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음 같이 차가운 하늘은 지난 밤 매섭게 눈을 흩날렸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푸르다. 확 트인 넓은 세상을 겨울바람이 더욱 차갑게 내달린다. 그 동안 색색의 이파리들로 치장했던 나무들의 헐벗은 가지들은 겨울이 선사한 하얀 눈들을 털옷 마냥 두르고 있다. 한 폭의 담채화 같은 쌀쌀한 겨울 풍경은 이를 비추는 햇살에 반짝이면서 따사롭게 채색된다.
엄동설한의 한 복판에도 겨울이 외롭지 않은 것은 따뜻한 햇살이 겨울을 어루만지기 때문이다. 하염없이 추위에 떨었을 세상이지만 그 자그마한 따스함이 있기에 행복한 것이다.
“으읏, 아아….”
흩날리는 눈보라 사이로 가녀린 신음이 별빛처럼 새어 나온다. 작은 촛불만이 주위를 밝히는 작은 방 안에는 몸을 맞댄 두 여인의 형체가 신기루처럼 아른거린다. 하얀 피부를 매만지는 손길에 가녀린 작은 몸의 여인은 현악기 같은 교성을 낸다.
“태자님…. 태자님….”
애무를 하던 여인의 손길은 부드러운 입맞춤이 되어 유두에 닿는다. 입술의 감촉은 자그마한 유두에서부터 봉긋한 젖가슴을 지나 온몸에 전기처럼 퍼진다. 밖에는 눈이 쉬지 않고 내린다. 끊이지 않을 눈처럼 이 밤은 영원할 것 같다.
야릇한 공기로 가득했던 방안이 새벽의 여명으로 환해진다. 눈을 간질이는 하얀 햇살에 모노노베노 후토는 가장 먼저 눈을 떴다. 지난 밤 자신을 끌어안던 여인은 아직 따뜻한 이불 속에서 잠에 빠져 있다. 후토는 함께 덮고 있던 이불 속에서 조심스럽게 빠져 나왔다. 그리고 벗어둔 하얀 도사복을 갖춰 입고 밖으로 나갔다. 눈이 소복이 쌓인 청명한 겨울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다웠지만 코끝에 닿는 냉기는 쌀쌀했다. 겨울의 냉기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저 방을 나온 것만으로도 허전한 무엇인가처럼 다가오는 이 추위에 후토는 이상한 외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밝아오는 아침 햇살에서 느껴지는 낯익은 따스함에 이 외로움은 지난밤과 같은 행복감으로 변해갔다.
*
“그런 이유로 1년 간 저는 여기 없을 겁니다.”
평소보다 바람이 찬 어느 날이었다. 토요사토미미노 미코는 그녀의 심복들을 불러 당분간 자신이 멀리 떠날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천인이 되기 위한 수련의 일환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선인의 본분은 천인이 되는 것이다. 시해선인 후토도 천인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떠날 것이라는 미코의 결정은 충분히 존중해 줄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쉬이 긍정하기는 힘들었다.
“태자님,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 이곳을 지켜 줄 사람들도 있어야지요?”
“하, 하지만….”
“야, 자꾸 어린애처럼 굴래? 태자님께서 곤란해 하시잖아.”
녹색 옷의 망령이 후토에게 핀잔을 줬다. 미코는 인자한 미소를 띠며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들로부터 덕을 쌓는 것도 선인의 수련 중 일부입니다. 제가 없는 동안 외롭더라도 제가 할 일을 대신하여 덕을 쌓는 데 정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알겠다는 대답은 했지만 후토의 마음속의 서운함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저 멀리서 금방이라도 눈을 퍼부을 듯한 두꺼운 구름무리가 몰려오고 있다. 태양은 구름에 가려 서서히 그 빛을 잃어간다. 따뜻했던 겨울 풍경은 다시 흑백의 담채화처럼 쓸쓸해져가는 듯하다.
다음 날 아침 미코는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먼 길을 떠났다. 토지코와 후토는 그녀의 가는 길을 먼 거리까지 배웅하려 했으나 미코의 만류로 현관에까지 밖에 배웅하지 못했다. 후토는 미코가 멀어져 안 보이게 됐음에도 한동안 그녀가 지나간 그 길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후토의 눈앞에는 그저 눈밭에 찍힌 미코의 발자국만이 길처럼 놓여 있을 뿐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후토는 경내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왔다. 토지코는 살짝 부유해 있는 채로 경내를 비질하고 있었다. 이 시간 즈음은 여느 때와 같이 다 같이 경내를 청소를 하는 시간이었다. 청소할 기분은 아니었음에도 후토는 습관처럼 근처에 있는 빗자루를 손에 쥐었다. 바닥에 쌓인 눈을 맥없이 쓸어내는 그녀의 빗자루는 눈보다 새어나오는 한숨을 더 많이 쓸어내고 있었다.
“토지코, 태자님이 보고 싶네.”
한숨만 내쉬던 후토가 울먹이는 소리로 입을 열었다. 토지코는 그런 후토의 모습이 그저 황당하기만 했다.
“태자님께서 나가신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냐? 누가 보면 영영 떠나가신 줄 알겠네.”
여전히 후토는 풀이 죽은 채로 마당을 쓰는 둥 마는 둥 했다.
“토지코, 태자님이 보고 싶네.”
후토의 울먹이는 소리가 다시 들리기가 무섭게 비질을 하는 후토의 발 앞에 벼락이 위협하듯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벼락에 놀라 자빠진 후토의 눈앞에는 마른하늘의 날벼락 보다 무서운 표정을 한 토지코가 그녀를 노려보며 서있었다.
“애처럼 그만 징징대고 청소나 똑바로 해!”
“네, 네!”
결코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침울한 마음은 갑작스러운 공포에 마치 그런 적 없었다는 듯 잠시 동안 사라졌다. 후토의 빗자루는 토지코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눈을 쓸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침울한 감정은 빈들에 눈이 쌓이듯 다시금 천천히 쌓여갔다.
*
겨울은 깊어만 간다. 시린 계절은 시린 마음을 더욱 후벼 파는 듯 하다. 얼어붙은 세상은 얼어붙은 채로도 잘 움직이고 있다. 미코가 수련을 떠난 지도 몇 주가 지났다. 미코가 없는 생활에 토지코는 어느 정도 적응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후토는 좀처럼 이 허전함을 지울 수 없었다. 생활 자체는 평소와 같았다. 마을에 가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거나, 말썽을 피우는 요괴들을 쫓아내거나, 사람들에게 도를 설법하는 등의 손에 익은 일들은 변함없이 반복되었다. 특이할 사항은 이제 이 일을 하는 인원이 둘이라는 점과 후토의 실수가 전보다 더 잦아졌다는 것뿐이었다. 후토가 실수를 할 때마다 그 일의 마무리는 항상 토지코가 해냈다. 사람들이 오히려 망령인 토지코가 더 선인답다고 여길 정도였다. 하루는 후토의 실수가 잦아지자 토지코가 “나를 망령으로 만들면서까지 시해선이 된 녀석이 일을 이런 식으로 할 거야?”라며 쏘아댔다. 이 말은 후토에게 꽤나 큰 자극으로 다가왔다.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의 본분을 다시금 상기하는 후토였지만 실수가 줄어드는 일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유독 더욱 춥게만 느껴지는 겨울이었다.
“내일 히에다 가에 설법하러 가는 날인 거 알지? 또 이상한 짓 하지 않게 준비 제대로 해 둬라.”
겨울의 밤은 길다. 마치 그리운 사람과의 재회를 온 힘으로 방해하려는 질 나쁜 장난 같다. 후토는 요즘 들어 잠을 설치는 일이 많아졌다. 창문에 방한지를 덕지덕지 바르고 아무리 두꺼운 이불을 덮어도 단잠을 방해하는 추위를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내일은 여느 때보다 중요한 설법이 잡혀있어 컨디션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잠이 오지 않는 틈을 이용해 설법 시연의 연습을 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자리에 누운 채 하릴없이 천장만 바라보며 후토는 그저 날이 빨리 밝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영원 같은 밤이 지나고 추위에 떠는 닭의 울음소리가 새벽을 밝혔다. 밤새 뒤척거리며 밤을 새운 탓에 후토의 온몸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무거운 몸으로 아침 청소를 하는 후토의 빗자루는 이번에는 눈보다 하품을 더 많이 쓸어냈다. 연신 하품을 해대는 후토를 바라보는 토지코의 표정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오늘은 어떤 사고가 벌어질 것인가,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
“좋은 말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단아한 기모노를 차려입은 보라색 머리카락의 어린 소녀가 토지코에게 다가와 감사인사를 전했다. 히에다 가에서의 설법은 다행히 토지코의 걱정과는 달리 비교적 무난하게 잘 끝났다. 후토의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는 아침에 봤던 무기력한 후토의 모습에서 걱정하던 것만큼 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사실 후토가 해야 될 설법의 내용을 후토가 기억을 못해내어 토지코가 대신 말하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 당주님, 좋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감사 인사는 제가 아니라 저희 도사님이 들어야 되는 건데 말이죠.”
토지코의 겸연쩍은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후토는 어린애마냥 저택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오오, 토지코, 이것 좀 보게! 재밌어 보이는 책들이 정말 많네!”
“야! 함부로 만지면 어떡해!”
후토의 돌발행동에 토지코는 당황하여 소리쳤다. 하지만 후토는 아랑곳하지 않고 책장에서 여러 책들을 꺼내어 쭉 훑어보았다.
“죄송합니다. 저희 도사님이 좀 많이 모자라서….”
“후훗, 괜찮습니다. 제가 쓴 책을 누군가가 읽어준다면 그건 저에게도 영광이니까요.”
여러 내용의 책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후토의 관심이 가게 된 책은 하쿠레이 무녀의 이변 해결 기록에 관한 것이었다. 후토가 환상향에 부활하기 전 이곳에 있었던 역사는 그녀에게 흥미를 유발하기 충분했다.
“붉은 안개가 세상을 덮은 이변, 봄이 오지 않은 이변…. 이거 참 흥미롭군.”
환상향에 있었던 이변들은 전부 독특했고 이를 해결한 하쿠레이 무녀의 활약도 대단했다. 그 중에서도 밤이 계속되는 이변의 내용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오호라, 달을 일그러뜨린 범인을 잡기 위해 무녀가 일부러 밤을 멈췄다라….”
순간 무엇인가가 후토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밤을 멈춘다는 것은 밤을 늘린다는 것과 같고, 밤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는 것은 밤을 줄이는 방법도 있다는 것. 그렇다면 이를 잘만 활용한다면…?
*
겨울이 추운 이유는 밤이 길기 때문이다. 밤은 만물을 잠재운다. 추위 또한 만물을 잠재운다. 기다리던 한낮의 햇빛도 겨울의 기세에 밀려 곧 캄캄한 밤에 그 위세를 꺾고 만다. 세상의 본성은 움직이는 것이다. 그 움직임을 막는 겨울의 기나긴 밤은 부조리라 볼 수 있다. 가장 부조리가 심한 동짓날 밤, 후토는 히에다 가에서 이변에 대한 책을 읽고 난 후부터 머릿속에 떠올렸던 도술을 드디어 시행해보고자 했다. 밤을 잘라내어 아침이 일찍 오게 하는 도술이었다. 후토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할 일로써 벌어질 일에 대한 염려는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할 일은 부조리를 없애는 일이라는 생각 뿐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도술을 속행했다. 후토는 방의 구석구석에 먹으로 쓴 부적을 붙였다. 그리고 집중하여 주문을 외웠다. 이로써 아침이 일찍 온다면 움직이고 싶어 하는 세상은 분명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계절은 봄과 더 빨리 가까워질 것이다.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계절을 이 세상은 마치 그리운 사람과 재회하는 것과 같이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할 것이 틀림없다.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커다란 창문으로 새하얀 빛이 스며들어온다. 후토의 앞에는 커다란 검은 구체가 놓여 있었다. 분명 동짓날 밤이 모여 형성된 것이리라. 밤의 길이를 줄이는 도술은 성공적인 듯 했다. 후토는 캄캄했던 방안이 온전히 환해지는 것을 보고 밖으로 나갔다.
“일찍 일어났네?”
평소에도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부지런한 토지코가 본인의 방에서 눈을 비비며 나오면서 먼저 나와 있던 후토에게 말을 걸었다.
“아, 왜 이렇게 피곤하지? 충분히 못 잔 거 같아.”
토지코는 비몽사몽한 채로 하품을 해댔다.
“토지코, 밤에 잠도 안 자고 뭘 한 겐가? 혹시 밤새 야한 짓을 하느라 못 잔 건 아니겠지?”
“야! 내가 너냐?”
이런 성취감은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이었다. 도술이 성공하여 한껏 의기양양해진 후토는 빨리 하루 일과를 시작하자며 토지코를 보챘다. 후토는 오늘은 물론 앞으로도 계속 밤을 줄이는 도술을 행할 심산이었다. 그렇게 아침이 빨리 찾아오고, 계절이 빨리 바뀌면 더 이상 겨울 추위에 떨 걱정도 없고, 이 허전하고 시린 마음도 따뜻함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리운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올 그 겨울도 금방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
인간 마을이 소란스러웠다. 비교적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거리에 모여 서로 수군거렸다. 길바닥에는 약한 요괴들이 만신창이가 된 채로 쓰러져 있었다. 마을을 돌아다니던 후토와 토지코는 거리에 나와 있는 한 청년에게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동짓날인데도 뭔가 아침이 금방 된 것 같아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이변인가 보더라구요. 저도 소란 때문에 일어나 밖에 나와 보니 하쿠레이 무녀님께서 요괴들을 때려잡고 계셨습니다. 밤을 줄어들게 만들어 잠을 방해한 녀석들을 찾아낸다는 이유에서요.”
“흠, 아침에 너무 피곤하다 했는데 이변이었군.”
식은땀이 등허리에 쫙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후토는 자신이 벌인 일이 무녀가 나설 정도로 큰 소동이 될 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멀리서 빨간 옷을 휘날리며 이곳으로 날아오는 형체가 보였다. 하쿠레이 무녀였다. 무녀는 후토와 토지코의 앞으로 날아와 짜증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야, 너네들! 무슨 꿍꿍이 벌이고 있으면 얼른 자수해!”
“꿍꿍이? 밤이 줄어든 사건을 말하는 거면 우리랑은 일절 상관없는 얘기야. 애초에 밤을 줄인다고 우리에게 이득이 될 것도 없고 말이야. 그리고 나도 이 일의 피해자라고.”
토지코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변론하였다. 후토는 이 두 기 센 여인의 기 싸움을 이대로 두면 물리적인 충돌이 될 것임을 짐작했다. 그렇게 되면 자신에게도 피해가 올 것이고, 행여 이 일을 벌인 것이 자신임이 들통나 버리면 그 뒷감당은 더욱 가혹해질 것이다. 후토는 하쿠레이 무녀를 달래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토, 토지코의 말이 맞네. 이 일과 우리는 전혀 상관없어. 이변이라니 정말 큰일이군. 우, 우리도 이런 문제를 일으킨 녀석을 잡는 것을 돕겠네. 말썽을 부리는 놈들은 혼내줘야지, 암.”
무녀는 후토를 한 번 노려봤다. 무엇인가를 꿰뚫어 보는 듯한 그 눈빛에 후토는 살짝 겁을 먹었다. 하지만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래, 오늘은 이만 가겠어. 혹시 뭐라도 꾸미고 있는 게 밝혀지면 그 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는 책임 못 질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무녀는 그렇게 엄포를 두고는 다시 멀리 날아갔다. 토지코의 표정에는 화가 가득했다.
“저 무녀년 진짜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일이 너무 괴팍하단 말이야.”
아침부터 말 못할 공포를 느낀 후토는 밤을 줄이는 도술을 다시는 사용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자꾸 사용하다 보면 자신이 한 짓임이 특정되기 쉬워지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자신이 이 이변의 흑막이라는 것을 밝힌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후토와 토지코는 이변의 범인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실제적인 흑막은 후토 자신이었기에 후토는 사실상 범인을 찾는 시늉만 했다. 날이 저물자 둘은 내일을 기약하고 선계로 돌아왔다. 후토는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지난 밤 도술로 모은 밤의 구체를 숨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자신이 흑막임을 알리는 결정적이 증거이다. 때문에 그 누구에게라도 들키게 되면 자신의 미래는 장담할 수가 없다. 그리운 태자님과 영영 다시 못 만날 지도 모른다. 후토는 두꺼운 이불로 그 구체를 덮었다. 그리고 도술을 사용하여 겉으로 보기에는 이불이 평평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절대 누구에게라도 들키면 안 되었다.
하쿠레이 무녀의 이변 흑막 찾기는 며칠 간 계속되었다. 그 동안 수많은 무고한 요괴들이 찬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쓰러져갔다. 이를 지켜본 후토는 하루하루를 두려움 속에서 보내야 했다. 하쿠레이 무녀는 끝내 이변의 흑막을 찾지 못했다. 밤이 줄어드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 그냥 넘어가기로 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후토의 마음은 어디 한 구석이 불편하기만 했다.
겨울의 바람은 봄을 향하며 조금씩 따뜻해져 갔다. 대지를 덮던 두꺼운 눈더미도 그 몸집을 줄여가며 따뜻한 계절을 마주했다. 봄은 얼어붙은 대지에 다시금 생동감을 불어 넣어 주었다. 세상의 본성은 움직이는 것이다. 한 계절 동안 엉거주춤하던 세상은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따스한 봄 햇살과 만나 기쁜 듯 춤을 춘다. 후토의 일상은 계절이 변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갑작스러운 꽃샘추위에 감기를 크게 앓았다. 감기는 결코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계절은 한 편의 이야기처럼 여름으로 흘러갔다. 태양의 드센 기세에도 요정들은 건강한 아이처럼 요란스러웠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받으면 행복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푹푹 찌는 더위에 후토는 몸살을 여러 번 했다. 몸이 좀 괜찮아진다 싶은 때에는 장마가 시작되어 도저히 여름을 만끽할 수 없었다. 불쾌한 찜통더위를 보내고 나니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이 머무는 곳을 따라 가을의 신들이 밭의 곡식을 여물게 하고, 나뭇잎의 단풍을 울긋불긋 칠했다. 세상은 그 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겨울잠에 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점점 차가워지는 바람과 메말라가는 나무들을 보며 후토의 허전한 마음은 다시금 시리기 시작했다. 이런 감정은 지난 겨울부터 계속 후토를 괴롭혀 왔다. 지난 겨울, 계속되는 실수와 하쿠레이 무녀에게 시달렸던 기억, 올 봄과 여름의 잔병치레, 이 모든 것들은 분명 이 허전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떨어지는 낙엽 한 장에 한숨 한 번을 내쉬며 후토는 생각에 잠겼다. 그날따라 태자님이 더욱 그리워지는 날이었다.
*
얼음 요정의 날갯짓 같은 서늘한 공기가 감돌던 겨울 아침, 먹이를 구하는 까치의 지저귐이 반갑게 하루를 맞았다. 까치의 울음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후토는 방문을 덜컥 열고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토지코! 토지코! 얼른 일어나게!”
후토는 토지코의 방문을 요란스럽게 두들기며 토지코를 불러냈다. 문이 열리고 아직 졸음에서 완전히 깨지 못한 토지코가 눈을 비비며 나왔다.
“아침부터 무슨 소란이야, 진짜.”
“토지코! 언제까지 자고 있을 겐가! 어서 경내를 깨끗하게 하세! 오늘은 태자님께서 오시는 날이 아닌가!”
후토는 잔뜩 들뜬 상태로 청소를 시작했다. 그런 후토의 모습을 보자 토지코의 입꼬리는 가볍게 올라갔다. 까치가 푸른 겨울 하늘로 뛰어든다.
주변의 신령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후토는 이런 변화를 단번에 알아차리고 태자님이 근처에 와 계신다는 것을 눈치챘다. 대문 앞에 서서 내내 바깥만 바라보던 후토의 눈에 저 멀리에서 큰 망토를 두른 익숙한 형상이 가까워지는 것이 들어왔다.
“태자님!”
후토는 단숨에 뛰쳐나가 가까워지는 그 여인에게 달려갔다.
“야! 같이 가!”
여태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미코에게 달려가는 후토를 보자 토지코는 미코를 그리워했던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곧바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후토의 시야에 미코의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후토는 있는 힘껏 달려가 그녀를 세게 끌어안았다.
“태자님! 보고 싶었습니다!”
눈물이 살짝 고여 있는 후토의 눈시울을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닦아주며 미코는 따뜻한 미소로 말을 했다.
“다녀왔습니다.”
*
오랜만에 3인이 모인 풍경은 떠들썩했다. 후토는 뭐가 그리 궁금한지 미코에게 그 동안 그녀에게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를 계속해서 물었다. 미코는 질린 기색도 없이 다정하게 1년 동안의 일들을 모두 보고했다. 마치 1년 치의 못 다한 수다를 전부 쏟아내듯 하며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후토는 정말 오랜만에 따뜻한 겨울을 느꼈다.
날이 저물어 둥근 달이 깨끗한 겨울 하늘을 등대처럼 밝히고 있다. 저녁 식사를 끝마치고 토지코가 뒷정리를 하는 동안에 미코가 후토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오늘밤 저의 처소로 와주세요.”
후토는 미코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그저 황송하기만 한 이 한마디에 후토는 감격하여 긍정했다.
후토는 떨리는 마음으로 미코의 방문을 살짝 두드렸다.
“태자님, 들어가겠습니다.”
문을 열자 촛불만이 희미하게 어둠을 밝히는 방안에 하얀 유카타를 입은 미코가 무릎을 꿇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후토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미코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오세요.”
후토는 다소곳하게 미코의 앞으로 나아왔다. 미코와 후토는 마주본 채로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머리 하나 정도 차이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아련함이 감돌았다. 미코는 후토의 턱을 오른손으로 살짝 쥐었다. 그리고 후토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입맞춤이 계속되는 둘의 사이에서 야릇한 공기가 풍겨져 나왔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던 입술이 떨어지자 두 사람의 입술에 하얀 실 같은 것이 연결되어 촛불에 반짝였다. 미코를 올려다보는 후토의 하얀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태자님….”
미코는 양 손을 후토의 어깨에 올렸다. 그리고 서서히 후토의 상의를 벗겼다. 작은 유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후토의 유방을 어루만지며 미코는 후토에게 다시 한 번 살짝 입을 맞췄다. 흥분한 심장의 고동이 손을 타고 올라온다. 미코는 후토를 아이를 안 듯 안아 들어올리고 깔아놓은 두꺼운 솜이불 위에 살짝 눕혔다. 가슴을 내놓은 채 천장을 바라보는 후토는 가빠진 호흡을 반복해서 내쉬었다. 입고 있던 유카타의 허리끈을 풀자 미코의 유카타는 그 몸의 선을 따라 스르르 흘러 내렸다. 희미한 촛불에 성숙한 여인의 나체가 아른거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미코는 후토의 위로 자신의 몸을 들이밀었다. 그러면서 왼손으로 몸을 지지한 채로 오른손을 후토의 치마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후토의 벌어진 틈이 점점 축축해지는 것이 손끝으로부터 느껴졌다. 음부를 애무하며 미코는 후토에게 다시 입을 맞췄다.
“음, 으읍….”
입맞춤은 아까보다 더 격하게 서로의 혀와 타액을 섞었다. 격해진 입맞춤과 함께 후토의 아래쪽을 애무하는 미코의 손길도 더 격해졌다. 후토는 음란한 신음을 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미코는 후토의 입술에서부터 볼, 턱, 목을 지나 쇄골과 유방, 배를 차례로 혀로 훑어 내려왔다. 그러면서 후토의 치마를 서서히 벗겨냈다. 무릎을 세워 다리를 벌린 그 사이로 잔뜩 젖은 음란한 보지가 그대로 노출되었다. 미코는 후토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물이 흐르는 그 틈새를 혀로 애무하였다.
“태자님, 태자님…!”
강한 자극이 쉴 새 없이 온몸을 타고 올라와 소리를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쾌락 섞인 교성이 까만 겨울밤의 공기를 가득 채웠다.
*
“아아…. 으읏!”
“태, 태자님! 으응, 아아….”
서로의 가장 기분 좋은 곳을 서로 맞대고 허리를 움직이며 비벼대는 두 여인의 형체가 보인다. 격렬해지는 움직임에 형용하지 못할 정도의 쾌락이 두 여인의 감각을 지배한다. 오랜 성행위 동안에 후토의 안에 쌓인 오르가즘이 활화산처럼 터져 나왔다. 후토는 마치 짐승과도 같은 소리를 내며 경련하였다.
“하아…. 하아…. 하아….”
숨을 크게 내쉬는 후토의 옆으로 미코가 접근하여 와 나란히 누웠다. 미코는 후토의 팔을 당겨 자신의 음부에 손이 닿게 했다.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미코의 음부를 애무하였다.
“후토, 기분 좋아지셨나요?”
“네, 네 태자님…. 화, 황송하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후토가 대답하였다. 후토의 손가락이 자신의 민감한 곳을 건드릴 때마다 살짝 표정을 찡그리며 미코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꽤 오랫동안 섹스를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후토는 뭔가 찔리는 것이 있다는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달빛이 들어오는 방향에 변화가 없는 것이 마치 밤이 이대로 멈춰버린 듯 하군요.”
미코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미소를 얼굴에 가득 지었다.
“그, 그것이….”
후토는 말을 얼버무리려 했다. 하지만 이내 솔직하게 털어냈다.
“태자님과 헤어지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태자님과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태자님의 처소에 들기 전, 작년 동짓날에 모아두었던 밤을 풀어두고 왔습니다.”
미코는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후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자연의 순리를 건드리는 것은 중대한 일입니다. 이곳 환상향에서는 이변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일이죠. 이 사실을 하쿠레이 무녀가 알게 되었다간 큰 소란이 벌어질 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후토는 결연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무녀에게 혼나게 되더라도 태자님과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할 수 있다면 무녀 따위에게 겁먹을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미코는 이렇게 말하는 후토의 모습이 그저 귀엽다고 생각하여 ‘후훗’하고 웃어버렸다.
“그래도 책임 질 것은 져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가만히 있던 저도 공범이니 날이 밝으면 함께 무녀에게 가서 자수를 합시다.”
후토는 아침 같은 것은 다시는 안 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대지를 녹이는 따뜻한 햇살도 아무렴 어떠냐는 생각이었다. 그 보다 더 따스한 빛이 바로 곁에 있지 않은가. 바람 한 점 없는 따뜻한 겨울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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