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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팬대]기다리는 총탄4(열람용)-끝.

장기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7.26 23: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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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서 내게도 여러분에게도 미안


1편 :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touhou&no=7552271&_rk=BQK&page=1


2편 :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touhou&no=7552275


3편 :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touhou&no=7552284&_rk=Hc2&page=1


3. 인간 마을


다음 날 모미지와 단짝은 한낮에 당당하게 인간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경비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지만, 정작 모미지와 그 일행을 보고도 아무런 이상한 점도 못 느꼈는지 아무런 제지도 없이 그냥 들여보냈다.


“그야 지금 저 사람들이 경계하는 건 요괴가 아니니까.”


모미지와 단짝을 인간 마을로 안내하는 아야가 자그맣게 속삭였다. 그녀는 평소와는 달리 인간처럼 옷과 모자를 차려 입고 있었다. 모미지는 아야가 인간인 척 위장하고 인간 마을을 드나든다는 건 알았지만 그런 모습을 하는 줄은 몰랐다. 다리고 훤히 드러나고 토킨도 쓰지 않아 모미지로서는 영 탐탁치 않았지만 그녀도 아야에게 뭐라 할 처지가 아니었다. 모미지나 단짝이나 인간 마을에 들어오기 위해 인간처럼 차려입어야 했으니까.


“머리가 허전해. 허전한데 답답해.”


“나도 마찬가지야.”


익숙한 토킨 대신 머리에 두른 두건을 만지작거리며 투덜거리는 단짝에게 모미지도 맞장구를 쳤다. 둘은 하필 인간 남자처럼 차려입은 상태였다. 게다가 모미지의 하얀 머리색은 너무 눈에 잘 들어온다는 아야의 주장에 따라 둘은 머리 전체를 두건으로 감싸야 했다. 소총도 한 자루씩 천으로 싸서 어깨에 매고 있으니 둘은 영락없이 마을에서 힘꽤나 쓰는 자경단원 같았다.


“어차피 방 안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까 그때까지만 참아. 기다리는 건 백랑 텐구들의 특기잖아?”


“딱히 특기는 아닌데요. 일이니까 하는 거지.”


단짝은 그렇게 대꾸해봤지만 아야는 깔깔 웃기만 했다. 모미지는 실없는 대화른 나누는 아야와 단짝를 놓치지 않도록 옆에 꽉 붙은 채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는 코토히메의 이야기를 듣고 막연히 침체된 분위기의 길거리를 떠올렸지만, 정작 그녀가 직접 본 인간 마을의 내부는 여전히 활기차고 시끌벅쩍했다. 그런 모미지의 시선을 눈치챈 아야가 조용히 말했다.


“밤에는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다들 평소보다 해가 떠 있을 때 더 활발한 거야.”


“그럼 밤엔 어떤데요?”


“오늘 직접 확인해 보렴.”


아야는 그렇게 말하고는 어느 집 앞에 멈춰서 문을 똑똑 두드렸다. 문 너머에서 얼굴을 내민 주름 가득한 노인은 아야의 얼굴만 보고는 아무 말없이 들어오게 했다. 모미지와 단짝은 그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간단하게 목례만 하고는 집 안에 들어섰다. 숨을 곳이라고 듣기는 했지만 설마 인간의 집이리라고는 둘 다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예전부터 날 돕던 분이야. 이번에 마지막으로 도와주시겠다지 뭐야. 고맙기도 하지.”


아야는 마치 자기 집이라도 되는 마냥 집 안을 성큼성큼 가로지르며 말했다. 모미지는 코토히메와의 대화를 다시금 곱씹어봤다. 그녀는 아야가 인간 마을 안에 다른 협력자들을 포섭하고 있고, 코토히메 자신도 그런 식으로 나중에 이용할 생각이라고 추측했다. 이 집의 주인은 대체 어떻게 아야를 알게 됐고, 어쩌다가 아야를 돕게 됐을까. 평범한 인간과 딱히 교류해본 적이 없는 모미지로서는 잠깐 스쳐지나간 정도로는 그걸 짐작할 방법이 없었다. 그 사이 아야는 모미지와 단짝을 위층으로 안내했다.


“여러분이 오늘 지낼 방은 여기랍니다. 원래는 창고였지만, 특별히 오늘만 비워달라고 했지.”


아야는 그렇게 말하면서 작은 다락방에 들어갔다. 아야도 허리를 숙여야할 정도로 높이가 낮은 데다가, 셋이 들어간 것만으로도 여유 공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작은 방이었다. 마을이 내다보이는 작은 창이 무릎 높이로 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말 그대로 텅 빈 방이었다. 군데군데 남아있는 먼지들만이 이 방이 원래 창고로 쓰였다는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여기 이 창문, 마을이 내다보이지? 저기 저쪽의 우물 보여?”


아야는 방바닥에 무릎을 꿇어 창문과 눈높이를 맞춘 뒤 창문 너머를 가리켰다. 모미지와 단짝도 그녀를 따라 무릎을 꿇고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봤다. 길거리를 꽉 매운 인파 사이로 낡은 우물 하나가 보였다.


“저기가 약속 장소야. 약속 시간은 기억하지?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좀도둑 씨가 오면 놓치지 말고 쏘면 돼. 얼굴은 알아볼 수 있겠지?”


모미지와 단짝은 고개를 끄덕였다. 산기슭에 숨어있는 도둑의 얼굴을 먼 발치에서 직접 보기도 했지만, 아야가 사진까지 어디서 구해와 둘에게 철저히 주입시킨 탓이었다. 모미지는 이제 그 좀도둑이 쌍둥이 형제와 나란히 서 있어도 구분해낼 자신이 있었다. 물론 그런 쌍둥이 형제는 없으니 다행이긴 했지만. 우물까지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아서 그 도둑을 발견하기만 한다면 모미지는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계획은 다 기억하지?”


“도둑이 나타나면, 바로 쏘고 마을에서 벗어난다. 총성이 한 번 울리면 자경단이 마구잡이로 총을 쏠테니 절대 모습을 내비치지 않는다.”


아야의 질문에 모미지가 간단히 답하자 아야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정작 모미지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살짝 불평을 내비쳤다.


“그래도 셋이나 기다리긴 방이 좁네요.”


“어라? 나는 여기서 안 기다려. 나는 어차피 총을 쏘지도 않는 걸.”


모미지는 그 대답을 듣고서야 아야가 오늘 밤에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과 단짝이 기다리다가 총을 쏜다는 사실만 계속 머릿속으로 되새기고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단짝도 그건 마찬가지였는지 아야에게 살짝 원망을 섞어 물었다.


“그럼 아야 씨는 뭘 하시는데요?”


“일단 마을 안에서 대기.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너희한테 알려주는 역할이지.”


“저희보단 편한 역할 같네요.”


단짝의 그 말에 아야는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그럼 여기서 셋이 기다리는 쪽이 더 좋아?”


그 질문에 모미지와 단짝은 서로의 시선을 교환했다. 이 방은 둘이서 누워서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꽉찬 느낌이었다. 거기에 백랑 텐구도 아닌 까마귀 텐구가 하나 더 끼는 건 과연 어떨지? 말없이 이미 같은 결론을 낸 모미지와 단짝은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아뇨, 둘이 좋을 것 같네요.”


아야는 합이 잘 맞는 두 백랑텐구의 모습에 킥킥 웃었다.




모미지와 단짝은 날이 지기 전까지 아야와 마을을 간단히 둘러보고 식사까지 하고 돌아왔다. 처음에는 인간들에게 딜키기라도 할까봐 움직임이 뻣뻣했던 백랑 텐구 둘이었지만, 이내 인간들은 생각보다 타인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자 서로 장난까지 쳐가며 인간마을을 유쾌하게 구경했다. 산에서 경비 업무만 주로 서던 둘에게 인간 마을은 그만큼 이국적이고 신비하게 느껴져서 자신들이 왜 몰래 들어왔는지를 거의 까먹을 정도였다.


“경단은 꽤 괜찮았던 것 같아. 인간 마을 음식도 나쁘지 않네.”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린 인간 마을을 창문으로 내다보면서 단짝이 중얼거렸다. 아직 아야가 위조한 편지에 적힌 약속시간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지만 혹시 몰라 둘은 교대로 밖을 망보기로 했다. 시끌벅적했던 낮과는 달리 고요한 인간 마을의 밤거리를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는 건 백랑 텐구들 입장에서도 지겹기 그지 없는 일이라 결국 둘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게 되었다. 이번에 쉬는 차례였던 모미지는 누운 채로 천장만 바라보면서 적당히 대꾸했다.


“맛보다는 공짜로 얻어먹어서 좋은 느낌이긴 한데.”


“까마귀 텐구 어르신이 사주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나.”


“그러다가 앞으로 두고두고 부려먹힐 걸.”


모미지는 무심코 그렇게 말하다가 자신이 전에도 이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는 아야에게 약속보다 돈을 더 받은 캇파 친구에게 한 말이었다. 정작 그렇게 말했던 자신이 아야가 제안한 일을 하게 되다니, 그녀 스스로 생각해도 어쩐지 우스운 꼴이었다. 단짝은 그런 사정은 몰라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모미지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러는 넌 왜 갑자기 이 일 하겠다고 한 거야? 적어도 아야 씨에게 뭘 얻어먹을 생각은 아닌 것 같다만.”


“뭐, 그날 이런저런 일이 있었거든. 너 말고도 비슷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코토히메 씨와 이야기도 해보고. 무엇보다 아야 씨와 이야기해보고. 네 말이 틀린 건 아닌 것 같더라. 그래서 해보기로 했어.”


“나 참. 진작에 그럴 것이지. 여럿 피곤하게 만들고 말이야. 이런 건 기다리는 쪽도 힘들다고.”


단짝의 그 말에 모미지는 그녀 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렸다. 망을 봐야 하니 창문 밖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단짝이었지만, 주근깨 근처가 살짝 붉어진 것만으로도 모미지는 그녀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단짝의 말 그대로였다. 기다리는 일은 분명 익숙해져도 힘들다. 이번 일만 끝나면 나를 기다려 주는 이들도 조금 편해질까, 모미지는 그렇게 고민하다가 도둑의 아내를 떠올려버렸다.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그 아내라는 인간. 지금도 도둑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인간.


“그 아내라는 인간, 지금도 남편을 기다리고 있을까? 이 일이 끝나면 앞으로 어쩔까?”


모미지는 단짝에게 그렇게 넌지시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성의 없는 대답뿐이었다.


“글쎄. 그건 인간들이 알아서 하겠지.”


“코토히메 씨는 차라리 그 도둑이 죽는 게 아내에게도 좋지 않겠냐고 하더라. 어쩐지 그 말이 맞는 것 같지만...”


“그 뒤로 적어도 고통스럽게 기다리는 일은 없겠지.”


모미지와 달리 단짝은 그 일에 대해 별로 고민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모미지는 이상하게 그 아내라는 인간에 대한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코토히메가 했던 말들에 결국은 동의하게 되면서도, 이상하게 그 아내라는 인간에 생각이 닿으면 모든 확신이 사라졌다. 다른 이들이 모미지를 기다려주었듯이 그 아내라는 인간은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모미지는 자신을 기다려준 이들을 위해 이 일을 하기로 했지만, 정작 이 일이 성공하면 아내는 자신의 기다림을 보상받을 수 없다. 코토히메와 모미지는 그 기다림을 끝내는 게 아내라는 인간에게 보상이라고 생각할지라도, 그녀는 반대로 생각할 게 분명했다. 모미지의 고민은 그렇게 꼬리를 물고물어 이제 이틀 전, 단짝이 찾아왔을 때 지켜봤던 여우에게까지 이어졌다.


“그저께 여우 생각나? 내가 토끼를 못 사냥하게 했던 여우.”


“기억나지. 네 덕분에 하루 허탕 친 여우.”


모미지는 그 뒤로 여우가 새 먹잇감을 구했을지도 모른다고 반박하려다 말았다. 어쨌거나 모미지 때문에 그 여우는 사냥감을 놓친 건 마찬가지니까. 과연 여우는 몇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그 뒤에 다른 사냥감을 찾아 배를 채울 수 있었을까. 지금 와서는 알 수 없는 질문들이 아야의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떠올랐다.


“차라리 그때, 여우를 쏘는 게 여우에게 더 좋은 일이었을까?”


“그건 여우 씨만 알겠지.”


그 대답도 모미지에겐 썩 만족스럽진 못했다.




“이제 네 차례야.”


단짝은 누워있는 모미지의 오른팔을 툭 건들면서 말했다. 안 그래도 슬슬 시간이 됐다고 생각한 모미지도 몸을 옆으로 굴려 자세를 바꾸고 창밖을 내다봤다. 거리에는 삼삼오오 모여 가끔씩 순찰을 도는 자경단원들 외에는 움직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자경단원들은 자기들끼리 시끌벅쩍하게 떠들고 주위를 제대로 살피지도 않아 순찰이라기보다는 그냥 밤나들이를 하는 것 같았다. 저 정도라면 도둑이 밤중에 순찰을 피해 인간 마을을 드나들었던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슬슬 시간이 된 것 같은데. 그 도둑 씨는 시간을 잘 지키는 편인가?”


모미지는 달이 어디쯤 있는지를 슬쩍 살펴보며 말했다. 단짝은 이제 망을 보는 일은 자신의 일이 아니니 바로 신경을 끄고 눈을 감으며 답했다.


“도둑 씨야 일찍 와서 좋을 일 없지. 정작 본인은 모르겠지만.”


모미지는 대화를 더 이어나가지 않고 어두운 밤거리에 관심을 집중했다. 하지만 약속시간이 가까워져도 도둑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모미지는 혹시 도둑이 자신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눈치챈 게 아닐까 고민하던 때에, 저 멀리서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모미지는 순간 자신이 지루한 망보기 때문에 별것 아닌 소리를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의심했다.


“야, 뭐야. 이 소리는...”


하지만 옆에서 누워 있던 단짝은 화들짝 놀라 그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다가 낮은 천장에 머리를 부딪칠 뻔했다. 모미지는 단짝의 그런 반응을 보고는 자신이 착각한 게 아님을 깨달았다. 단짝이 모미지 옆에 엎드려서 그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볼 때, 같은 소리가 다시금 울렸다. 모미지는 두번째 들린 그 소리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짧고 굵은 폭발음은 익숙했다.


“...총소리잖아.”


단짝이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 탕, 하고 세번째로 소리가 울렸다.



그때까지 고요했던 인간 마을의 분위기는 급변했다. 이곳저곳에서 횃불이 번쩍이고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와중에도 총성은 잦은 빈도로 탕탕, 그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꿔가며 울렸다. 백랑 텐구 둘이서 감시하던 우물가 주위에도 자경대원들 몇명이 각자 총과 횃불을 들고 모여서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그들도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의견도 다른 듯, 이곳저곳을 가리키다가 삼삼오오 짝을 이뤄 길거리로 들어갔다.


모미지는 인간 마을에 처음 왔지만 이 광경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그녀가 어디서 보았기 떼문이 아니라, 이미 설명을 다 들었기 때문이었다. 코토히메는 인간마을에서 총성이 울려퍼진 밤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었다. 자경대원들이 총을 들고 움직이는 대상을 향해 총을 쏘고보는 상황. 도둑의 정확한 위치는 파악하지 못한 채 열의만 앞선 자경대원들이 서로서로 정확하지 않은 이야기들만 주고받으며 온 마을이 혼란에 빠지는 과정. 모미지의 눈과 귀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은 코토히메가 설명한 그대로였다.


“도둑 씨, 하필 오늘 들켜버렸나보네.”


단짝도 바로 상황을 이해하고 혀를 쯧 찼다. 태연하게 들리는 말투이긴 했지만 자신의 총을 꽉 붙든 손에서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모미지도 덩달아 자기 총을 움켜쥐었다. 이제 총성은 사방에서 울려퍼지고 있었다. 총성과 자경대원들의 움직임으로 도둑이 어디 있는지 파악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들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작정 움직이면서 총을 쏘고 있으니까.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만약 요괴인 백랑 텐구들이 숨어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 뒤가 어찌될지 모미지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어쩌지? 지금이라도 바로 빠져나가야 되나? 아님 아야 씨를 기다려?”


단짝이 그렇게 말했지만 모미지도 선뜻 결정할 수 없었다. 당황스럽긴 그녀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모미지는 일이 잘못될 경우를 왜 미리 생각해두지 않았을까 뒤늦게 후회했다. 코토히메는 인간 마을에서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는 걸 막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면 모미지가 인간 마을에 왔을 때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단짝만큼이나 그녀도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미 모미지의 머릿속에서는 지금까지 그녀가 저질렀던 실수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돌발 상황에서 얼어붙어버려 일을 그르쳐버렸던 일들. 다시 그런 실수가 반복된다고 생각하자 모미지의 몸이 또 얼어붙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야, 이건 뭐야?”


모미지는 단짝의 질문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단짝의 말투에서 지금 상황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일로 물어본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바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모미지와 단짝의 사이에서 히나 인형이 둥실 떠 있었다. 모미지가 인간마을에 들어오기 전에 허리띠의 주머니에 부적으로 챙겨둔 물건이었다. 인형은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 창문 밖으로 슬그머니 날아갔다. 히나는 그 인형이 액을 직접 찾아간다고 했다. 그리고 히나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 인형은 도둑의 은신처로 모미지를 안내했다.


“따라가야 해. 얼른 총이랑 다른 짐 챙겨.”


“뭐?”


“얼른! 나중에 설명할게. 저 인형만 따라가면 그 도둑, 찾을 수 있을 거야.”


모미지가 난데없이 지시를 내리며 자기 총과 허리띠를 챙기자 단짝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하지만 모미지가 단호하게 말하자 별다른 반항 없이 모미지처럼 자기 총과 허리띠를 챙겼다. 단짝이 두건까지 두른 걸 확인한 모미지는 작은 창문으로 몸을 빼내 지붕위에 걸터앉았다. 모미지는 다행히도 그리 멀지 않은 지점에서 부드럽게 날아가는 히나 인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미지는 뒤이어 창문으로 나온 단짝에게도 손가락으로 히나 인형이 날아가는 방향을 가리켰다.


“저걸 따라가면 될 거야.”


“잠깐, 저거 따라가면 그 도둑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실해?”


모미지는 솔직히 확신하지 못했다. 어쩌면 인형은 그저 근처에서 우연히 액이 많은 인간을 찾은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모미지는 지금 당장 어찌해야할지 모르고 당황하기보다는 저 인형이라고 따라가는 편을 택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녀는 단짝에게 거짓말을 했다.


“확실해.”


“그럼 찾아서 어쩌게?”


“원래 우린 그 도둑에게 어쩔 셈이었는데?”


모미지의 질문 아닌 질문에 단짝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걸 동의의 뜻으로 받아들인 모미지는 두 손으로 총을 꽉 붙잡고 히나 인형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지붕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단짝은 그녀의 등 뒤에 바짝 붙은 채로 소리쳤다.


“야, 우리 지금 엄청 수상해보이는 거 알지?”


“하늘을 날지만 않으면 요괴라고 생각 안 할 거야.”


“그 말이 아니라... 에휴, 그래. 너만 믿는다.”


모미지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히나 인형을 따라 옆 집의 지붕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히나 인형에게 그 말을 그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백랑 텐구 둘이 지붕 위를 달리는 와중에도 인간 마을의 상황은 변함이 없었다. 상황은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었다. 총성이 사방에서 계속해서 들려오고, 그에 따라 찢을 듯한 비명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자경대원들은 이곳저곳에서 자기네가 무얼 발견했네 저쪽에서 뭐가 움직였네 의미가 없는 이야기들만 외치면서 혼란을 가중시켰다. 심지어 나름 상황을 살펴보겠다고 두 백랑 텐구처럼 지붕 위에 올라가 주위를 살펴보는 인간들까지 있었다. 덕분에 모미지는 괜한 의심을 사지 않을 수 있어 안심했지만, 또 그 자경대원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 건 아닐까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게다가 히나 인형이 점점 속도를 내고 있어 행여 시야에서 놓치기라도 할까 속으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들어 가세요, 들어 가요!”


등 뒤에서는 단짝이 모미지를 바짝 뒤따라오면서 길거리에 보이는 주민들에게 고래고래 외치고 있었다. 안 그래도 길거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조금이라도 파악해볼 요량으로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거나 아예 길 한복판에서 담벽 너머를 내다보려는 주민들이 한둘씩 보였다. 이런 위험한 상황을 몇 번 겪고나니 보신의 욕망보다는 호기심이 앞서는 모양이었다. 단짝은 그런 인간들이 보일 때마다 손짓해가면서 안으로 들어가라고 외쳤다. 자경대원인 척하려는 연기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 인간들이 걱정되어서인지, 모미지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지금 모미지는 인간이 아니라 히나 인형에 신경을 쏟을 수밖에 없으니 더더욱 그랬다.


그렇게 추격전 아닌 추격전을 펼치면서 네 번째로 골목 하나를 뛰어 넘었을 때 모미지는 발 밑에서 낯선 감각을 느꼈다. 그녀가 지금 디딘 지붕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재질의 지붕이었다. 훨씬 더 견고하고 또 그만큼 공을 들인 기와였다. 모미지가 재빨리 주위를 살피자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거리가 펼쳐져 있었다. 모미지가 숨어 있던 길거리는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어 이런저런 물품과 흔적들로 복잡한 거리였지만, 이곳은 훨씬 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리의 양쪽에 자리잡은 집들도 더욱 규모가 크고 견고하게 지어져 있었다. 이 거리를 차지한 인간들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건 고지식한 모미지에게도 간단했다. 이 거리는 마을 유지들의 구역이었다.


모미지는 그 순간 자신의 추측이 틀렸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히나 인형은 인간 도둑이 아니라, 그저 이 근처에 액이 많은 부자를 찾아온 것이라고. 도둑이 이 상황에서 도망친다면 분명 인간 마을 밖이거나 자신의 아내가 기다리는 집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곳은 인간 마을의 한복판이고, 그 도둑의 아내가 이런 집에 살 것 같지도 않았다. 히나 인형은 그런 몸미지의 추측에 동의하기라도 하듯이 어느샌가 고도를 낮춰 지붕 위가 아닌 거리 한복판에서 하늘하늘 날아가고 있었다.


“뭐야, 여기야? 그 도둑이 있는 데가?”


모미지는 자신이 사실 거짓말을 했노라고, 사실 히나 인형이 도둑을 따라간다는 보장은 없었노라고 설명하려고 했다. 자신이 되도 않는 거짓말을 하다가 일을 망쳤다고, 이번엔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했는데 또 망쳐버렸다고.


하지만 모미지는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 앞에서 단짝이 옆으로 휙 쓰러져 버린 것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총성과 함께.




“거기 누구야!”


거리 쪽에서 요란한 외침이 들려왔다. 모미지는 바로 단짝의 옆으로 달려가면서 그 외침이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봤다. 눈부신 횃불 아래 자경대원 대여섯 명이 총구를 지붕 위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붕위의 누군가를 발견하고, 다른 자경대원들이 그러듯이 총을 쏜 것이었다. 단짝은 왼쪽 어깨를 맞았는지 오른손으로 어깨를 꽉 붙잡고 자그맣게 신음을 내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제대로 맞추지도 못하면서 하필 지금 맞추다니, 일이 꼬여도 어떻게 이렇게 꼬이는지 모미지로선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붕 위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자경대원들은 더욱 수상쩍게 여기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대로라면 모미지를 향해서 다시금 총을 쏠 기세였다. 모미지는 단짝과 함께 자리를 떠야할지, 적당히 말로 자경대원들을 구슬려야할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거기 누구냐고!”


자경대원 하나가 모미지에게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때 아무런 대답도 행동도 못하는 못하는 모미지는 누군가 지나쳐 자경대원들에게 외쳤다.


“이 멍청이들아! 사람이 맞을 뻔했잖아! 어르신들 집을 지키고 있는데 다짜고짜 총을 쏘면 어쩌란 거야!”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모미지에게 등을 보인 채로 길거리의 자경대원들에게 호통을 쳤다. 워낙 당당해서 모미지는 순간 정말로 이 집을 지키던 인간이 자경대원들을 혼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인간처럼 차려입은 아야가 어디선가 나타나서, 마치 인간인 것처럼 소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진짜로 맞았으면 너희들은 어르신한테 제대로 혼이 났을 줄 알아! 도둑을 잡고 싶으면 애먼 사람 잡지 말고 얼른 꺼져! 저쪽에서 다들 쫓고 있으니까!”


아야는 모미지와 단짝이 달려온 방향을 손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어두운 지붕 위에서 그녀의 모습은 그들에게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터였지만 그녀의 태도가 너무 당당해서 자경대원들은 뭐라 제대로 대꾸하지도 못하고 자기들끼리 웅얼웅얼거렸다. 모미지는 이런 상황에서도 너무나 당당히 거짓말을 쓰는 아야의 모습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도둑을 잡으려는 거야 뭐야! 얼른 움직여!”


아야가 한 번 더 호통을 치자 자경대원들은 아야가 가리킨 방향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어정쩡한 몸놀림으로 보건대 아직도 자신들이 왜 그 지시에 따라야하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망할 멍청이들 때문에 큰일날 뻔했네.”


자경대원들이 골목 너머로 사라지는 걸 확인한 아야는 단짝에게 다가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미지는 여전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아야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어때, 심하게 맞았어?”


아야는 작은 손전등을 꺼내들고 단짝의 왼쪽 어깨를 살펴봤다. 옷의 일부가 찢어지고 그 자리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나와 아직 남아있는 흰 천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아야는 손전등으로 그 자리를 이리저리 살피고는 말했다.


“총알은 스치고 지나간 것 같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총을 잘 못 쏠 거면 아예 맞추지나 말 것이지. 정말 도움이 안 되는 녀석들이네요.”


단짝은 이제 고통이 조금 익숙해진 건지 그런 우습지 않은 농담을 던졌다. 아야는 어깨에 매고 있던 가방에서 붕대를 꺼내 단짝의 상처에 급한대로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모미지도 말 없이 아야를 돕기 시작했다.


“어떻게 우리가 여기 있는 줄 아셨죠?”


붕대를 매듭지으면서 모미지가 그렇게 묻자 아야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이쪽에서 묻고 싶은데?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안 그래도 너희한테 어떻게 연락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무튼 잘 됐어.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진 몰라도, 제대로 찾아온 거야.”


“제대로 찾아왔다고요?”


모미지가 그렇게 되묻자 아야는 자신이 자경대원들에게 가리켰던 반대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도둑 씨, 저쪽에서 오고 있거든. 총성이 전혀 엉뚱한 곳에서 들리길레 일이 틀어졌겠거니 싶었지. 다행히도 도망치는 도둑 씨는 금방 찾아서 따라다닐 수 있었어. 문제는 총이 없었다는 거지. 자경대원한테서 빼앗자니 괜히 싸움이 벌어질까 싶고. 그런데 근처 지붕 위에서 뛰어다니는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지 뭐야. 잘 됐다 싶었지. 망할 인간 녀석들이 너희한테 총을 쏠 줄은 몰랐지만.”


“아야 씨 아녔으면 들켰을 거에요. 완전히 일을 그르칠 뻔했어요. 전 또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아야는 그렇게 자책하는 모미지의 어깨를 가볍게 치면서 웃었다.


“아직 안 끝났거든? 이 친구는 내가 챙길 테니까 얼른 끝내고 와.”


모미지는 그 말을 듣고 아야가 가리킨 방향을 다시 살펴봤다. 히나 인형은 조금 멀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거리 위에서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둥실 떠 있었다. 모미지는 재빨리 근처를 살펴 길거리를 살피기 가장 좋은 곳을 찾아봤다. 마침 그녀가 서 있는 지붕 꼭대기의 용마루에서는 길거리를 그대로 내려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총을 챙기고 용마루로 오르려던 모미지는 잠깐 아야에게 고개를 돌려 한 가지를 물었다.


“아야 씨, 여기 누구 집인가요?”


“키리사메 가. 부자 집. 정확히는 여긴 창고야. 그래서 이 밑에 사람은 없을 걸?”


“그럼 도둑이 여기로 오는 건...”


아야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으쓱했다. 모미지도 의미를 대충 깨닫고 용마루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등 뒤에서 단짝이 끙끙거리며 외쳤다.


“이번엔 일부러 빗맞추지 마!”


모미지도 그럴 생각은 없었다.




모미지는 용마루 위에 걸터앉아 왼쪽 무릎과 팔꿈치에 소총을 걸쳤다. 길거리에서 나풀거리는 히나 인형이 그녀의 시야에 붙잡혔다. 자경대원들의 횃불 때문에 잠깐 흐트러졌던 그녀의 시야도 어느새 다시금 어둠에 익숙해진 채였다. 아야는 도둑이 이 방향으로 오고 있다고 했으니 이제 모미지에게 남은 건 기다리는 일 뿐. 이제는 그녀가 늘상 하던 사냥과는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마을 이곳저곳에서는 총성과 외침이 울려퍼졌다.


모미지는 숨은 가볍게 고르고는 총을 장전했다.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데, 머릿속에 아직도 너무 많은 의문들이 넘쳤다. 대체 도둑은 어쩌다가 들켰는지, 왜 키리사메 가의 창고 쪽으로 도망치는건지, 애초에 약속 장소에 나올 생각은 있기나 했는지. 그리도 그 도둑의 아내는 아직도 이 총성을 들으면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지. 지금 그 도둑을 기다리는 건 아내나 모미지나 마찬가지였다. 모미지는 그 도둑을 직접 보면 왜 여기로 왔느냐고, 어째서 자신이 기다리는 곳으로 왔느냐고 묻고 싶었다. 물론 그 답을 들을 일은 이제 없을 터였다.


거리 너머에서 투박스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총을 든 자경대원들의 무거운 발소리와는 달리 가볍고 경쾌한 소리였다. 무엇보다 단 한 명의 발소리였다. 그 발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한 모미지는 총구를 그쪽으로 겨눴다. 가늠쇠 너머로는 아직도 히나 인형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발소리가 골목 너머에서 들리기 시작하더니, 그림자 하나가 어둠속에서 나타났다. 모미지가 이미 몇번이고 머릿속에 새겨넣었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모미지는 그 이목구비의 윤곽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그림자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지 살펴보면서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추격자들을 따돌렸다는 안도감과 또 누가 따라붙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함께 느껴지는 몸놀림이었다. 그렇게 그림자는 모미지가 기다리고 있는 곳까지 그대로 달려왔다. 모미지가 기다리던 토끼처럼, 그 도둑도 자신을 기다리는 게 뭔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그림자와 히나 인형이 하나로 겹쳐졌을 때 모미지는 방아쇠를 당겼다. 우연히 근처에서 또 총성이 들려왔다. 덕분에 모미지는 어깨에 둔탁하게 느껴지는 반동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총을 쏘지 않았다고 착각할 뻔했다. 거리 위에 떠 있던 히나 인형은 땅바닥에 천천히 내려앉았고, 그림자도 길 한복판에 뒤로 넘어졌다. 모미지는 순간 히나 인형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그림자도 길 한복판에서 누운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총을 한 번 더 쏠 필요가 없음을 깨달은 그녀는 노리쇠를 당기지 않고 총구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도둑이 달려나온 골목에서 다른 그림자 하나가 뛰쳐나왔다. 이번에도 아야에게 익숙한 얼굴 윤곽이었다. 코토히메의 붉은 머리카락은 희미한 달빛에서도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 길바닥에 쓰러진 그림자를 발견한 그녀는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고개를 들어 모미지가 앉아있는 용마루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모미지는 말없이 일어서서 아야와 단짝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뒤는 이제부터 코토히메가 알아서 할 터였다. 모미지에게 남은 일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 뒤로는 모미지 입장에선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일이 술술 풀렸다. 아야는 두 백랑 텐구를 데리고 인간마을을 간단히 빠져나갔다. 단짝도 말 그대로 총알에 스치기만 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부축 없이 혼자서 잘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요괴의 산으로 향하는 그들의 등 뒤로는 몇 번 더 총성이 울렸지만 어느새부턴가 잠잠해졌다. 모미지는 야간 경비대를 지나치고 난 뒤에야


나중에 아야가 전해준 바에 따르면 총성 한 방에 시작되었던 인간 마을의 소란이 도둑이 잡혔다는 소식으로 이내 진정되었다고 했다. 도둑이 왜 거기에 있었는지, 그 도둑을 쏜 건 대체 누구인지는 인간 마을에서도 여전히 이런저런 소문만 무성했고 그걸 조사해야할 경찰들은 건성건성 일을 하는 시늉만 냈다는 이야기도, 그리고 이미 세 번이나 총격전으로 난리를 친 자경대원들은 총을 모두 경찰에게 빼았겼다는 소식도 모미지는 전해듣기만 했다. 정작 그 도둑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전해듣지 못했지만, 모미지도 별로 알고 싶지 않았기에 굳이 더 물어보지 않았다.




모미지가 단짝을 다시 만난 건 이틀 뒤였다. 인간 마을에서 돌아온 다음 날은 모미지가 다시 경비 근무를 서느라 도저히 찾아갈 짬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근무에서 빠질 수 있으니 마냥 나쁜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


어깨를 다친 단짝은 병상에 누운채로 그렇게 유쾌하게 말했다. 털끝하나 다치지 못한 모미지는 정작 바로 다음 날부터 경비 근무에 투입되었건만. 모미지는 단짝이 쓰러졌을 때 자신이 당황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걱정했네. 그냥 그때 총이나 제대로 맞아버리지.”


“글쎄 누가 사람을 쏴버려서 이제 인간 마을에서 총은 죄다 걷어갔다잖아. 앞으로는 이럴 일 없다는 거지.”


모미지의 톡 쏘는 저주에 단짝은 킥킥 웃으며 답했다. 단짝은 그렇게 가볍게 답하긴 했지만, 모미지는 정말로 앞으로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을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단짝은 그런 모미지의 속마음도 모르고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옮겨갔다.


“아야 씨는 어떻대? 칭찬 많이 해주시든?”


“딱히. 그냥 잘했다고만 하시던데.”


“그 정도면 많이 칭찬한 거지. 일이 그렇게 꼬였는데 잘 처리했다는 거니까.”


“어차피 히나 인형 덕이었는데 뭘.”


모미지는 그 뒤로 아야와 단짝에게 히나 인형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야 했다. 그녀의 예상과 달리 아야는 히나 인형이 액을 찾아서 움직인다는 설명을 듣고 더는 깊게 추궁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결과가 좋았으니 그런 사소한 과정에는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느낌이라 모미지는 참으로 아야답다고 느꼈다. 아야는 그 일은 제쳐두고 모미지에게 잘 했다고 가볍게 칭찬한 것도 예상 밖의 일이었다. 이번에도 또 당황하고 얼어붙었다고 한 소리를 들을 줄 알았던 것이다. 아야는 그런 모미지의 고민은 눈치챘는지 가볍게 훈수를 두었다.


“어차피 총을 쏘라고 데려간 거지, 인간 행세를 하라고 데려간 건 아니었어. 딱 내가 기대한 만큼 해줬는데 뭐가 문제겠어?”


그런 칭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소리도 참으로 아야다웠다. 하지만 정말로 그걸로 충분할지 모미지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혼자 고민을 하던 모미지의 옆에서 단짝이 짧게 한 마디를 던졌다.


“그래도 널 기다려준 보람이 있잖아? 나나 아야 씨나.”


그리고 히나 씨도. 모미지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다음 날 모미지는 산기슭으로 내려와 아야와 코토히메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야는 도둑이 은신처로 쓰던 동굴에 혹시나 누가 오는지 망을 보라고 지시했지만, 모미지로서는 그 동굴로 찾아올 사람이 있기는 한지 의문이었다. 코토히메는 여전히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표정으로 아야와 건조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코토히메 씨에게 더 묻고 싶은 건 없어?”


코토히메와 대화를 마치고 모미지에게 돌아온 아야가 그렇게 물었다. 모미지는 그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의외네. 여전히 궁금한 게 많을 줄 알았는데.”


“사실 많긴 하죠.”


아야의 말대로 아직도 모미지는 코토히메에게 묻고 싶은 게 아직도 많았다. 코토히메가 목적을 이뤄서 기쁜지, 과연 인간 마을에서 총이 쓰일 일이 앞으로 없을지. 그게 정말로 이 모든 협작을 감당할만큼 가치 있는 일이었는지. 아야의 도움을 받은 걸 후회하지 않는지. 그 도둑은 왜 키리사메 가로 향하고 있었는지, 도둑은 거기서 총에 맞고 어떻게 되었는지. 그게 그 도둑의 아내에게 정말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하지만 어떤 대답을 들어도 모미지는 수긍할 것 같지 않았다. 모미지가 왜 토끼를 쏘지 않았는지 설명해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처럼.


“그냥 기다리면 알게 되겠죠.”


모미지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들은 몰라도 그녀는 기다리는 일에는 익숙했다. 저 아래에선 오늘도 히나가 모미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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