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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팬대]모자는 생각하지 마

장기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5.03 13:03:25
조회 941 추천 19 댓글 8
														

문과진보+영나암 이야기 약간약간 섞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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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사는 골목 너머로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가 지켜보던 대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마리사가 그 목표를 마지막으로 살펴본 건 고작해야 몇 초 전이었다. 그렇지만 그 몇 초만으로도 방심할 수 없었다. 미행은 바로 그 몇 초 만에 순식간에 틀어질 수 있었다. 더구나 그녀가 지금 미행하는 상대는 더더욱 그랬다. 이미 몇 번이고 벌어진 일이었다. 마리사는 상대방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적어 내려갔다.


 "좋아... 오늘은... 국수집 앞에서... 점원이랑... 수다를... 어? 뭐... 뭐야?"


 관찰한 내용을 수첩에 적다가 다시 눈을 돌린 마리사는 화들짝 놀랐다. 그녀가 감시하던 대상은 그사이에 자취를 감춰버렸던 것이다. 딱히 오래 눈을 돌린 것도 아니었다. 단 몇 초. 그 단 몇 초만에 그녀는 감시대상을 눈앞에서 놓쳐버렸다. 이미 몇 번이고 벌어졌던 일이지만, 이번에도 마리사는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주위를 살펴보기 위해 쏜살같이 골목에서 뛰쳐나왔다.


 "젠장! 어디 간 거지? 하여튼... 으악!!"


 허겁지겁 골목에서 뛰쳐나오던 마리사는 누군가와 부딪쳐 버렸다. 마리사는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그녀가 관찰한 내용이 적힌 수첩은 허공으로 튀어 올라버렸다. 그렇게 허공에서 활짝 펼쳐진 수첩을 누군가의 손이 잽싸게 낚아챘다. 그리고 마리사를 약 올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쿠, 마리사 씨. 조심하셔야죠. 뭐가 그렇게 급하세요?"


 "윽.... 넌... 됐어. 별거 아냐. 알 거 없다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깨달은 마리사는 얼굴을 찡그렸다. 마리사가 얼굴을 찡그린 건, 그 목소리의 주인공과 부딪쳐서가 아니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그녀를 약 올려서도 아니었다. 물론 그런 이유도 약간 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중요한 이유는 아니었다.


 마리사가 얼굴을 찡그린 건, 그녀와 부딪친 바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사실 그녀가 몰래 감시하던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마리사가 몰래 따라다니면서 지켜보던 텐구, 샤메이마루 아야는 자신의 손안에 쥐어진 수첩에 눈을 돌리면서 말했다.


 "흐음. 수첩까지 떨어트릴 뻔하셨네요. 조심하셔야죠. 저도 수첩을 잃어버려서 고생한 적이 있답니다. 중요한 기삿거리가 많은 수첩이었는데. 마리사 씨는 뭘 적고 다니시려나?"


 "알 거 없다니까? 빨리 돌려줘. 에잇."


 마리사는 그 자리에서 재빨리 뛰어 올라 수첩을 낚아챘다. 아야는 마리사의 손을 딱히 피하지도 않고 순순히 수첩을 포기했다. 그러면서 짓는 의뭉스러운 미소가 마리사의 심기를 괜히 불편하게 했다. 물론 이번에도 단순히 그 미소 때문에 불편한 건 아니었다. 그 미소 너머에서 이 텐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마리사는 불편했다.


 아야가 마리사를 눈치채고 일부러 부딪친 건지, 아니면 정말 우연인 건지. 이 텐구는 인간마을에서 대체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돌아다니는 건지. 그냥 흥미 삼아서인지, 뭔가 꾸미는 게 있는 건지. 그 외에도 말로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의심과 의문이 떠올라서 마리사는 너무나 불편했다. 아야라는 텐구는 언제나 그랬다. 그런 마리사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야는 태연히 웃으면서 제안했다.


 "이렇게 된 거, 차라도 함께?"


 평소와 다를 게 없는 그 미소와 의뭉스러움이 마리사를 더욱 불편하게 했다.




 "이 가게 괜찮네요. 앞으로 자주 올까."


 아야는 차를 한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정작 아야의 대화 상대인 마리사는 차에는 손도 안 대고 아야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째려보기만 했다.


 "뭐야, 오늘은 무슨 꿍꿍이로 여기에 온 거야?"


 "꿍꿍이라니. 찻집에 오는 이유가 뭐가 있어요. 차 마시려고 왔지. 과자도 먹고."


 "흥. 그걸 누가 믿어."


 "어머나, 진짠데."


 아야는 마리사의 추궁에 아랑곳하지 않고 화과자를 한입 집어먹었다. 마리사는 눈살을 한층 더 찌푸리며 아야에게 따졌다.


 "하긴, 오늘 왜 왔냐는 건 이상한 질문이네. 항상 여기 오는 거 같으니까."


 "항상? 제가 언제 왔는지 잘 아시나봐요? 요 며칠 마리사 씨를 뵌 기억은 없는데."


 마리사는 순간 움찔해버렸다. 며칠간 인간마을에서 아야를 미행하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그 사실을 털어놓을 뻔했으니. 그녀는 황급히 말을 얼버부렸다.


 "윽, 그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거지! 넌 항상 그렇잖냐! 신문에도 인간마을 이야기도 많이 쓰고! 인간마을용 신문도 만들고!"


 "음... 뭐 그건 사실이죠. 인간마을은 기삿거리가 많으니까. 그래서 오는 거죠."


 "그거뿐이야?"


 "뭐가요."


 "아니, 정말 단순히 그래서야? 그냥 기삿거리만 찾으러 오는 거야?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서,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고?"


 "꿍꿍이라면 신문을 만들 꿍꿍이죠."


 마리사는 아야가 신문을 입에 꺼내자마자 바로 언성을 높였다.


 "그래! 신문! 신문을 만드는 꿍꿍이가 뭐야? 굳이 변장까지 하고 와서 말야!"


 "마리사 씨, 목소리가 높네요."


 "앗...!"


 아야의 지적에 마리사는 겨우 상황을 눈치채고 주위를 둘러봤다. 찻집안에 있던 다른 손님들은 마리사를 흘낏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마리사가 아야에게 목소리를 높인 탓에 주의를 끌어버린 터였다. 마리사가 무안한 표정을 짓자 아야는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목소리가 높으면 남들의 이목을 끌기 쉽상이죠. 기자로서 그래봐야 좋을 게 없으니 전 항상 조심한답니다."


 아야가 그렇게 말하자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마리사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다시 각자 하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마리사가 그랬던 일은 이제 중요하지 않은 듯이. 마리사는 아야가 무슨 수라도 부렸나 싶었지만 알 도리가 없었다. 애초에 묻는다고 호락호락 답해줄리도 없었고. 마리사는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하기로 했다.


 "흥. 하여튼 교묘해. 전에도 은근슬쩍 이상한 이야기까지 은근슬쩍 해놓고는. 지금 와서는 시치미를 떼고 말야."


 "이상한 이야기요?"


 "그래. 인간마을에서 요괴들끼리 싸운다던가, 인간마을의 지도자가 생기는 일만은 피하고 싶다던가."


 "그랬던가?"


 "기억하고 있잖냐. 아까부터 계속 시치미 떼지 말라구."


 "마리사 씨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그런데 그게 왜요?"


 마리사는 이번에도 두리뭉실 넘어가는 아야에게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칫. 또 그런 식으로 넘어가기냐. 하여튼 그 뒤로 곰곰히 생각해봤단 말이지. 왜 인간마을에 굳이 신문을 만들어서 파는 걸까. 처음엔 그냥 텐구란 그런 요괴인가보다 했어. 하지만 아냐. 내가 보기엔 뭔가 더 있어... 안 그래? 신문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거겠지. 텐구들이 알리고 싶은걸. 그래서 이득을 볼 셈이지? 레이무에게 그러는 것처럼. 언제나 그렇잖아. 은근슬쩍 레이무에게 네가 원하는 이야기를 흘려서. 난 그걸 왜 이제야 눈치챘을까."


 "흠."


 아야는 마리사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차만 한 모금 들이켰다. 마리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까지는 마리사가 말한 건 어디까지나 그녀가 아야를 미행한 이유였다. 물론 미행을 했다는 사실은 절대 밝히지 않았지만. 이왕 아야와 직접 마주하게 된 그녀가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니었다.


 "그럴 줄 알았어. 당연히 인정할 리가 없지. 애초에 진짜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냐.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뭐가요? 뭘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할 수 있는거야? 그러니까... 요괴의 힘이야? 아니면 마법인가? 말과 글로 남을 움직이는 거. 나도 나름 마도서까지 써봤지만 허사였어. 제대로 읽는 사람도 없었다고."


 "몇 권이나 만들었는데요?"


 "두 권이었나. 아니 세 권이었나.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렇게 적게 만들면 당연히 안 읽히죠. 많이 만들어서 많이 뿌리는게 제일이랍니다."


 "그거야 알지! 하지만 난 텐구처럼 그렇게 마구잡이로 인쇄할 수가 없는 걸. 하여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많이 뽑아도 그걸 어떻게 믿게 만드는 거야?"


 "아하. 그게 궁금하셨던 거군요. 그건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닌데."


 아야는 다시 히죽 웃었다. 마리사를 대놓고 비웃긴 했지만 정작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 정도는 감수하고 묻고 싶었던 거니까.


 "어려운 일이 아니라면 그 정도는 알려줄 수 있겠지?"


 "글쎄요...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말로 설명하긴 어려운데."


 "쳇, 여기서 또 그러기냐."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보죠. 세상은 너무 넓어서 말과 글로는 다 표현할 도리가 없죠. 그래서 가능한 거랍니다. 말과 글로 다른 존재를 움직이는 건."


 아야의 너무나도 생뚱맞은 이야기에 마리사는 다시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엥? 그건 또 무슨 소리냐."


 "거봐요.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잖아요."


 "아니, 애초에 뭔 말인지 모르겠다고."


 "그럼 이건 어떨까요? 제가 말로 마리사 씨가 여기서 모자를 다시 쓰게 만들면... 마리사 씨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모자?"


 "그래요. 모자요. 제가 말로 마리사 씨가 다시 모자를 쓰게 한다면 마리사 씨도 조금 이해가 가지 않을까요?"


 그와 동시에 아야와 마리사의 시선은 마리사의 모자에 쏠렸다. 마리사는 찻집에 들어온 뒤에 모자를 벗어 탁상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겠네. 그렇게 말해놓으면 내가 모자를 안 쓸 텐데."


 "그렇겠죠.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를 생각할 테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답니다."


 마리사는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아야의 비유에 고개를 갸우뚱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마리사는 긴장은 늦추지 않은 채로 아야를 빤히 쳐다봤다. 아야가 언제 무슨 말을 꺼낼지 몰랐으니까. 하지만 아야는 한동안 아무 말도 안 하고 과자를 오물거리기만 했다. 이번에도 인내심이 먼저 바닥난 건 마리사였다.


 "아무것도 안 해?"


 "뭘요?"


 "또, 또 이러네. 방금 내가 모자를 쓰게 만들겠다고 했잖냐."


 "아, 그거요. 당연히 해야죠. 그런데 지금 당장 하겠다는 건 아니고요. 어차피 제가 지금 모자 쓰라고 해봐야 안 쓰실 거잖아요?"


 "그거야 당연히 그렇지."


 "그러니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할까요? 그래요. 다른 사람, 요괴를 움직이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사실 다들 늘상 하는 일이잖아요? 남들을 속이고 본심을 숨기면서. 자기 진짜 의도를 숨기는 것만으로도 그 정도는 가능하죠."


 "내가 묻고 싶은 건 그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닌데."


 "마리사 씨도 종종 그러잖아요? 레이무 씨를 이겨보려고 속이기도 하고."


 "그건 그렇지만... 언제나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래.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러기엔 너무 제한되어 있지 않아?"


 "말이 제한되어 있다라..."


 "그래. 네가 말한 것처럼 세상에 온갖 것들이 있는데 우리가 쓰는 말은 그거에 비해선 턱없이 부족하잖아. 안 그래? 분명 사람들이 보통 말로 가리키지 못하는 것들이 있단 말이지."


 "제가 말한 것도 그런 거긴 하죠. 그래서 저도 사진을 찍는 거고. 말로는 도저히 전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죠."


 아야가 마리사의 말에 수긍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간만에 동의를 이끌어낸 마리사는 의기양양하게 자기주장을 이어나갔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뭘 궁금해하는지도 이제 이해하겠지? 우리가 할 수 있는 말, 쓸 수 있는 글이 그렇게 제한되어 있는데 도대체 뭔 수를 부리면 되는 거야? 너는 정작 그걸 이용한다고? 뭔 수를 부리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거지?"


 "아하. 그런 고민이었군요. 이제 알겠어요. 마리사 씨가 생각하시기에 말과 글로 나타낼 수 없다면 움직일 수도 없다... 그런 거죠?"


 "그런 거지."


 마리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야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마리사의 바람과는 달리 아야는 이번에도 주저했다.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 마리사 너머를 바라보면서.


 "마리사 씨 말씀도 일리는 있네요. 우리가 직접 표현할 수 없다면 그걸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그리고 남들에게 어떻게 전하고, 남들의 감정과 행동을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 어떻게 설명할까요? 흠... 그건 그렇고..."


 "왜? 왜 또 갑자기 말을 흐려?"


 "아뇨. 별건 아니고요. 그냥 저기..."


 "저기 뭐?"


 마리사는 아야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하지만 마리사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아야가 입을 열었다.


 "저기, 키리사메 씨 아닌가요? 분명 마리사 씨의 아버지..."


 "뭐?! 진작 말했어야지, 그건!"


 아야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마리사는 고개를 다시 앞으로 되돌리고 푹 숙였다. 혹여나 자신의 금발 머리가 남에게 보이기라도 할까 봐. 그걸로도 모자라서, 마리사는 탁자 위에 놓여있던 모자를 푹 뒤집어썼다. 화려한 금색 머리카락을 자신의 아버지가 보지 못하도록. 물론 별 의미 없는 짓이란 건 그녀도 잘 알고 있었지만.




 모자를 뒤집어쓴 마리사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기억이 소용돌이쳤다. 아버지와의 싸움부터, 절연에 이르기까지 자잘하고도 복잡한 기억들이. 정작 아야는 그런 이야기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건만, 키리사메라는 성만으로도 마리사는 그 모든 걸 떠올려버렸다. 딱히 아버지에게 다시 붙들려 가는 게 무서운 건 아니었다. 마리사라면 얼마든지 도망칠 수도 있고, 아버지도 굳이 그러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아버지를 만나고 싶진 않았다. 아버지가 자신을 알아채지도 못했으면 했다. 마리사는 모자를 더욱 강하게 눌러썼다.




 마리사는 한동안 모자를 뒤집어쓴 채 그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혹여나 아버지가 자신의 노란 머리카락을 알아채기라도 할까봐. 마음만 같아선 주변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들킬지도 몰랐다. 아직도 불편하기만 한 아버지라는 존재에게.


 하지만 마리사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를 눈치채고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모자를 뒤집어쓴 그녀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찻집의 손님들이 각자 나누는 자기 이야기뿐이었다. 마리사는 비로소 무언가 이상하단 걸 눈치챘다. 제아무리 모자를 뒤집어쓴들 자신의 아버지가 그녀를 눈치채지 못했을 리는 없었다. 모자만으로도 다른 사람들과는 확연히 구분할 수 있었으니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정작 마리사를 그렇게 만든 아야는 별말 없이 차만 홀짝이고 있었다. 마리사는 그런 아야에게 슬쩍 물었다.


 "...야."


 "네?"


 "없어?"


 "뭐가요?"


 "그... 네가 말했잖아... 아까..."


 "아, 키리사메 씨요? 죄송해요. 잘못 봤나 봐요. 비슷한 사람이었네요."


 마리사는 그 대답을 듣자마자 바로 모자를 벗고 허리를 폈다.


 "...쳇. 괜히 겁먹었잖아. 하여튼 민폐는... 아."


 "왜요?"


 "모자..."


 "어머나. 그러고 보니 모자 다시 쓰셨네요."


 "윽! 역시! 그게 목적이었구나! 모자를 쓰게 하려고!"


 "딱히 그럴 의도는 아녔는데. 나는 운도 좋지."


 "웃기시네."


 마리사는 아야를 째려보면서 추궁했지만 아야는 이번에도 능청을 떨었다. 맥없이 당해버린 마리사는 작은 한숨을 내쉬면서 두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좋아. 내가 졌어. 하던 이야기나 계속해달라고. 내가 모자를 썼어. 그게 네가 하던 이야기랑 무슨 상관이야? 말과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거."


 "아, 그 이야기 중이었죠? 마침 잘됐네요. 제가 그냥 사람을 잘못 봤을 뿐인데 마리사 씨는 모자를 뒤집어썼죠. 왜 그랬을까요?"


 "잘못 보긴 뭘 잘못 봐. 일부러 그랬으면서."


 "에이, 진짜 잘못 본 건데. 그건 별로 중요하지도 않잖아요. 하여튼, 왜 그랬죠?"


 "칫. 그야 내가 불편해서 그렇지. 아버지랑 굳이 마주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하, 그래서였군요. 그러고 보니 마리사 씨는 아버지와 불편한 사이였죠."


 "다 알면서 그러는 거지? 진짜 끝까지 모른 척할 거야?"


 마리사의 지적에도 아야는 능글맞게 웃어넘기기만 했다. 다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아야는 마리사에게 바짝 다가왔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듯이. 그 묘한 분위기에 마리사는 무심코 침을 꿀꺽 삼켜버렸다.


 "생각해보세요. 마리사 씨는 아버지와 만나면 불편하겠죠? 그래서 보이지 않게 모자를 뒤집어썼고. 하지만 저는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그냥 마리사 씨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을 봤을 뿐이죠. 마리사 씨가 아버지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불편한 사이인지 이야기하지 않았잖아요. 맞죠?"


 "그렇지...?"


 "그렇지만 마리사 씨는 제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제가 말한 것 이상으로 생각을 뻗어 버렸어요. 만약 제가 구구절절이 마리사 씨와 아버지의 관계를 설명했다면... 딱히 그런 반응을 보이진 않았겠죠."


 마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야는 그런 마리사의 반응에 만족했는지 얼굴을 더욱 가까이 들이밀면서 말했다.


 "바로 그거랍니다. 직접 말해서 움직이는 일은 도통 없어요. 오히려 말하면 안 되죠. 정말 원하는 게 있다면 교묘하게 숨겨야 해요. 그래서 가능한 거랍니다. 세상엔 말로는 정확히 표현 못 할 것들이 많거든요. 마리사 씨와 아버지의 관계, 무녀의 속마음, 요괴와 인간의 꿍꿍이... 이런 것들은 말로 제대로 표현할 수 없죠. 바로 그래서 가능한 거죠. 사람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면... 무심코 생각해버리거든요. 남들이 이걸 이용하지 못할 거라고. 오히려 방심해버리죠. 그러니까 말할 수 있는 사실로 조금만 주의를 돌리면... 너무나 간단히 움직여버려요. 너무나도 간단히."


 마리사는 아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요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요기 따윈 전혀 느낄 수 없었고, 그냥 인간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마리사 앞의 텐구는 요괴였다. 텐구가 마리사를 바라보면서 오싹하고도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마리사의 머릿속 따윈 다 볼 수 있다는 듯이. 마리사의 등에서는 무심코 소름이 돋아나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하지만 마리사는 맞받아쳤다. 그녀는 이미 많은 요괴를 만나왔다. 요괴를 상대하는 법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레이무를 제외한 그 누구보다도. 요괴에겐 절대 겁을 먹어선 안 됐다. 억지로라도 받아쳐야 했다. 온갖 억지를 부려서라도. 마리사는 바로 그 억지를 부렸다.


 "무슨 말인지 대충 알겠어. 네가 나를 골려 먹으려고 여기 데려왔던 것처럼?"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


 마리사의 전혀 의외의 대답에 아야는 생뚱맞은 표정을 지었다. 마리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기세를 이어나갔다.


 "네가 말했잖냐. 주의를 돌리면 움직인다고. 네가 나랑 마주치고 여기로 데려온 것도 마찬가지 아냐? 처음부터 날 골려 먹으려고 했고, 모자를 갑자기 뒤집어쓰게 해서 창피를 주려고 했던 거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일부러 주의를 돌렸던 거 아냐? 다 네가 말한 대로의 수법인데? 네가 설명해준 덕에 다 알 수 있었어."


 아야는 마리사에게 들이밀었던 얼굴을 살짝 뒤로 물렸다. 그녀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별안간 웃음을 터트렸다.


 "하! 그렇게 되네요.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으니 말을 안 했다...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아니에요. 그냥 마리사 씨랑 우연히 만났으니까, 조금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에요. 모자는... 마리사 씨가 물었잖아요? 무슨 수를 쓰는 거냐고. 그래서 그냥 떠올린 거죠. 마리사 씨가 다시 모자를 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 물론 키리사메 씨는 제가 잘못 본 거지만요."


 "흥. 역시나 호락호락 털어놓지는 않는군."


 "진짜인데."


 아야는 싱긋 웃었다. 조금 전의 요기가 넘치는 웃음은 아니었다. 여전히 마리사를 깔보는 웃음이었지만 마리사도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듣고 싶던 이야기는 들을 수 있었으니까.



 

 원하던 대답을 어느 정도는 들은 마리사는 주제를 바꾸기로 했다. 그녀가 궁금하던 건 마을을 돌아다니는 텐구의 꿍꿍이만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너, 무슨 주간지인가 만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한테서 글까지 받아가 놓고."


 "아, 그거요. 말씀 안 드렸던가요? 그건 그만두기로 했어요. 죄송해요."


 "어? 안 만든다고? 왜? 별로야?"


 "아뇨. 잘 만들어졌어요. 그냥 다른 사정이 있어서... 좀 귀찮은 존재와 엮여버려서요."


 "귀찮은 존재? 그게 뭔데?"


 아야는 마리사의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고 혼자 중얼거리기만 했다.


 "으음. 우연이라면 우연인가... 말로 세상을 뒤집을 수 있는 존재..."


 "뭐라고?"


 "아뇨. 그냥 생각난 게 있어서. 아, 그렇지. 마리사 씨. 제가 내기에서 이겼으니 한 가지만 부탁해도 될까요?"


 "엑, 나 모자 쓰게 한 거? 딱히 내기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에이, 좋은 것도 많이 알려드렸잖아요?"


 "많이?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만... 두리뭉실하다고."


 "그럼 마리사 씨 질문이 잘못된 거겠죠. 좋은 답을 얻기 위해선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답니다."


 마리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차피 아야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에게 질문할 심산인 게 분명했다. 이럴 땐 적당히 받아주는 게 차라리 편할 터였다.


 "좋아. 그럼 네가 어디 그 좋은 질문 직접 해보라고."


 "별로 어려운 질문도 아니랍니다. 이것 좀 봐주시겠어요?"


 아야는 빙긋 웃으면서 상 위에 사진 한 장을 올려놓았다. 마리사는 자연스레 그 사진에 고개를 기울여버렸다. 어쨌거나 그녀도 아야가 대체 무슨 질문을 할지 궁금하긴 했으니. 그 사진 속에는 마리사에게 낯익은 존재가 하나 찍혀 있었다.


 "어? 이건..."


 "누군지 알아보시겠어요?"


 "아. 응. 기억나네. 예전에 본 적이 있어."


 그 사진에 찍혀 있는 존재는 특이했다. 겉보기에는 그냥 사람이지만, 날개가 달려 있었다. 그것도 양쪽 날개가 아니라 한쪽 날개만. 그런 독특한 외양은 잊으려 해도 좀처럼 잊을 수 없었다. 마리사는 답을 내놓기 전에 오히려 아야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어디서 찍은 거야? 네가 어떻게..."


 "어디서긴요. 죽림이죠."


 "죽림이면..."


 "영원정이요."


 "아, 과연."


 마리사는 아야의 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영원정이라면 사진 속의 인물이 아야에게 찍힌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사진속의 인물은 원래는 환상향에 있을 리 없는, 달 소속이었으니.


 "누구죠?"


 "어... 그게..."


 아야는 마리사를 대뜸 재촉했다. 이전까지와는 달리 무언가 조급한 것 같았다. 마리사는 머리를 살짝 긁적이면서 답했다. 정작 그녀도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아야에게 다 털어놓아도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거나 아는 척을 해버렸으니 시치미를 떼기도 곤란했다. 마리사가 그렇게 망설이는 사이에 아야가 한 번 더 재촉했다. 얼굴까지 다시 살짝 들이밀면서.


 "누구죠, 마리사 씨?"


 마리사의 등에서 다시 식은땀이 흘렀다. 그녀는 눈앞의 요괴가 진짜 알고 싶어 하는 게 뭔지 깨달았다. 비록 자기 입으로 털어놓지는 않았지만 마리사는 알 수 있었다. 그건 딱히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말하지 않아서 더욱 잘 알 수 있었다. 마리사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키신 사구메."


 "사구메?"


 "그래. 달의 신령이라던가 뭐라던가. 예전에 내가 달에 갔을 때 만났어. 달을 지키고 있었지."


 "호오. 직접 만나보셨다고요."


 아야는 어느새 다시 몸을 뒤로 젖혔다. 이번에도 요기 따윈 느낄 수 없었다. 공기가 조금 가벼워지자 마리사는 입에서 술술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래. 달을 지키고 있었는데. 보다시피 생긴 게 특이해서 기억나. 그리고 뭐였더라... 그래. 말로 운명을 역전시킨다든가? 신기한 능력을 갖고 있었지. 생각해보니 우리가 했던 이야기랑 비슷하네. 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거나, 말로 운명을 역전시키는 거나. 하는 말과 진짜 의도는 다르다는 점에서도."


 "운명을 역전시킨다... 전 그 정도까진 못하지만요."


 아야는 어깨를 으쓱였다. 칭찬을 받아 기분이 좋은 건지, 정말 겸손을 떠는 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긴장감이 비로소 다 풀린 마리사는 이제 반대로 아야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궁금한 거야?"


 "아, 그야 누군지 모르니까요. 영원정에서도 쉬쉬하고. 레이무 씨에게 가봐도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고. 이래도 되려나 몰라요. 무슨 위험한 짓을 꾸미는 걸지도 모르는데."


 "확실히 위험한 짓을 꾸민 녀석이긴 했지... 그래도 레이무가 그냥 넘겼다면 상관 없으려나? 그 녀석 감이야 확실하니까."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마리사 씨 덕에 좋은 걸 알았네요."


 아야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정작 수긍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마리사는 아야가 보여준 사진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려고 했지만 사진은 어느샌가 다시 아야의 손에 들려 있었다. 마리사는 사진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려던 아야를 급하게 제지했다.


 "야, 잠깐만. 갑자기 왜 그리 급해?"


 "네? 딱히 급한 건 아닌데요."


 "아니, 좀 더 볼 수 있잖아."


 "아, 그건 곤란하답니다. 제가 쓸 사진이니까요. 지금 보여드린 것도 특별히 보여드린 거랍니다."


 "으이구, 그러시겠지. 하여튼 종잡을 수가 없네."


 마리사는 어느샌가 다시 능글맞아진 아야에게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야는 그런 마리사를 보고 싱긋 웃으면서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전 이만 다른 기삿거리를 찾으러 가봐야겠네요. 마리사 씨와 이야기하는 건 언제나 재밌네요."


 "역시 처음부터 놀려먹을 생각이었지?"


 "그런 거 아니래두요. 마리사 씨나 저나 서로 재밌는 걸 알게 됐으니 서로 좋은 거 아니겠어요?"


 "흥. 알았으니까 갈 길이나 가라구."


 "후후, 그럼 이만."


 아야는 그렇게 마리사만을 자리에 남겨두고 찻집을 나왔다. 다른 손님들은 그 사실에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오직 마리사만이 아야가 앉아 있던 자리를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아야가 떠난 빈자리를 지켜보던 마리사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어떤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잠깐, 혹시 그 귀찮은 존재라는 게...?"


 아야는 주간지를 만들면서 귀찮은 존재와 엮였다고 둘러댔다. 그리고는 마리사에게 키신 사구메의 존재에 대해 물었다. 그것도 그녀답지 않게 조급함을 담아서. 마리사조차도 아야가 사구메에 대해 알고 싶어 안달이 났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마리사는 피식 웃었다.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텐구의 속내를 살짝은 들여다볼 수 있었으니, 그간의 미행이 아주 성과가 없는 건 아닌 셈이었다.




 "아! 그렇지! 수첩!"


 마리사는 별안간 혼자 소리쳤다. 아야와 나눴던 대화를 다시 곱씹어보면서 떠올렸던 것이다. 그녀가 아야에게 끌려오다시피 해서 여기 오기 전에 뭘 하고 있었는지를. 마리사는 아야의 꿍꿍이를 알고 싶어서 미행하고 있었다. 비록 중간에 아야에게 억지로 붙들리다시피 하긴 했지만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아야가 키신 사구메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으니. 마리사는 그 사실을 적기 위해 허둥지둥 수첩을 꺼냈다. 지금까지 아야를 미행했던 기록과 조합해보면 의외의 사실을 끌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 뭐야? 왜 이래? 어디 간 거야? 이 사진은 또 뭐고?"


 하지만 수첩을 꺼내 펼친 마리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수첩에 적어놓았던 미행기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찻집에 오기 전에 적어뒀던 내용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기록이 있어야 할 부분은 찢어져 있었다. 그 자리에는 대신 사진 한 장이 꽂혀 있었다. 마리사가 수첩에 끼워 넣은 적이 없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확인한 마리사는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쳇. 역시 다 알고 있었던 거냐."


 수첩 사이에 꽂혀 있는 자신의 사진에 마리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진 속의 마리사는 골목 너머를 살짝 내다보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누군가를 몰래 살펴보는 모습이었다. 분명 며칠 전에 찍힌 사진일 터였다. 며칠 전에도, 마리사가 잠시 눈을 돌린 사이에 아야는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아야가 그때 어디로 사라졌는지 마리사는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마리사의 등 뒤였다. 그 사진으로 아야가 전하고 싶은 내용은 분명했다. 다 알고 있으니 적당히 그만두라고.


 "더 미행해봐야 의미 없다는 건가? 나 참. 그냥 말로 하면 어디 덧나나? 뭐 녀석답긴 하다만."


 마리사는 아야와 나눴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 아야는 마리사에게 미행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진 한 장으로 마리사는 미행을 포기하기로 했다. 아야는 자기 의도 따윈 입에 담을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말로는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마리사도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을 테니까. 오히려 말하지 않는 편이 더 쉬웠다.


 마리사는 수첩을 챙기고 모자를 썼다. 이제 이 자리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었다. 차라리 다른 소일거리라도 찾는 편이 훨씬 나을 터였다. 어차피 환상향에는 차마 말로 못 할 재미난 일들이 많으니까. 어쩌면 아야에게 당한대로, 마리사도 누군가를 골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간의 미행은 역시 완전 허사는 아닌 셈이었다.


 마리사는 그렇게라도 위안을 삼으면서 찻집을 나섰다.




 "생각보다 꼼꼼하게 썼네?"


 찻집에서 나온 아야는 마리사의 기록을 살펴보면서 중얼거렸다. 아야가 찢어낸 마리사의 수첩에는 지난 며칠간 아야가 인간마을에서 돌아다닌 장소가 시간과 함께 적혀 있었다. 물론 아야의 모든 행적이 적혀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야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많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아야도 마리사의 그런 노력에 살짝 감탄해버릴 정도였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이제 적당히 그만두겠지? 기념품도 줬으니."


 아야는 그렇게 말하면서 마리사의 메모를 찢어버렸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몇 번이고 더 찢어버렸다. 안의 글씨를 보고도 다시 맞춰볼 수 없을 정도로. 마리사는 재밌는 인간이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암만 그래도 자신을 미행하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적당히 재밌는 이야기도 해주고, 살짝 혼도 내주었으니 눈치껏 그만둘 터였다.


 아야도 얻은 게 없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살펴봤다. 마리사에게 보여줬던, 달의 신령이 찍힌 사진이었다.


 "키신 사구메라..."


 아야는 마리사가 알려준 이름과 능력을 다시 떠올렸다. 사실 사구메에 대하여 말해준 건 마리사가 처음이 아니었다. 지옥의 여신 헤카티아도 사구메의 능력을 알려주면서 아야에게 경고했으니까. 아야가 달의 함정에 빠졌을지도 모른다고. 아야는 그래서 확인해보고 싶었다. 사진 속의 존재가 정말 키신 사구메인지, 그리고 정말 사구메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마리사 덕에 그 사실을 확인할 순 있었지만 아야는 살짝 조급하게 움직여버렸다. 마리사는 이제 아야가 달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게 분명했다.


 "하여튼 세상엔 재밌는 게 많다니까."


 아야는 사진을 집어넣으면서 살짝 웃었다. 키신 사구메에게 이용당할 뻔하고, 그녀의 존재를 확인해보려다가 마리사에게 살짝 속마음을 들킨 게 분하긴 했지만 상관 없었다. 아야는 오히려 사구메라는 존재에, 그 능력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언젠가는 직접 만나서 상대해보고 싶었다. 이용당할 뻔한 복수도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었고.


 세상엔 아직도 재밌는 게 너무나 많았다. 말로 다 하지도 못할 만큼. 아야의 기사거리가 떨어질 일은 절대 없을 터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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