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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팬대] 장마 (4/6)

초록목도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7.25 23: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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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새벽이었다. 차는 절벽 급커브 구간을 지나가고 있었다. 어두운 데다 비가 많이 내려 속도를 내기 조심스러웠다. 어쩌면 차라리 속도를 내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산사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쏟아져 내렸다.

 

 

 

****

 

메리의 말대로 비는 더 거세졌다. 천둥이 요란하게 쳤다. 빗발이 채찍으로 내리치는 것같이 아팠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급류였다. 안간힘을 쓰며 나무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무릎까지 들어찬 급류에 얼마든지 휩쓸렸을 것이다. 차라리 물만 흘러들어왔다면 다행이다.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다리의 감각으로 보아 급류에는 돌멩이와 나뭇가지 파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는 싸움이었지만 생각보다는 오래 나무를 붙잡고 버텼다. 강물로 이뤄진 해일이 들이닥치기 전까지는.

 

사람 키의 몇 배 만한 해일은 두꺼운 나무조차도 쓰러뜨리고 몰려왔다. 나도 메리도 각자 붙잡고 있던 나무를 놓쳤다. 헤엄치려고 애를 썼지만, 물이 계속해서 아래로 끌어당기는 듯했다. 쓰고 있던 모자도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떠내려가는 모자를 보았다. 붙잡기에는 이미 늦었다. 회갈색 띠를 두른 모자. 이제는 기억이 났다. 제주도에서 메리가 사 주었던 모자였다. 해안가의 작은 기념품 가게였다. 안에는 짚으로 만든 모자, 감귤로 색을 낸 모자, 노란색 띠를 두른 모자도 있었다. 언제 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

 

물속에서는 천둥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볼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이따금 내리치는 번개만이 주변을 잠깐 밝히고 갔다. 나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필사적으로 메리를 찾아 헤엄쳤다.

 

한 번 번개가 내리쳤을 때 머지않은 곳에서 의식을 잃은 채 떠밀려가는 메리를 보았다.

 

다시 한 번 번개가 내리쳤을 때는 모든 것에 음영이 져 있었다. 나는 번개에 의해 생긴 메리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림자에서는 수많은 무언가가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거기까지 갈 수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세 번째 번개가 쳤을 때 나는 메리를 붙잡고 음영으로 생긴 그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

 

아침이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메리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밖에서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논밭, 전신주, 옆 기차 노선. 그리고 바닷가. 창문에 빗방울이 맺힌다. 메리는 나를 본다.

 

이 기차는 어디로 가는 거야?”

 

나는 알지 못한다. 기차는 계속 나아간다. 메리는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기차가 어디로 갈지는 알아낼 수 없다. 기차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조차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거야 당연히-

 

마실 것 좀 가져올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메리가 기침을 한다. 계속해서 기침을 한다. 안을 토해내듯 기침을 한다. 손수건이 피로 완전히 젖었다.

 

황급히 객차 밖으로 나갔지만 열차 안에는 아무도 없다. 갑자기 목이 조이는 것 같아 옷깃을 잡아당겼다. 얼굴에서 흘러나온 땀이 목까지 흘러내렸다. 나는 객실 끝에 있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세면대에서 세수를 했다. 거울에는 내가 있다. 내 표정은 어제 죽은 사람 같다.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그 여자다.

 

 

 

*

 

내가 다쳤어야 했다. 내가 다쳤어야 했다. 패혈증에 걸린 건 나였어야 했다. 하루도 버티기 힘들 것이라 했다.

 

 

 

*****

 

첫 주먹은 여자가 날렸다. 순간 세상이 검어졌다. 나는 비틀거렸다. 다음 주먹은 내가 날렸다. 여자는 휘청였다. 나는 세면대 격벽 양옆을 붙잡고 여자를 발로 찼다. 문이 부서지듯 열리며 여자가 복도로 굴렀다. 여자는 내가 다 쫓아가기도 전에 일어났다.

 

이번에 날린 것은 주먹이 아니었다. 객실 절반이 잘려나갔다. 나는 간신히 뛰어올라 마저 남은 객차 손잡이를 붙잡았다. 잘린 객차는 쇠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뒤로 굴러갔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반이 뚫린 객실에 비바람이 휘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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