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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팬대] 역설의 존재모바일에서 작성

PRAN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5.08 0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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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에 봉인된 지 몇십 년 쯤 지났을 때였던 것 같다. 이치린과의 약속에 늦은 나는 지름길로 가려고 외딴 골목길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모퉁이를 돌아오니 굉장히 신기한 날개를 가진 소녀가 서 있었다. 그 소녀는 날 보자 빠른 걸음으로 도망갔다. 아니, 그냥 우연히 날 본뒤 급한일이 생각났을 수도 있다. 쫒아가볼까 생각했지만, 무턱대고 쫒아갔다가 지령전의 사토리 요괴마냥 걸리면 성가신 요괴이면 곤란하고,  이치린과의 약속도 있으니 그냥 지나갔다. 여기까지라면 단지 평소같은 일상이였겠지만 우연히도 두 번째 만남이 있었다. 아무리 지저생활에 익숙해졌어도 히지리도 없는 이곳에선 배유령의 본능이 때때로 올라오곤 했다.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었다. 이 곳엔 침몰시킬 배도 거의 없고 나보다 강한 요괴들도 많으니까. 그래서 생각해낸 대책은 아무리 온천을 위해서 오지 않을만한 지저 외딴 곳의 온천에 가는 것이였다. 온천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돌 따위를 던지면서 배를 침몰시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곤 했다. 그날도 이치린과 헤어진 뒤 온천으로 갔는데, 방금 전 보았던 신기한 날개의 소녀가 있는 것을 보았다. 본인은 나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아까 일도 있고 무시한 채 배를 침몰시키는 상상하기도 그래서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안녕?"
소녀는 뒤돌아서 나를 보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뭔가 기분나쁜걸. 조금 짜증났지만 굴하지 않는다.
"그나저나 나는 무라사 미나츠차고 하는ㄷ "친하게 지낼래?"
아깐 한숨을 쉬더니 이젠 내 말을 끊으며 친하게 지내자고 한다. 지저에 있는 요괴들은 왜 다 이런거지? 급작스런 대화에 나도 모르게 어라고 대답해버렸다. 심지어 내 말을 듣더니
"그래. 그러면 때때로 이곳에서 만나서 대화나 하자."
라고 말해버리며 날아간 것이였다. 왜 저녀석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 생각했지만 안나오자니 깨름칙해서 가끔씩 왔다. 몇 번 대화하면서 안 거지만 친해지니 첫인상과는 완전히 딴판이였다. 어느날 그 이유를 물어보니
"사실은 나, 누에거든. 평소엔 능력으로 본모습을 숨기고 다니지만 피곤하니 때때로 능력을 풀고 다녀. 내 본모습을 두 번이나 봤으니 차라리 친하게 지내자고 생각해서 그랬어."
이상한 점은 있었지만 대체로 납득했다. 그나저나 이제서야 이름이랑 종족을 알려주네. 나는 두번째 만남에서 바로 알려줬는데 말이지. 아무튼 그 뒤로는 자주 만나며 지냈다. 종족 때문인지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을 안 좋아해서 주로 내 이야기나 지저의 다른 요괴 이야기를 하곤 했다. 가끔씩 알려줘도 괜찮을 것 같은 본인 이야기도 안 알려줘서 싸운 적도 있지만, 대체로 그 쪽에서 먼저 사과했고 그런 날은 누에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몇 안되는 날이였다.


생각해보니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누에를 다른 친구에게 소개시켜줄 땐 본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이치린에게 소개시켜 줄 때도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길래 넌지시 물어봤더니, 사정이 있다면서 비밀을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이치린을 속이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여기서 뭐라고 하기도 그러니 비밀로 해 주었고, 이치린과 셋이 만날 때 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니 이치린도 누에라서 그런가보다 하고 나름대로 납득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치린을 속일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누에랑 얘기해서 다음에 만날 땐 본모습으로 나오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만나기로 한 전날, 간헌철 소동 때문에 갑작스럽게 지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나왔음에도 이치린과 나는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고, 곧장 쇼우를 찾아가 히지리의 봉인을 풀기로 했다. 순간 누에에 대한 것도 생각했지만, 사정이 있다고 했으니 이해해 줄 것이다. 정확히 설명해주지 않고 사정이 있다고만 하고 나와서 누에가 우울해 보이긴 했지만, 이것은 나중에 사과해야겠지. 한 두번 정도 누에처럼 생긴 누군가가 보는 듯한 모습을 봤지만, 등의 날개가 보인 적은 없어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누에가 일을 방해했단 사실을 알게 되자 누에에게 진심으로 화를 내버렸다. 이후 이 일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아 누에와 처음 만났던 그 온천에 가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문득 깨달았을 땐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가까워져왔고, 그 소리가 멈췄을 때 눈 앞에는 누에가 서 있었다.
"무라사... 정말 미안해."
누에가 제일 처음으로 한 말은 사과였다.
"난 무라사가 지상으로 나갔을 때 나를 떠난 건 줄 알았어... 그게 무라사의 소중한 사람이란 것도 모르고... 미안해..."
나는 이 말을 듣고 깨달았다. 그리고 누에를 안아주며 미안하다고 했다. 누에도 별 말 없이 내 품에 안겼다. 누에라서 괜찮은 것이 아니였다. 오히려 그래서 무슨 일인지 알려주어야 했다. 누에가 자신의 본모습을 알려준단 것은 약점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누에는 그 정도로 자신을 믿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본인은 히지리에 대한 생각에 빠져 누에를 생각하지 못했다. 누에는 얼마나 큰 배신감을 느꼈을까. 누에에게 필요했던 것은 단지 친구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날 이후, 누에도 명련사에 들어오게 되었다. 본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밝히는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과겠지, 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레이무들과 싸울때도 본모습이였다고 했을 땐 그냥 변덕이였나 생각해서 감동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가 뉘우치고 있었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무라사, 무슨 생각해?"
"아, 누에, 일어났어? 그냥, 우리 옛날 때 좀 생각하고 있었어."
"후훗, 뭔지 알겠네. 그리워라"
후훗 하고 웃는 누에 모습은 다른 사람이라면 매혹적일 수도 있었으나 힘이 약해져서 명련사의 안쪽 방에 누워있는 누에의 간병을 하는 나에겐 걱정 뿐이었다. 다들 누에의 걱정을 하고 있었지만, 절의 일이 있었기에 내가 누에의 간병을 책임지고 있었다.
"저기, 무라사. 내 얘기 들어줄 수 있어?"
"음? 물론이지."
"음, 그러니까, 나는 다시 낫긴 힘들꺼야."
"......"
"듣고 있어?"
"...그런 소리 하지마."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힘겹게 말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해 보였는데 갑자기 이렇게 약해지다니 아직도 믿기 어렵다. 거기다 이런 소리까지 하면.
"무라사니까 이런 얘기를 하는거야."
"......"
"어쩔 수 없어. 이게 누에란 종족의 운명이니까. 누에는 '불명'에 기반을 둔 요괴야. 이 '불명'이란 것은 아주 불안하지. 그래서 누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를 밝혀야 하는거야. 내가 무라사에게, 명련사의 일원들에게, 그리고 환상향에서 내 진짜 정체를 밝힌 이유고."
언제부터인지 눈물이 났지만, 누에는 얘기를 계속한다.
"처음엔 내가 누에란 걸 원망하기도 했어. 사라지지 않으려면 자신의 정체를 밝혀야 하는데, 그러면 누에로서의 힘이 약해지지. 매우 역설적이지. 누에란 그런 존재니까."
문득 생각해보니 지상으로 올라온 뒤 누에의 힘은 지저에 있을 때에 비해 더 약해지고 있었다. 그런 이유였나.
"하지만 이젠 정체를 더 밝히지 않으려고. 지금 난 내가 누에란 사실이 자랑스러워. 더 이상 나약해지긴 싫어. 지금이라도 누에로서의 죽음을 맞이하려고. 그래도 지금까지 오래 살아왔잖아?"
"죽지마... 부탁이야..."
나는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말한다.
"미안, 그건 안돼. 그래도 난 내 정체를 두 번째로 밝힌 게 무라사여서 기쁘게 생각해."
누에는 내 눈의 눈물을 닦으며 말을 계속한다.
"무라사... 지금까지 고마웠어. 이건 마지막 부탁이야. 내가 곧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줘..."
"......알았어"
"그래, 고마워. 난 힘드니 조금 잘게. 이번엔 좀 오래 잘 것 같아."
무라사는 누에를 옆에서 계속 지켜보았다. 그리고 누에가 잠에 들자 무언가 결심한 듯 방을 나선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사건이라고 볼 수 있어요. 여기서 사건이란 단지 명제나 서술같은 포괄적인 의미에요. 가령 제가 있는 것은 '내가 존재한다' 라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죠. 중요한 것은 사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제가 이곳에 있는 것은 '내가 존재한다', '이 곳이 존재한다.', '이곳은 내가 존재할 수 있다.' 와 같은 사건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죠. 중요한 점은, 부정하는 말도 사건들은 잇는단 점이에요. 예를 들어 제 여동생이 이곳에 없다는 '코이시가 있다.', '이곳이 있다' 등을 연결하죠. 비유하자면, 긍정문은 파란색으로 이어져 있고 부정문은 빨간색으로 이어져 있다고 할까요? 코이시가 없을 수도 있고,  이 곳이 없을 수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사건이 부정인가? 가 아니라 연결이 부정인가죠. 그렇다면 '코이시가 이곳에 있는지 모른다'라면 어떨까요? 이 경우 사건들은 어떻게 이어질까요? 정답은 잇지 못한다는 거에요. 이때 각각의 사건들은 서로를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증명해주지 못해요. 물론 수많은 사건들이 연결되어 있으니 이것 하나가 문제를 일으키지 못해요. 하지만 모든 사건들과 연결되지 못하는 사건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떤 사건과도 긍정적, 부정적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 그것이 바로 누에의 본질이에요. 홀로 떨어진 이 사건은 어떤 사건으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고, 사라지게 됩니다. 사실 누에란 정상적인 요괴가 아니에요. 굉장히 비정상적인 존재죠. 마치 꼭대기 위의 정지한 공같아요. 안정해 보이지만, 가벼운 충격으로도 굴러내리죠. 하지만 다른 사건과 연결되어도 이 꼭대기는 더 날카로워질 뿐 오목해지지 않아요. 이것이 누에의 역설, 누에가 비정상적인 이유죠."
"내가 아는, 아니 누구도 알 사실을 말하는 이유가 뭐지?"
무라사는 차갑게 쏘아본다. 하지만 사토리는 아랑곳않고 말을 계속한다.
"뭐 제 능력이 미움받는 이유는 단지 표면적인 생각 뿐 아니라 마음 속 깊은 생각까지 읽기 때문이죠. 본인도 처음엔 싫어했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하자 대체로 이해해주었죠. 그런데 무라사 씨는 유언이나 마찬가지인 약속까지 받아놓고서도..."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난 누에가 사는게 더 중요해!!"
"사실 누에 씨는 무라사 씨를 굉장히 믿고 있었어요. 과연 지금 같은 결과를 본인이 좋아할 지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누에의 본질을 잊고 누에란 사건을 모든 사건과 이어 버렸어요. 이제 당신 옆에 있는 자는 누에가 아니에요. 단지 호쥬 누에처럼 생긴 껍데기일뿐."
"듣기 싫으니 당장 꺼져."
무라사는 앵커를 들며 위협한다. 스펠카드가 아닌 진심의 위협이다.
"뭐, 누에 씨의 정체를 알던 첫 번째 친구로서 말씀드린거에요. 그럼 안녕히."
무라사는 앵커를 내려놓는다. 사토리의 말이 맞다. 누에와 약속히 끝난 뒤 본인은 미친듯이 누에에 대한 정보를 찾아다녔고, 모든 정보를 알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 정보를 수단을 가리지 않고 뿌려댔다. 사토리가 말한 정보는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알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결과는 자신 옆에 살아있는 누에이다. 사토리 말대로 누에란 비정상적인 사건을 억지로 붙잡아 놓은 지금 그녀는 단지 빈껍데기 같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에는 살아있다. 다른 사건들에 붙잡혀 살아있다. 본인이 누에를 살렸다.


"누에, 미안해. 그래도 이해해줄 수 있지?"
지금의 누에가 대답해줄 리 없었지만, 무라사는 누에가 끄덕였다고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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