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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팬대] 사화(私話)

NANND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7.20 17:05:55
조회 546 추천 16 댓글 5

 쌀쌀한 바람이 옷 틈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코끝을 아리게 하는 공기가 새초롬했다. 누군가 후, 하고 내뱉는 한숨은 하얀 입김이 되어 얼굴을 가렸다. 이제 겨울이 다 와, 단풍을 머금고 있던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을 보였다. 벼를 베어낸 논 일부엔 보리가 자라고, 산 틈으로 뉘엿뉘엿 지는 해가 이를 비췄다.

인간마을 바깥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카미시라사와 케이네는 향림당에 들려 필기도구를 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푸른 하늘과 저녁놀이 한데 섞인 하늘이 썩 볼만한 풍경인지라, 케이네는 느긋이 산책을 하는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그러다 길옆의 풀떼기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산고양이가 쥐를 잡겠거니 했던 케이네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곧 풀 속에서 으으, 하고 앓는 소리가 났다. 저벅거리며 다가가 보니 남루한 사내 하나가 제멋대로 널브러져 하품을 하고 있었다. 사내는 뻐끔거리는 눈으로 하늘을 보다, 벌써 이 시간이 되었냐며 욕지거리를 뱉었다. 케이네가 이를 모두 지켜보다 무슨 연유로 여기 있느냐 묻자, 사내가 능청스럽게 답했다.


“밭일을 돕다 잠시 누웠는데, 벌써 이 시간이 되었네. 그런데 그쪽은 누굽니까?”

“저는 마을에서 선생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용무가 있어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입니다.”

“허 그러시군. 그런데 밖은 당신 같은 여인이 돌아다니기에 좋은 곳이 아니올시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괜찮습니까?”

“나야 막사는 놈이라 요괴가 덤비든 뭐든 아무래도 좋지.”


 사내가 말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누런 이빨 사이에서 냄새가 풍겼다. 그는 교육과는 거리가 먼, 제멋대로 사는 이였다. 이런 사람도 세상에 있는 것이다.

집이 어디냐는 케이네의 물음에, 사내는 산 쪽을 손가락으로 대충 가리키며 저기 어디에 있다 말했다. 음흉한 얼굴로 뭣하면 따라오겠느냐는 말에, 케이네는 단호히 거절하며 빨리 귀가하라 했다. 거들먹거리는 발걸음으로 떠나는 사내의 입에서, 선생질이나 해댄다는 말이 케이네의 귓가에 똑똑히 들렸다. 예의도 없는 사람이다. 케이네는 새로 산 물건의 기쁨이 무색해졌다. 귀가하는 걸음걸이도 평소보다도 훨씬 빨라졌다.


 케이네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다 저문 때였다. 향림당에서 사온 물건들을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고 주린 배를 채우려 저녁 찬거리를 꺼내 대충 해치웠다. 꽤 깐깐한 성격인지라, 대충했다곤 해도 밥과 국, 짠 반찬은 있었다. 순식간에 식사 시간을 끝내고 케이네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붓을 한 손에 들고, 지난 역사서를 꺼내 들어 훑어봤다.


 환상향은 본디 용맹한 정신을 지닌 퇴마사와 요괴가 세운 곳이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 이를 기억하는 인간은 거의 없다. 벌써 몇 백년은 지난 일이며, 사람들은 조상이 퇴마사였다는 걸 깨닫기 이전에 오늘을 살아 야했다. 요괴에 맞서기 이전에 당장 먹을 밥부터 구해야 했다. 그런 일 따위, 굳이 하겠다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그만이었다. 때마침 하쿠레이의 무녀라는 자가 나타났으니 따로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사실상 인간마을에서 퇴마사의 맥은 끊겼다.

 그 뒷배경에 어느 역사가가 있었다. 만에 하나 요괴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한 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계보를 먹어치웠다. 결과, 사람들은 자신의 조상을 잊고 평범한 삶을 살게 됐다.


 케이네는 요 며칠 서당도 쉬면서 역사를 수정하는 데 전념을 다 했다. 역사서를 다시 제자리에 꽂아 넣고 나니, 케이네는 향림당에서 산 펜을 쓰는 걸 깜빡했다. 사용해보지도 못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도구를 정리하니, 쌀쌀한 밤바람이 조금 열린 창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틈을 닫으려 바라본 창밖엔 어느덧 달이 다 차오르고 있었다. 이틀 뒤면 보름이다. 또 그로부터 이틀 뒤면 새해다. '요즘 열심히 했으니 이번 보름은 일을 덜지 않을까'라고, 케이네는 생각했다. 창문이 닫히고 방 불이 꺼졌다.



……



 인간마을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움직임으로 부산스러웠다. 절 앞을 지나갈 때는 요괴들이 나와 송년 법회를 연다며 경을 읽어댔고, 산에서 내려온 무녀는 신년맞이 축제를 연다며 오미쿠지를 가져와 사람을 끌어들였다. 개중에는 자신이 가르쳤던 아이들도 몇 있어, 케이네는 작은 반가움을 느꼈다. 아이의 반응을 보아하니 대길이라도 뽑았나 보다.

 인파를 지나 케이네는 한 찻집에 들어갔다. 곧 붉은 머리를 푸른 리본으로 묶은 점원이 그녀를 반겨줬다. 목을 가린 빨간 천이 인상적이었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인물이라 케이네가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자, 어딘가 눈치가 보였는지 점원은 서둘러 자리로 안내했다. 케이네는 당고 몇 가지와 녹차를 주문했다. 곧잘 학부모들이 선물로 이곳의 물건을 가지고 오곤 했지만, 직접 자리하게 된 것은 케이네도 처음이었다.


“올해도 다 갔구먼.”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더랬지.”

“뭔가 일이 있지 않았는가?”

“어제 한 내기는 내가 이겼다네.”

“에잉 말 같지도 않은 소릴. 세키쨩, 이것 좀 더 줄래?”


 혼자 자리하게 되어 그런지,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가 유독 케이네의 귀에 잘 들렸다. 곧 주문한 물건이 나왔다. 갈색 소스가 발린 윤기가 나는 당고와 초록, 분홍 그리고 흰색의 삼색 당고다. 직접 만드느냐는 케이네의 질문에, 점원은 “대부분 그렇지만 이건 근처의 노점상에게 납품받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언젠가 케이네도 본 듯했다. 달에서 왔다던 토끼들의 노점상. 직접 사 먹은 적은 없었지만, 곧잘 학생들이 들고 다녔다.


 과하게 달지 않은 맛이 차와 잘 어울렸다. 달달한 향내가 입안에 맴돌자 케이네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이제야 쉬는 느낌이 나는 듯했다. 이제 보니 가게의 의자도 꽤나 푹신하다. 얼마 안 되는 휴식시간이 다 지나기 전에, 케이네는 점원을 다시 불렀다.


“실례합니다만, 혹시 카가미모찌도 취급합니까?”

“떡 두 개에 귤을 올린 그것 말씀이시죠? 네네, 있어요.”

“그럼 하나 포장해주십시오."

“네에~”


 찻잔의 마지막 방울이 사라지고 주문한 물건이 나왔다. 책만 한 높이의 나무 상자다. 앞면을 슬쩍 열어 확인해보니 빨간 도료로 코팅이 된 나무판 위에 먹음직스런 떡 두 개, 그리고 싱그러운 귤 하나가 맨 위로 올라가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과한 장식이 없는 것이 케이네의 마음에 들었다. 나름의 새해맞이를 위함이었다.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인파를 몰고 있던 무녀는 어느새 돌아갔다. 사람들의 열기는 사라지고, 차게 식은 공터만이 자리했다.


 곧 길 저만치에서 익숙한 행색을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잔뜩 헤지고 때가 묻은 더러운 옷과 정돈되지 않은 머리와 수염. 사람들은 그가 옆을 지나가면 얼굴을 찡그리며 다분히 의도적으로 길을 비켜섰다. 어제저녁에 만난 그 사내가 틀림없었다. 먼저 케이네에게 아는 체를 하는 건 그쪽이었다.


“어어, 전의 그 선생이시구만? 반갑습니다.”

“예, 안녕하세요.”

“손에 들린 것은 무엇인가? 새해맞이라도 하려는가 보지?”

“그쪽이 알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까칠하게 굴긴. 그러면 인기가 없다오."

"별로 얻고 싶지도 않습니다만. 마을엔 왜 온겁니까?"

 케이네는 사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사내의 집은 산 언저리에 있다고 했다.


“인간 마을에 인간이 온 건데 뭐 그렇게 말하시나. 뭐, 히에다 아가씨께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말이지. 산에 사람을 습격하는 요괴가 있거든.”

"그걸 왜 히에다에게...."

“나 혼자서 상대하는 건 무리일 것 같으니까, 사람 좀 빌려달라고 하려고. 거긴 종도 많잖아?"

"......."

"흥, 내가 못 미더운 눈치군. 뭐 됐네.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사내는 케이네의 앞을 똑바로 지나쳐갔다. 스쳐 지나간 자리엔 땀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게 밖 자리에 앉아있던 노인네들이 이런 말을 했다.


“자기가 퇴마사의 후예느니 뭐니 하더니, 꼴이 아주 거지꼴이구먼.”

“진짜 퇴마를 하는 건 저기 무녀나 마녀가 하는 데 말이네.”

“그러게나 말여.”


 케이네는 노인들의 대화에 관심이 갔다. 지금껏 퇴마사의 후예라 자청하는 사람은 인간 마을에 없었다. 있을 수도 없었다. 자신이 그 연결고리를 끊었기 때문이다. 퇴마사 계보의 역사를 지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게 하고 교체시켰다. 때문에 인간마을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조상이 상인, 농부, 장인 따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외가 생긴 것이다.


“실례합니다, 어르신. 저는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카미시라사와 케이네라고 합니다. 혹시 그 얘기를 더 들려주시겠어요?”


“오, 당신이 그 선생님이셨군. 손자가 말을 많이 했다오.”

“저 사내라면…. 즈그 아버지부터 요괴 퇴치사다 뭐다 허더니, 결국 요괴한테 당해 일찍 가부렀어.”

“자식이라고 하나 있는 놈도 똑같이 저러고 있고.”

“마을에서 보기는 힘들었을 것이여. 맨 밖에서만 지내니께.”

“저 녀석이 먼저 죽을지 자네가 먼저 죽을 지 내기 할텐가?”

“에잉 이놈이 나한테 디질라고.”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그려요. 아이들 가르치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내년에 내 손자도 간다고 허던디 잘 부탁해요잉”

“네네. 맡겨주세요.”


 케이네는 노인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사내의 존재로 조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귀가하는 걸음걸이는 평소보다도 훨씬 느려졌다.

퇴마사. 환상향에 퇴마사를 자처하는 사람은 얼마 없다. 하쿠레이의 무녀나 마법의 숲에 사는 마법사 같은 허용된 소수의 인원만이 환상향의 이변을 처리했다. 역사도 그들의 영웅담만을 다뤘다. 이런 환상향의 관계 속에서 사내의 존재는 필요치 않았다. 요괴에게 맞서는 인간은 그들로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사내는 환상향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인간마을이든 어디든, 그는 딱히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 사내가 어째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케이네는 생각했다. 정사로 기록되지 않은 역사라면 가능할 것이라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이라면, 아비가 자식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였다면,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라고.


 집에 도착했다. 포장해온 카가미모찌는 책상 옆에 두었다. 케이네가 생각하는 가장 신령스러운 장소였다. 책상 앞에 앉아 다시금 역사서들을 꺼내고 펜을 들었다. 행여 퇴마사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훑어봐도 사내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어떤 퇴마사로부터 내려온 계보일지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식적으론 지워진 역사고 자신이 몇 번이고 검토했던 기록들이었다. 이제 와서 다시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사내의 역사는 자신이 지웠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케이네는 한숨을 내뱉으며 아무 종이에 펜을 그었다. 그러자 금속으로 종이를 찢는 기분 나쁜 감각만이 돌아왔다. 어제 산 펜인데 나오질 않는다. 불량이다. 내일은 다시 향림당에 들릴 필요가 있었다.



……



“확실히 그렇군. 자네가 산 펜은 ‘만년필’로, 잉크를 통해 글을 쓰게 하는 물건이네. 잉크가 나오지 않으면 쓸모가 없지. 잉크는 채워주겠네. 잠시 기다리게.”


 케이네에게 만년필을 건네받은 린노스케는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 향림당 내부는 기름 난로 덕에 따듯한 공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 외에도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물건들이 꽤 있어, 케이네는 기다리는 동안 이를 구경했다.


 밖에 있던 커다란 너구리 동상, 안쪽으로 들어왔다. 눈비에 맞으면 관리하기 힘들어서인 모양이다. 수상한 네모박스와 정체불명의 도구 두 개. 도구를 손으로 쥐어보니 손에 감기는 그립감이 상당히 좋았다. 앞에는 ‘플레이스테이션’이라고 적혀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벽 쪽 선반에 작은 제단과 함께 카가미모찌가 올라가 있었다. 여기도 나름대로 신년맞이를 하는 듯 했다.

 케이네가 관찰을 끝낼 때 쯤, 린노스케가 나왔다.


“잘 나오는군. 한번 확인해보게.”


 케이네는 만년필의 외관을 보고 샀었다. 옆에서 점주가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긴 했지만 그래도 용도는 글을 쓰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쓰면 나오겠거니 하고 사버린 것이, 다시 오게 된 화근이었다.

 케이네는 만년필을 건네받아 종이에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붓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지만, 썩 재미가 있었다. 꽤나 아무렇게나 흘려 적어도 멋들어져 보였다.


“충전을 시켜두지 않고 넘긴 건 나의 실수네. 이거 실례를 범했군.”


“뭐, 괜찮습니다. 저도 미리 확인해둘 걸 그랬네요.”


 물건을 확인한 케이네는 린노스케에게 새해 인사를 남기고 향림당 밖으로 나갔다. 새해가 오기 전에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해서였다. 따듯했던 건물 안과는 달리, 밖은 꽤 쌀쌀했다. 조금 나른해졌던 정신도 찬 바람에 깨었다.



……



 케이네가 마을로 돌아오니 그곳엔 어수선한 공기가 돌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의 것과는 사뭇 다른, 불안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누군가는 “새해가 오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이라고 말했다. 케이네는 인파의 중심으로 향했다. 그곳엔 짚으로 엮은 멍석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엔 시체가 깔려 있었다.


“어디 야채 가게 주인이 장작을 구하다가 찾았다지?”

“자네 누군지 아는가?”

“모른다네. 새해가 오기 전에 액땜 제대로구먼.”


 호기심 많은 아이 하나가 멍석을 들춰내자, 군데군데 찢긴 상처들과 멍들로 가득한 얼굴이 나왔다. 어른들이 서둘러 닫았을 땐 이미 대부분의 사람이 본 상태였다.


“심한 몰골이었어. 요괴에게 당한 거겠지?”

“에구 무서워라. 올해는 조용히 지나가나 했더니.”


 알아보기는 조금 힘들었지만, 케이네는 알 수 있었다. 요 며칠 마주쳤던 그 사내였다. 산에 사람을 습격하는 요괴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상처와 정황으로 추측하건대 홀로 요괴에게 맞서려던 듯했다. 그리고 그 말로가 이것이다. 케이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지 아비를 따라가는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어디선가 경을 읊으며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승복을 가지런히 입은 명련사의 주지승이 눈을 감고, 합장을 하며, 요괴들의 호위 속에서 시체에게 다가갔다. 사람들은 길을 비켜섰고, 개중에는 똑같이 합장하며 허리를 숙여 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분께서는 연고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이 불쌍한 중생을, 저희가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제사를 치러드리겠습니다.”


 이 말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길 한쪽에 두느니, 빨리 사라지는 게 편한 사람들이었다. 몇몇 사람은 승려를 향해 박수를 쳤고 요괴들은 멍석을 들어 절로 옮겼다. 그렇게 사내는 명련사 뒤에 있는 묘지에 묻혔다. 인간 마을의 퇴마사는, 요괴의 불경 소리를 들으며, 요괴의 절 뒤에 묻혔다.




 쌀쌀한 바람이 옷 틈을 스쳐 지나갔다. 코끝을 아리게 하는 공기가 새초롬하다. 누군가 후, 하고 내뱉은 한숨은 하얀 입김이 됐다. 저녁 노을빛이 내리고 보름달이 하늘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케이네는 집으로 돌아왔다. 면식이 생겼으니만큼 사내의 명복은 빌어주었다. 이제, 퇴마사의 역사는 완전히 정리되었다.

 케이네는 창밖의 희미한 보름달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백발에 푸른빛이 감돌던 머리칼은 초록색으로 점차 변해갔고 양 머리끝에선 뿔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역사를 새로 쓸 때가 왔다. 인간마을은 백택의 요기에 휩싸였다.


 때는 12월 30일. 인간 한 명이 산에서 나무를 캐다 요괴의 습격으로 사망함. 시신은 명련사에서 수습함.


 사람들은 이렇게 기억할 것이다. 아니, 그마저도 새해가 밝아오면 축제와 함께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사내는 어디까지나 그들에게 남이었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사람이다. 사내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요괴에 맞서다 최후를 맞이했음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알아주지 않는 선행을 하다 끝이 났다. 사내는 아무렇게나 사는 건달에다 예의라곤 없는 불경한 자였으나, 그가 하는 일은 인간을 위한 일이었다. 정사엔 기록되지 않지만, 누군가에겐 필요할지도 모를 일들.

 케이네는 문득 생각했다. 자신이 하는 이 일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곧바로 ‘환상향을 위한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인간을 위한 일은 아님을  깨달았다. 이런 사사로운 것까지 남길 필요는 없다. 그것이 환상향을 위해서라면.

 케이네는 입안이 텁텁해졌다. 물이라도 마시려 방 밖으로 나가니 누군가 대문을 두들기는 사람이 있었다.


“케이네, 있어?”


“모코우?”


 케이네는 문틈을 조금만 열어 밖의 사람을 확인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백발, 조금 해진 셔츠, 붉고 잔뜩 부적이 붙은 펑퍼짐한 바지. 그리고 손에는 보따리 같은 것이 있었다.


“미안, 조금 더 일찍 찾아올 걸 그랬을까.”


“아냐, 어서 들어와.”


 모코우는 익숙한 몸짓으로 집으로 따라 들어갔다. 선물로 보이는 보따리를 탁자 위에 올려두고 방석을 꺼내 앉았다. 모코우는 제집에 온 양 팔을 들어 쭉 기지개를 켰다. 가만히 있기는 머쓱했는지, 케이네도 이를 따라 했다.

 케이네가 물었다.


“들고 온 건 뭐야?”


“아아. 영원정 쪽에서 줬어. 올해 마지막 떡이라면서.”


“흐응, 직접 찾아갔어?”


“아니, 절대로. 일은 어때? 이번 달은 무슨 일 없었어?”


“……있었지.”


“들려줘. 아, 떡 갖고 온 거랑 차 가져올게.”


“그래. 고마워, 고마워 모코우.”


 달에 한번, 모코우는 케이네가 요괴로 변해 역사를 만들어 낼 때 찾아오곤 했다. 역사가 되지 못한 사사로운 일들을 들으러 오는 것이다. 겸사겸사 케이네의 안부도 확인하고 이야기도 들어주곤 한다. 케이네도 모코우에겐 이런저런 말들을 술술 털어놓게 되어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그러면 간혹 “살면서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었어!”라고 답하곤 했는데, 이 반응이 재밌기도 했다.


"찻잎 어딨어 케이네?"


"어라? 거기 없어? 옆에 선반 뒤져볼래?"


 보름달이 뜬 기나 긴 밤이었다. 오늘은 어떤 사내에 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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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53368 낙성대 마이너 갤러리입니다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8 28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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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53346 구경중인 상붕이면 개추 ㅋㅋ 동갤러(211.235) 06.17 138 13
8453345 불쌍한 놈은 아님 [47] 동갤러(182.227) 06.17 64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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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53338 동방 3D 액션 게임 뭐 있었지 [3] ㅇㅇ(61.80) 06.16 11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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