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이 IP가 막혀서 핫스팟으로 다시 올림;;;;
링크 올린 건 지울까 고민중입니다.

“역시 안은 들여다보기 전까진 모르는 법이네.”
렌코는 이런 상황에서도 참으로 태연하게 그렇게 말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지만, 너무 태연한 나머지 내 신경을 너무 거스르는 것도 사실이다. 나도 그걸 속으로 숨기고 있을 생각은 없어 바로 불쾌한 표정으로 드러냈다. 그래 봐야 렌코가 보일 반응은 뻔하지만.
“뭐야, 또 그런 뚱한 표정을 짓는 거야? 이미 벌어진 일은 별수 없잖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렌코는 역시나 실없이 웃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너무 예상 그대로라, 언제나처럼 나는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대체 렌코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렇게 한결같을 수가 있을까. 표정만으로 내 의사를 전달하는 데 실패했으니, 한숨을 내쉬며 말로 전달할 수밖에.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해도. 지금 상황을 제대로 이해한 거야?”
“지금 상황? 그야 내가 도자기를 하나 가져왔고, 메리랑 같이 그걸 살펴보고 있었지? 그러다가 갑자기 메리가 무언가 보인다고 했고.”
렌코는 그게 뭐가 그리 대수라는 투로 오히려 내게 물었다. 이런 면도 언제나의 렌코다. 내 이름을 왜 제대로 안 부르고 멋대로 메리라고 줄여 부르냐고 물었을 때도 이런 식이었지. 그야 메리는 메리니까라고. 그때 생각을 하니 심란했던 머릿속이 다시 더 복잡해져 이마가 지끈거렸다. 그 와중에도 할 말은 해야지.
“그래, 살펴본 건 좋아. 내가 뭔가 보인다고 했던 것도 맞고. 그런데 그 뒤가 문제잖아. 지금 상황. 지금 상황 말이야.”
“음... 그야...”
렌코는 내 말에 바로 답하지 않고 주위를 슬쩍 살펴봤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곡선형의 벽. 안타깝게도 우리 둘이 들어온 것만으로 이미 내부는 꽉 찬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스운 말이지만 차라리 공간이라도 더 넓었으면 조금 더 안심이 갔을 텐데. 렌코는 그 자리에서 한 바퀴를 빙글 돌아 주위를 다 살펴보고는, 내게 히죽 웃으면서 답했다.
“우리, 도자기 안에 갇힌 것 같지? 이야, 이런 경험도 다 해보네.”
나는 그 속없는 답변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도자기 안은 너무나 좁아서, 내 비명이 이중삼중으로 울려 퍼졌다. 그 덕에 렌코가 귀를 막고 괴로워한 건 조금 속 시원했달까. 물론 이 상황에선 아무 의미 없지만.
나, 마에리베리 한은 단짝인 우사미 렌코와 함께 비봉구락부라는 불량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결계를 찾아다니면서 겪었던 일들은 불량이라는 표현 정도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꿈속에서 죽순을 가져오기도 하고, 분명 접근할 수 없을 인공위성 내부를 탐험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볼 수 없는 이 세계의 다른 면을 보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그런 것을 즐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렌코와 같이 다닐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렌코는 가끔 너무 무신경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저 마냥 신기해서, 위험할지도 모르는 행동을 구상하고 거기에 나를 끌어들이기 일쑤였다. 지금 내 눈앞의 렌코는 내가 평소에 내 친구에 대해 가진 이미지 그 자체를 마치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다. 도자기 안에 갇혀버린 상황에서,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흥미진진해하는 저 표정은 내가 익히 아는 렌코의 그 표정이다.
“그래도 내가 생각한 게 맞았잖아. 이 도자기, 분명 뭔가 있다니까. 괜히 흉흉한 소문이 붙어있는 게 아니었어.”
렌코는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챙모자를 벗고 여전히 주위를 살펴보며 그렇게 말했다. 분명 우리는 집 안에 있었는데 모자는 그대로 챙기고 있었던 건지 원. 어쨌거나 그 말 그대로 우리가 지금 갇혀 있는 도자기는 렌코가 특이한 소문을 듣고 가져온 도자기였다. 소문에 따르면 첫 주인이 실종되어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는데, 그렇게 도자기를 얻은 사람도 또 실종되었다던가. 흉흉한 소문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까지는 내 친구를 이해할 수 있지만,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건 그걸 굳이 가져와서 이 사달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런 걸 우리 집까지 들고 온 렌코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아, 그럼 카페에 가져가서 볼 걸 그랬나?”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렌코는 언제나처럼 또 창의적인 발상으로 나의 매도를 흘려 넘겼다. 위험한 소문을 가진 물건을 다룰 땐 조심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조차 없는 듯한 게 참으로 내 친구답다. 그런 렌코에게 뭐라 하면서도 계속해서 어울려주는 나야말로 문제인 걸까. 내 마음이 이 도자기의 속 면에 비치기라도 했던 걸까. 렌코는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반응했다.
“그래도 메리랑 둘이서만 따로 보고 싶었는걸?
그렇게 상큼하게 웃으면서 말하니 뭐라 할 말이 없다. 게다가 내 얼굴까지 괜히 화끈거린다. 언제나 이렇게 내 마음을 마음대로 뒤집어놓는 면까지, 지금의 렌코는 어쩐지 평소의 렌코보다 더 렌코다워서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다.
“역시 이 위로 올라가 봐야 하나?”
나는 도자기 안에 쭈그린 채로 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도자기의 좁아지는 목구멍 위로는 희미하게나마 빛이 비쳐 도자기 안이 어둡지 않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문제는 발돋움하는 정도로는 손끝도 닿지 않을 정도로 그 구멍이 높은 데다가, 속 표면은 티끌 하나 없이 부드러워서 도무지 기어올라갈 수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시도는 해볼 수 있다. 하지만 렌코가 이미 기어오르다가 우스꽝스러운 꼴로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우리 둘만의 비밀로 남겨두려고 한다.
“이쪽은 역시 너무 작아서 안 되겠지.”
렌코는 주전자의 물주덩이에 얼굴을 살짝 내밀어봤지만 벌써 어깨가 걸려서 더 몸을 밀어 넣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혼자 힘으로 이 주머니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사실상 없는 셈이다. 누군가가 이 도자기를 밖에서 부숴버린다면 모를까. 하필 이 도자기는 지금 렌코와 나, 우리 둘의 집에 있다. 그리고 우리 둘은 도자기 안에 갇혀 있고. 즉 우리를 박에서 구해줄 사람은 없는 셈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렌코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렌코, 역시 네가 올라가 봐야겠어.”
“메리도 봤잖아. 내가 올라가 보려다 미끄러진 거.”
“혼자 올라가려니까 그렇지. 둘이니까 한 명이 밑에서 들어 올려주면 어떻게든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
“오, 메리답지 않은 좋은 생각!”
렌코는 내 제안은 미처 생각 못 했는지 양 손바닥을 짝 치면서 감탄했다. 그보다 나답지 않은 좋은 생각이란 건 뭐야. 이런 걸 생각 못 한 렌코가 더 우습지 않냐고. 하지만 렌코는 이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그런데 왜 굳이 내가 올라가야 해?”
“그럼 내가 올라가고, 네가 들어 올릴래?”
“아, 메리는 나보다 무거우니까 그건 좀... 아야야야, 꼬집지마.”
한 마디도 안 지려는 렌코가 어찌나 얄미운지 나는 두 뺨을 꼬집었다. 아니, 물론 그런 이유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말은 굳이 하지 않는 매너란 게 없는 걸까. 하지만 더 그럴싸한 이유가 있단 말이다. 나는 한숨을 내밀면서 굳이 그걸 설명해줬다.
“내 치마가 렌코보다 훨씬 길고 거추장스럽잖아. 들어 올리기엔 렌코 쪽이 더 편하지 않겠어?”
“음... 그건 그렇지만... 아, 메리 부끄러운 거구나? 치마 속을 내가 볼까 봐. 어차피 서로 볼 거 다 본 사이에 뭘 그리... 아야야야야, 왜 또 꼬집는 거야?”
정말이지 틀린 말은 하나도 없지만 너무나 얄밉다. 오늘의 렌코는 정말 평소보다 어쩜 이렇게 더 렌코답지?
“렌코, 어때? 좀 닿을 것 같아?”
나는 렌코의 두 발을 붙잡고 끙끙대며 물었다. 하지만 렌코의 대답은 그런 내 노력에 부응하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아니 메리, 역시 안 되겠는데?”
“그렇게 멀어? 어떻게든 밖에 못 나갈 것 같아?”
“조금만 더 뻗으면 될 것 같기도...”
“그... 그럼 내가 어떻게든 더 밀어 볼 테니까...”
나는 도자기의 속 면에 등을 기댄 채로, 렌코의 두 발을 내 두 손에 올려놓은 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들어 올려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런 자세 때문에 렌코의 두 무릎이 내 얼굴에 닿을락 말락 한 것이 어쩐지 묘한 기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묘한 감정을 느끼는 내가 이상한 걸까, 아니면 이런 상황이라 더 그런 걸까. 렌코의 무릎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게 사실 처음도 아닌데.
“메리, 안 되겠어. 그냥 내려줘.”
“뭐? 아냐, 아직 괜찮으니까 더 뻗어봐 좀.”
렌코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포기했다. 다른 면은 다 평소 같으면서 왜 지금 이 순간만 이렇게 평소답지 않지? 나는 어떻게든 렌코를 독려해보려고 고개를 들었다가 흠칫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내 눈앞엔 렌코의 무릎이 있었고 그 말인즉슨 내 머리는 렌코의 치마에 살짝 걸쳐있었다는 소리다. 그 상황에서 고개를 들면 렌코의 얼굴이 아니라...
“메, 메리? 넘어질 것 같은데? 아니, 지금 뭐 보는 거야...?”
렌코는 내 몸이 흠칫 굳자 그 반동으로 기우뚱 흔들렸다. 렌코는 어떻게든 넘어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 같지만, 지금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야 나는 지금 그런 렌코가 아니라 다른 것을 보고 있으니까.
“메리! 나 넘어져! 넘어진다고!”
렌코는 그렇게 말했지만, 넘어진 건 내 쪽이었다. 나는 렌코의 두 발을 붙잡던 손을 풀고, 렌코와 함께 내 몸을 일부러 뒤로 무너뜨렸다.
“아야야, 메리. 나보고는 치마 안 보지 말라더니 왜 나한테는...”
내 배 위로 엎어진 렌코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일어나려는 렌코의 왼팔을 붙잡고 거칠게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뭐, 뭐야 메리. 왜 그래?”
내 코앞으로 바짝 다가온 렌코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내 표정이 험악해서 당황한 걸까, 아니면 우리가 늘 가지던 그런 분위기라고 생각한 걸까. 나는 그런 렌코의 시선을 무시하고, 렌코의 목덜미에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메리? 저기... 무슨 말이라도...”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렌코의 넥타이를 확 잡아당겼다. 목덜미 주위의 옷을 살짝 잡아당기자 렌코의 맨살이 드러났다. 분명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자국이 없는 걸 확인한 나는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없어.”
“뭐? 메리, 뭐가 없다는 거야...? 저기, 나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데...”
나는 그런 렌코를 이번엔 확 밀쳐 내고는 다시 한 번 단호하게 말했다.
“분명 내가 남긴 자국이 없어. 아직 없어졌을 리가 없는데.”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렌코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로, 자신의 목덜미와 그 주변을 오른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어쩐지 그 표정과 행동이 너무나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평소의 렌코다워서가 아니다. 아니, 그전까지는 너무나 평소의 렌코다웠다는 점이 더 그렇다.
“너, 렌코 아니잖아. 대체 뭐야?”
그리고 렌코의 표정이 순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눈앞의 존재는 렌코도 아닌 주제에 아직도 렌코의 외모를 취하고 있다. 평소의 렌코와 비교해서 도무지 다른 점이 없다는 점이 너무나 가증스럽다. 감히 렌코인 척 나를 속여 넘기려 했다는 점도 물론 화가 난다.
“어떻게 알았어? 분명 네게 비치는 대로 변했는데...”
“...비치는 대로 변해?”
렌코인 척하는 그 존재는 이상한 말을 했다. 내게 비치는 대로라니.
“내 표면이 비친 그대로, 그리고 네 마음에 비친 그대로 변했는데. 대체 어째서 들킨 거지?”
“뭐야, 너 설마 램프, 아니 도자기의 요정이라도 되는 거야?”
나는 쯧하고 혀를 찼다. 비치는 대로 변하다니. 가끔은 도자기가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도 가능한 건가 싶어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쩐지 평소보다 더 평소의 렌코처럼 느껴졌던 것은 그래서일까. 내가 막연히 가지고 있는 렌코에 대한 인상이 이 도자기에 비치기라도 한 걸까.
“마음대로 불러. 나도 내가 뭔지 모르니까.”
“설마 그 흉흉한 소문, 다 네 짓이었던 거야? 전 주인들이 사라진 거, 네가 이 안으로 끌어당긴 거야?”
“하, 직접 보시지. 여기 어디 사람 시체라도 있어? 잠깐 끌어당겨서 이야기했다가 돌려보냈을 뿐이야. 잠깐 사라진 정도로 주위에서 호들갑 떨다가 소문이라도 이상하게 났나 보지. 어쩐지 나를 가지려는 사람이 없는 것 같더니, 그런 소문 때문이었나. 정작 네 친구는 그 소문 때문에 나를 슬쩍 가져온 것 같지만.”
이 도자기, 아무래도 렌코가 어디서 슬쩍 가져온 모양이다. 돌아가면 렌코에게 잔소리할 일이 더 생겨버렸다.
“전 주인도, 그 전 주인도 그냥 잠깐 여기로 끌어왔다가 내보냈어. 대충 친한 친구랑 같이 갇힌 척하긴 했지. 겉모습이나 행동만 비슷하게 해도 다들 굳게 믿더라. 나중에 정체를 밝힐 때가 제일 재밌었지. 돌려보낼 땐 도자기 깨기라도 하면 저주 걸리니까 절대로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단단히 경고하면 또 얼굴이 사색이 되는 게 어찌나 웃기던지. 근데 넌 어떻게 안 거지? 분명 비치는 그대로 흉내냈는데.”
도자기의 요정은 여전히 렌코의 모습을 취한 채로 내게 물었다. 이제는 험악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어서 전혀 렌코답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안타깝게도 이제는 내 쪽에서 덜컥 겁이 나서 식은땀이 내 등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 그걸 알려줘야 해? 나를 속이려던 주제에 알아서 뭐 하게?”
도자기의 요정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도 주저앉아 있는 나를 차갑게 내려다봤다.
“밖에 나가려면 대답하는 게 좋을걸? 나랑 평생 여기 갇혀 지내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 나도 그건 싫지만, 네쪽에게 그게 끔찍한 일이겠지? 여긴 내 집이지만 네 집은 아니지만.”
“우, 웃기지 마! 네가 돌려보내 준다는 보장은 어딨는데?”
“내 말 못 들었어? 전 주인들은 내가 돌려보냈어. 나도 인간들이랑 평생 같이 지내고 싶은 건 아니라고. 그냥 가끔 놀래키는 게 재밌는 거지. 넌 재미가 없어. 불쾌하니까 어떻게 알아챘는지만 말해주면 밖으로 보내줄게.”
“...알려주면 어쩌게?”
“글쎄, 다음 녀석한테는 안 들키게 참고하겠지? 그것 외에 다른 이유가 뭐 있겠어? 이것만으로 알겠지? 너랑 같이 있을 생각 없단 거. 안 그럼 굳이 들킨 이유를 알 필요가 없잖아?”
우습게도 요정의 말은 더없이 논리적으로 들렸다. 분명 나를 앞으로 계속 남겨둘 생각이면 들킨 이유를 굳이 들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밖으로 내보내 준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나는 이판사판으로 그냥 알려주기로 했다.
“목덜미.”
“그래, 목덜미. 내 목덜미를 보고 눈치챘잖아. 아니 그전에 이미 눈치챈 것 같지만. 어쨌거나 목덜미를 보고 확신했지. 대체 어떻게 알아챈 거야?”
여기서 더 말해야 한단 말이야? 이젠 무서워서가 아니라 창피해서 땀이 흐른다. 나는 부끄러움을 어떻게든 숨겨보려고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목덜미에 없었단 말야!”
“그러니까 뭐가.”
요정은 아무래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이걸 내 입으로 직접 말하라고? 차라리 날 죽여줘. 물론 죽이진 말고, 제발 그냥 날 내보내 줘.
“내가 어젯밤에 남긴 자국이! 없다고! 어젯밤에 남겨서! 벌써 없어졌을 리가 없단 말야!”
나는 창피함을 이기지 못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지금 내 손바닥이 뜨거운 건 내 얼굴이 화끈거려서일까, 아니면 그냥 몸 전체가 화끈거려서일까. 요정 쪽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어서 더 어색한 분위기다.
“...어, 그러니까 자국을 남겼다고?”
“...그래.”
나는 두 손의 손가락을 벌려서 그 사이로 살짝 요정을 바라봤다. 여전히 렌코를 흉내 내고 있는 요정은 아직도 정확히 이해되지 않았는지 뺨을 긁적이며 물었다.
“자국을 뭐로 남겼는데?”
“...입으로 남겼다. 왜?”
“아, 입으로... 어, 그런 식으로 남길 수도 있구나. 음... 친한 사이라면 그러나.”
친한 사이 정도에 그러겠냐. 지금 당장 멱살을 붙잡고 싶지만 그랬다간 나를 이대로 가둬둘 것 같으니 참았다.
“뭐 알겠어. 다음엔 목덜미도 주의 깊게 비춰봐야겠네.”
요정은 여전히 시원스럽지 못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이 녀석, 분명 지금 무슨 소리인지 이해 못 하고 있다. 그래도 부끄러워 죽을 것 같다. 대체 나는 렌코도 아닌 상대방한테 이런 걸 말해야 하는 거지?
“약속은 약속이니까, 내보내 줄게.”
“그래, 제발 부탁이야, 이제 더는 네 시선을 견딜 수가 없으니까 얼른 내보내 줘.”
나는 이제 거의 빌다시피 했다. 요정은 여전히 내가 왜 그렇게 부끄러워하는지 이해를 못 한 것 표정이다. 그런 순수한 반응 때문에 더 부끄러워 죽을 것 같다.
“아, 그리고 밖으로 나가면 날 깨버리거나 그러진 마. 저주는 진짜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솔직히 장담할 수가 없다. 내게 이런 말을 하게 만든 너를 용서할 자신이 없거든.
그리고 내 눈앞에는 망치를 머리 위에 들도 내려치기 직전인 렌코가 있었다.
“엥? 메리?”
“...내려치려는 거야?”
“어? 아, 이거? 아니. 메리가 분명 눈앞에 있었는데 도자기에 빨려 들어간 것 같고, 그 안을 살펴보는데 도저히 보이진 않고. 그래서 생각한 게 밖에서 깨트리면...”
렌코는 망치를 눈앞으로 내리고는 그런 식으로 자신이 왜 망치를 들고 있었는지 설명했다. 아무래도 나를 걱정해주긴 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 전에 유비무환, 확인해야 할 게 있다. 나는 렌코의 넥타이를 붙잡고 내 앞으로 확 끌어당겼다.
“어, 메리? 지금 뭐하는...?”
“조용히 있어. 잠깐이면 되니까.”
렌코는 내 돌발행동에 당황했지만 내 단호한 지시에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땐 귀여운 강아지 같아서 괜찮은데 말이야. 나는 렌코의 목덜미 주위의 옷을 살짝 잡아당겨 그 안을 살펴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내가 기억하는 바로 그 자리에,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어, 메리? 지금 그런 분위기인 건가? 우리 분명 어제 밤에도 이미...”
“한마디만 더 하면, 나 부끄러워서 죽어버릴 거야.”
“잉?”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턱이 없는 렌코는 실없는 소리를 냈다. 평소다워서 다행인지 아닌지.
“아, 그러니까 그걸 직접 말해야 했단 말이야?”
내 설명을 들을 렌코는 아니나 다를까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물론 반대편에 앉은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터질 것만 같다. 렌코는 어쩜 이렇게 배려심이 없는지.
“이야, 그래도 다행이네. 도자기를 깨기 전에 나와서. 그런 남사스러운 걸 직접 다 말해야 했지만!”
“남 일인 것처럼 말한다? 이건 렌코 일이기도 하거든? 아까 그 망치 어딨어? 그 도자기, 깨버릴 거야.”
“아니, 진짜로 저주가 내린다잖아. 참아. 메리야 부끄럽겠지만 그쪽은 이해 못 한 것 같으니 상관없잖아?”
렌코는 실실 웃으면서 나를 말렸다. 그런 렌코의 미소 덕분에 안심이 되기는 하지만 역시 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다. 렌코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자기를 한 손으로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저 도자기는 어쩌지? 원래 있던 데 돌려놓고 올까? 이대로 우리 집에 남겨두기도 그렇긴 하네.”
“...그러고보니 대체 어디서 가져온 건데? 슬쩍 했다는 거 진짜야?”
“그냥 빌려온 거야, 빌려온 거. 다시 돌려놓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지금 당장 돌려놓고 와.”
이런 것까지 그 미소로 대충 넘기려 하진 말아줘.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지만.
“아, 오늘 일로 교훈을 하나 얻었네. 앞으로 이런 물건을 취급할 땐... 서로 표시를 남겨두는 거야. 뭐가 흉내를 내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꼭 그런 식으로 농담을 해야겠어?”
렌코는 도자기를 돌려주러 가는 길에도 그런 남사스러운 농담을 내게 던졌다. 아무래도 며칠은 더 이런 농담을 견뎌야 할 것 같다. 지금도 그 이야기가 조금씩 덜 부끄러워지고 있으니 며칠 뒤엔 그냥 한 귀로 흘릴 수 있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제발 그래야 한다. 도자기 상자를 꽉 품에 꽉 붙잡고 가던 렌코가 무언가를 떠올리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메리, 목덜미를 보고 확신했댔지?”
“그래, 확신했다. 그래서 뭐?”
나는 그렇게 조금 날을 세워서 답했지만 렌코는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아니, 근데 그 전에 의심이 들어서 목덜미를 본 거 아냐. 그게 뭔지 궁금해서.”
“윽.”
나는 그 질문에 흠칫 얼어붙어 버렸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도 부끄럽지만, 사실 여기까지는 이야기를 하는 건 더 싫었다. 도자기의 요정도 이걸 묻지 않아서 고마워하던 참인데. 이상한 데서 날카로운 게 참 렌코답군. 미안하지만 지금은 그런 렌코가 야속하다.
“메리의 설명에 따르면 그 전엔 메리가 그 요정을 위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고 했으니까... 메리한테 보이는 건...”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다. 아니, 하고 싶지 않다. 아무래도 렌코는 그런 내 속마음을 도자기처럼 비추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따면 눈치 없이 추리를 계속 이어나갈 리가 없다.
“어... 나를 들고 있었으니까... 메리가 나한테 고개를 들고 물었다고 했으니까...어?”
거기까지 말하던 렌코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아, 여기까지 결국 와버렸나. 나는 단단히 각오하고 렌코에게 살짝 고개를 돌렸다. 렌코는 전혀 평소답지 않게, 얼굴을 붉힌 채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도자기 상자는 여전히 품에 꼭 안은 채지만, 두 손으로는 어쩐지 치마를 가리려고 하는 것 같다. 아니, 그렇게 안 해도 이미 안 보이니까 굳이 하지 말아줘. 오히려 더 부끄러우니까.
“...설마 그 안을 본 거야...?”
아, 내 얼굴도 다시 화끈거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설명을 안 할 순 없으니까, 최대한 침착하게, 아무 일 아닌 것처럼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내 손가락이 꼼지락거리고 내 눈은 렌코의 시선을 피하는 상황에서 그건 역시 무리인가.
“그게, 오늘 아침에 옷 갈아입을 때 본 거랑... 도자기 안에서 우연히... 그러니까 우연히 본 게... 색깔이 달라서... 도자기의 요정도 아마... 그 안까진 몰라서 흉내내지... 못한 걸 거야...”
렌코는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붉게 물든 얼굴로 내게 한마디를 던졌다.
“...변태.”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지? 도자기의 요정을 다시 만나 멱살을 붙잡고 싶다. 아마 여전히 내가 왜 화내는지 이해를 못 하겠지만.
도자기도 사람도, 안을 들여다보기 전까진 알 수 없는 게 있으니까.
끝.
부재의 백합이라고 아세요?
도자기만 있는 사진, 이미 백합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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