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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팬대] 장마 (3/6)

초록목도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7.25 23:41:06
조회 95 추천 1 댓글 0

***

 

이상할 만큼 메리를 닮은 여자가 나를 쳐다보았다. 멀리서 보면 머리카락이 더 긴 것 말고는 구별하기 어려울 것 같아 보였다. 원래 지붕이 있어야 하던 곳에서 이전보다 더 거세진 비가 내리쳤다. 삽시간에 난로에서 타오르던 불은 붉은 숯만 남기고 잦아들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저것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했다.

 

사방이 잔해와 젖은 책들로 엉망이었다. k는 폭발에 휘말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검붉게 빛나는 숯덩이가 주변을 희미하게 비추었다. 메리의 숨소리가 더 가빠졌다. 여자는 지붕을 날려버린 것으로는 모자랐는지 그다음에는 하늘을 오려내었다. 갈기갈기 찢긴 틈새에서 수없이 많은 무언가가 쳐다보는 것 같았다.

 

나는 메리를 부축하고 서점 밖을 나갔다. 여자는 우리를 노리는 것 같았다. 하늘에 난 균열이 바닥을 내리칠 때마다 주변 지형지물이 닥치는 대로 패어나갔다. 빗발이 채찍처럼 온몸을 파고들었다.

 

여자 뒤에서 누군가가 보였다. 메리도 여자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자매 중 사라진 동생이었다. 노란색 띠를 두른 모자를 쓰고 있었다. 분명 어디에서 본 모자였다. 동생 쪽은 나를 바라보았다. 조용히 미소 짓는 듯했다. 그러고는 여자를 향해 뛰어들었다.

 

여자는 공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팔을 휘두르는 모습이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습격받은 것 같았다. 지금이 기회였다. 메리를 보니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나는 메리를 업고 달렸다. 다리가 찢어질 것 같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근처에 있는 균열은 미친 듯이 일렁이고 있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안으로 뛰어들어가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그렇게 했다.

 

 

 

****

 

여우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와 메리는 숲 속에 서 있었다. 주변은 한낮이지만 밝지 않았다. 구름이 지나치게 많았다. 메리는 멍하니 서서 잎사귀에 맺히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개울물이 흐르는 정도가 아닌 폭포가 터져나갈 듯한 소리였다. 소리는 희미했지만 갈수록 소리의 세기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나는 메리에게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숲 밖을 향해 나갔다. 뒤를 돌아보자 메리는 여전히 나뭇잎을 쳐다보고 있었다.

 

숲을 헤치고 나아가자 강가가 보였다.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가니 몇 분 있지 않아 처음 왔던 곳으로 다시 와 있었다. 강이 중간에서 갈라졌다 다시 합쳐지는 구조였다. 다르게 말하면 지금 서 있는 곳은 일종의 섬이고, 밖으로 빠져나갈 만한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아까 들리던 급류 소리는 삽시간에 넓어진 강물이 내는 소리였다. 벌써 너비만 해도 다리를 세워야 할 만큼 넓어져 있었다. 헤엄을 쳐서 건널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강물은 한쪽 발을 가져다 대기만 해도 바로 떠내려가 버릴 만큼 유속이 빨라 보였다. 강물이 불어나는 속도로 미루어 보아 얼마 있지 않으면 섬이 완전히 강물에 잠길 것 같았다.

 

옆으로 갈 수 없다면 위로 가야 했다. 마침 섬 가운데에 높이 솟아오른 암반이 있었다.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불어난 강물을 피할 정도만큼은 되었다. 그렇지만 올라가려면 쉽지 않아 보였다. 걸어 올라가기에는 경사가 가팔랐다. 나는 암반의 정상을 올려다보았다. 위에는 무언가 있었다. 안개에 가렸지만, 건물 같아 보였다. 유적지일 수도 있다. 예전에도 유적까지 등반한 적이 있었는데. 언제였지.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메리에게 돌아가 보니 메리는 큰 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나뭇가지와 이파리가 어느 정도 비를 막아주는 듯했다. 나는 메리 옆에 놓여있는 가방을 들어 올렸다. 안에는 등산용 장비가 들어 있었다. 어디에서 많이 본 상표지만 지금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나는 장구를 착용한 다음 메리에게 갔다. 그리고 먼저 올라가 밧줄을 걸어놓을 테니 붙잡고 올라오라고 말했다. 메리는 너무 지쳐서 힘들 것 같다고 답했다. 무어라 말해보려 하지만 메리의 기침이 심해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메리가 기침할 때마다 입가가 피로 물들었다.

 

우선은 밧줄부터 꼭대기에 건 다음 메리를 끌어올릴 방법을 생각하기로 했다. 대안을 찾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

 

나는 위로 올라갔다. 그나마 암반이 수직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등반화로 암반을 딛고, 피켈로 바위 틈새를 내리찍어가며 나아갔다. 섬이 빠른 속도로 작아졌다. 높이 올라가서인지 섬이 물에 잠겨서인지 알 수 없었다.

 

중간중간 물기 있는 바위에 손이 미끄러질 때가 있었지만, 암반의 중간까지 밧줄을 걸고 올라갈 수 있었다. 숨이 찼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섬의 절반이 넘는 부분이 강물에 삼켜져 있었다. 나는 메리를 소리쳐 불렀다. 저 밑에서 메리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기시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예전에 확실히 둘이서 암벽 등반을 했다. 정상에 유적지가 있던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과 다른 점이 있었다. 암벽 위에 서 있던 사람은 메리였다. 그리고 내가 그 밑에서 메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너는 꿈을 꾸고 있어.




*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

 

나는 그때 등반용 밧줄에 매달린 채로 네게 말했어.

 

무슨 소리야, 이제 거의 끝인데. 조금만 더 가면 돼.’

 

너는 그렇게 말했지.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이제는 더 못 하겠어. 내려갈래.’

 

그러자 나는 이렇게 말했고.

 

알겠어, 잠시만 그 자리에 있어 봐. 밧줄을 끌어올려 줄 테니까.’

 

결국, 너는 그렇게 말했지. 순간 내가 바위를 쥐던 손을 놓쳤어. 하지만 네가 몸을 날려 내 손을 잡았고.

 

이 손 놓으면 안 돼!’

 

너는 그렇게 외쳤지. 나는 네 부축을 받으며 암반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었어. 나는 올라간 뒤 쓰러졌어. 안 그래도 고산병 때문에 힘들었거든.

 

숨넘어가는 소리 내지 말고. 저기를 봐봐.’

 

내가 고개를 들자 네가 가리킨 곳에는 고대 유적지와 그 뒤로 지는 해가 있었어. 석양이 모든 것을 태워버리듯 비추었었지. 나는 죽을 듯이 아팠지만, 행복했는데.

 

 

 

****

 

나는 떨어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갔다. 정상에 거의 다가갔는데. 눈앞에 끊어진 밧줄의 단면이 번뜩였다. 위에서 그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은 알아볼 수 없었다. 안개에 가려 윤곽선만 보일 뿐이었다. 빗방울들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암반에 꽂아놓은 여분의 밧줄이 추락을 늦추었다. 급감속에 온몸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여전히 멈추기에는 밧줄이 조금 더 길었다. 바닥에 추락하고 나서야 밧줄이 팽팽해질 터였다. 그때 누군가 받쳐주는 느낌이 들었다. 바닥에 닫기 직전에 몸이 멈추었다. 메리였다.

 

근처에 있는 아무 나무라도 붙잡아.”

 

메리가 나를 부축하며 말했다. 급류가 발목을 훑고 지나갔다.

 

갈수록 더 거세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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