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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팬대]기다리는 총탄3(열람용)

장기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7.26 23: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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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touhou&no=7552271&_rk=BQK&page=1

2편 :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touhou&no=7552275



2. 산기슭


모미지는 다음 날 동틀 무렵, 복잡한 머릿속을 조금 털어보려고 바위에 걸터앉아 산 아래를 멍하니 바라봤다. 전날 토끼에게 총을 쏘았던 바로 그 자리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전날처럼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아야 씨랑 얽히면 꼭 그러더라.”


단짝은 마치 전날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와 같이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모미지는 뚱한 얼굴로 산밑이 밝아오는 광경을 말없이 바라봤다.


“일단은 나 혼자라도 하기로 했어. 하지만 아야 씨는 네가 적임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솔직히 아야 씨가 널 왜 그렇게 신경 쓰는지도 잘 모르겠네.”


나는 네가 날 왜 그리 신경 쓰는지도 모르겠어. 모미지는 자신의 옆에 걸터앉은 단짝에게 마음 속으로만 그렇게 털어놓았다. 전날 초소에서 느꼈던 이상한 감정들은 이제 털어낸 모미지였지만, 단짝에게 느끼는 목잡한 감정만은 아직도 어쩔 수가 없었다.


“옛날에 복잡한 일이 있었어. 아마 그래서 서로 신경을 쓰게 되는 거겠지. 나나 아야 씨나.”


“옛날이면 언제?”


“전쟁 때.”


“아.”


단짝은 그 한마디로 대충 이해가 간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미 시간이 꽤 지난 일이었지만 그 전쟁은 아직도 많은 텐구들에게 좋건 싫건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모미지도 단짝이 전쟁 때 무슨 일을 겪었는지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었다. 그저 막연히 그때 겪었던 일들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었다. 바로 모미지 자신이 지금 그런 것처럼.


“그때 아야 씨랑 처음 만났어. 썩 좋은 만남은 아니었지. 아야 씨는 거짓말을 했고, 나는 중요한 순간에 얼어붙어버렸지. 그래서 다른 텐구들이 대신 피를 흘렸고.”


“글쎄, 전쟁 중엔 다들 그러지 않나. 거짓말이나, 얼어붙는 거나, 어쨌거나 여기 있다는 건 우리 말고 누군가 피를 흘렸다는 거고. 그것만으로는 그렇게 특별한 일인지 모르겠는데.”


“별로 유쾌한 이야기는 아닌데.”


“이봐요, 나도 못볼 꼴이란 꼴은 다 봤다구요. 댁만 전쟁을 치룬 건 아니랍니다. 그리고 어제도 유쾌하지 못한 이야기는 실컷 들어서 이제 와서 더 들어도 별 감흥은 없을 것 같은 걸.”


모미지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털어놓은 건 액신 정도뿐이었다. 사실 모미지 본인부터가 그 전까지는 그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차라리 이 기회에 누군가에게 더 털어놓으면 속이 시원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야는 모든 걸 설명하기 시작했다.


참호 안에서 어느 고참병과 함께 적들을 기다렸던 일부터, 하늘에서 두 까마귀 텐구가 갑자기 떨어졌던 일, 그리고 그 중 하나였던 아야가 그 자리에서 두 백랑 텐구를 움직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모미지가 부상당한 까마귀와 우스꽝스러운 꿈 이야기를 했던 일, 마지막엔 오니와 싸우다가 모미지가 충격을 받아 얼어붙고, 그 결과 자신을 지켜주던 고참병이 대신 희생당한 일까지.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서 자신을 속이고, 그 모든 기만이 드러나던 순간을 받아들이지 못해 다른 이의 기만을 원망했던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얼어붙은 탓에 아야 씨도 위험했고 그 고참병도 죽었다. 그 뒤엔 아야 씨가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했다가 반대로 한 소리를 듣고. 그 정도 이야기인 거네.”


단짝은 그렇게 그렇게 간단하게도 이야기를 정리했다. 모미지도 거기서 뭐라 더 덧붙일 이야기가 없어서 고개만 끄덕였다.


“글쎄, 확실히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런 것치곤 아야 씨는 딱히 그 일에 신경 쓰는 것 같진 않은데?”


“신경 쓰는 건 나뿐이야. 사실 나만 옛날 일을 못 털어내는 것 같아서 아야 씨가 더 대하기 불편한 것 같아. 그런 거 있잖아. 나만 뒤처지고 어딘가에 붙잡혀있는 것 같아서 괜히 남에게 짜증내게 되는.”


“아아. 하긴, 넌 정말 그래. 이런 말 해서 미안하지만. 넌 너무 뒤처졌어. 언제까지 그렇게 말단으로 있게? 다른 녀석들처럼 적당히 일 받아가면서 했으면 진작에 탈출했을 거 아냐. 그런데 머릿속에 든 건 장기뿐이고. 요즘엔 피를 보지 않는 이상한 사냥에 몰두하고. 그런데 네가 싫어하는 아야 씨는 자기 삶을 살아가니 당연히 껄끄럽겠지!”


모미지는 갑자기 자신에게 쏟아지는 매도에 머리가 띵 울렸다. 전날에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고 한 소리 들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평소 태도로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은 전혀 예상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야 씨가 그러더라. 혹시 할 생각 있음 내일이라도 좋으니 끼면 된다고 전하라고. 아야 씨는 네게 공을 세울 기회를 주는 거야. 너를 기다리고 있는 거라고.”


“그게 제일 이해 안 돼. 왜 나한테 그런 기회를 줘?”


“답답하긴! 네가 그때 일에 너무 묶여 사는 것 같으니까 그렇겠지! 딱히 네 탓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너 혼자 시달리고 있으니까. 그러다가 남들한테 뒤처지고 있으니까 도저히 못 봐주겠는 거잖아. 그러니까 자기 일을 도울 기회를 주는 거야. 언제까지고 말단으로 남아 있지 않게. 아야 씨는 비밀스럽긴 해도 생각보다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 것 같으니까, 돕기만 하면 분명 공을 인정받을 수 있겠지.”


모미지는 단짝이 왜 그리 열심히 자신을 설득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자신이었다. 그녀는 왜 자신이 이렇게 필사적으로 변명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계속해서 입으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럼 아야 씨는 단단히 착각하는 거야. 난 이번에도 또 일을 그르칠 거야. 중요한 순간에 또 벌벌 떨겠지. 내가 있을 곳은 여기 뿐이야. 말단 보초가 딱이라고. 그 이상은 모두에게 폐만 될 걸. 나 같은 걸 누가 기다린다고 그래?”


“내가 기다리잖아! 이 바보 벽창호 멍청이 같으니! 왜 너 같은 녀석이랑 같이 다녔다고 생각하는 건데? 네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고! 바로 내가!”


단짝이 자리를 박차며 그렇게 버럭 소리를 지르자 모미지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단짝은 그렇게 정신을 못차리는 모미지의 등 뒤로 후다닥 달려가면서 저주 아닌 저주를 외쳤다.


“그렇게 평생 다른 텐구만 기다리게 하면서 살거면 그렇게 살아라! 네 말대로 너 같은 놈 없어도 나 혼자서 다 해치워버릴 테니! 좀도둑이고 뭐고 내가 혼자 처리해서 공 독차지할 테다! 내가 혼자 출세하는 동안 넌 그렇게 천년만년 답답하게 살라고!”


모미지는 여전히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못하고 두 눈만 동그랗게 뜬 채 단짝이 산 아래쪽으로 달려가는 모습만 바라봤다. 모미지에게는 하루의 시작부터 난데없이 액이 잔뜩 낀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사랑 싸움을 하고 액을 떼달라고 나한테 온 거니?”


액신 카기야마 히나는 개울 너머에서 깔깔 웃었다. 모미지는 그녀가 그렇게 상쾌하게 웃는 모습을 처음 봤다. 모미지는 단짝과 있었던 일을 히나에게 설명하고 나니 다시금 괜히 부끄러워져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붉게 물든 얼굴이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히나는 미소를 거두지 않고 모미지에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도대체 아야가 무슨 일을 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네 친구 말이 맞다고 생각해. 그 모든 일들을 없었던 걸로 치부할 순 없겠지만, 아야는 그래도 네가 거기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면 하는 거겠지.”


모미지와 아야가 이전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고 있는 히나가 그렇게 말하자 모미지는 할 말이 없었다. 모미지는 이전에 히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덕에 그때 있었던 일들을 다시금 기억해낼 수 있었다. 오늘 단짝에게 털어놓기 전까지는 그때 일에 대해 털어놓은 유일한 존재였다. 이번에는 아야가 무슨 일을 시켰는지까진 말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아야가 부탁한 일을 두고 단짝과 입씨름을 벌였다는 것까진 히나에게 털어놓을 순 있었다. 모미지는 히나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위로해주지 않을까 했지만 웬걸, 히나가 편든 건 자신이 아니라 단짝과 아야였다.


“그래도 이해할 수 없는 걸요. 저 같은 게 뒤처지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더 그럴 수밖에 없지. 누가 봐도 무언가에 묶여있잖아? 아야는 그걸 잘 알고 있으니 네가 거기서 풀려났으면 하는 거고. 네 친구는 오늘 알게 됐지만 그 전에 이미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던 거겠지. 모미지는 위험한 매력이 있는 텐구네.”


그렇게 말하면서 키득이는 히나를 보고 있자니 모미지는 다시금 얼굴이 화끈거려서, 둘 사이에 졸졸 흐르는 개울로 눈을 피했다. 지금 이렇게 창피를 당하긴 해도 모미지가 가장 편하게 말을 나눌 수 있는 상대는 다름 아닌 액신 히나였다. 다른 인요라면 행여나 액이 옮길까봐 그녀를 멀리했지만, 모미지는 그게 단순한 미신임을 알고 있었기에 더없이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오히려 둘 사이에서 거리를 두려고 하는 건 히나 쪽이었다. 히나는 마치 자신에게 정말로 역병이라도 있는 것처럼, 언제나 무언가를 끼고 그녀를 만났다. 오늘은 히나가 모미지와의 사이에 둔 건 눈앞의 작은 개울이었다.


“아야가 부탁한 일. 무슨 일인진 물으면 안 되겠지?”


히나의 질문에 모미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러운 일이에요. 아야 씨가 예전에 했던 거짓말과는 비교도 안 될만큼. 하지만 더러운 것도 더러운 거지만, 그래서 못 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친구에게도 말했지만...”


히나는 모미지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두 눈을 감았다.


“또 그때처럼 실수할까봐?”


“맞아요. 아마도 또 실수할 거에요. 중요한 순간에 겁에 질려서 벌벌 떨 거라구요.”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 그리고 그게 네 탓만은 아니고.”


“하지만 그럼 날 믿어준 아야 씨나 친구를 무슨 얼굴로 봐요? 날 믿는다고, 기다린다고 해서 이젠 더 못하게 됐어요. 그 둘을 또 실망시킬 거에요. 난 그런 놈이니까. 그러니까 나에 대해 그런 기대를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나를 기다리지도 않았으면 좋겠고.”


모미지의 오른쪽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히나는 모미지가 오른손으로 눈가를 훔치는 모습을 보면서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거 참, 누가 액신인지 모르겠네. 이대로 가면 액신 자리는 네게 넘겨줘야할지도 모르겠는 걸.”


“하지만...”


“나야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니 액신이지. 하지만 모미지는 아니잖아?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혼자 그렇게 생각할 뿐이잖니? 물론 실패를 무서워하는 건 당연하지. 하지만 자신이 그런 액신이라고 생각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야.”


모미지는 히나의 그 말에 다시금 부끄러워졌다. 다른 누구보다 남들에게 미움받고 기피되는 그녀 앞에서 이런 어리광을 부리다니. 수치심에 히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졸졸 흐르는 개울물만 지켜보던 모미지의 이마에 무언가 툭, 가볍게 부딪쳤다.


“어, 이건?”


모미지가 고개를 들자 시야에 들어온 건 자그마한 종이 인형이 자신의 이마에서 하늘하늘 떨어져내리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모미지의 손바닥으로 착지한 종이 인형 너머로, 히나가 가볍게 웃으며 모미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액을 떼고 싶어서 왔지? 안 그래도 새로운 히나 인형을 준비하고 있었어. 어때?”


“어떠냐고 해도...”


모미지는 그냥 이전과 똑같은 인형 아니냐고 물으려다가 그 말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모미지의 손안에 떨어진 그 자그마한 인형은 갑자기 그녀의 손바닥에서 벗어나 그녀의 눈 앞으로 둥둥 떠올랐다.


“...이거, 날 수 있는 건가요?”


“액이 많은 사람에게 스스로 날아가서 붙는 히나 인형이야. 액신님의 찾아가는 간이 액땜 서비스랄까? 액을 충분히 모으면 돌아오는 기능은 아직 준비 중이긴 하지만, 모미지에게만 특별히 하나 미리 줄게.”


히나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모미지는 피식 웃음을 터트려버렸다. 그녀는 액신이라 남들에게 근거 없는 미움을 받고 기피되는 존재지만 자신의 역할이나 처지에 대해 비관하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액신으로서 인간들의 액을 조금이라도 더 잘 모으는 방법을 고안하는 데 열성인 것 같았다.


“액땜하러 온 보람은 있네요. 고맙게 받겠습니다.”


“고작 인형일 뿐이지만 네게 도움이 되면 좋겠네.”


히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모미지는 이미 히나와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 훨씬 마음이 가벼워졌다. 모미지는 그 가벼워진 마음으로 약간 용기를 내어 히나에게 물었다.


“아야 씨가 부탁한 일, 하는 게 좋을까요?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고 묻는 건 우습지만...”


“글쎄, 내가 함부로 해라마라 할 순 없지 않을까? 하지만 해보기도 전에 네가 아야나 친구를 실망시킬 거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 그런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 그 일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야. 네가 그렇게 자책하지만 않으면 아야도 납득하지 않을까? 아야는 어디까지나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은 거니까, 네가 다른 계기로라도 얽메임에서 풀려나면 상관없겠지.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내가 남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있어? 모미지는 자기만 못 믿는 게 아니라 남들도 못 믿는구나. 어떻게 하면 믿어줄래?”


히나의 질문에 모미지는 살짝 심술을 담아 답했다.


“지금 제 옆에 앉을 수 있어요? 나랑 만날 때 항상 뭘 사이에 두잖아요. 탁자든, 개울이든, 나무든. 그냥 제 옆에 아무 것도 사이에 두지 않고 앉으면 믿어볼게요.”


“뭐를 믿어줄 건데?”


“히나 씨가 말한 그대로요. 히나 씨가 나에 대해 생각한 그대로. 내가 남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다고 믿어보죠.”


히나는 모미지가 미처 입을 다물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일어나, 얕은 개울을 폴짝 뛰어넘었다. 그녀는 그 돌발행동에 당황해하는 모미지의 시선을 무시하고 성큼성큼 다가와, 모미지의 오른손이 닿을락말락 한 자리에 자신의 왼손을 짚은 채 털썩 앉았다.


“액신에게 그런 부탁을 하다니 용감한 걸. 그래도 풀죽은 모미지보단 용감한 모미지가 훨씬 보기 좋네. 그러니까 그 소원, 특별히 들어줄게. 이제 좀 믿겠어?”


히나가 초록 머리카락을 가볍게 휘날리며 모미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정작 모미지는 자신이 부탁해놓고는 당황해서 입만 쩍 벌리고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 바보 같은 표정에 히나는 다시 깔깔 웃어버렸다.


“왜 그래? 네가 부탁한 대로 해줬는데.”


“이렇게 간단히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었어요? 정작 왜 지금까진...”


“나도 기다리고 있었어. 모미지가 그렇게 부탁해주길.”


히나의 그 장난기 어린 대답에 모미지는 할 말을 잃었다. 히나는 그런 모미지의 코에 닿을락말락 손가락을 들이밀며 웃었다.


“액땜이 한 번 더 필요한 얼굴이네?”


모미지가 받은 히나 인형이 다시 허공에 떠올랐다.



히나와 만나고 나서 머릿속이 조금 가벼워진 모미지는 다시 산 위로 걸어서 돌아가기 시작했다. 모미지는 조금 전에 히나와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괜히 얼굴이 화끈거려서 괜히 선물받은 히나 인형만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히나 인형은 마치 모미지가 그렇게 만지작거리는 게 싫기라도 한 것처럼, 대뜸 손가락에서 빠져나와 다시 공중에 둥실 떠올랐다.


“뭐야, 또 액인가.”


모미지는 히나 인형이 다시 자기 이마에 붙은 줄 알고 손바닥을 뻗었지만, 정작 히나 인형은 모미지의 반대편으로 둥실 날아갔다.


“야, 야. 기다려. 어디 가는 거야.”


모미지는 그래봐야 말이 통할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투덜거리면서 히나 인형을 쫓아갔다. 히나 인형은 허공에서 나풀나풀, 모미지를 약올리기라도 하듯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길에서 벗어났다. 그런 히나 인형을 쫓아 무작정 길에서 벗어난 모미지는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 문득 눈치챘다. 히나 인형이 날아가는 방향에는 동굴이 있었다. 인간 도둑이 숨어 있는 동굴.


모미지는 곤란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작정 히나 인형을 따라갔다. 히나는 이 인형이 액을 알아서 찾아간다고 설명했다. 그 도둑은 그 정도로 액을 많이 쌓아두기라도 한 것일까. 이대로 따라가다가 도둑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어쩌지. 그렇게 머릿속으로만 고민하면서 인형을 따라가고 있을 때 머리 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까지 오다니. 생각이 바뀌기라도 했어?”


모미지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왼손을 뻗어 히나 인형을 움켜쥐었다. 그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다름 아닌 샤메이마루 아야가 큰 바위 위에 걸쳐 앉아 모미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그, 딱히 용건이 있어 온 건 아닌데요. 그보다 아야 씨는 왜 여기에...”


“네가 온 이유는 비밀이고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궁금한 거야? 모미지는 심술궂네.”


심술부리기론 당신만 할까요. 모미지는 아야의 지적에 끙 소리를 내며 얼굴을 찌푸렸다. 아야는 모미지의 그런 반응만으로도 즐길만큼 즐겼는지 깔깔 웃으며 동굴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나는 망을 보고 있어. 지금 그 좀도둑 씨, 자리를 비웠거든. 인간마을을 밖에서 살펴보거나 땔감이라도 구하러 간 거겠지. 그 사이 코토히메 씨와 네 친구가 동굴 안을 살펴보고 있지. 혹시나 좀도둑 씨가 돌아오면 내가 바로 알려줘야 해서 자리를 못 비우겠네. 혼자만이라도 가서 코토히메 씨와 이야기해보지 그래”


“그 동굴, 굳이 살펴볼 이유가 있나요?”


“그것도 가서 코토히메 씨에게 물어 봐. 네가 어제 우리보고 아직도 뭘 숨기고 있다 그랬지? 코토히메 씨는 그것까지 답해주실 걸. 그 사람도 너만큼이나 고지식하거든. 난 그래서 좋은 거지만. 고지식한 둘이서 대화할 기회를 줄게.”


“그것 참 감사하네요.”


모미지는 건성으로 인사하고 동굴로 향했다. 아야의 태도는 얄밉기 그지 없었지만 모미지 입장에선 고마운 건 사실이었다. 도둑을 쏘는 일을 하건 안 하건 간에, 코토히메에게는 묻고 싶은 게 있었다. 남들이라면 쓸데없는 궁금증이라고 했겠지만, 정작 아야는 뭐라 하기는 커녕 코토히메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지금 기회를 주고 있었다. 그렇게 얄미운 언행만 아니어도 좀더 솔직하게 고맙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모미지는 괜히 아야 탓을 하면서 머리를 긁적이고 동굴로 향했다.




“뭐야, 왔냐? 생각 바뀐 거야? 아야 씨가 불렀어?”


동굴 입구에서 모미지와 얼굴을 마주친 건 코토히메가 아니라 단짝이었다. 그녀는 무언가 길게 적힌 쪽지를 들고 동굴에서 나오고 있었다. 모미지는 아침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니, 어쩌다보니 온 건데. 코토히메 씨랑 이야기해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 사람 안에 있으니까 들어가 봐. 나는 다 정리했으니 아야 씨한테 이거 전달해야 해.”


“뭘 정리했는데?”


“그것도 직접 들어가서 물어보셔.”


단짝은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아야가 망을 보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런 단짝을 뒤로 하고 들어간 동굴에는 코토히메가 등을 입구쪽으로 보인 채로 어두운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녀의 주위에는 놀랍게도 동굴답지 않게 이런저런 고급스런 물건들과 두루마리 문서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뭐야, 왜 돌아왔나 했는데 다른 쪽이었네. 낄 마음이 생기기라도 했나?”


코토히메는 모미지를 슬쩍 돌아보면서 물었다. 벌써 세번째 같은 질문을 받는 모미지는 간단하게만 답했다.


“아직 고민 중입니다. 그냥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나한테? 답해주면 낄 생각이야? 네 친구는 혼자서도 괜찮다지만 글쎄, 나는 역시 누군가는 도와야할 것 같은데.”


코토히메는 동굴 한 구석 그늘에 놓인 크고작은 도자기와 장식품에 몸을 기울이며 물었지만 모미지는 거기에 답변하지 않고 자신이 궁금한 내용을 물었다.


“코토히메 씨는 인간 마을 자경단들에게서 총을 빼앗을 거라고 했죠. 그런데 아야 씨는 왜 낀 건가요? 그게 아야 씨에게 이득이 되니까, 최소한 텐구에게 유리하니까 코토히메 씨를 돕겠다고 했을 텐데요.”


모미지의 질문에 코토히메는 재밌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쪽에서도 그렇게 선의로만 일할 텐구는 아니라고 생각하나보지? 확실히 도움을 받기엔 영 복잡한 친구지. 네가 생각하기엔 어때? 왜 그 텐구가 우릴 도울 것 같아? 텐구들에게 뭐가 도움이 되서 이런 짓을 벌이는 걸까?”


“인간 마을에서 총이 안 쓰이게 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들이 총을 쓸수록 요괴에 대항하는 힘이 강해지니까, 텐구로선 인간 마을에서 총을 쓰는 사람들이 적어지는 게 이득이겠죠.”


코토히메는 모미지에게 돌아서서 아쉽다는 표정과 함께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바야. 그 텐구는 고작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나를 돕진 않겠지.”


모미지는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모미지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게 그 점이었다. 대체 눈앞의 인간 경찰은 왜 인간 마을의 총을 수거하려고 하는 걸까, 그건 오히려 인간을 경계하는 요괴에게 좋은 일인데.


“별로 납득이 가지 않는 표정이네. 그럴만도 하지. 총이 있으면 적어도 요괴를 상대하기엔 지금보단 나으니까. 텐구들도 총이 다른 무기보다 유리한 점이 있으니까 쓰는 거겠지?”


“그렇죠. 경비 중에는 그래도 다른 무기를 씁니다만. 본격적으로 전쟁이 나면 총을 다시 쓰겠죠.”


“그렇게 총을 들고 싸우는게, 텐구에게 그렇게 좋은 일이었어? 나는 그쪽의 전쟁이라고 해봐야 어림 짐작만 할뿐이라.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 되어버렸네. 직접 경험해본 바로는 어때?”


모미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총을 쓰는 전쟁은 가장 강인한 요괴들조차 혀를 내두르는 참극을 그려냈다. 총을 쓰는 덕분에 텐구들은 오니들을 전보다 더 잘 상대할 수 있었지만, 결국은 오니와 다른 요괴들도 총에 대항하는 방법을 고안해내면서 전쟁을 잔혹하게 바꾸는 악순환만 펼쳐졌다.


“인간들이 총을 많이 쓰면 분명 요괴를 상대론 강해지겠지. 지금 인간 마을에서 펄쳐지는 촌극은 그 과정일지도 모르고. 그런데 인간 마을의 경찰로선 의심이 간단 말이지. 총을 붙잡고 요괴들보다 강해지려고, 우리들끼리 총질해서 서로 피를 보게 하는 일이 그렇게 가치가 있을까? 그런 식으로 요괴보다 강해져서, 결국 요괴 대신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위협받는 게 괜찮은 건지 모르겠어. 그래서 나는 마을의 멍청이들에게서 총을 거둬들일 생각인 거야. 그게 요괴에 대항하는 데는 안 좋을지 몰라도,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


“다른 인간 하나를 희생해서라도요? 그 도둑을 기다리는 아내가 있는데도 희생시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어. 내가 생각하기엔 그는 단순히 범죄자야. 그리고 아내 쪽은 그 범죄자 때문에 계속 고통받고 있지. 차라리 얼른 연이 끊기고 새로운 사람을 찾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예 혼자 사는 게 훨씬 더 나을 것 같군. 물론 지금 본인에게 말해봐야 싫다면서 남편을 기다리겠지만.”


“그 아내라는 사람, 코토히메 씨와 아는 사이인 거죠?”


“맞아. 잘도 알아챘네.”


그야 지금까지 당신이 유일하게 동정심을 내비친 인간은 그 아내라는 사람 뿐이니까요. 모미지는 그렇게 속으로 덧붙였다.


“그래서 그 도둑을 더 용서할 수 없는 거군요. 그 도둑 때문에 아내가 괴로워하니까.”


“그래서 지금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을 얼른 끝내고 싶어하는 거지.”


코토히메는 지금까지 자신이 해온 말이 머쓱한지 어두운 동굴을 크게 둘러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말이 길어졌군. 어쨌거나 내가 총을 거두고 싶어하는 이유는 그래서야. 그리고 원래 뭘 물었더라? 그래. 왜 아야가 날 돕는 거냐는 거였지. 그쪽이랑은 약속을 했어. 그 텐구가 백랑 텐구들을 시켜 그 도둑을 쏘고, 총을 거둬들일 만한 여론을 만들어주겠다더군. 대신 이 동굴에 있는 물건 중 일부를 텐구들에게 달라고 하더군. 나머지는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다시 인간 마을에 돌려다줘도 된다면서.”


“그래서 동굴에 온 건가요. 무슨 물건이 있는지 미리 확인해보려고.”


“그래. 네 친구랑 같이 대략적인 목록을 만들었지. 네 친구가 들고 나간 쪽지가 그거야.”


이번에는 모미지가 동굴 안의 잡동사니들을 둘러보았다. 이런저런 도자기, 두루마리 문서, 조각품들.분명 인간마을의 부자들에게서 빼앗은 물건들답게 귀하다면 귀한 물건이었지만, 아야나 다른 높은 텐구들이 원할 만한 물건 같지는 않았다. 코토히메도 모미지와 똑같이 생각했는지 가볍게 웃으며 두루마리 문서들을 가리켰다.


“그래. 아야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딱히 이 중에서 원하는 물건이 있는지는 모르겠는 걸. 그나마 이 문서들에 눈독을 들이는 것 같긴 하더군. 인간 마을의 서고 안에 적혀 있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라나. 아마 이 두루마리와 조금 값나가는 물건 몇개만 받아가겠지.”


“그 문서들, 그렇게 비밀스러운 내용이면 줘도 상관 없는 건가요?”


모미지의 질문에 코토히메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끽해봐야 인간 마을의 옛 비밀이나 뒷 이야기, 소문, 부자 집안의 떳떳하지 못한 이야기나 좀 적혀 있지 않겠어? 텐구가 그런 걸 아는 건 내 관할이 아니야. 그리고 그 텐구가 정말로 그런 내용을 원하는 건진 의심스럽기도 하고.”


“그럼 아야 씨가 정말 원하는 건 뭔데요?”


“그거야 본인만 알겠지. 그래도 추측해보면 이번엔 내게 협력해서, 반대로 나중에 나를 부려먹으려는 것 아닐까? 인간 마을에서도 이런 식으로 자기 편을 늘려온 거. 나는 경찰이니까 더 탐나는 대상이겠지.”


코토히메의 그 의미심장한 말에 모미지는 침을 꼴깍 삼키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럼 앞으로 코토히메 씨를 이용하는 건데, 그건 괜찮은 겁니까?”


코토히메는 대수롭지 않게 머리만 긁적이며 답했다.


“나도 지금 텐구를 이용하고 있으니까, 별 상관없지 싶은데.”




동굴을 다 살펴본 코토히메는 밖으로 나와 아야와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을로 향했다. 아야는 도둑이 돌아오고 있다면서 마주치지 않고 마을로 돌아갈 길을 알려주었다. 도둑을 일부러 피하는 경찰이라니, 그 어처구니 없는 광경에 모미지는 헛웃음이 나와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자신이 남을 비웃을 처지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녀의 단짝은 아야에게 쪽지를 건내고는 이미 산으로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코토히메는 인간이니 인간 마을로 돌아갔다. 그 말인즉슨 모미지는 아야와 단 둘이서 산으로 돌아가야한다는 뜻이었다.


“묻고 싶은 건 다 물었어?”


“네, 뭐. 일단은요.”


돌아가는 길에 아야가 넌지시 물었다. 아마 아야는 그렇게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눌 요량으로 단짝으로 먼저 산 위로 올려보낸 것이었으리라. 아야가 날아가지 않고 모미지와 나란히 서서 올라갈 이유는 그 외에는 없었다. 모미지의 예상과는 달리, 아야는 코토히메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묻지 않았다.


“궁금한 건 다 풀렸으면 좋겠네.”


“글쎄요. 사실 더 알쏭달쏭해졌는데요. 사실 몰라도 되는 걸 괜히 알려고 하는 느낌이네요.”


모미지의 그 말에 아야는 킥킥 웃었다.


“모미지다운 대답이네. 넌 만사를 장기 두듯 생각하는 것 같아.”


“칭찬인가요?”


“글쎄, 모든 일이 장기처럼 규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건 아니니까. 마냥 칭찬은 아니네.”


아야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사실 모미지에게는 뼈저리게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언제나 돌발상황에 약했다. 전쟁 중에 아야와 만났을 때도 중요한 순간에 혼란에 빠진 탓에 모두가 위험해졌었고. 아야는 모미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예상했는지 그녀답지 않은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


“당황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지. 일을 하다보면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으니까.”


“하지만 중요할 때 일을 그르치는 건 또 다른 이야기 아닌가요? 친구가 그러던데요. 아야 씨는 제게 기회를 주는 거라고. 정말 그런 가요? 제가 또 일을 망칠 것 같은데 그렇게 맡겨도 될까 모르겠네요.”


“내가 지금까지 모든 일을 성공했을까 봐? 네가 없어서 그르친 일이 훨씬 더 많아. 중요한 건 다른 성공으로 그걸 만회하는 거지. 하지만 모미지는 그런 만회도 하고 싶지 않은 거야?”


모미지는 자신이 정말 아야와 대화하고 있는 건지 순간 의심스러워졌다. 아야의 그 부드러운 말투는 그녀에겐 너무 생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모미지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녀는 애초에 아야와 둘이서 거의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았다. 둘 사이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처음 만났던 일과 그 뒤 스쳐지나갔던 경험들, 그리고 서로 솔직하지 못하게 주고받는 가시 돋힌 대화 뿐이었다. 전혀 예상못한 지금의 훈훈한 분위기 덕일까 아니면 오늘 히나와 코토히메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들 덕일까, 모미지는 이제야 아야에게 자신의 본심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아야 씨가 그런 식으로 제게 기회를 줄 때 만회하는 건... 별로 옳지 않은 것 같아요.”


“왜?”


아야는 정말로 모미지의 생각이 궁금한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물었다.


“그건... 이용하는 것 같잖아요. 서로를.”


“아, 동굴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 것 같네.”


아야는 그렇게 말하면서 킥킥 웃었다. 모미지는 괜한 소리를 했다 싶어 오늘만 벌써 몇번째일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꼈다.


“코토히메 씨에게 왜 내 일을 돕냐고 물었지? 그리고 대충 서로를 이용한다는 식으로 답변을 듣고... 맞지?”


너무 정확한 지적에 모미지는 차마 말로는 대답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코토히메 씨 이야기가 틀린 건 아니야. 어쨌거나 그 사람은 경찰이고, 나는 인간 마을에서 이런저런 일을 해야 하니까. 친한 경찰에게 빚을 만들어두면 나쁠 건 없지.”


“굉장히 삭막한 관계네요. 인간과 요괴 사이라는 점에서 이미 곤란한 것 같지만요.”


“반대로 말하면, 어쨌거나 우리 둘은 일에서는 서로를 인정한 거지. 같이 일을 해볼 수 있는 대상으로. 그게 항상 잘 풀리진 않겠지만.”


“기묘하네요.”


“너도 마찬가지야.”


그 말을 들은 모미지는 아야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아야는 그런 모미지를 손가락으로 장난스럽게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괜히 이 일을 네게 해보라고 한 것 같아? 기회를 주는 건 그만큼 일을 맡겨보겠다고 인정한 거야. 네 친구도 너랑 같이 하겠다고 했지? 그건 네 친구가 널 함께 일할 수 있는 상대로 생각했단 거고. 사격 실력이던 뭐던 간에 모미지 네가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도 네 친구도.”


“전에 실패했는데도요?”


모미지는 그렇게 되물으면서 입술을 질끈 씹었다. 어떻게든 아야의 말이 틀렸다고 우기고 싶어서 억지를 부리는 자신의 모습이 추하게 느껴졌다. 아야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때도 내가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으면 거짓말을 쳐가면서까지 널 끌고 나오지 않았을 거야. 물론 실패했지만 네가 아녔어도 어차피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거고.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이번 일은 그때보다 훨씬 더 가능성도 높고, 실패하면 그냥 도망쳐나오기만 하면 돼. 그러니 네게 못 맡길 이유가 있어?”


모미지는 오늘 나눴던 대화들을 다시금 곱씹어보았다. 단짝은 자신이 모미지를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다고 난데없이 외쳤다. 히나는 모미지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걸 증명하기 위해 모미지의 바로 옆으로 다가왔다. 코토히메는 아야가 자신을 이용할 작정인 걸 알면서도, 자신도 아야를 이용한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아야는 그런 코토히메와 같이 일하는 것처럼, 모미지도 인정하기 때문에 함께 일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조용히 고민하는 모미지에게 아야가 아쉬운 듯이 말했다.


“굳이 이번 일이 아니어도 상관 없어. 계속 네게 이런저런 일 해보자고 제안할 생각이니까.”


“아뇨, 해볼게요.”


아야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한 듯, 발걸음을 멈추고 모미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모미지는 아야의 그런 표정을 처음 봤지만, 그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야는 다시 평소와 같이 싱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기다리고 있었어.”


모미지는 말없이 그 손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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