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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팬대] 장마 (1/6)

초록목도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7.25 23: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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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는 비가 내리치는 소리에 먹먹했다. 급히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펼쳤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강풍에 빗발이 사선으로 내리꽂히는데 비가 내리는 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주위를 급히 둘러보았지만 밝아 보이는 것은 한참 멀리에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가게 하나는 불이 켜져 있었다. 창호지 밖으로 새어 나온 주홍색 빛이 물웅덩이에 일렁였다. 누군가가 가게 문을 열자 빛은 더 밝아졌다. 형체는 우리더러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메리의 손을 잡고 가게를 향해 뛰어갔다. 바닥에 발을 내디딜 때마다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문을 닫고 들어가 보니 서점이었다. 불을 때고 있는지 온기가 밀려들어 왔다. 지금까지 얼마나 추웠는지 잊고 있었다. 나는 한 걸음 더 걸으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나와 메리는 옷을 비틀어 짰다. 빗물이 바닥에 튀어올랐다.


어서 들어와요.”


아까 문가에 서 있던 사람이 모포를 들고 돌아왔다.


이런 늦은 밤에 갑자기 들어오게 되어서 미안해. 혹시 여기서 일해?”


메리가 물었다.


, 맞아요. 저희 부모님이 이 책방을 하세요. k라고 불러주세요.”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는 모포로 대충 몸을 닦아냈다. 메리도 신던 신발을 벗어 안에 들어 있던 물을 쏟아냈다. 나와 메리는 k를 따라갔다. 주변은 서가와 서가에 꽂힌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책들은 두루마리부터 양장본까지 다양했다. 의자에 앉으니 가운데에 놓인 난로에서 더운 열이 올라왔다.


새로 온 책들을 정리하느라 오늘은 밤을 새우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갑자기 두 분이 보인 거에요.”


k는 옆에 쌓여있는 나무토막 하나를 집어 난로에 던져넣었다. 불길이 나무토막을 훑었다.


이런 밤중에 돌아다니면 위험해요. 저녁만 되어도 통금이 시작되는데 이렇게 늦은 때에 밖에 있다니, 혹여나 남들이 봤으면 큰일이 났을 거에요. 혹시 외지에서 오신 건가요?”


메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k에게 어째서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냐고 물어보았다.


그게 말하자면 길어요. 오늘 밤은 여기서 묵어야 할 것 같으니 일단은 마실 것 좀 가져올게요.”


k가 떠난 사이 나는 메리를 바라보았다. 메리는 장작 위로 일렁이는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마에 맺힌 것이 땀인지 빗물인지 구별이 잘 되지 않았다. 나는 메리에게 춥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메리는 눈을 감고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잠깐 처마에 빗물이 튀기는 소리를 들었다. 튀기는 소리 사이의 간격이 좁아지는 것 같았다.




***


이따금 천둥소리가 울렸다. 나는 마을에 피뢰침이 있을지 궁금했다. k는 사각 쟁반에 잔 셋과 접시를 받쳐 돌아왔다. 메리는 쟁반을 받아 모포를 덮은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잔 하나를 들어 입에 가져다 대었다. 옅게 우린 차 향이 났다.


이것 한 번 봐봐.”


메리가 접시에 담긴 과자 하나를 집어 들며 말했다.


이곳저곳 여행 다니기 전에는 집 근처에 있는 제과점에서 이 과자를 자주 샀었는데. 어릴 때 용돈 절반은 이거 사는 데 썼을 걸.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팔지를 않아서 그 뒤로는 볼 일이 없었어.”


과자 겉면에 붙은 설탕 가루가 반짝였다.


예전에 어떤 분에게 선물로 받은 양과자 상자가 생각나서 가져왔는데, 마침 좋아하시는 종류라니 다행이네요.”


k가 웃으며 말했다. 그때 메리가 집어 든 과자를 내려놓고 기침을 했다. 기침은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는 두르고 있던 모포를 풀러 메리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 감기약 좀 가져올게요.”


기침은 k가 가져온 하얀 알약을 삼키고 나서야 잦아들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생김새였다. 메리는 약효가 도는지 졸려 보였다. 나는 메리에게 벽에 기대 있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메리는 의자를 끌어다 난로 근처에 있는 벽에다 가져다 놓았다.


메리는 벽에 기대앉고 얼마 안 있어 잠이 들었다. 장작 타는 소리만 조용히 들렸다. 메리의 무릎 아래로 불꽃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일렁였다.




***


나는 k를 보았다. k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지금은 조심해야 할 때에요. 다른 날도 아니고 어제 마을 높은 분들의 집에 차례로 큰불이 났거든요. 하인들은 불이 난 걸 눈치채고 대부분 도망갔지만, 이상하게도 현자분들은 빠져나오는 것을 본 사람이 없었어요. 저녁에 폭우가 쏟아져서 불이 그치고 난 뒤에야 무너진 집에서 현자분들이 나올 수 있었데요. 이상한 일이죠. 다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를 사람들인데. 그래서 현자분들이 모두 모여 범인을 샅샅이 뒤지고 있어요. 범인을 잡는 사람에게는 큰 상을 내리겠대요.”


나는 방화 사건 때문에 통금이 생긴 거냐고 물어보았다.


아니요, 통금은 옛날부터 있었어요. 아마 태어나기 전부터? 다만 예전에는 밤 10시부터였는데 그 사건 이후로 7시로 앞당겨지기는 했죠.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이후로 수상해 보이기만 하면 사람들을 잡아가기 시작했어요. 벌써 몇몇은 끌려간 것 같아요.”


k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나 메리를 범인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때 k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책 좀 한 번 봐 주실 수 있나요?”


바로 옆 서가에 꽂힌 책이었다. 제목을 보니 질병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k는 내심 기대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쩌면 지금을 기다려 온 것일 수도 있었다.


이게 차라리 외국어로 쓰여 있더라면 읽을 수라도 있는데 이 책은 용어들이 우리말로 쓰였는데도 이해가 가지 않더라고요. 혹시 이 단어가 어떤 뜻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책을 훑어보니 학부생 수준의 내용이었다. 어쩐지 거부감이 들었지만, 지금까지 베풀어 준 호의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알고 있던 내용인지라 할 수 있는 한 풀어서 말해주긴 했다. 그렇지만 k의 얼굴을 보니 완전히 이해한 것으로 보이는 표정이 아니었다. 어려운 내용이기는 했다. 나도 처음에 이 내용을 공부할 때 한참을 헤맨 기억이 있으니까. 그때가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의치한 갈 성적은 아니었는데.


메리가 다시 기침을 했다. 나와 k는 메리를 바라보았다.


같이 오신 친구분, 혹시 지병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나는 비를 많이 맞아서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답했다. 증상이 심해지면 병원에 데려가야 할 수도 있었다.


아직은 괜찮아.”


메리가 말했다. 자는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나와 k가 말하는 것을 듣고 있던 것 같았다.


방화 사건이라고 했지. 해결하면 통행금지령도 완화되지 않겠어.”


차분하게 말했지만 자신이 있어 보였다.


“k, 혹시 사건에 관련된 자료들을 구해와 줄 수 있을까?”


현장에 가려면 다음 날 아침은 되어야 할 텐데, , 일간 신문은 좀 쌓여 있어요. 그거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그 정도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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