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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팬대]기다리는 총탄2(열람용)

장기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7.26 23:11:16
조회 129 추천 2 댓글 1

1편 :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touhou&no=7552271&_rk=BQK&page=1




“작년부터 드문드문 절도 사건이 있었어. 마을의 거부들이 피해자였는데, 우습게도 자기네들 위신 같은 걸 신경 써서 수사 협조를 적극적으로 안 해주더라고. 그러니 도둑도 대담해졌는지, 최근에는 조금 신을 내다가 결국 우리에게 덜미가 잡혀버렸지.”


“그러고보면 마을 유지들 중엔 자기네 집에 도둑이 든 것도 이제야 알았다는 사람들도 있었죠. 창고도 제대로 정리를 안 해서 몰랐다나.”


아야의 부연 설명에 코토히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 녀석, 도둑질로 누군가에게 팔아넘기지도 않고 취미에 가까웠던 것 같더군. 오히려 더 죄질이 나쁘다고 해야할지도 모르지. 어쨌거나 그렇게 범인을 확정한 것까진 좋았는데, 하필 자경단원 녀석들이 나서기 시작해서 일이 꼬였지. 경찰이 제대로 체포하기도 전에 자경단에서 요란하게 나서버려서 그 놈이 바로 눈치채고 마을 밖으로 도망쳐버린 거야.”


“그래서 산기슭에 숨은 거군요.”


“그래. 사실 우리 쪽에서는 어디로 숨었는지 제대로 수색하지도 못했는데 너희 쪽에서 살짝 귀뜸해주더군. 산기슭에 불청객이 찾아왔는데 혹시 이유를 알고 있냐고. 난 솔직히 정말로 모르고 나한테 물어본건지 모르겠지만.”


“이런, 인간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알 순 없으니까요.”


아야는 코토히메의 불신을 숨기지 않는 태도에 그저 가볍게 웃었다.


“하여튼 어디 숨었는지 알게 된 것까진 좋았지만, 하필 산기슭이라서 말이지. 거기까지 도둑을 잡으러 갈 배짱이 있는 놈들이 없어서 말이야. 경찰이야 마을 밖이니까 나서지 않고. 자경단원 놈들도 차마 그런 짓까진 못하겠나보더군. 우리로선 다행이지. 텐구들 보는 앞에서 총을 들고 우르르 몰려가는 것도 곤간하니까. 그런데 텐구들도 행여 오해가 생길까봐 산기슭에 들어온 인간을 대놓고 손볼 생각은 없나보더군.”


“서로 괜히 오해 살 일은 하고 싶지 않은 법이죠.”


“그러면서 인간마을엔 그렇게 들락거리나?”


“누구네처럼 무기를 들고 어슬렁거리는 건 아니잖아요?”


아야와 코토히메가 그렇게 말로 엎치락뒤치락거리는 동안, 단짝이 모미지에게 바짝 붙어 슬그머니 속삭였다.


“결국 좀도둑이란 거잖아. 왜 굳이 우리보고 나서달란 거지?”


모미지는 자기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인간 마을에서 총으로 무장한 멍청이들이 설친다는 것과 그 덕에 좀도둑을 경찰이 놓친 것까지는 이해했지만, 거기에 백랑 텐구가 총을 쏴야할 이유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두 백랑 텐구의 그런 의문을 느꼈는지 아야가 코토히메와 티격태격대던 걸 멈추고 설명을 독촉했다.


“코토히메 씨.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셔야죠.”


“귀찮은 설명은 나한테 다 떠넘기네. 이것도 텐구들의 방식인가? 뭐 그건 지금은 넘어가지. 하여튼 아무도 잡으러 오질 않으니 도둑 녀석도 용기가 붙었나 보더군. 대담하게 인간 마을로 밤중에 다시 찾아온 거야.”


“그게 일주일 전이었죠.”


“그래. 그리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지. 끔찍한 밤이었어.”


코토히메는 아야의 말에 그날 밤이 다시 떠올랐는지 오만상을 찌푸렸다.




코토히메의 말에 따르면, 그날 밤 도둑은 인간마을의 유력 인사인 키리사메 가의 저택 근처에서 발견되었다고 했다. 도둑을 먼저 발견한 건 경찰이었지만, 이번에도 자경대가 끼어들면서 일이 꼬여버렸다. 도둑이 근처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자경대원 사이에 순식간에 퍼져버려서, 있는대로 무기를 집어들고 인간마을을 순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코토히메는 순찰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모미지가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표현도 너무 순화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들은 눈이 벌개져서, 어두운 밤거리에서 뭐든지 움직이기만 하면 총을 쏴댔다는 것이다. 그 총성 덕에 경찰이 덮치기 일보 직전에 도둑이 줄행랑을 친 데서 일이 끝나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이번엔 도둑이 줄행랑을 쳤다는 소문이 온통 퍼져서, 자경대원들은 자기들 맘대로 순찰이 아니라 추격을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번에도 움직이는 모든 것에 총을 쏴대면서. 그렇게 인간마을에서는 밤중에 수백 번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그 와중에도 단 한발도 다른 사람을 맞추지 못했다는 것은 코토히메 입장에선 그나마 천운이었다. 하지만 모미지는 코토히메의 그 다음 말에 자기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그리고 이틀 전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지.”


이틀 전 밤에는 마을 중앙에서 도둑이 발견되면서 자경대원들의 끔찍한 추격전이 다시금 펄쳐졌다. 이번에도 요란한 총성에 도둑이 도망쳤음은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모미지가 바로 조금 전에 그 도둑을 보고 왔으니까. 정말이지 운이 따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자경대원들의 대단한 사격실력을 증명하기라도 한 것인지 이번에도 총에 맞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자기들끼리 총질을 해댄 두 자경대원의 옷조차도 총알에 스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행운이 계속되진 못하겠지. 이제 인간 마을의 밤은 완전히 전쟁 상태야. 자경대원이 아니면 밤에 함부로 돌아다닐 용기도 못 내지. 경찰들은 이제 온갖 핑계를 대면서 야간 순찰을 피하려고 하고 있어. 정작 싸울 상대도 없고 싸움도 없는데 우리들끼리 무너져내리고 있지. 그놈의 총과 좀도둑 때문에.”


모미지는 코토히메의 눈매에서 언뜻 드러나지 않았던 피곤의 기색을 이제야 읽을 수 있었다. 핑계를 대면서 야간 순찰을 하지 않는 동료들이 있다면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코토히메가 그 중 하나였으리라.


“그래서, 나는 이 상황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해. 아니, 사실 이틀 전의 일이 일어나기 전에도 그렇게 생각했지. 이런 일이 반복되다가 누군가 정말로 총에 맞기라도 하면 곤란하다고. 지금이야 자경대원들에게 뒤에서 궁시렁대는 정도지만, 희생자가 나오면 무슨 싸움이 벌어질지 몰라. 아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이 상태가 계속되면 다들 탈진해버릴 거야. 경찰들은 순찰을 돌지 않고 사람들은 해가 뜨기 전까지는 절대 나오지 않겠지.”


“그렇다면 지금 당장 저 좀도둑을 잡아가면 되겠네요. 이렇게 아야 씨에게 부탁할 정도면 다른 텐구의 허락도 받을 수 있을 텐데요.”


단짝의 질문에 코토히메는 고개를 절레 저었다.


“그랬다간 나중에 또 같은 일이 반복될 걸. 그 멍청한 놈들이 총을 들고 설치는 한 말이지. 만약 마을 밖에서 도둑을 잡아서 데려가봐야 그 녀석들은 총을 내려놓지 않겠지. 아무튼 아무도 다치지 않았냐면서. 누군가가 총으로 다쳐서 여론이 싸늘해져야 해. 그래야 그놈들도 마지못해 총을 포기할 거야.”


“하지만 아까는 그런 희생자가 나오면 안 된다고...”


단짝의 지적에 코토히메는 차가운 표정으로 답했다.


“그래. 인간 마을의 사람이 맞으면 안 돼. 그럼 딱 한 명이 남지. 지금 인간 마을에 속해 있지 않는 인간이. 이렇게 일이 커지는 데 일조하기도 한 녀석이.”


모미지는 자신의 왼편에서 단짝이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잠자코 설명을 듣고 있던 모미지는 슬쩍 옆의 아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왜 코토히메가 아야에게 이런 일을 맡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야는 이런 식의 더러운 일을 피하기는 커녕 즐겼다. 인간 마을에서 그렇게 태연히 정체를 숨기고 돌아다니는 것도 그런 방약무인한 태도가 아니었으면 할 수 없었으리라. 바로 그런 점이 모미지에겐 불편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모미지에게 불편했던 건, 그런 그녀가 사실은 모미지보다 더 텐구다운 존재고, 또 텐구에게 더 도움이 되리란 사실이었다.


“이제 우리 강아지들도 왜 좀도둑 씨를 쏴야하는지 조금 이해가 가는 것 같네요. 조금만 더 설명하면 될 것 같아요.”


아야는 그런 모미지의 시선을 느꼈는지 기묘한 눈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코토히메는 아야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신경쓰지 않고 설명을 묵묵히 이어나갔다. 처음에 모미지에게 퉁명스럽게 들리던 코토히메의 목소리는 이젠 더없이 차갑고 날카롭게 느껴졌다.


“인간 마을에서, 누군가가 정말로 총에 맞으면 경찰들 입장에서도 강하게 나갈 수 있지. 하지만 마을 주민들이 맞는 건 곤란해. 그러니 도둑놈이 총에 맞으면 모든 게 해결되지. 첫번째론 도둑을 잡으니 해결되고, 두번째론 이제 마을 주민들도 밤에 총맞을 걱정 없이 돌아다닐 수 있고, 세번째론 도둑 본인도 조금은 동정표를 살 수 있겠지. 막상 그런 꼴을 당하면 동정하는 게 사실이니까. 마지막으론 주민들의 동정표를 이용해 멍청이들한테서 총을 빼앗을 수 있어. 운이 나쁘면 자신들도 그 도둑처럼 총에 맞을 수도 있었다는 소리니까. 경찰이 총기류를 죄다 수거해가도 뭐라할 사람은 거의 없겠지. 있어도 그 정도면 우리가 충분히 설득할 수 있고.”


“그렇다면 굳이 우리가 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자경대원이 도둑을 쏘면 되는 일이죠.”


모미지의 질문에 코토히메는 코웃음을 쳤다.


“글쎄, 그놈들이 도둑을 맞출 수 있을지나 모르겠군. 맞춰도 아마 눈먼 총알에 다른 사람이 먼저 맞은 뒤일 거야. 도둑은 두번째도 아닐지도 모르지. 그래서 부탁하는 거야. 단 한 발로, 마치 자경대 놈들이 우연히 맞춘 것처럼 모든 일을 끝내줬으면 좋겠군.”


“그럼 저희더러 계속 인간 마을에 죽치고 있으란 건가요? 도둑 놈이 우연히 우리 눈앞을 지나가길 빌면서? 게다가 자경대원들도 돌아다닐 텐데요.”


단짝의 질문에 코토히메는 고개를 다시 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어. 함정을 파뒀으니까. 도둑은 이틀 뒤 밤에, 다시 마을로 올 거야. 어디로 올지도 정해져있지. 그 근처에 잠복할 곳도 있어. 적어도 이 녀석 말로는 그렇다더군.”


“거기서부터는 제가 힘을 썼죠.”


아야는 코토히메의 말에 자랑스러운 표정과 함께 끼어들었다. 모미지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더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야가 자랑스럽게 자신이 나섰다는 이야기에 훨씬 더 고약한 일이 되리라는 예감을 받았다. 모미지부터가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 그렇게 고약하게 얽혀버렸으니까. 비록 그땐 아야의 잘못이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그뒤로 모미지가 그녀에게 가지는 인상이 그렇게 정해져버린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코토히메 씨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 도둑, 사실은 가족이 있죠. 아직 아이는 없지만 몇년간 동고동락한 아내는 아직 인간 마을에 남아있답니다. 이웃들의 이야기나 아내 분이 직접 말한 바에 따르면 금슬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고 해요. 아니, 오히려 깨가 쏟아지는 편이었다나. 하지만 아내는 남편이 자기 몰래 무슨 일을 벌이고 다니는지 몰랐던 게 비극이죠. 그녀는 남편의 도둑질도 남들이 궁시렁대는 소문으로 처음 접했다고 하네요. 그때 이미 남편은 혼자 마을 밖으로 도망가버린 뒤였죠. 그러니 이제 아내 분은 이웃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응당 혼자서 다 감내하고 있답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죠.”


“하지만 더 끔찍한 일이 있지.”


코토히메는 아야의 설명에 그렇게 덧붙이면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모미지는 그녀에게서 처음으로 약한 면을 발견한 것 같았다. 아야도 그런 코토히메가 내비친 그 감정에 동의하듯이, 목소리에 살짝 무게를 실어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래요. 그 아내분은, 그래도 혹여나 오늘 남편이 돌아오지 않을까 매일 밤을 기다리고 있다더군요. 가끔은 마을 내에서 울리는 수백 번의 총성을 다 들어가면서요. 코토히메 씨가 아까 이걸 빼먹으셨네요. 이 일이 한 번에 해결되면 좋은 이유가 하나 더 있죠. 아내 분이 이런 끔찍한 일을 더 겪지 않아도 된다는 거.”


이번만큼은 모미지도 아야에게 동의할 수 있었다.




“코토히메 씨와 제 의견이 여기서 일치했죠. 좀도둑 씨를 한 번에 쏘고 끝내야 하는데, 적어도 좀도둑 씨가 인간 마을 안에 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인간 마을에 언제 어디에 있을지도 알아야 하고. 사실 좀도둑 씨가 인간 마을에 올 법한 장소는 이미 우리도 알고 있어요. 코토히메 씨가 간단히 알아냈죠.”


코토히메는 아야가 자신을 치켜세우는 게 썩 마땅찮은 표정이었지만 딱히 뭐라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받았다.


“그 녀석, 인간 마을을 나간지 이미 거의 한 달째야. 지금 숨어 있는 동굴에 미리부터 먹을 걸 준비하진 않았겠지. 그렇다고 사냥 실력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는 먹을 걸 몰래 전달했겠지.”


모미지는 그게 누군지 벌써 짐작이 갔다. 아직까지도 그를 도와줄 사람은 단 한명이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아내를 미행했지. 어제 낮에 거리에서 남들의 시선을 그렇게 받는데도 뒷골목에 주머니를 하나 잘도 던져넣더군. 나도 하마터면 놓칠 뻔했어. 거기에 음식이 들어있었던 건 말 안해도 알겠지. 망할 도둑 녀석, 사실은 마을에 한두번 들락거린 게 아니었던 거야. 계속 그런 식으로 아내에게서 먿을 걸 얻어온 거지. 아마 예전에 몰래 연애라도 하던 둘만의 비밀 약속 장소인 거겠지. 그 녀석은 밤중에 계속 거기까지 와서 먹을 걸 가져갔던 거야. 도둑다운 재주라면 재주지.”


아야는 코토히메가 뭐라 덧붙이기 전에 얼른 이야기를 이어받았다.


“하지만 그 뒷골목은 너무 좁아서 몰래 저격하기엔 영 아니었죠. 우리 강아지 씨들이 좀도둑 씨와 자경대 친구들 몰래 숨어있을 공간도 거의 없었고. 차라리 정확히 언제 그 곳에 올지라도 알면 바로 그때 잠깐 가서 쏠수도 있었겠지만 미래를 보는 게 아니라면 그것까진 알아낼 도리가 없죠. 그래서 제가 꾀를 하나 냈어요. 좀도둑 씨가 언제 어디에 있을지, 차라리 우리가 정해버리자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미지의 몸에서 쫙 돋았다. 조금 전까지 아야에게 동의했던 것이 거짓말처럼, 아야가 무슨 말을 잇는지 듣기도 전에 벌써 경멸감이 새어나왔다.


“아내 분이 좀도둑 씨를 그렇게나 사랑해서 지금도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면, 좀도둑 씨도 아내의 간절한 호소를 완전히 무시하진 않겠죠. 물론 아내가 순순히 자수하라고 해봐야 듣지 않을 거에요. 그런 말이 통했으면 사태가 지금까지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런 말을 들었다간 아내에 대한 배신감에 오히려 반대로 행동할 거고. 그러니 반대로 해야죠. 지금 좀도둑 씨는 자기를 편들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죠. 그런데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가 그를 믿고 지지한다면? 자신도 마을 밖으로 데려가서, 둘이서 오손도손 살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면? 제아무리 비현실적인 제안이라고 해도 절대 거절하지 못하겠죠.”


거기까지 듣는 순간 모미지는 울컥 욕지기가 치밀어올랐다. 옆에서 단짝이 순진하게 아야게게 질문하지 않았다면 바로 아야의 발밑에 토해버렸을 정도로.


“그럼 그... 아내라는 인간이 남편에게 부탁하게 하는 건가요? 우리가 원하는 장소에 원하는 시간에 오게 해달라고?”


“그럴 필요가 있나요? 그러려면 아내 분을 설득해야 하잖아요. 우리 계획까지는 숨길 순 있어도, 이미 많이 지친 아내 분이 어떤 식으로 돌발 행동을 벌일지 모르죠. 정말로 남편을 따라가려도 할지도 모르고. 그러느니 우리끼리 준비하는 게 낫죠.”


“그럼 대체 어떻게...”


단짝은 아직 아야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게 되물었지만, 모미지는 아야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차라리 예상도 하지 못하고 듣지도 않았더라면 좋았으련만. 아야는 그런 모미지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더없이 가볍게 답했다.


“제가 직접 편지를 썼답니다. 그 아내 분의 필체를 따라해서. 아내 분의 집에는 둘이 연애하던 시절에 쓴 풋풋한 편지가 아직도 고이 모셔져 있더군요. 그걸 몇 개 참고하니 간단하게 편지 한 장이 완성되더군요. ‘나는 아직 당신을 믿고 있고, 당신과 앞으로도 함께 하고 싶어요. 주위의 시선을 더는 견딜 수가 없어요. 그러니 나를 이 지옥에서 제발 데리고 나가주세요. 모일 모시경, 어디서 기다리고 있을 게요. 사랑해요.’ 이제 우린 좀도둑 씨가 인간 마을에 언제쯤 어디에 있을지 알게 됐죠. 그 근처에 제가 잠복할 곳도 이미 찾아놨답니다. 남은 건 거기서 기다리다가, 단 한 번만 맞추는 일이죠.”


아야는 손가락으로 장난스럽게 총을 쏘는 시늉을 했지만, 모미지와 단짝 중 어느 쪽도 거기에 대꾸할만큼 가벼운 기분이 아니었다. 코토히메도 이런 분위기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아무 말도 않고 팔장을 낀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불편한 침묵을 깬 건 모미지였다.


“저는 마음에 안 드네요. 굳이 인간을 쏴야하는 것도, 그렇게 가짜 편지를 쓰는 것도. 제아무리 도둑이 상대라지만요. 애초에 그렇게 편지를 써도 받아볼 순 있습니까? 그 도둑이 편지를 받지 못하면 방법이 없잖습니까.”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편지는 분명 전달했으니까.”


모미지는 결국 처음으로 이마를 찌푸렸다. 처음부터 도통 종을 잡을 수 없었던 대화였지만 이제는 그 정도가 아니라 이 대화의 모든 어절 하나하나가 불쾌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이 너무나 더럽고, 너무나 아야답게 느껴졌다. 코토히메는 그런 모미지의 표정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아내가 음식 주머니를 몰래 던져놓는 장소를 내가 발견하고 나니 이 텐구가 편지는 반나절만에 준비하더군. 밤이 되기 전에 그 주머니에 넣어둘 수 있었어. 오늘 아침에 가보니 그 주머니는 이미 사라졌더군. 누가 가져갔는지는 뻔하지.”


모미지는 산기슭의 동굴에서, 아야가 쓴 편지를 읽고 있을 도둑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야의 솜씨라면 아내라는 사람의 필체를 따라하는 건 간단한 일이었으리라. 아마 평소에 자주 쓰는 표현까지도 그대로 옮겼을지도 모른다. 도둑이 과연 그 편지가 자신의 아내가 아닌 다른 요괴가 썼으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자신을 두고 이런 괴이한 음모가 진행되고 있으리라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를 이렇게 이용하리라 과연 짐작이나 할까.


도둑이 그 편지에 적힌 시간에 그 장소에 도착할 때, 자신을 기다리는 것은 총탄 뿐이란 걸 언제나 알게 될까.


모미지는 이 모든 짓이 과연 도둑질보다 얼마나 나은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이쪽 친구는 별로 내키지 않나 봐.”


코토히메는 모미지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아야에게 물었다. 모미지는 자신이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단 걸 그제야 깨달았다. 아야는 그런 모미지의 표졍에 변명이라도 하듯이 말했다.


“원래 훌륭한 병사는 고지식한 면이 있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고약한 일인 것도 맞잖아요? 조금은 생각을 정리해야겠죠.”


“그럼 다른 친구는?”


코토히메는 이번엔 단짝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단짝은 모미지의 눈치를 보며 답했다.


“제가 감히 좋다 싫다할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요. 이렇게 다 설명을 해줄 정도면 이미 둘이 하기로 되어있는 것 아닌가요?”


“이쪽도 다른 의미로 고지식하네. 다행이긴 하지만. 그리고 나는 어디까지나 부탁하는 쪽이라 감히 요괴님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 정 싫다면 끼지 않아도 좋아. 하겠다고 한 이쪽 까마귀니까 알아서 다른 사수를 구하겠지.”


“전 할 수 있습니다. 이 친구랑 같이 하면요.”


단짝이 코토히메에게 그렇게 즉답할 때 모미지의 이마에서 땀이 살짝 흘러내렸다. 그 방에 있던 모두가 모미지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해진 걸 눈치챘다. 모미지는 자신의 이마를 오른손으로 한번 슥 닦아내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전 도무지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잘 안 될 겁니다. 분명 실수할 겁니다.”


모미지는 그렇게 답하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코토히메나 아야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는지는 상관 없었다. 하지만 단짝이 지금 짓고 있을 표정만은 도저히 직접 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 표정을 보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더 중요한 상황에서 그녀를 실망시키는 것이었다. 모미지느 ㄴ그래서 이 일을 하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럼 별 수 없지. 혼자라도 상관 없나?”


“상관 없습니다.”


코토히메의 질문에 단짝은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답했다.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딱딱한 목소리였다. 모미지는 자신의 오른편에서 아야의 시선을 느꼈다. 처음에는 자신을 비웃는 차가운 조소의 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단짝의 대답만큼이나 아무런 감정도 없는, 조소도 실망도 담기지 않은 기계적인 시선이었다. 모미지는 오히려 그 시선에 더 불쾌감을 느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네요. 왜 텐구가 인간 마을 일에 나서야 하는 겁니까?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은 게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계속 쏘라고만 하는데, 사람이 총을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있는 겁니까? 부탁을 할 거면 더 정확히 해야죠. 총을 쏴서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겁니까? 단순히 부상을 입히기만 원하는 겁니까, 아니면 아예 죽여버리길 원하는 겁니까?”


코토히메는 모미지의 감정적인 질문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차갑게 대꾸했다.


“어느 쪽이나 상관 없지 않나? 죽거나 다치기만 하거나. 우리가 하려는 일에는 별 차이 없을 것 같군. 어차피 부상자나 시신이나 경찰이 수습할 테니까. 인간이 쏜 것처럼 처리하는 데는 별 문제 없어. 결국은 내가 처리할 일이거든.”


그건 모미지에게 전혀 만족스러운 답변이 아니었다. 모미지는 이제 눈앞의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경찰에게 진지하게 화를 내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아야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비겁하게도 자신이 정말 화를 내고 싶은 텐구에게는 화를 내지 못하고, 눈앞의 외부인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걸 물은 게 아닙니다. 아내가 기다린다면서요. 아내가 그 사람이 돌아오는 게 끔찍하다고 직접 말했잖습니까. 그러고선 그 아내가 쓴 것처럼 편지를 꾸며서 유인해내고, 또 그렇게 해서 이젠 그 아내가 기다리는 사람을 죽여도 상관 없다고요?”


모미지도 사실 코토히메가 그 정도는 이미 답을 내리고 찾아왔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일을 부탁할 리가 없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코토히메는 모미지의 추궁에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답했다.


“글쎄, 상관 없지 않나? 오히려 죽이는 편이 아내에게 더 좋을지도 모르지. 살아남아서, 모든 이들의 눈총과 비아냥을 받으며 함께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조금 동정표를 얻는 편이 말이야.”


분명 예상했던 그대로인 답변이었지마 모미지는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외쳤다.


“그거 잘 됐군요. 그렇게 좋은 일, 끼리끼리 잘 해보시죠.”


모미지는 숨을 씩씩 내쉬면서 초소를 나왔다. 인간 마을의 경찰과 산의 텐구가 꾸민 그 모든 이야기에 모미지는 화가 났다. 하지만 그녀는 무엇보다도 부끄러웠다. 자신과 함께 하겠다는 친구를 내버리고, 자신의 양심을 핑계삼아 도망쳐나오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등뒤에서 그녀를 비웃는 이는 없었다. 지금 그녀를 비웃는 건 그녀 자신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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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 연예인 안됐으면 어쩔 뻔, 누가 봐도 천상 연예인은? 운영자 24/06/17 - -
AD 뉴진스, 배틀그라운드로 데뷔 준비 완료! 운영자 24/06/21 - -
AD 현물 경품 획득 기회! 아키에이지 지역 점령전 업데이트 운영자 24/06/20 - -
공지 동방프로젝트 갤러리 "동프갤 슈팅표" [47] 돌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4 11329 51
공지 동방프로젝트 입문자와 팬들을 위한 정보모음 [46] Chlorin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07.27 102027 128
공지 동프갤 구작권장 프로젝트 - 구작슈팅표 및 팁 모음 [532] Chlorin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12.03 101493 136
공지 동방심비록 공략 [57] BOM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12.18 85652 30
공지 동방화영총 총정리 [43] shm(182.212) 15.06.11 112227 52
공지 동방심기루 공략 [64] 케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3.10.12 122134 33
공지 동방 프로젝트 갤러리 이용 안내 [157368/7] 운영자 09.06.23 602859 523
8453422 낙성대 마이너 갤러리입니다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34 12 0
8453421 뭔 저딴 매크로가 다있냐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2 35 0
8453420 조직스토킹 대광고 김현정 왜소증년들 부류 [1] 동갤러(112.173) 06.22 53 0
8453416 ㅋㅋㅋㅋㅋ [8] 루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2 119 0
8453415 쟤는 진짜 레전드네 [2] _(:3」∠)_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1 141 0
8453414 낙성대 마이너 갤러리입니다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1 138 0
8453413 ❗❗상하이앨리스환악단 갤러리로❗❗ 갓경은진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1 147 0
8453412 동갤에서 가장 사랑받는 갤러 _(:3」∠)_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1 47 0
8453407 Sagefc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1 32 0
8453406 6/21 퍼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1 24 0
8453405 낙성대 마이너 갤러리입니다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0 167 0
8453403 이 갤러리는 손미천이 점령한다 [1] SonBite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0 202 0
8453401 여긴 이제 낙갤이 점령한다 [1] 유카링은소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0 205 0
8453400 대 광 삼 ㅋㅋㅋㅋ [1]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0 64 0
8453399 배드애플 뮤지카 진 5:19 에콰도르대학교전통석사교육학과차석입학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0 43 0
8453397 애미씨팔 그 새끼가 뒤지기는? 역시나 호들갑이었네 ㅇㅇ(211.197) 06.20 223 20
8453396 낙성대 마이너 갤러리입니다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0 184 0
8453390 2차창작 가이드라인 봐도 이해가 잘 안가서 그러는데 [1] ㅇㅇ(106.101) 06.20 95 0
8453389 6/20 퍼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0 30 0
8453388 모두 잠수준비!!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0 219 0
8453384 상하이앨리스환악단 뒷담갤입니다. [1] 백옥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9 88 0
8453382 이 갤은 투범 도배가 안올라와서 좋다!!! [1] ㅇㅇ(106.101) 06.19 267 0
8453381 동갤에서 가장 사랑받는 갤러 _(:3」∠)_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9 51 0
8453380 손가락아파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9 35 0
8453378 아 개씨발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9 5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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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53370 빵이랑 무므 쟤넨 도대체 뭐하는애들임 ㅇㅇ(220.93) 06.18 102 7
8453369 동갤에서 가장 사랑받는 갤러 _(:3」∠)_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8 78 5
8453368 낙성대 마이너 갤러리입니다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8 30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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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53359 에링 벌써 600만회 찍었농 [6]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7 158 0
8453357 우린 폭풍속에 들어섰어 Ptolemaio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7 90 0
8453353 아니 꺼져 좀 [2]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7 183 0
8453352 점심에 쿠우쿠우 가야징 [2]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7 82 0
8453351 솔직히 첨엔 불쌍했었지 [6] ㅇㅇ(106.101) 06.17 255 6
8453350 동갤구경개꿀잼이네 ㅇㅇ(106.101) 06.17 109 1
8453349 6/17 퍼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7 69 0
8453348 루나챠 성별이랑 나이대가 궁금해요 ㅇㅇ(118.235) 06.17 131 2
8453347 솔직히 누가 더 믿기냐고 하면 동갤러(106.101) 06.17 183 10
8453346 구경중인 상붕이면 개추 ㅋㅋ 동갤러(211.235) 06.17 140 13
8453345 불쌍한 놈은 아님 [47] 동갤러(182.227) 06.17 661 12
8453343 그래서 쟤 죽건말건 뭔상관임? [1] ㅇㅇ(118.235) 06.16 230 12
8453341 솔직히 난 아직도 이해가 안감 [2] 동갤러(125.183) 06.16 18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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