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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팬대] 조화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7.26 20:52:35
조회 724 추천 2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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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찾아온 지하 도서관은 고요했다. 도서관의 마녀는 이 시간대를 가장 좋아한다. 햇빛이 들지 않는 도서관은 낮에도 등불 몇 개로 밝혀진 어두운 곳이지만 침입자들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었다. 마녀는 메이드로부터 받은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속이 부드럽게 데워지는 느낌이었다. 잠시 찾아온 작은 평화 속에서 책장을 넘기려고 할 때,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쿠야?"


대답이 없었다.


"누구야. 방해할 거라면 돌아가."


"나야."


책장 뒤에서 금발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 보기 쉬운 얼굴이네. 우리 집 고양이들은 무얼 하는 걸까?"


"오늘은 그런 게 아니라, 부탁이 있어서 왔어."


처음 보는 소녀의 제법 정중한 모습에 마녀는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기웃거렸다. 이 소녀는 마녀와 같은 마법사로 빌린다는 명목하에 상습적으로 마도서를 가져가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도서관의 주적이다.


"괜찮을까?"


마법사가 다가오자, 마녀는 이 침입자를 조금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녀는 평소보다 훨씬 더 지쳐 보이는 모습에 머리카락은 손질을 안 한 듯 축 늘어져 있었다.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마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차와 과자를 내오라고 할게."



--------------



"싫어. 돌아가 줘."


마녀는 처음부터 마법사의 부탁을 들어줄 마음이 없었던 것처럼 냉랭하게 대답했다.


"내 평소 행실 때문이라면 사과를 해도 진심으로 들리지는 않겠지. 솔직히 별로 미안하지도 않고. 농담이야. 알고 있지?"


마법사가 애써 능청을 떨었지만, 마녀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아무튼 거두절미하고 모두 돌려줄게. 내 집이 지저분하긴 해도 빌린 물건만큼은 신경 써서 관리하고 있었다구."


"내가 네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네가 지난 몇 년간 내 도서관에서 꾸준히 책을 훔쳐갔던 것 따위와는 일말의 연관도 없어. 네가 배우려는 그것이 어떤 마법인지 알기나 해?"


"나도 가벼운 마법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그 마법이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배우려는 이유를 알고 싶은데. 최대한 잘 대답해 봐. 기분이 나면 알려줄 수도 있으니까." 


마녀가 말했다. 그녀는 마법사의 대답을 예상이라도 하는 것처럼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마법사는 마녀가 책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것을 보며 말했다. 


"나는...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책을 잡고 있던 마녀의 손가락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나는 마법을 연구하면서 행복을 느껴. 별들에 손을 뻗어 힘을 빌려올 때는 마치 온 우주의 별들이 나에게 속삭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 때 느꼈던 감정들을 토대로 새로운 마법을 내 손으로 연구하고 있을 때는 비록 힘들고 외로울지라도 행복할 수 있었어. 그래. 나는 너처럼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아무런 걱정 없이 편하게 하고 싶어.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정말로 행복할 거야."


마녀는 이 작은 다과회가 열린 뒤로 처음으로 책을 읽는 것을 그만두고 마법사의 올리브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생각에 잠긴 것처럼 먼 눈을 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마법사에게 말을 건넸다.


"그 마법에 관해 아는 대로 말해봐."


마법사는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말을 시작했다.


"사충(捨虫)의 마법. 사람의 몸속에서 불행을 좌우하는 세 마리의 벌레인 삼충(虫)을 버린다(捨)는 뜻을 가진 마법이다. 이 마법을 익힌 마법사는 불로장생의 힘을 얻어 더 이상 늙지 않게 된다.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마법으로, 선천적인 마법사라고 해도 반드시 후천적으로 익혀야 한다. 가장 어려운 마법 중 하나이자 다양한 고등마법과 연결되어 있어 중요한 마법이지만..."


"네가 이틀 전에 가져간 마도서에 그렇게 적혀 있었겠지."


"아. 하하. 알고 있었구나."


마법사는 짐짓 웃으며 땋은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왜냐하면 그 마도서는 내가 오래전에 직접 집필했으니까.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그 마도서에서 필요한 정보를 모두 얻을 수 있었어?"


"아니. 중요한 마법이라는 부분이 끝이었어."


"맞아. 그리고 이 도서관 어디에서도 그 마법에 관한 책은 찾아볼 수 없었을 거야. 내가 오래전에 모두 없애버렸으니까."


"그러냐."


마녀가 말을 마치자 마법사는 유감이라는 표정을 했다. 마녀도 똑같았다. 이 변화를 마법사보다 먼저 눈치챈 마녀가 덧붙였다.


"물론 마도서만 없을 뿐. 마법에 관해서는 내가 전부 알고 있어. 기다려 봐."


마녀가 손짓하자 자그마한 악마 하나가 날아왔다. 그녀가 무엇인가를 쪽지에 적어 악마에게 건네주자 악마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어디론가 향했다. 잠시 뒤 악마는 책 한 아름을 들고 왔다. 마녀는 악마에게 간단한 감사 인사를 한 뒤 그녀가 들고 온 책 중 한 권을 집어 들어 책상 위에 펼쳐놓았다.


"그 책은 뭐야?"


"물질대사에 사용되는 에너지를 마력으로 대체할 수 있는 마법에 관한 책. 달리 말하자면, 「사식의 마법」. 아직 도서관에 남아 있는 걸 보니, 이 책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지?"


"맞아. 먹는 즐거움은 남겨 두고 싶었거든."


마녀가 코웃음을 쳤다. 마법사도 방글거리다가 말을 이어갔다.


"사실 그 마법은 사충의 마법과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여서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어. 처음에는 두 마법을 엮어서 사식&사충의 마법이라고 부르길래 무슨 연관이 있는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까 먹지 않는 것과 늙지 않는 건 근본부터 다른 문제 같더라."


"근본부터 다른 마법이라고 봐도 되니까 틀린 말은 아니야. 두 마법이 엮여서 불리는 이유는 나중에 설명해 주도록 할게. 본론으로 돌아가서, 아까 사식의 마법은 물질대사에 사용되는 에너지를 마력으로 대체하는 마법이라고 했지? 하지만 이 마법은 물질대사를 완전히 멈추는 것부터 시작해. 여기서부터 사식의 마법과는 완전히 다르지?"


"물질대사를 완전히 멈춘다고? 그게 가능해?"


마법사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 마법의 가장 기본이 되는 과정이야. 이것만 해도 엄청나게 복잡한 이론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만. 예를 들어 이런 것들."


테이블 위에 복잡한 내용의 마도서 몇 개가 더 올라왔다.


"이걸 마치고 나서는 여러 분야의 마법에 통달한 뒤 그것을 복합적으로 신체에 받아들여야 해. 특히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가장 필수적인데, 그건 다른 분야의 마법들과 완전히 독립되어 있기 때문에 손도 못 대는 사람들이 허다하지. 어째서 나이 들어 보이는 마녀가 그렇게 많은지 알아? 이 마법이 그만큼 배우기 어려우니까 보통 오랜 세월에 걸쳐 배우게 되기 때문이야."


"그렇다면 너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그 마법을 익힌 셈이 되겠네."


"뭐, 그렇지. 나는 제법 특출나기도 했으니까."


"헤, 대단한데."


"그리고, 나도 너처럼..."


마녀는 말을 하다 말았다. 마법사는 마녀가 어떤 말을 하려고 했는지 궁금한 눈치였지만 더 캐묻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에 마녀의 얼굴에 쓸쓸한 표정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사충의 마법이 배우기 어렵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내가 그 마법을 배우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야? 내가 시간만 낭비할 것 같아서?"


"많은 유능한 마법사들이 불로장생에 눈이 멀어 이 마법을 배우기 위해 허송세월하다가 결국 가치 있는 일 하나 이루지 못하고 한 줌의 재가 된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이 마법에서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야. 가장 중요하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어. 마법사들은 이 마법을 배우면서 무언가를 점점 잊어버리게 돼."


"잊어버린다니? 무엇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말로 옮기자면,"


마녀는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변화하는 방법을. 마리사."


도서관 안에 정적이 흘렀다.


"아까 두 마법을 엮어서 부르는 이유에 대해 말해주기로 했지. 사식의 마법은 몸을 마술에 바치는 마법이야. 사식의 마법을 배운 마법사의 세포는 주문이 깃들게 되고 혈관 속에는 마력이 흐르게 되어. 그리고 사충의 마법은 마음마저 마술에 바치는 마법이야. 오랜 마법 수행을 거친 마법사가 마법에 대한 순수한 열망, 마법이 아닌 것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마법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라도 희생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곧 사충의 마법의 완성을 의미해."


"열망..."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도 그것이 부족하면 실패하고 말아. 많은 마법사들이 그것을 말년에 깨닫는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하지만 너와 나처럼 어리다고 해도 유능하고, 또 준비되어 있다면 마법을 완성할 수도 있어."


"파츄리. 너는..."


"나는 사충의 마법을 배우기로 했어. 이 세상의 모든 책을 읽은 뒤 최고의 마법을 담은 마도서를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고생 끝에 불로장생을 얻을 수 있었지. 덕분에 시간도 보장되었고 내 마법도 비할 바 없이 미려해졌어. 그토록 원하던 순간이었지만..."


상심이 마녀의 얼굴을 스쳤다. 마법사도 잠자코 기다렸다. 두 사람은 꽤 오랫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행복했어?"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마법사였다.


"아니. 나는 그러지 못했어."


마녀가 대답했다.


"나는 한결 편한 마음으로 독서를 할 수 있었고, 덕분에 마법 연구에도 많은 진전을 이뤄냈어. 마계에서 일약 주목받는 마법사가 되어 많은 마법사들에게 존경받기도 했지. 그렇지만 나는 사충의 마법을 익힌 그 날부터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어. 마치 빼어나게 아름답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만들어진 도자기 병처럼. 단 하나, 책과 함께 있을 때를 제외하면."


마녀가 말을 마쳤다. 마법사는 마녀가 어째서 지금까지 쓸쓸한 표정을 지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마워."


마법사가 말했다.


"나를 배려해 줘서."


"옛날 생각이 났을 뿐이야."


마녀는 짐짓 책을 보며 딴청을 피웠다. 그러자 마법사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단 한 번도 네가 도자기 병처럼 차갑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가끔 사석에서 이야기하다 보면 우리들은 생각하는 방식이 약간 달라 가벼운 마찰이 일어나긴 하지만 통하는 게 많은 좋은 녀석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어. 조금 심술궂긴 하지만 마법 실력도 대단하잖아. 너를 알게 된 후로 더 많은 마법을 알게 되어서 좋았고.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아직도 일루전 레이저 같은 걸 사용하고 있었을걸."


보라색 눈동자와 올리브색 눈동자가 마주쳤다.


"오늘따라 참 다정하구나."


"너야말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마녀답지 않게."


마녀는 천장을 바라보며 짧게 미소지었다. 작은 다과회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



"파츄리님. 아침의 커피를 가져왔습니다."


"그래. 고마워, 사쿠야."


"그리고 이것도 함께 가져왔습니다. 검은 쥐가 전해달라는군요."


메이드는 마녀에게 검은 꽃 한 송이를 건네주었다. 꽃송이는 아직 닫혀 있었지만, 살아 있는 생화였다.


"수상하다면 제가 처리할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네. 사쿠야. 혹시 남는 꽃병 있니?"


"아, 지금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물을 채워서 가져다줘. 부탁할게."


마녀의 탁자 위에 검은 꽃과 보라색 꽃이 하나씩 담긴 꽃병이 올라왔다. 검은 꽃은 생화이고, 보라색 꽃은 마녀가 솜씨 좋게 만든 조화이다. 시간이 지나면 검은 꽃은 시들고 꽃병에는 보라색 꽃만 변하지 않은 채로 남겠지. 하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마녀는 생각했다. 검은 꽃은 살아 있는 동안은 끊임없이 약동할 것이고,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고 기억해줄 보라색 꽃이 있으니까.




------------------------------------------





3번 지문을 써봤다. 팬픽 지금까지 쓰다 던지기만 해왔고 완성하는건 처음인데 좋은 경험 하고 가는듯.

마리사랑 짐짝 엮는 건 너무 사골이긴 해도 써먹고 싶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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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닉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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