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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팬대] 알겠니?

M.t_Thre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5.08 00: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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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건조한 소리가 체스판을 때린다. 승부의 시작을 알리는 단순한 한 수였을 뿐이지만, 현자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쳐나고, 시종의 얼굴엔 고뇌만 가득하다. 현자의 여왕 앞의 병사가 중앙으로 진출한다. 중앙을 먹으려는 정석적인 움직임. 시종은 한참을 고민한다. 이 힘 싸움을 받을 것인가.


결국 시종은 소극적으로나마 중앙에 힘을 싣기로 했다. 시종의 왕 앞의 병사가 짧게 전진한다. 지체없는 현자의 기사의 전진. 앞서 나간 병사를 받쳐주며 마찬가지로 중앙에 힘 싸움을 건다. 시종 또한 중앙을 빼앗길 수는 없기에 중앙의 힘 싸움을 받아친다.


현자의 주교가 날카롭게 찔러 들어온다. 힘 싸움을 위해 전진시킨 기사와 그 너머의 왕까지 위협한다. 저 주교를 잘라낼 방도가 없어, 시종은 자신의 주교로 기사를 보호한다. 현자는 기사를 취하고, 시종은 주교를 취했다. 아직은 어느 쪽에 득이라고 할 수 없다.


현자의 병사를 크게 진출해 중앙에 싸움을 걸었다. 물러설 수 없다. 시종은 싸움을 받았고, 병사 끼리 접전이 있던 자리를 이번엔 기사가 차지한다. 중앙의 상황은 다시 팽팽해져, 누가 먼저 움직여도 득을 보기 힘든 상황이 됐다. 시종은 왼쪽 공간에 눈길을 돌린다. 병사가 짧게 전진하는 것으로 주교의 길이 열렸다.


현자는 중앙의 밸런스를 이용해 기사를 흑의 진영에 가까이 붙였다. 언뜻 보기에는 위태로운 자리이지만 당장 저 기사를 끊을 행마는 없다. 하지만 중앙의 균형이 위태로워진다. 우선 시종은 현자의 기사를 의식하며 왕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왕과 탑의 자리를 바꾸어 왕을 단단히 보호하면서 탑이 중앙에 힘을 쓸 여지를 만든다.


서로가 주교를 움직인다. 정 중앙의 공간을 차지하기 위한 줄다리기. 돌연 현자의 여왕이 돌연 우측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시종은 전황을 빠르게 파악한다. 예사롭지 않은 퀸의 움직임. 의도는? 시종의 눈에, 방금 전 진영 가까이 붙은 기사가 보였다. 그렇다. 퀸의 움직임은 기사의 안전지대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리라. 시종 역시 여왕을 움직여 기사가 침투할만한 장소를 미연에 공략한다.


이번에도 현자의 여왕이 알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왕의 보호를 받는 병사를 잡아먹은 것. 그러니까, 여왕과 병사를 교환하려 든 것이다. 이 거래에 응하지 않으면 바보이리라. 왕이 진출해 여왕을 잡아먹는다. 왕이 노출되기는 하였으나 아직까지 위험함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현자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공부가 부족해 란.”


“예?”


탁. 현자의 기사가 전진한다.


“…앗!”


동시에 주교의 길이 열려 왕의 목숨을 노리게 됐다. 왕을 뒤로 뺀다면 구석으로 몰려 또 다른 기사에 의해 체크메이트가 나올 것이다. 전진밖에 답이 없다. 전진한 왕을 기사들이 추격하고 몰아세운다. 오로지 하나뿐인 길, 왕은 다시 앞으로 전진 한다.


너무 적진에 가까워져, 이젠 현자의 병사들이 왕을 위협한다. 전진, 또 전진. 위험한 수임을 알면서도, 시종의 왕은 우습게도 점점 적진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마지막 한 수. 이 수를 두면 자멸할 것은 뻔하지만, 어쩔 수 없다. 결국 마침내 시종의 왕이 현자의 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말았다. 현자는 왕을 움직이는 것으로 탑의 길을 열어 체크메이트.


서로가 잃은 기물은 엇비슷하다. 오히려 현자의 여왕이 잡혔으니, 그 순간부터 시종의 차례… 였어야 했다. 그 순간부터 함정이었을 줄이야. 그래, 유카리님이 그렇게 허술하게 수를 둘 리가 없었겠지.


“…도저히 이길 수가 없네요. 요괴 앞의 인간이 이런 심정일까요.”


인간이 되어 본 적은 없지만.


란은 한숨을 쉬며 몸을 뒤로 젖혔다. 11전 10패 1무. 조식을 먹고 시작한 여흥이 점심 식사 때가 될 때 까지, 시종은 현자를 한 번도 꺾지 못했다. 한 편, 유카리는 못마땅하다는 듯, 부채를 탁! 소리가 나도록 접고선 말했다.


“란. 그러니까 네가 공부가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는 거야.”


“예?”


“요괴 앞의 인간이 아니야. 인간 앞의 요괴란다.”


“…예?”


란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유카리를 바라보았다. 무법지대는 아니지만, 무력이 있는 존재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은 이 곳 환상향에서, 요괴는 절대적인 강자이며 인간은 절대적인 약자이다. 그런데 인간 앞의 요괴라니?


“우리 요괴는 약하단다, 란. 이게 무슨 뜻인지 잘 생각하면서… 점심은 규동으로 하자.”



탁, 탁, 탁. 건조한 소리가 도마를 때린다. 현자와 마주앉아있는 것도 아니건만, 시종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하다. 차라리 체스를 마저 두는 것이 편하겠어. 시종이 답을 낼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시간은 점점 흐르고, 현자에게 상을 내오는 시종의 표정은 요괴나 인간이라기보다는, 못 다 한 숙제를 선생님께 건네는 학생의 표정에 가까워졌다.


겸상한 두 사람의 식사는 조용했다. 물론 시종의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못했지만. 유카리님이 수저를 내려놓으시면- 식사가 끝나면- 저 차를 다 마시시면- 란은 풀 수 없었던 알쏭달쏭한 퀴즈의 해답을 내놓으라는 요구가 있을 것이고, 란은 ‘우수하다고 생각했던 우리 아이가 실은 이렇게나 아둔할 줄이야!’ 라며 후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대면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밥이며 차가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란. 너는 뭐지?”


“예?”


“어차피 내가 내 준 숙제의 답은 찾지 못했겠지… 그렇지?”


“…네에.”


후루룩. 유카리는 차를 한 모금 들이키고 다시 말을 이었다.


“너는, 구미호 요괴야. 그렇지? 그러면 첸은? 네코타마.”


“나는? 경계의 요괴.”


유카리는 이미 그녀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치는 것이 무엇인지 란은 알 것 같았다. 오랫동안 살아온 이는, 갖고 있는 것도 많다. 식 후의 그녀가 하늘을 바라볼 때면 항상 그녀는 과거를 추억했다.


후루룩, 다시 한 모금 의 차를 삼킨 유카리는 말을 이었다.


“얼음의 요정. 흡혈귀. 지박령. 오니, 야마비코, 인어, 화차, 하시히메, 코마이누… 이름이 붙는다는 것은 요괴의 특징이 완성되고 만다는 뜻이지. 그리고 그들은 입에서 입으로, 글에서 글로, 그들의 모든 것이 전해져 내려오게 된단다. 절의 승려들을 본 일이 있니?”


“예? 아, 예.”


갑작스러운 질문에 란은 당황하면서 대답을 했다. 유카리는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녀들 중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건 누구일까?”


“그야… 히지리라는 승려가 아닐까요? 어쨌든 그들도 지금은 환상향의 일축을 담당하는 세력이니 만큼, 통솔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를…”


“아아, 질문이 나빴네. 그렇다면, 그 들 중에서 누가 가장 이질적일까?”


“예?”


어째 반문만 하게 되는군. 란은 자조적인 생각을 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들은 누구나가 개성이 넘친다. 요마를 사멸하는 부처의 은을 입는 요괴, 요마의 힘에 기대어 부처를 따르는 여승, 인요 일체의 여승, 인간이 요괴가 된 지박령… 도무지 누가 가장 이질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잘 모르겠습니다.”


“…뭐. 그럴 줄 알았어. 정답은 쿠모이라는 아이란다. 어째서인지 알겠니?”


그 이유를 안다면, 방금 전의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었겠지. 란은 침묵을 유지했고, 유카리는 말을 이었다.


“뭐, 간단해. 그 아이야말로 인간 그 자체이니까.”


“예? 그녀는 반요 같은 존재가 아니었던가요?”


“아니야. 너도 지금 이야기 했지? ‘반요 같은 존재’라고. 그래. 그녀는 반요 같은 존재이지만, 반요는 아니야. 그러면 인간일까? 방금 인간 그 자체라 불렀지만, 그녀는 인간도 아니지. 인간도, 요괴도 아닌 무언가.”


“그리고, 그런 존재가 된 건 그녀가 인간인 시절에 있었던 일이야.”


유카리는 말을 끊었다. 유카리의 스키마를 타고 와르르르, 란과 유카리의 사이로 체스판과 기물들이 떨어져 내렸다. 방금 전 까지 식사를 하던 상은 온데간데 없었다. 체스판과 기물들은 기묘하게도 흐트러짐 하나 없이 금방이라도 승부를 시작할 수 있도록, 모든 말들이 정갈하게 정리가 되었다.


“…이 체스도, 장기도, 바둑도. 경우의 수는 많지만… 결국 한정되어 있어. 그리고 그 한정된 경우의 수에서, 내가 어떤 수를 두느냐에 따라 그 경우의 수는 더더욱 좁혀 들어가지.”


유카리는 말을 옮기기 시작했다. 백의 말과 흑의 말이 번갈아 움직인다. 언뜻 보기에는 괜찮은 수라고 생각되는 수가 오간다. 그리고 그 흐름은 마치 마법처럼, 병사는 병사를 잡고, 마지막 남은 병사는 기사에게, 기사는 주교에게, 주교는 탑에게, 탑은 여왕에게, 여왕은 왕에게… 남은 것은 왕과 왕. 한 칸을 남기고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시 체스판이 갈아엎어진다. 탁, 탁, 탁. 백의 병사가 흑의 병사를 잡았다. 섣불리 그 병사를 잡으려 들었다간 더 큰 손해를 입을 수도 있기에, 흑의 병사들은 침묵한다. 탁, 탁, 탁. 점점 흑의 공간이 좁아지고 백의 공간이 넓어진다. 경기 후반, 백의 군대는 누구 하나 쓰러지지 않았다. 흑에게 남은 것은 옴짝달싹 못하는 여왕과 왕.


“이 게임에는 가능성이 무한한 것 같지만… 결국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승리로 향하는 길이 몇 개 정해져 있단다. 그 길을 많이 아는 사람이 결국 승리하는 것이고. 그래. 마치 요괴처럼.”


“흡혈귀는 피를 빨아먹는다. 심장에 말뚝을 박아라. 오니는 힘이 천하의 장사이다. 콩을 던져라… 요괴들은 글자로, 말로, 그들의 특징을 표현할 수 있어. 그 믿음이 그들을 만들어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들은 약해. 그들이 내려다보는 인간에게 퇴치될 수 있을 만큼.”


“인간… 인간은 어떻지? 그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단다. 힘이 강한 인간, 약한 인간, 머리가 좋은 인간, 나쁜 인간, 심지어는… 그래, 그 소녀처럼… 요괴마저… 될 수 있는 존재…”


“란. 너는 시간을 멈출 수 있어?”


“…아니오.”


“란. 나는 마법을 다룰 수 없어. …비슷한 일은 할 수 있어도.”


“…예.”


“란. 우리는 결계를 다룰 수 있지만. 인간 또한 그럴 수 있지.”


“화차는 시체를 훔쳐야 해. 흡혈귀는 피를 빨아야 하고, 야마비코는 소리를 반복해야 하지. 우린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어. 벗어나선 안 돼. 그랬다간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버려. 인간과는 다르게.”


"흑백의 마법사, 악마의 관의 메이드, 하쿠레이의 무녀… 그런 수식어들은, 그녀들이 인간이고 난 이후에 붙는 단어들이야. 화차, 흡혈귀, 야마비코… 이런 단어들이 있고 나서, 우리는 요괴가 되는 것이고."


“란. 우리는 도태된 거란다. 인간의 가능성에 밀렸으니까. 이젠 바깥에선 더 이상 경쟁 할 수 없으리만치,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 강인해졌기 때문에 이 비참한 목숨이 다 할 때 까지 연명할 수 있도록 해주는 모형정원 속으로 도망쳐 들어온 거란다.”


탁. 백의 여왕이 흑의 여왕을 잡았다.


“알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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