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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팬대] 마법과 기술의 장 (1/2)(최종 수정본)

ㅇㅇ(1.227) 2020.07.21 14:03:09
조회 256 추천 11 댓글 0
														

집 안은 냉기로 침묵하고 있었다. 불빛이 꺼진 전등에는 어둠이 흐르고 있었다. 내 체온으로 덥혀진 이불 속만이 냉암으로부터의 유일한 도피처였다. 발 끝으로 한기가 스칠 때마다 그 따뜻함이 귀중하게 느껴졌다. 나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한숨을 쉬었다. 김이 뿜어져 나왔다. 그제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한겨울이라지만 실내가 이렇게 추울 리가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이불을 둘둘 만 채 일어난다는 타협책을 택했다. 이부자리에서 콩콩 뛰며 나아가는 내 모습이 퍽 자랑스러웠으나, 잠옷 차림으로 이불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살 행위였다. 가까스로 침실 문을 열고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가려던 순간, 나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중대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관리비를 못 내 수도고 보일러고 다 끊겼을 거란 사실이다.


“염병할……”


마음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한탄이었다. 마지막 수입이 언제였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한 짜증과 연민으로 몸을 부들거리고 있자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이런 아침부터 찾아올 만한 누군가가 있을까? 적어도 내 좁은 지인관계에는 그런 부지런한 새가 없었다. 하필이면 요즘 마법사만을 골라 린치를 가한다는 소문도 심상치 않게 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청각을 곤두세우며 아래로 내려갔다. 아니, 정확히는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얼어붙은 발목은 내 통제를 벗어난 지 오래였고, 자유를 갈구하며 펄떡거렸다.


“으허헉!”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1층 현관까지 이불을 타고 쭉 미끄러지다 급정거를 한 나는 그 기세를 몰아 출입문을 들이박았고, 때마침 문을 열어보던 케이네는 고스란히 전해진 충격에 튕겨나갔다. 그녀가 들고 있던 등불은 뒤에 있던 앨리스의 외투에 휘둘렸고, 불길이 옮겨붙은 앨리스의 옷은 빠르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앨리스는 기겁하며 눈밭에 몸을 굴렸다. 나는 황급히 구비되어 있던 소화기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같은 생각을 한 케이네 역시 소화기에 몸을 던졌으며, 나와 케이네의 이마는 상견례를 할 수 있었다. 그 뒤의 일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내가 기절해 버렸기에.


진부한 표현이지만, 낯선 천장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태클을 걸고 싶어지는 천장이었다. 요즘 천장은 반쯤 태워 놓는 게 유행인가? 나는 급하게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가 온몸에 전해지는 통증에 다시 드러누워 버렸다.


“괜찮나, 마리사?”


케이네의 목소리였다. 옆을 보자 케이네가 걱정과 미안함이 섞인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앨리스 또한 그을린 옷을 입은 채 그녀의 옆에 서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소설 마냥 맥이 빠지는 선문답이 진행되진 않았다. 이럴 때만 영민해지는 내 머리 덕이었다.


“제 집이 불탄 거로군요.”


의외로 목소리는 담담하게 나왔다. 지나치게 충격을 받으면 사람이 차분해진다고들 하는데, 아마 그런 경우인 것 같았다. 케이네는 어쩔 줄 모르며 당황하고 있었고, 앨리스는 역시 내 오랜 악우답게 가감없는 비평을 했다.


“너 망했어.”


“나도 알아, 쌍년아.”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맹세컨대 이건 광기의 전조가 아니다. 카타르시스를 삶에서 체험해 보았기에 터뜨릴 수 있는, 그야말로 진정한 행복…… 은 개뿔. 나 진짜 어떡하냐. 지금의 삶이 바닥인 줄 알았는데, 그 밑에 시궁창이 있을 줄은 몰랐다. 우리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시여. 꼭 이렇게 해야만 속이 시원했습니까? 불행 중 다행으로, 케이네의 이어지는 말에 희망을 되찾을 수 있었다.


“미안하네, 마리사. 피해액에 대해서는……”


“전액 배상?”


“과실 비율을 따져봐야 알겠지만 전액은 힘들 것 같고. 보험 들어 놓은 거 없나?


“입에 풀칠도 못하는데 보험은 무슨 보험입니까.”


“그럼 30% 정도가 한도일 것 같은데.”


희망 고문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집 밖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가 내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허물어진 천장, 새까매진 벽, 흔적도 없이 사라진 가구들…… 뻥 뚫린 구멍들로 불어오는 삭풍이 무서우리만큼 차가웠다. 하지만 뼛속까지 스며드는 냉기가 혼란스럽던 마음을 다잡아주었다. 실지로 이런 일이 한두 번인가? 풍비박산나기 일수인 하쿠레이 신사에 비하면 내 집은 축복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기실 창고나 다름없는 내 집과 요괴들의 놀이터인 신사를 비교한다는 것은 엇나간 비유였지만, 그런 세세한 부분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었다. 미약하게나마 활력이 돌아온 나는 케이네를 상대로 침착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이런 꼭두새벽에 찾아온 이유가 뭡니까? 어지간히 중요한 일인 것 같은데.”


나를 평정심의 화신쯤으로 오해하진 마라. 나는 어디까지나 온 신경을 배상금에 기울이고 있었고, 이런 얘기를 꺼낸 것도 상대의 요구를 듣고 교섭을 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물욕적인 대처라 할 만했다.


“마을 내에서의 마법 사용을 금하는 규정을 만들까 하는데, 미리 전해주려고.”


케이네의 말에 나는 귀를 긁적였다.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손을 그대로 쓸어내려 턱을 괴었다. 천장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도 한참 후에야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농담이죠?”


“안타깝게도.”


“……썅.”


케이네는 적잖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렇기에 내가 꺼낼 수 있는 비난도 거의 없었다. 제길, 나도 안다. 요즘 마법사들이 사고를 꽤나 치고 다닌다는 것을. 그리고 거기에 한 몫을 보탠 것이 나란 것을. 사실 이렇게 케이네가 직접 찾아와서까지 귀뜸을 해준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전면적인 마법 사용을 금지한다는 얘기에 내가 느끼는 감정은 불합리함뿐이었다. 유일한 인간 마법사인데다, 정석적인 마법 대신 독자적으로 창조해낸 마법을 쓰는 나였지만, 어쨌든 주변의 마법사들로부터 동업자로 인정받고 있었기에 나는 그들을 대변하고 싶었다. 결코 마을에서의 내 의뢰가 줄어든다든가, 기대했던 배상금이 아쉽다든가 하는 사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다.


“혹시……”


“안 돼.”


내 의견은 목구멍에서 되새김질 당했다. 앨리스가 옆에서 케이네의 말을 거들었다.


“이번만큼은 어찌 해줄 도리가 없어. 여론이 워낙 험악하니까.”


“……어느 정도길래?”


“지금 마을에서 마법사라고 광고했다간 석고상이 되어버릴 걸.”


“석고상?”


“온몸에 골절상을 입을 테니까.”


나는 낮게 신음을 흘렸다. 마을 사람들도 지나치게 흥분한 면이 없지 않다. 최소한 마법사들이 직접적으로 인명피해를 내는 경우는 없다. 종족상으로는 요괴인 그들이지만 여타 요괴들과는 달리 학문 연구에 일생을 바친, 어떻게 보면 순진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순진함이 남들 입장에서는 미친 짓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한 번은 금화 모양 초콜릿이 통용이 되는지 사기를 치다 걸렸다던데.”


“그나마 악의는 없었다는 게 위안이네.”


“엊그제에는 강령술을 쓰다가 정육점의 고기들이 살아 움직이게 되었다더군.”


“고기가?”


“부위별로 조립되서 걸어다녔다던데. 보고 기절한 사람도 나왔다나.”


나는 피를 뚝뚝 흘리며 걸어다니는 돼지고기 덩어리를 상상해보았다. 등에서 식은 땀이 날 것 같았다. 이처럼 마법사들의 행태는 상식인의 범주에서는 기괴하다고 할 수 밖에 없는지라, 동기야 어찌되었든 그 결과에 대한 비판이 쏟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경향은 최근에 더 심해졌다.


“남 얘기가 아니야. 너도 요괴를 잡는답시고 곳간에서 팔괘로를 쓰다 사고를 냈다며.”


“……옥수수를 팝콘으로 만든 정도야. 최소한 먹을 수는 있잖아.”


내가 듣기에도 궁색한 변명이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하마터면 마을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을 뻔했지만, 아버지가 나타나 피해액을 메꿔주는 덕에 살아날 수 있었다. 아버지의 냉담한 눈초리에 말을 붙여보지는 못했지만, 솔직히 마음 깊이 감사하고는 있다.


“이게 다 마법사들의 일자리가 없어진 탓이야. 제길, 나만 해도 벌써 3주 넘게 의뢰가 끊겼어.”


나는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케이네는 어쩔 수 없지 않냐는 듯 대답했다.


“기술이 마법보다 유용한 것을 어쩌나. 예전에는 마법사에게 일일이 부탁해야 했던 일들이, 이제는 기술력으로 극복 가능하게 되었어.”


실로 그러했다. 바깥 세계의 기술력이 급진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 바깥과 단절되어 있다고는 해도 잊혀진 도구들의 유입이나 외래인의 방문 등 직간접적으로 기술력은 전파되었고, 그것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전의 일이다. 기본적인 수도 시설부터 시작해서, 가스레인지, 냉장고, 전등과 같은 수많은 가전 용품이나 생활 기기들이 들어섰고, 이는 우리 마법사들에겐 악재가 되었다. 결국 비정기적인 수입이나마 끊기게 된 마법사들은 받지도 않은 의뢰를 무리하게 행하거나, 사기를 쳐서 먹고 살게 된 것이다. 특히 나의 경우에는 더한 것이, 종족이 마법사이기에 식사가 필요 없는 여타 마법사들과 달리 인간인 나는 식비도 꾸준히 지출할 필요가 있다. 내가 닥치는 대로 의뢰를 수행하다 답지않은 사고를 쳤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마법 자체가 환상향에서 잊혀질 지도 몰라.”


나는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법에 위해 일생을 바칠 각오였던 나로서는 겁이 나는 상상이다. 기술이 마법을 대체할 수 있고, 효율도 더 좋다면 마법은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 내 말에 앨리스는 과한 염려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한 기우야.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우리 세대 이후의 일이테고.”


“그렇게 되나……”


하지만 납득할 수는 없었다. 사실 이 문제는 얼마 전부터 해왔던 고민이었다. 과연 마법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실로 뜬구름 잡는 상념이었지만, 춥고 배 곪는 이 시기. 더구나 기술에 밀려 마법의 존재 의의가 퇴색되어가는 지금, 그 답이 절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튼 간에, 이번 일로 네게 부탁을 하나 할까 하는데.”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사고가 중단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려 보였다. 적어도 무표정을 일관하던 그녀가 웃는 것으로 보아 내게 그저 좋은 일이 아님은 분명해 보였다. 젠장, 왠지 불안해지는데. 여기선 자신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소녀답게 거절하는 것이 좋겠……


“이 의뢰를 잘 마친다면 내 사비로 배상해줄게. 40%까지. 케이네의 배상금이랑 합치면 70%지?”


역시 마신의 딸이었다. 돈 씀씀이가 호탕하다 못해 눈이 부신다.


“감사합니다! 이 악물고 해내겠습니다!”


거부하기엔 너무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자본주의의 노예들은 나를 속물이라 욕하지 마라. 까짓 것 인생 한 번 살지. 두 번 사냐?


----------


나는 인간이고, 또한 마법사였다. 내 앞에 등을 돌린 채 앉아있는 앨리스 마가트로이드는 마법사고, 또한 인형사였다. 두 문장 사이에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는 사실을 간파해냈다면 당신은 내 질문에 답할 자격이 있다. 과연 마법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잠깐, 대답은 듣지 않겠다. 당신은 내 잡념의 산물이기에. 쓴웃음이 났다. 나는 머릿속으로 헛소리를 지껄이길 그만두고,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가려고?”


앨리스가 돌아보지도 않고 물어왔다. 저 녀석은 눈깔이 뒤통수에도 달려있는 게 아닐까?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생각이 잘 안 풀려서.”


오랜 시간 생각에 잠기는 경우, 난 주로 실내를 서성이곤 했다. 발에 와 닿는 자극이 뇌를 활성화시켜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 습관을 익히 알고 있던 앨리스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보였다. 그러고는 다시금 오버로크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박음질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었다. 한 발, 한 발. 탁자 주위를 따라 빙글빙글 돌았다. 오전에 있었던 일을 회상해보았다. 하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았다. 결국 난 생각을 반쯤 내려놓은 채 앨리스의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 보았다. 앨리스가 만들던 옷은 거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인형 옷을 만드는 건가. 수작업으로도 만들 줄 알았나?”


“반대야. 인형 옷은 수작업으로 밖에 못 만들어.”


나는 그럴 만도 하겠다고 동의를 표하려다가, 갑작스레 밀어닥친 위화감에 의문을 표했다.


“수작업으로만?”


“그럼 어떻게 만드는 줄 알았는데?”


어처구니 없다는 듯 쳐다보는 앨리스의 표정에 내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잠시간의 반추 후, 이전의 사고가 아직 내 뇌리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무의식적으로 마법과 기술을 저울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법으로는 못 만드나?”


뻔한 질문이었고, 대답 역시 예상하던 것이었다.


“비효율적이니까.”


나는 이 대답에서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꼈다. 기실 나의 사고를 장악하고 있던 혼란이야말로 그것에 깊이 관련된 것이었다. 마법, 얼마나 전능해보이는 단어인가. 하지만 보통의 마법사를 자처하는 나로서는 그 망상이 터무니없음을 잘 알고 있다. 마법은 기술이나 요술처럼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그렇기에 마법사는 꽤나 비루한 직업이 될 수 밖에 없다. 수요는 한정적이고, 그에 비해 공급은 넘쳐나므로. 그러니 혹여 마법사를 지망하는 젖내 나는 어린이가 있다면, 내가 가지는 마법에 대한 애정과는 별개로 충고를 해주고 싶다. 인생을 살고 싶다면 마법만큼은 배우지 말라고.


“하지만 그건 바르지 않지.”


나는 순간 앨리스가 독심술을 터득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보았다. 다행히도 뒤이은 그녀의 발언은 내 추측을 부정해주었다.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마법을 저버리는 것은.”


“그럼?”


정체되어 있던 혈액이 심장에서 사지로 뻗어나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앨리스가 내가 궁구하던 답안을 도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날 사로잡았다. 마법의 존재 의의에 대한 극적인 해답을. 나는 재차 물었다.


“그럼 우리는 왜 마법을 추구해야하지?”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에.”


탄막 놀이에나 적용될 법한 진부한 이론이 여기서 들먹여질 줄은 몰랐다. 오직 심미성을 위해서라니. 단순명쾌하긴 했지만, 의문이 많이 남는 답안이었다. 아니, 솔직히 좀 깨는 답안인데.


“언제부터 네가 그런 예술혼을 품기 시작한 거지? 스스로를 도회파 마법사로 칭하지 않았나?”


“알량한 예술가는 될 생각이 없어. 중요한 건 마법의 본질이 미에 있다는 거지.”


비꼬는 듯한 농담을 한 번 던져보았으나, 앨리스는 의외로 진지한 태도로 일관했다. 나는 곰곰이 앨리스의 말을 더듬어 보았다. 마법은 분명 아름답긴 하다. 수많은 룬 문자들이나 마법진, 그리고 그 결과물들은 실용자가 아닌 사람이 보기에는 신비로운 색채로 다가온다. 나 역시 그런 면에 매혹되었기에 마법에 뛰어들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앨리스의 발언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마법의 본질이 미라면, 그건 일종의 반영구적인 작품으로 남아야 그 가치가 보존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법은 한시적이다.


“오해하지 마, 내가 말하는 미는 형태에 고정되지 않아.”


이걸로 확신했다. 저 녀석은 마법사가 아니라 사토리임에 틀림이 없다.


“기술을 사용한다면 번잡해질 일이, 마법 하나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 실제로 마법을 배우기 위해 들이는 시간, 노력, 그리고 그것이 발동되는 체계 등을 고려한다면 기술을 사용하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지. 하지만 마법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어. 그것은 마법의 고유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고, 그 가치야말로 마법이 내포하는 아름다움이야. 우리가 형성하는 사념, 인식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무구한 감정.”


“무슨 말인지 이해는 가는군. 마법이 기저에서는 복잡하게 작용할지라도 그 결과물은 찬란하고 세련되기에, 일종의 도구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 맞나?”


“그래, 물론 태어나면서부터 마법사였다든가,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마법사가 된 경우도 있긴 하지. 하지만 그 길을 고수한다는 건 결국 미를 수용하고 하나의 적절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거지.”


“싸구려 펜과 고급 붓의 차이인가.”


“나쁜 비유는 아니네.”


나는 몸에서 기운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앨리스가 내놓은 대답에 만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실망했기에. 나는 그것을 최대한 내색하지 않은 채, 자리에 다시 앉았다.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억누르며, 나는 내 오랜 악우에게 사과했다. 그녀의 지론은 – 예전부터 느껴온 부분이지만 – 내게 걸맞지 않다. 마신의 딸로 태어나 마법사의 길을 택한 그녀는 실용성이란 요소를 지나치게 배제하고 있다. 사실 앨리스가 평소에 보이는 태도, 특히 전투에서 보여주는 자세가 특히 그렇다. 상대의 실력에 맞춰 싸운다던가, 전력을 다하지 않고 싸운다던가. 나름의 멋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매사에 최선을 다 해야만 하는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상황에 대해 아무런 해결책 역시 제시하지 못한다. 하긴, 그렇기에 나에게 부탁을 한 것이겠지만.


그 순간, 등 뒤의 출입문이 벌컥 열리며 파츄리가 소리를 쳤다.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휴식.””


나와 앨리스는 합창했다. 혹자는 남의 도서관에서 차까지 타다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우리를 파렴치한 작자들로 몰고 갈지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파츄리와 쌓아온 깊은 유대를 고려해 볼 때, 그녀만큼은 우리를 내쫓지 않으리라고 난 확신했다. 씨익 웃으며 파츄리를 바라보자, 그녀는 화답했다.


“초주검으로 만들어주겠어!”


예상이 무참히 빗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나에 비견될 만한 철면피가 옆자리에 앉아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내 기대 어린 시선을 받은 앨리스는 어깨를 으쓱해보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몸을 날려 창을 깨고는 그대로 도망쳐버렸다. 음, 제법인데. 탈주 전문가인 내가 인정할 정도의 실력이다. 그리고 그 탈주 전문가는 산 채로 튀겨지게 생겼도다. 염병할.


“이거 진짜 뜨겁잖아! 진정해, 지, 진정!


“걱정 마. 조처는 다 해놨으니 고통만 전달되고 죽지는 않을 거야.”


“아, 다행이네. 숨 좀 고르고, 사람 살려요-!”


거꾸로 매달린 채 기름이 끓는 가마솥을 감상해 본 적이 있는가? 샛노란 기름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시각적 혼동은 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수많은 책을 훔치고, 수많은 고초를 겪고, 수많은 탈주를 성공해냈던 키리사메 마리사 아닌가. 심호흡을 하고 평정을 되찾았다. 그리곤 내 오랜 무기인 세치 혀를 부드럽게 풀어주기 시작했다.


“혀도 잘라줄까?”


“사양하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좆된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인간의 머리는 복잡하다. 생사의 기로에 서자 닥치는 대로 쓸 만한 정보를 주워 모으기 시작한 내 뇌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기억해냈다. 애당초 이곳에 온 이유가 케이네와 앨리스의 부탁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거 혹시 매지컬 치매 아닐까?


“잠깐, 잠깐, 잠깐만! 난 전할 얘기가 있어서 온 거야! 진짜야! 내 손목을 걸고!”


내 필사적인 호소에 파츄리는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한참 뒤, 파츄리는 한숨을 쉬며 나를 허공에서 풀어주었다. 하지만 바닥으로 내려주지는 않았고, 밧줄 역시 여차하면 나를 다시 졸라맬 듯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속는 셈치고 한 번 들어나 보지. 아닐 땐 그대로 튀겨주겠지만.”


나는 긴장과 안도를 함께 느끼며, 앞서 전달받은 내용들은 조심스레 풀어내었다. 내 말을 끝까지 듣고 난 파츄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마을 내에서의 마법 사용을 일절 금한다고?”


“그래,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금하겠다는 건 아니야.”


“그럼?”


되묻는 파츄리의 말에 나는 무심코 침을 삼켰다. 사실 나도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부탁받은 이상, 행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내 얘기가 그녀의 짜증을 돋구지 않길 바라며 대답했다.


“기술이 범접하지 못하는 마법의 고유한 가치가 발현되는 부분에 한하여 마법의 사용을 허가하겠다더군. 그리고 이 내용을 모든 마법사들에게 전달함과 동시에 그 답을 찾아오는 것이 내가 받은 부탁이었고.”


파츄리는 얼빠진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나는 혹시나 마법이 풀려 가마솥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을 맛봐야 했다. 한참 후에야 표정을 고친 파츄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답이라면 내가 말할 수 있을 것 같군.”


나는 휘둥그레 눈을 떴다. 이렇게나 빨리? 과연 대마법사라 불릴 만한 천재였다. 나는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물었다.


“그럼 묻겠는데, 마법이 가지는 고유한 가치란 무엇이지?”


“마법이 가지는 유용성이야말로 고유한 가치라 할 수 있지. 기술 따위가 따라올 수 없는.”


“대담한 발언이군.”


솔직히 이해할 수 없었다. 유용성만 고려한다면 기술이 더 뛰어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뒤이은 파츄리의 발언은 내 통념을 깨뜨려 주었다.


“마법은 자연과 인간이 이루어낸 조화의 산물이지. 기존의 것을 해치지 않고 이용하며, 그럼에도 자연이라는 범주 내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다다를 수 있지. 기술처럼 자원을 갉아먹고, 불가능의 벽에 다다르고, 최종적으로 파국에 이르는 어리석은 문화가 비교될 만한 대상이 아니야. 그야말로 무한한 가능성과 지속성을 가진 마법이야말로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유용한 것이지. 심지어 요술마저도 마법에는 미치지 못할 걸. 요술은 개인의 요력에 달린 문제지만, 마법은 자연의 마력을 끌어다 쓰는 것이기에.”


나는 감탄했다.


“과연, 기술은 발전 속도가 급진적일지언정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한계점이 있지.”


내 맞장구에 고개를 끄덕이며 파츄리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 지금 당장은 기술이 사용하기 편하고 범용적인 것처럼 보여도 결국엔 보급형 마법과 다를 게 없어. 사람들은 기술로 고작 수십년 후를 바라보지만, 우리는 다르지. 몇 천년을 지켜왔기에, 다시 몇 천년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우리에겐 있어.”

인간인 나로서는 실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성냥불과 태양빛의 관계로군.”


“괜찮은 비유네. 성냥불처럼 다루기 쉽지만 금세 사그라드는 기술, 태양빛처럼 편히 다룰 수는 없지만 반영구적인 마법. 한 치 앞 밖에 못 보는 멍청이가 아닌 이상, 당연히 마법을 추구하지 않겠어? 그러니 네 생각처럼 마법이 도태되는 일은 꿈에도 없어.”


파츄리는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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