건 단지 이름과 얼굴이 알려져 있을 뿐이었던 거고, 에리 씨 같이 깜짝 놀라게 되는 미인과는 시선을 모으게 되는 이유가 완전히 다르다.
"근데 있지, 그 카키색의 로고 티셔츠는 어디서 산 거야?"
"이거, 마루이*에서 샀어요. 샵의 사람도 '가을에 한 장 있으면 편리'라고 말했어요"
"있잖아, '한 장 있으면 편리'라니, 요우쨩 같이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우유부단한 사람을 '떨어뜨리기' 위한 상투적인 문구니까. 애초에 '한 장 있으면 편리'라니, 무슨 의미인거야?"
"고민하고 있을 땐 이걸 입으면 된다, 같은 느낌 아닐까요"
* 수도권을 중심으로 패션 등의 상업 시설을 전개하는 일본 기업
'고민하는게 즐거움인건데 무슨 소리야 그게'라고 에리 씨는 잘 모르겠는 일로 짜증내고 있었다. '요우쨩은 어깨가 있고 자세가 좋으니까 재킷이 어울려'라고 단정 지어져 선물을 고르기 전에 갑작스레 1만엔 넘게 하는 감색 블레이저를 사게 되었고, 지갑 속이 절반 가까이 줄어 버렸다.
"굳이 얘기하자면 이런게 '한 장 있으면 편리'한거네"
"블레이저 같은 거 입어본 적이 없어요. 고등학교는 세일러복이었고"
"다음은 인터넷이나 잡지에서 코디를 보고 연구하도록 해"
"살 만큼 사게 해놓고 통째로 맡기는건가요?"
잠깐 쉬러 들른 도토루*에서 아이스 코코아 빨대를 입에 물고 스마트폰을 켠다. '여성・재킷・코디' 같은 걸 검색하고 자신이라도 어울릴 것 같은 옷맵시를 체크해본다. 프린트 티셔츠라든가 옷깃이 있는 셔츠라든가, 이 재킷을 위해 또 새로운 옷이 몇 벌이나 필요해 졌다. 고향에 있을 적에는 멋 부리는 것 같은 걸 정말로 신경쓰지 않았었기 때문에 옷장은 한순간에 옷투성이가 되었다.
* 일본의 커피 전문점
"그 빨대 끝을 살짝 물고 있는 얼굴, 장난 아니게 귀엽네"
"에엣? 이번엔 뭔가요? 갑자기 1만엔권 날아갔으니까 사주진 않을거라구요?"
"요우쨩은 자각증상 없이 귀여워서 걱정이라고 항상 코토리랑 얘기해. 여하튼 첫 만남부터 '배웅하는 늑대'한테 잡아먹힐 뻔했을 정도였으니까, 보호자로서는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어"
"자각증상 있는 귀여움은 싫어요. 무슨 나르시스트에요?"
학생 시절에 모델을 했던 에리 씨에게 칭찬을 받아도, 치켜세우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나는 뭐, 스포츠가 특기고, 공부는 그럭저럭 괜찮고, 집안일은 대부분 할 수 있고, 같은 세대에 비하면 보답도 제대로 하는 편인 것 같고, 아버지를 닮은 것 같으니까 꽤 멋있는거겠지.
그런 자각이라면 다소 있긴 해도, 자신을 (여자아이로서) '귀엽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고, 귀여워 보이려 생각해본 적도 없다. '와타나베 요우'와 '귀여움'은 물과 기름이라고 정말로 생각한다.
"나쁜 벌레가 꼬이기 전에 제대로 연인을 만들도록 하세요"
"그러려고 선물을 찾으려 온거에요"
"문제는 말이지, 리코쨩이 마키에게 푹 빠져있단거지. 전에 우리 가게에 왔을때도 말야, 느긋하게 눈을 뜬 일요일 아침에 버터를 잔뜩 바른 허니 토스트를 먹고 있는 것 처럼 엄청나게 풀린 얼굴이었다구?"
"왜 갑자기 초장부터 꺾어버리려고 그래요!?"
에리 씨는 쿡쿡 웃으면서 '짜증내는 얼굴도 귀엽네'라고 바보 취급을 했다. 노조미 씨와 마키 씨 일로 울었으면서, 몇 일인가 지나면 전부 잊어버린 듯이 밝은 캐릭터로 돌아와 버린다. 코토리 씨도 그렇다. 에리 씨를 생각하며 슬픔에 잠긴 얼굴을 했는가 하면, 다음 날에는 평소와 같은 부드러운 미소로 나를 대한다.
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연애'란 무엇일까. 인생을 구성하는 부분의 하나이고,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확실히 존재하고, 어쩌면 그게 'μ's'로 만든 인연일지도 모른다. 에리 씨가 마키 씨의 분노를 피하지 않는 것도, 노조미 씨가 에리 씨를 원망하지 않고 가족처럼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마키 씨가 에리 씨를 무시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는 것도, 형태는 다르지만 인연이라는 놈이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부럽다고 생각하고, 너무 깊은 결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너무하다고도 생각한다.
"첫 선물인데, 리코쨩에게 뭘 주는게 좋을까요?"
"어떤 후보가 있는데?"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화장품, 입욕제, 아로마 굿즈, 악세서리 같은게"
"그 중에서 고르면 될거야"
"왜 의욕이 없어 보이는 건가요?"
"그치만, 그 리코쨩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니까"
어쩔 수 없었기에, 에리 씨에게 리코쨩에 대해 설명했다. 도쿄에서 우치우라로 이사하고, 아가씨이고, 영리하고, 피아노를 잘치고, 차분하지만 덜렁거리고, 개를 싫어하고. 어라라?
"그래. 요우쨩이 그녀에 대한 것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됐어"
"좀만 더 시간을 주세요"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것을 술술 소개할 수 없다는 건 짝사랑적으로 논할 가치가 없어"
에리 씨에게 단정지어져 고개를 떨궜다. 결국, 나는 치카쨩을 통해서만 리코쨩을 봐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리코쨩이 미인이고 대단한 아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거기서부터 먼저 발을 들여 놓으려고도 하지 않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여자아이라고 믿고 있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뭐, 괜찮아. 애초에 말이지, 사랑을 시작하고 나서 아는 게 더 많아"
"뭔가 싫은 일이라도 있었나요?"
에리 씨가 전표를 쥐곤 일어섰다. 금발의 포니테일을 뒤쫓았더니 '여러가지'라며 상쾌한 얼굴로 웃었다. 사랑으로 실패하거나 생각지도 못한 일이 되는 것 따위는 익숙해진 것 같았다. 어쩌면, 에리 씨는 '사랑'이라는 것 자체를 그다지 믿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코토리가 좋아하는 가게야. 여기서 고를거야"
프랑스어 같아 읽을 수 없는 가게에 와서 에리 씨는 향수나 보디 크림이나 샴푸 등을 섞어 담은 선물 세트를 물색하고 있다. 3000엔 정도부터 10000엔 정도까지 있고, 에리 씨는 그 중에서도 다양한 아이템이 들어있는 비싼 놈에게 시선을 쏟고 있다. 푸른 눈은 칵테일을 만들고 있을 때보다 진지하고 옆에서 보고 있던 나는 조금 흠칫흠칫 하면서도 둘러보고 있다.
"왠지 애인 선물을 고르는 것 같네요"
에리 씨가 얼굴을 든다. 뺨으로 미소를 짓는다.
"일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가게를 도와줄 정도니까, 코토리는 절친을 넘어선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렇다면 좀 더 깊은 관계를 선택해보는 건 어떤가요. 아무래도 말 할 수는 없는 대사를 간파한 듯 에리 씨는 말을 계속해 온다. 그 손에는 사기로 한 1만엔이 넘는 선물이 있다. 핸드크림, 샴푸, 트리트먼트, 비누, 바디밀크. 마치 코토리 씨의 피부를 전부 자신의 선물로 감싸려는 듯한, 그런 대담한 상상마저 하게 만든다.
"하지만 말야, 그게 곧 연애적으로 사귀어야 한다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잖아? 연정은 우정의 상위 호환은 아니야. 게다가, 내가 '노조미는 포기했어'라고 거짓말을 했다 해서 그걸로 코토리가 기뻐할 것 같아? 코토리는 말이지, 계속 계속 나와 노조미를 봐 왔다구?"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에리 씨는 코토리 씨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거기에 대답해 줄 수 없는 스스로를 계속 안타깝게 생각해 왔다. 대답해 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노조미 씨를 연애적으로 잊을 수 없기 때문이며, 그래서 에리 씨는 '사랑'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보다도 소중한 관계라는 것을 계속 모색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코토리를 돕고 싶어"
에리 씨는 선물 세트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조금 있다가 큰 나무가 그려진 종이 봉투를 들고 돌아왔다. '에리쨩의 편을 들고 싶어'라고 한 코토리 씨와 '코토리를 돕고 싶어'라고 한 에리 씨, 두 사람의 마음은 틀림없이 서로 통하고 있었고, 그런데도 '사랑'이 될 가능성은 애달플 정도로 희박해서. 그렇다면, '사랑' 쪽의 가치를 떨어뜨려 버리는 쪽이 차라리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지만, 역시 나는 리코쨩과 '연인'이 된다면, 무엇보다 행복할 것이라 믿고 있고.
"저도 이 가게에서 골라볼까요. 뭔가 근사한 분위기에 좋은 냄새로 가득하고"
"냄새가 나는 물건이나 피부에 직접 바르는 물건 같은 건 상대의 취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는 한은 주면 안된다 생각해"
"그건 여친 자랑인가요?"
"그럴지도"
에리 씨가 쿡 하고 웃었다.
방금 전까지는 둘을 애달프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무척이나 부럽다 생각했다. 리코쨩이 목욕을 마치고 나온 피부에 보디 크림을 정성스럽게 바르는 것을 상상하고, 무조건 이 가게에서 고르자고 결정했다. 살짝 비싸긴 하지만, 자신의 하숙집에도 이 가게의 아이템을 도입하자고 생각했다. 자신과 리코쨩이 같은 냄새가 되는 것을 상상하니 가슴이 무척이나 두근거렸다.
"얼굴이 진지해졌네. 살짝 흥분된 기색도 보이는거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이 6000엔 세트가 좋을까요"
"뭐, 이런 선물의 좋은 점은, 써주지 않아도 준 사람이 알아채지 못한다는 점이네"
"왜 그렇게 슬픈 말을 해요!?"
살짝 발끈하자 '귀엽네'라며 에리 씨가 웃는다. 에리 씨의 놀림은 내버려 두자. 맞다. 어쩌면 마키 씨도 리코쨩에게 괜찮은 선물을 줄 지도 모른다. 평소보다도 비싼 가게에서 식사를 대접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었을 때라 해도 내 선물이 인상에 남아야만 한다. 처음에는 5000엔 정도 쓰려고 예산을 짰지만, 시선은 점점 고가의 선물이 즐비한 구역으로 옮겨진다.
"꽤 비싼걸 고르네. 마키를 의식하는거야?"
"제로라고는 하지 않을게요"
"종합 병원의 따님과 경제력으로 맞서겠다니 무모한 것도 좋은 점이지"
"어째서 찔끔찔끔 의욕을 깎아내려 하는건가요!?"
볼을 부풀리자, 에리 씨는 시원스런 얼굴로 '사람이 하는 무모한 일은 싫지 않아'라며 무책임하게 미소지었다. 거듭 망설인 끝에 선물 세트가 아니라 (요리는 아니지만) 아라카르트로 고르기로 했다. 피아노를 치는 리코쨩을 위한 핸드 크림과 겨울을 위한 립크림, 건조하기 쉬운 계절을 맞이하니까 보디 크림과 목욕 후에 향기가 나는 샤워 젤. 이정도려나.
"리코쨩에게는 어떤 냄새가 어울릴거 같아요?"
"그 질문은 '나에게 어울리는 칵테일을 만들어줘'라고 주문 받는 정도로 짜증나는데"
간단히 말로 걷어 차인다. 어쩔 수 없이, 하나 하나 순서대로 냄새를 맡아 본다. 리코쨩에게는 품위있고 플로랄 계열인 향기가 어울릴 것 같지만, 그런건 내가 좀 취향이 아닌 것 같아서, 별로 취향이 아니니까 뭘 골라야 좋을지 전혀 모르겠어서, 그러다 너무 냄새를 많이 맡아서 코가 바보가 되어 버렸다. 최종적으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신선한 과일계의 향을 고르고 4개의 아이템을 선택했다.
"제대로 이야기도 한 적 없는 친구로부터, 갑자기 선물된 스킨 케어 용품들"
"뭐에요 정말!?"
"1만엔의 선물은 무겁네"
"괜찮아요. 만나고 나서의 3년 분이에요"
내친김에 내 방에서 쓸 것도 고르니 지출이 더 커졌다. 리코쨩에게 줄 물건은 종이 봉투를 따로 해서 받고, 리본을 달아 선물처럼 장식해달라 하고, 현금으로 지불했더니 거의 무일푼이 되었다. 아침에 ATM에서 4만엔이나 찾았는데, 날개 돋친 듯 깨끗하게 날아가 버렸다.
"요우쨩, 꽤나 돈을 확 쓸 줄 아네. 의외야"
"제일 처음 산 자켓이 예상외거든요"
"괜찮아. 모델을 했던 내가 보증할게. 요우쨩은 자켓이 어울려. 맞다, 이 시기라면 워크셔츠에 데미지데님이나 카고도 좋을지 몰라. 보통 그런 계통의 아이가 가끔 원피스를 입거나 하면 엄청 귀엽지. 아아, 아예 요우쨩의 아르바이트비로 요우쨩의 옷을 잔뜩 사버릴까?"
"자비 옷 갈아입히기 인형으로 쓰지 말아주세요!"
저녁이 가까워질 때까지 같이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다 에리 씨는 먼저 'Little Cage'로 향했다. 코토리 씨에게 줄 선물을 가지고 간 채였다. 그러니까, 이 가게를 같이 오픈하기 전부터 이어진, 둘만의 '연례행사'인걸까 하고 생각했다. 취향을 알고 있고, 좋아한다고 알고 있고, 둘이서 가게를 해 나갈 정도로 마음이 맞고, 그런데도 연인이 되지 않았고.
되지 않은게 아니다. 될 수 없다. 는 거겠지. 나도 리코쨩이 끝까지 마키 씨를 좋아한다고 버틴다면 2년이나 곁에 있었다고는 해도 '연인'이라는 관계는 될 수 없을테니까. 연인이 아닌 형태의, 자신의 힘으로 노력해 만들어 낼 수 있는 새로운 관계를 찾아볼까라고 생각해 버린다.
………
그 날의 오전 0시.
카운터의 건너편. 코토리 씨가 셰이커를 흔드는 소리가 마치 시보인것처럼 날짜의 변경을 알리고 있다. 에리 씨는 조금 전 토트백에 넣거나 하지 않고 종이 봉투를 소중한 듯이 들고 문 밖으로 나갔다. 내일 밤까지의 '긴 이별'의 세레모니. 맑게 춤추며 조용히 쓸쓸함을 다 마셔버린다. 내가 이 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까지 코토리 씨는 혼자서 김렛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있는 편이 좋은 것인지 없는 편이 좋은 것인지, 그걸 묻는 것은 조금 할 수 없었다.
"요우쨩, 그 사람 생일은 언제야?"
"19일이에요"
"그 날, 휴가 줄테니까 여기로 한 잔 하러 와"
"이미 선약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확정되면 말씀드릴게요"
나약해져 버린다. 이미 마키 씨에게 권유받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권유 받고 있다 할까, 권유 받고자 필사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할까. '19일, 생일이에요'라고, 마키 씨에게 반복하고 있는 리코쨩의 모습이 뚜렷이 눈에 떠올라서, 그래서, 망설여진다.
"요우쨩 눈에는 '싫은 녀석'으로 보일지 몰라도, 마키쨩은 일편단심인 아이라구?"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요소가 하나도 없어서요. 아무것도 없는 새까만 어둠 속에서 빛을 찾을 정도로 긍정적이진 않구요"
텀블러를 흔들면서 한숨을 쉬자 코토리 씨가 칵테일잔을 손에 들고 미소 짓는다. 알고 있다. 조금 술버릇이 나쁘고, 조금 손버릇이 나쁘고, 옛 제자의 응석을 어떻게 받아줘야 좋을지 생각나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리코쨩을 포로로 만든 정도. 그래도, 나에게 보여진 부분은 나한테는 형편없는 것들 뿐이었으니까, 호의적으로 해석하는 것 같은 건 무리니까.
"그러면, 그녀를 마키쨩에게서 떼어내면 되겠네"
"엣?"
"막 이래~. 그런 말 하지 않아~"
코토리 씨가 킥 하고 웃었다. 가끔 이렇게 에리 씨와 꼭 닮게 웃는다. 짓궂은 웃음을 짓는다. 좀 더 빨리 만났다면 나는 틀림없이 코토리 씨를 사랑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괴로운 사랑이 되었을 것이다. 땅에 떨어져 있던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을 두 사람이 동시에 손을 뻗어 같이 줍는 것 같은, 그런 우연이 아닌 이상.
"코토리 씨는, 에리 씨의 어디가 좋은건가요?"
"얼굴. 이려나"
즉답의 내용이 너무나 직설적이라 하이볼을 뿜을 뻔 했다. 얼굴. 인가요. 반복해 본다. 코토리 씨가 시선을 과거로 향한다. 그 눈에 비치고 있는 풍경은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라 분했다.
"나는 줄곧 호노카쨩의 등만을 뒤쫓았어. 호노카쨩이라는 안경을 쓰고 세계를 보는 것 같았어. 하지만, 에리쨩은 혼자서 계속 먼 곳을 보고 있었어. 그건 미래일지도 모르고 닿지 않는 하늘일지도 몰라. 여기는 아닌 어딘가를 혼자서 보는 에리쨩의 얼굴은 고등학교 시절에 특히 더 멋졌어"
"그런 에리 씨가, 어째서 평범한 사무직을 하고 있는건가요?"
훨씬 큰 일을 하는 비즈니스맨이 어울릴 것 같았다. 수트를 입고 비행기로 출장을 가거나 외국의 고객과 악수하며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등, 그런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여자 아나운서나 외교관이라도 에리 씨라면 잘 수행해 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에리 씨는 총무 일을 하는 사무직을 하고 있다. 물론 나도 들어본 적 있는 회사니까 유명한 기업이지만, 그래도, 전근도 출세 경쟁도 없는 일반직이라 했었다.
"에리쨩은 이상에 좌절하면 눈을 감아버려. 내가 졸업 제작을 하고 있을 때 에리쨩은 취직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그 시점에서는 이미 사회인으로서의 빛나는 미래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해"
"노조미 씨와 다시 함께할 수 없단걸 알았기 때문인가요?"
코토리 씨는 눈을 내리깔며 끄덕였다. 사랑 따위로 취업 활동을 헛되게 하다니 어처구니 없다. 그런 말을 해버릴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진심으로 사랑해본 적 따윈 없는거라고 생각한다. 에리 씨는 '이상적인 관계'를 바라며 노조미 씨와 헤어졌다. 그리고 '이상적인 관계'가 역시 '연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때에는 이미 노조미 씨가 다른 답을 내고 있었다.
연애로 자멸하고 취업 활동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래도 일류 기업의 사무직으로는 뽑히고, 투잡을 뛰듯이 절친의 가게를 돕고, 목표 같은 건 특별히 없는 것 같아서. 에리 씨는 지금 눈을 감고 있는 것인지 뜨고 있는 것인지. 만약 뜨고 있다면 그녀의 눈은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인지.
"신기하지. 이상을 그리고 있을 때의 멋진 에리쨩이 좋았던 것일 텐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상에서 눈을 피하고 혼자 도망가는 에리쨩까지 좋아하게 되다니"
"아마도 코토리 씨가 너무 상냥해서 그럴거에요"
대답하면서 문득 회상하고 있었다. 고 2때, 스쿨 아이돌의 이벤트에 초대되어 도쿄에 갔던 밤.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잊었지만, 오토노키자카 학원을 방문하고 싶지 않아 보였던 리코쨩을 감싸려 했던 적이 있다. 그 때, 작곡을 할 수 있는 '특별'한 리코쨩을 좋아했던 나인데도, 그녀의 약한 면을 '지켜주고 싶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뭐,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았겠지만.
모래사장에 밀려드는 파도처럼 사람의 마음은 끊임없이 변해간다.
"사랑을 시작하고 나서 아는 게 더 많을지도 모른다구요?"
"후후후. 그건 에리쨩의 말이었지? 들어본 적이 있다구?"
코토리 씨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부끄러워서 머리를 쥐어 뜯었다. 에리 씨가 코토리 씨 앞에서 멋진 척을 하고, 격언 같은 대사를 쿨한 얼굴로 말하는 것을 상상하니 맹렬하게 웃겼다. 긴장감이 확 풀려서, 둘이서 웃으면서 마무리 작업을 서두르기로 했다.
그 날, 돌아온 뒤 샤워를 하기 전에 리코쨩에게 문자를 보냈다. 문자 내용을 생각하다보니 2시가 되어버렸지만, 아무튼 자기 전에 보낼 수 있었다. 겨우 이만큼의 문자를 만드는데 30분 이상 걸린 나를 보고 웃지 말아줬으면 한다. 마치 선택지를 틀리면 배드 엔드를 맞이해 버리는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1문자, 1문자, 리코쨩이 불쾌할 만한 선을 건드리지 않도록 썼으니까.
'19일, 생일이네. 혹시 일정이 비어있으면 밥 먹으러 가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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