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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팬대] 주최자 출품작 1 - 살별

동프학선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1.31 23: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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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에 이미 쓰고 공개한 글입니다. (https://gall.dcinside.com/touhou/4105772) 작중 날짜도 2016년에 맞춰져 있습니다.


지문 1.


-


춘분, 3월의 환상향은 아직 쌀쌀했다. 향림당에서도 여전히 난로를 때우고 있었다.

“아, 그래서 보여줄 게 뭔데?”

한참 수다를 떨던 마리사의 물음에 린노스케는 안쪽에서 금속 항아리를 가져와 탁자 위에 올리며 말했다.

“무연총에서 주운 건데, 지동의라고 해. 문헌에 따르면 대륙의 후한 시대 때 장형이란 사람이 만들었는데, 멀리 떨어진 곳의 지진 발생과 방향을 알아냈다고... 어라.”

린노스케가 말을 멈추고 바라보는 곳을 따라 마리사가 눈을 돌린 곳에는 야쿠모 유카리의 식신, 야쿠모 란이 있었다.

“무슨 일이야?”

마리사의 물음에 돌아온 란의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레이무가 아파.”

약간 놀란 마리사가 대꾸를 않자 란이 말을 이었다.

“유카리님이 하쿠레이 신사로 와달라고 하셨어.”


마리사가 란과 함께 하쿠레이 신사에 들어서자 안에서는 누워있는 레이무 옆으로 유카리가 부채를 접어 들고 앉아 있었다.

“왔구나.”

유카리가 말했다.

“레이무! 많이 아프냐?!”

마리사의 외침에 레이무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프기는... 별 거 아니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몸살 기운이 있는 모양이야. 하필이면 이런 일이 겹쳐서...”

유카리가 부채를 턱에 대고 심각하게 말했다.

“무슨 일인데?”

“지금 환상향 전반적으로 요력이 너무 세. 비정상적으로.”

마리사의 물음에 레이무가 대신 대답했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환상향에 가장 중요한 건 어찌됐건 균형이야. 잠깐이야 괜찮지만 계속되면 곤란해.”

“원인은 몰라?”

마리사가 묻자 유카리가 말했다.

“조사해 보라고 하려고 온 건데 이러고 있으니.”

“대요괴께서 직접 좀 해봐 좀.”

레이무가 핀잔은 준 그때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일행이 밖을 내다보자 보인 것은 홍마관의 메이드장과 그녀가 옆에 받치고 있는 양산이었다.

“레밀리아?”

레이무의 말에 양산을 살짝 들어 올려 얼굴을 보인 이는, 그러나 레밀리아가 아니었다. 사쿠야가 말했다.

“오늘은 파츄리님이야.”


홍마관의 주민이 홍차가 아닌 녹차를 마시는 것은 보기 드문 광경이다. 굳이 녹차를 선택한 파츄리가 잔을 모두 비우자 어쨌든 집주인격인 레이무가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지금 환상향의 요력이 지나치게 강한 건 알고 있지?”

파츄리는 말을 하고는 레이무, 유카리, 마리사를 하나씩 떠보듯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그 얘길 하고 있었다.”

마리사가 나서서 대답했다. 그 말에 파츄리가 다시 물었다.

“원인은 알고?”

“그야...”

“아직 몰라.”

능글맞은 미소를 얼굴에 띠고 입을 연 유카리를 째려보며 레이무는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럴 것 같아서 왔어.”

파츄리는 이 말을 마치고 일어서 문을 활짝 열고 바깥을 향했다. 그리고,

“잠깐만, 뒤처리는 어쩌라고!”

레이무의 외침을 무시하고 탄막을 펼쳤다.


금&수부 『머큐리 포이즌』


“잠깐만...”

마리사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상함을 느낀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사쿠야를 제외한 모두의 얼굴이 당혹감에 약간 굳어있었다.

금金이 너무 세다. 오행의 성질이라고 해도 파츄리의 스펠카드는 이미 그런 것도 감안해 균형을 맞춰놓은 것이다. 하물며 금생수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지금은 언뜻 보면 그냥 금부 탄막으로 보일 정도로 균형이 깨져 있었다.

파츄리가 탄막을 거두자 유카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요력과 금金이 동시에 강해진다면 이건...”

“그거로구만.”

마리사는 무언가 떠올리며 웃음인지 쓴웃음인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노카가세오노미코토.”

레이무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익숙한 이름을 말했다.

“올해도 문제없었단 말이야. 몇 년 전 같은 일도 없었다고.”

“알아.”

유카리가 말했다.

“다른 원인을 찾아야지.”

그리고는 틈새를 열고 까마귀 식신을 데려오며,

“요력이야 많은 곳이 곳곳이라 곤란했지만, 이제 다른 조건이 있으니 찾을 수 있겠지.”

하고는 까마귀 식신에게 무언가를 길게 속삭인 후 날려 보냈다. 식신은 깨끗한 선을 그리며 천천히 날아갔다.

모두들 식신을 뒤따라갔지만, 레이무는 일어서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몸을 방바닥에서 떼어내듯 하는 것이 약간은 힘들어 보였다. 옆에 남아있던 유카리가 말을 걸었다.

“힘들면 안 와도 돼. 따로 부를 테니까.”

“괜찮아.”

하고 레이무는 날아올랐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카리도, 이윽고 따라 날아올랐다.


마법의 숲. 우사미 스미레코는 이리저리 구경을 다니고 있었다. 마법의 숲에 따로 볼 것이 있나 싶지만 스미레코는 아직 환상향을 다 탐색해보지 못했으므로 마법의 숲 또한 호기심만으로도 흥이 나는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그때, 아직 3월인데도 벌써 온통 암녹색에 간간이 원색의 버섯이 보일 뿐이던 스미레코의 시야에 웬 사람의 형상이 들어왔다. 사람의 형상이라도 요괴나 요정일 가능성이 크다지만, 스미레코는 신경 쓰지 않고 다가갔다.

왼쪽 눈을 붕대로 가린 소녀였다. 하얀 장발에 하얀 원피스. 약간 은빛이 도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무릎을 감싸 안고 약간 경사진 곳 바닥에 앉아있었다.

“안녕?”

스미레코가 짐짓 그녀 옆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건넸다. 소녀는 스미레코를 거의 보지도 않은 채 물었다.

“여기는 어디지?”

“여기? 여기는... 지구.”

스미레코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소녀는 이제야 스미레코를 살짝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지구 어디?”

“일본. 하지만 사람들은 못 찾는 곳이야.”

“그럼 됐어.”

소녀는 그렇게 말하곤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잠시 동안의 침묵을 깨고 스미레코가 말을 걸었다.

“좀 걷지 그래?”

소녀는 스미레코를 표정 없이 쳐다봤다.

“오랫동안 계속 앉아 있었을 거 아냐?”

스미레코의 말에 소녀는 잠시 감싸 쥔 무릎 뒤로 고개를 조금 파묻고 눈을 깐 채 땅을 쳐다보더니, 말없이 천천히 일어났다. 맨발이었다.


역시 마법의 숲. 그다지 멀지 않은 다른 장소. 마리사, 파츄리, 사쿠야, 란이 모여 있는 곳에 레이무와 유카리가 도착하면서 아까의 인요들이 모두 모였다. 그곳에는 키를 넘기는 크기의 기계가 있었다.

“이거였구나.”

유카리가 말했다. 그러고는 파츄리를 바라보며,

“베네라 14호. 알아?”

하고 물었다.

“우리 도서관에 바깥 도서는 종교 서적 아니면 주술서밖에 없어. 이런 거는 골동품점 아니면 인간 마을에 그... 코스즈안?”

“스즈나안이다.”

마리사가 정정했다.

“그래. 아무튼 거기서 찾아야겠지. 몰라.”

“로켓도 만들었으니 어떨까 했다만. 바깥세계의 금성 탐사선이야.”

유카리가 탐사선의 주위를 따라 천천히 걸으면 말했다.

“착륙도 성공적이었고, 컬러 촬영도 성공적이었지만, 카메라 렌즈 뚜껑이 토양 분석기가 올라갈 자리를 정확하게 막는 기막힌 일 때문에 마지막 순간 실패하고 말았지. 성공한 탐사선은 잊히지 않아. 영원한 현실이 돼. 한편 그저 실패한 탐사선은 깨끗이 잊힐 뿐 환상이 되지는 못할 터. 그런 의미에서 이 베네라 14호는 환상들이에 제격이라 할 수 있지. 마지막 순간 실패한 환상의 탐사선.”

그러던 중 유카리는 토양 분석기가 붙은 로봇 팔이 지면에 붙어있는 것을 보고 허리를 굽혀 자세히 살폈다.

“렌즈 뚜껑이 어디 갔지?”

그러나 곧,

“뭐, 어쨌든. 베네라가 금성의 매개체가 돼 아마노카가세오노미코토의 기운이 강해졌다, 라.”

“요컨대 정상적인 요기가 짙어진 형태라는 거네.”

파츄리가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를 불러서 퇴치하면 돼?”

레이무의 짜증 섞인 물음에 파츄리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태양은 이미 떠 있어.”

“그럼 이걸 치워버리면.”

이번에는 유카리가 대답했다.

“유감이지만 환상이 이미 실체를 얻었어.”

“뭐?”

“환상의 베네라가, 이 실제의 베네라로부터 독립해서 환상향 어딘가에 있다고.”

잠시 자리를 뒤덮은 침묵을 마리사가 깼다.

“그래서... 어쩌잔 거냐.”

“스무고개만 하고 말이야.”

레이무가 퉁명스럽게 덧붙였다. 유카리는 부채를 잡은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태양을 ‘강하게’ 해야겠지.”

“태양을 강하게?”

파츄리가 반응했다.

“짐작 가는 게 있어?”

유카리의 떠보는 듯한 질문에 파츄리는 말했다.

“정상적인 요기를 토벌하기 위해선 태양의 정상적인 힘을 강하게 해야 해. 태양의 정상적인 힘이란 곧 낮. 그러니까 태양을 강하게 함이란,”

잠시 쉬고,

“낮의 연장. 태양이 멈춘 날.”

“태양이 멈춘다고?”

마리사가 놀란 듯 물었다. 파츄리는 말을 이었다.

“크리스트교의 경전에 보면 태양이 멈춰서 낮이 길어졌단 이야기가 있어. 그리고...”

파츄리가 유카리를 힐끔 보며 말을 쉬자 유카리가 능글맞은 웃음으로 반응했다.

“거기까지 알 줄은 몰랐네.”

“서기 1908년, 그러니까 23계 6월 30일, 같은 일이 유럽에서 있었어.”


마법의 숲. 인간 마을로 가는 길. 스미레코와 소녀는 나란히 걷고 있었다. 스미레코는 앞과 소녀를 번갈아 신경 썼고, 소녀는 자기 약간 앞의 땅을 주로 보며 걸었다.

“이름이 뭐야?”

문득 던져진 스미레코의 물음에 소녀는 멈춰 서서 말없이 스미레코를 쳐다봤다. 스미레코는, 아주 엷은 미소와 함께 다시 물었다.

“너는 누구야?”

소녀는 또다시 잠시 말이 없다가,

“...너는 누군데.”

하고 물었다. 스미레코는 잠깐 생각하고 대답했다.

“고등학생. 초능력자. 자세하게 궁금한 거 있으면 말해.”

소녀는 잠시 스미레코를 여전히 표정 없이 지그시 바라보다가, 앞으로 고개를 돌리고 다시 걸어 나아가며 입을 열었다.

“열네 자매 중에 막내였어.”

스미레코는 지긋이 “응.”하고 대답했다.

“열셋째 언니하곤 쌍둥이였고. 부모님은 우리한텐 아낌없이 투자를 해주셨으니까 유복한 가정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언니들의 삶은 행복했다고 하긴 어려웠어.”

소녀는 여기서 말을 멈추고 숨을 살짝 들이켰다 다시 한숨처럼 내쉬었다.

“부모님의 꿈을 위한 삶이었으니까. 짧은 생을 아무 것도 없이, 오직 순간만을 위해 달려가. 부모님의 꿈을 위한 한 순간을 위해. 그리고 스러지는 거야.”

그리고 소녀는 피식, 처음으로 웃으며,

“그나마도 성공적인 삶도 아니었고.”

하고 말했다. 스미레코는 진지한 얼굴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아홉째 언니 말고는 모두 실패했어. 실패한... 삶을 살았어.”

스미레코는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약간 고민하다, 쓴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앞으로 돌리고 말했다.

“이제 와선 드문 이야기도 아닌 걸...”

소녀는 스미레코를 흘끗 보며 아주 얇실한 쓴웃음을 따라지으며 다시 말했다.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리고 나는... 처음에는, 처음엔 성공했어. 아홉째 언니보다도 성공적이었는데, 그런데...”

소녀의 목이 멨다. 붕대로 가리지 않은 오른쪽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나왔다.

“실패했어. 마지막 순간에, 이 왼눈 때문에. 왼눈이 마지막 순간에 훼방을 놨어.”

소녀가 오른손으로 눈물을 계속 닦아 올렸지만 줄줄 흐르는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도 소녀는 우습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우습지 않아? 왼눈이 보이지 않은 것도 아니야. 왼눈 때문에 손을 쓸 수가 없었다면 알아들어? 터무니없잖아. 마지막이었어. 마지막이었다구. 마지막 순간에, 이 왼눈 하나 때문에...”

소녀는 주저앉아 무릎을 감싸 안고 얼굴을 파묻은 채 울음을 터뜨렸다. 스미레코는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레 소녀 앞에 앉아 그대로 기다렸다.

몇 분 후, 소녀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그와 함께 파묻혔던 얼굴도 살짝 들렸다. 눈은 맞추지 않고 땅만 보고 있었지만. 스미레코는 소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소녀가 눈을 맞췄다. 스미레코는 아주 엷은 미소와 함께 물었다.

“다 울었어?”

소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미레코는 훌쩍 일어서서 손을 내밀었다.

“가자.”

소녀는 잠시 스미레코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윽고 손을 잡았다. 스미레코가 소녀를 일으켜 주었다. 둘은 다시 걸은 지 얼마 안 되어 인간 마을에 닿았다.


홍마관 대도서관. 아까의 인요들 중 사쿠야를 제외하고 모두 모여 있었다.

“아까 말했다시피 23계 6월 30일에는 유럽 전역에서 밤이 낮만큼 밝았어.”

파츄리가 설명했다. 유카리는 능글맞게 책들을 살펴보며 듣고 있었고, 나머지는 약간 시큰둥하게 듣고 있었다.

“바로 같은 날 낮에 퉁구스카란 곳에서 대폭발이 일어났어. 크리스트교의 경전에 나오는 태양이 멈춘 날 직전에도 운석우와 지진이 있었고.”

“그건 알겠어. 그런데 그걸 어떻게 써먹자는 건데?”

레이무의 말에 파츄리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유카리를 바라보았다. 유카리는 들여다보던 책을 덮고 말하기 시작했다.

“6월 30일은 베타 타우리드 유성군의 극대기야. 유성군은 혜성과 관련이 있고, 여호수아서에도 해당 기록 전에 ‘칼’이라는 형태의 혜성 목격례가 나와. 그리고.”

그때 스즈나안에 갔다 온 사쿠야가 들어와 유카리는 말을 멈췄다. 사쿠야가 말했다.

“말한 대로 찾아 왔어. 맞아?”

사쿠야가 잡지를 내밀었다. 유카리가 받아들고 읽어보더니

“응, 맞아.”

하고는 모두에게 펼쳐 보이며

“베타 타우리드 유성군의 모체이자, 청동기 시대 잦은 재앙을 유발한 게 바로 이 엔케 혜성이야.”

유카리는 어쩐지 신이 나서는 말했다.

“게다가 엔케의 모체인 원형 엔케는 붕괴해서 사라졌으니 환상들이에도 제격이라구.”

유카리는 말을 마치고 잡지를 뒤쪽 책상에 던져 놓았다.

“그럼 그 혜성은 누가 불러내는 거냐?”

마리사가 물었다.

“내가 해야지.”

레이무가 말했다. 모두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혜성의 신님을 불러내면 돼.”

“혜성 신격을 가진 신님은 없을 텐데? 칼을 든 스사노오라도 불러내려고?”

파츄리의 말에 레이무가 대답했다.

“동양 전통에서 혜성은 칼이 아니라 빗자루야.”

이 말을 듣곤 마리사는 무엇이 생각난 듯 “아!”했다.

“기억났나보네. 직접 말하기 싫으니까 좀 말해줘.”

“달에 갔을 때 레이무의 부적들을 정화한 무녀 모습의 신님이 빗자루를 들고 있었다구.”

“원래 빗자루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신물이야. 이즈노메는 그럭저럭 적격이라고 생각해.”

레이무가 약간 잠긴 목소리로 말을 끝내자 유카리가 틈새에서 시계를 꺼내보고는 말했다.

“해도 졌다는구나. 나랑 레이무는 이만 신사로 가볼게. 결론도 났으니 서두르자고.”

유카리가 문 쪽으로 슬슬 걸어가지 레이무는 힘겹게 의자에서 몸을 떼어냈다. 그때 파츄리가 말했다.

“잡지 가져가야지.”

“어디 있지? 아, 저기 뒤에 있네.”

유카리가 말하자 마리사가 일어나 뒤쪽 책상에 다가가 잡지를 던져주었다.

“그럼 이쯤해서 나머지도 돌아가.”

파츄리가 책 한 권을 뽑아오며 말했다.


인간 마을. 요력도 강해진 참이지만 초저녁까지는 노점과 행인이 있었다. 스미레코와 소녀도 그 가운데에 있었다. 스미레코가 오뎅 집에서 어묵을 두 개 사 하나를 소녀에게 건넸다.

“먹어.”

“초능력자라고?”

소녀는 꼬치를 받아 쥐며 나직이 물었다. 스미레코는 소녀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 말했다.

“응, 초능력자야.”

소녀는 왠지 미소를 짓더니 옅지만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으로 보는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안 믿는구나.”

스미레코가 옅은 미소를 따라 지으며 말했다. 소녀는 웃음을 채 가라앉히지 않고 대답했다.

“너도 유물론 교육을 받으면 안 믿게 될 거야.”

스미레코는 이 말에 풋, 하고 웃고는 미소를 띤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막 붉은 빛이 가신 하늘은 아직 채 짙어지지 못한 푸른색이 투명한 듯 들여다보였다. 그리고.

“별이네.”

스미레코의 말에 소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가셨다. 소녀의 눈빛이 눈에 띄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스미레코는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스미레코는 손을 뻗어 소녀를 끌어안았다. 당황하며 얼굴을 붉힌 소녀가 머뭇거리며 얼굴을 스미레코의 어깨에 대자 스미레코는 손으로 소녀의 뒷머리를 감쌌다. 그리고 그대로 하늘을 올려 보았다. 이윽고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스미레코는 살며시 소녀의 머리에서 손을 뗐고, 소녀도 하늘을 보았다.


홍마관 대도서관. 파츄리는 홀로 앉아 책을 소리 내 읽고 있었다.

“여호수아가 예리고 지방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의 일이다. 그가 고개를 들고 보니 자기 앞에 누가 칼을 뽑아들고 서있는 것이었다. 여호수아는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너는 우리 편이냐? 우리 원수의 편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아니다. 나는 야훼 군대의 총사령관으로서 이제 온 것이다.’...”

파츄리는 문득 읽기를 멈추고 위쪽 창문을 바라보았다. 어두워진 하늘이 보였다. 파츄리는 공연히 목을 손으로 세게 쓰다듬었다. 마음 안쪽에서 불안감이 스며 나와서였다. 별다른 이유 없이 막연한 불안이 은근히 존재감을 드러냈던 것이다.


신사에서 나온 레이무가 마당의 유카리에게 다 읽은 잡지를 건넸다.

“다 읽었어?”

“응. 여기 쓰여 있는 혜성의 모습으로 와 달라고 하면 되지?”

“맞아.”

“그럼 가봐. 강신은 알아서 할 게.”

“그래.”

유카리는 날아올라 산을 내려와 인간 마을에 닿았다. 스즈나안에 잡지를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어둠이 짙어진 인간 마을의 거리는 거짓말처럼 아무도 없었다. 유카리는 스즈나안에서 꽤 떨어진 곳에 내려와 걷기 시작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마미조가 자연스럽게 유카리 곁으로 다가와 나란히 걸었다. 평소처럼 인간으로 둔갑한 모습이었다.

“어디로 가시는가?”

“스즈나안.”

“책이라도 빌리려는가?”

“돌려주려고.”

“그럼 벌써 해결인가 보이. 한 번 봐도 되겠는가?”

유카리는 잡지를 마미조에게 건넸다. 마미조는 잡지를 훑어보더니 말했다.

“아, 이거구먼, 나도 직접 봤었는데 대단했었네.”

“뭐?”

유카리는 갑작스레 놀란 표정을 지었고, 마미조는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는가?”

“당신은 어린 축이잖아. 이걸 봤을 리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내가 아무리 젊다 해도 20년 전 일을 못 봤을 리는...”

등골이 싸해진 유카리는 마미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잡지를 낚아채 찢어질 듯 급히 펼쳐 읽었다.

잡지가 바뀌었다.

유카리는 마미조에게 잡지를 던지다시피 건넨 다음 신사 쪽으로 서둘러 날아올랐다.


지옥. 헤카티아의 처소. 클라운피스가 촐랑대며 들어왔다.

“주인님! 말씀하신 대로 바꿔 놓고 왔어요―”

“그래, 클라운피스. 여기 앉아보렴.”

헤카티아의 말에 클라운피스는 헤카티아의 발치에 앉았다. 헤카티아는 잘 아는 이야기였음에도 책을 펴서 무릎에 올려놓고 평소답지 않게 멋을 부린 투로 말했다.

“클라운피스. 플레이아데스는 알고 있지?”

“네―!”

“그래. 플라이아데스는 플레이오네의 딸들이라 붙여진 이름이란다. 아버지는 아틀라스야. 그 중 하나가 엘렉트라지.”

“엘렉트라 알아요― 하늘 위에 자매들하고 같이 있어요.”

“그래. 자매들과 함께 별로 있지. 어쨌든. 엘렉트라는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다르다노스를 낳았단다. 다르다노스가 이다 산에 세운 도시가 바로 트로이의 모체야. 트로이가 어떻게 됐지?”

“망했어요!”

“트로이가 망할 때, 엘렉트라는 너무 슬픈 나머지 머리카락을 묶지도 않고 길게 늘어뜨린 채 울었단다. 머리카락이 휘날렸지. 그렇게 바로 혜성이 생긴 거란다...”

헤카티아는 올라간 입꼬리와 함께 책을 덮고 일어섰다. 그리고 방 끝 창문으로 다가가 난간에 손을 짚고 서서, 마치 공기를 음미하는 듯 기분 좋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하늘 쪽을 바라보고 나지막이 말했다.

“시작이야.”


유카리는 하쿠레이 신사가 보이기 시작할 때쯤 제기(祭器)를 치우고 있는 레이무를 보고 절망감과 그래도 남아 있는 한 가닥 희망 아래 외쳤다.

“레이무!”

레이무는 날아오는 유카리를 발견하곤,

“몇 분 전에 끝냈어. 왜?”

하고 조금 크게 말했다. 그 순간, 온 환상향을 뒤흔들 만큼 큰 기의 폭발음이 퍼져 나왔다.

레이무가 하늘을 휙 돌아볼 동안 유카리는 신사 마당에 미끄러지며 착륙해 틈새에서 망원경을 꺼내 눈에 가져다 댔다.


[1994년 7월 16일, 슈메이커-레비 혜성, 목성에 충돌해 소멸]


기의 폭발에 놀라 망원경을 집어 들고 급히 정원에 나와 목성을 바라본 파츄리의 눈에 비친 것은 목성의 대기에 뚫린 시커먼 구멍과, 아직 충돌하지 않은 혜성 조각들이었다. 또다시 폭발이 느껴져 왔다.

“파츄리님! 지금, 지금 엄청난 기의 충격이!”

메이린이 허둥지둥 파츄리를 부르며 달려왔지만 파츄리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레이무와 유카리를 부르고, 배후는 아마도, 그리고...’


“해냈어! 엘렉트라가 제우스의 배에 구멍을 뚫었어!”

헤카티아가 지옥에선 보이지도 않는 하늘을 쳐다보며 외쳤다.

“자, 봐, 제우스! 내가 언제까지 이 지구 안, 지구 위, 지구 근처에 처박혀 있을 줄 알았나! 친척 티탄들을 지하에 처박아 놓은 네 밑에서!”

“친척님들 배신하고 제우스님 편든 건 주인님이잖아요?”

“시끄러워.”

클라운피스를 한 대 콩 때리곤 헤카티아는 다시 외쳤다.

“지옥의 피조물들아, 가라! 가서 하늘을 정복하라!”


사흘 뒤. 음력 15일. 요 이틀 동안 환상향의 인요들은 지옥에서 올라온 요괴들을 퇴치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인간 마을은 주로 방어되었으므로 평화로웠으나 이전 며칠 간 전성기를 누리던 한적한 곳의 소요괴들은 나름의 생존을 위협받았다.

레이무는 눈에 띄게 아팠다. 아주 몸져눕지는 않았지만 강신에서 기력을 많이 썼고 그 후 이틀간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몸살 기운이 진짜 몸살이 된 듯 했다.

그러했던 3월 23일 밤, 인요들은 호숫가에 모여 있었다. 레이무는 몸 상태 때문도 그러했지만 노골적으로 기분 나쁜 표정으로 말했다.

“왜 꼭 온다는 거야, 대체.”

유카리는 평소 같은 능글맞은 웃음을 짓긴 했지만 짜증이 채 감춰지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굳이 오시겠다면야 이쪽에서 막을 순 없지.”

그러던 두 사람을 포함한 인요들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언제부터일까 호수 한 가운데에서 희미하게 누군가의 형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 형상은 조금씩 선명해져, 마침내 약 1의 확률로 와타츠키노 요리히메가 되었다. 요리히메가 호숫가로 걸어 나와 말했다.

“오랜만이군.”

유카리가 이번에는 불쾌감을 감추려 하지도 않은 미소와 함께 답했다.

“작년에는 그쪽한테 신세를 많이 졌지요.”

숨기지 않은 표정을 읽지 못할 그녀가 아닌데다가, 답지도 않은 존댓말에 약간 놀란 요리히메는 서둘러 생각을 추스르고 대답했다.

“아... 그건 개인적으로 사과하지.유카리는 기대도 않던 사과에 맥이 풀렸지만, 여전한 불쾌감에 기대 긴장을 붙잡았다.

“이쪽으로.”

유카리가 말하고 걷기 시작했다. 요리히메와 레이무는 유카리 양 옆에서, 나머지 인요들은 주위에서 따라 걸었다. 어느 정도 질서가 잡히자 요리히메가 이어 말했다.

“그리고 이쪽에서도 그쪽한테 신세를 졌었잖아.”

“아, 그건 걱정 안 하셔도...”

“저기, 부탁인데 존댓말 좀 제발...”

요리히메가 참다못해 말했다. 유카리는 맘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요리히메를 잠깐 흘겨보다 다시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당신 스승한테도 맛보여 드렸으니까 제 구실을 못하진 않았으니.”

요리히메는 쓴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악취미로군.’


홍마관 대도서관. 요리히메는 의자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아무튼 때맞춰 보름이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절차도 밟아야 하고 늦기 전에 오기 힘들었을 거야.”

레이무가 완전히 잠겨버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와서...콜록콜록! 크흠! 와서 해결이 된다면야 옳은 말이지.”

“하기사 더 많이 퇴치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잖냐.”

마리사가 덧붙였다. 요리히메가 대답할 말을 찾는 사이 유카리가 떠별렸다.

“그러니까, 저기 달에 계신 생물체들 중 달토끼가 아닌 쪽들께서는, 이 사태를 해결하네 마네보다는 이 사태가 촉발할 결과에 더 관심이 있으신 거라고. 우선 그분들 생각에 지옥은 본인들 산하니까, 우리가 지옥에 내려가서 난리를 치지 않는지 감시를 하셔야지. 그리고 지옥의 목표는 하늘의 신들이니까, 이게 달의 도시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예의주시해야 하고. 그리고 겸사겸사 환상향 감시까지! 아아, 베네라 처리 정도는 허락해 주시길.”

요리히메는 유카리의 장광설을 잠자코 듣고 있다가 차분히 말했다.

“우리 상부에는 상부 나름의 사정이 있는 거고... 나는 사태를 해결하러 온 거니깐 그렇게 생각해. 뭐 방법이 있어?”

“있긴 있는데...”

파츄리가 말을 흐렸다. 유카리가 말했다.

“뭐, 높으신 분들한테 보고를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인요들이 서로 눈치를 본 후, 파츄리가 다시 말했다.

“지옥에 갔다 온 신들이나 영웅들은 많지만, 지옥에 대해 이기거나 우위를 점한 쪽은 당장 아는 한 하나밖에 없어.”

“하나가 있으니 됐네. 내가 오는 걸 그렇게 싫어할 만하군. 그런데 왜 보고까지?”

요리히메의 말에 파츄리가 말했다.

“...서방에서 온 신이라.”


내내 인간 마을에서만 지낸 탓에 심각한 사태를 그다지 느끼지 못한 소녀와 스미레코는 스즈나안에서 나와 길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찻집 앞에 이르러 스미레코가 소녀에게 물었다.

“술 마실래?”

소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고향 사람들이 술을 좋아했었어.”

스미레코는 웃으며 말했다.

“여기 사람들도 다들 술 좋아해.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지만.”

잠시 후 둘은 찻집에 들어가 앉았다. 주문을 기다리던 중 스미레코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쌍둥이 열셋째 언니는 어떻게 됐어?”

소녀는 질문에 움찔, 하더니 약간 아래를 보고 할 말을 골랐다.

“쌍둥이였으니까... 부모님의 꿈을 위한 생활은 따로 시작했고, 그 이후론 못 봤어. 어떻게 됐을지는 나도 몰라.”

다시 지친 듯한 미소만을 지어보이는 소녀에게 스미레코는 다시 물었다.

“어떤... 마음이야?”

“응?”

소녀는 놀란 듯 가슴에 손을 대며 되물었다.

“어떻게... 됐으면 좋겠냐고.”

소녀는 약간 작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금 떨리는 듯했다.

“마지막 순간에 내 왼눈이 일을 망치고 나서... 정말 마음이 안 좋았어. 화가 났고, 왜 이렇게 된 건지, 이럴 수가 있는지, 또 망연자실했지. 또 슬펐고, 또다시 분노, 상실감, 원망... 쌍둥이 언니를 생각해보면 헤어지기 전까지 우린 항상 똑같았어. 누가 앞서본 적도 없고 뒤쳐서 본 적도 없어. 그러니까...”

소녀가 슬픈 표정으로 말꼬리를 흐리자 스미레코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러나 다음 순간, 소녀는 애틋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언니라도 그 운명을 피했으면 해. 그런 원망, 절망 같은 거 느끼지 말고...”

스미레코는 약간 놀랐다. 그러나 이내 마음이 놓이고, 소녀와 눈을 마주치며 기쁜 미소를 지었다.


“아아, 아나스타시스 말이군. 달의 도시에 알리긴 무슨. 크리스트교의 신은 나도 몇 번 소환해 봤어.”

요리히메는 뜻밖에도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모두 다시 파츄리를 쳐다봤다. 파츄리가 입을 열었다.

“그 부분에 걸리지 않는 건 다행이네. 문제는 신의 권능이야. 신앙이 충분해야 해. 바깥에서 끌어와야 하는데, 크리스트교의 신은 신자가 22억이 넘어. 까딱하다간...”

“지옥을 아예 정복해 버릴까봐 걱정된다는 거로군.”

요리히메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원래 전승이 그러니까.”

파츄리가 덧붙인 후, 유카리가 말했다.

“알고 있겠지만, 환상향에 가장 중요한 건 균형이야. 달의 도시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요리히메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잠시 생각하다가, 불현 듯 무언가를 깨닫고 말했다.

“며칠 전이 춘분이었지. 오늘이 보름이고.”

처음에는 알아듣는 이가 없었지만 다음 순간 유카리와 파츄리가 크게 반응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요리히메의 말에 유카리가 틈새에서 달력을 꺼내려는 와중 파츄리가 말했다.

“수요일. 모레에 죽고 토요일 동안 지옥 정복 후에 부활하는 스케줄이야. 상황과 권능만 빌릴 수 있어.”

파츄리의 말에 유카리가 지적했다.

“춘분 신격은 너무 많아. 더 제한을 가해줘야 상황이 나와.”

“그렇게 따지면 동지의 태양 신격, 금성 신격, 전부 겹쳐. 특징적인 게...”

“태어날 때의 천문.”

요리히메가 타이밍 좋게 떠올리자 셋은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 베들레헴의 별. 우리가 환상들이하기 직전에는 행성의 합 이론이 대세였어. 토성과 목성과 화성.”

“어때, 할 수 있겠어?”

유카리의 물음에 요리히메는 레이무를 가리키며 단호하게 말했다.

“저쪽한테 물어봐야지.”

분위기가 확 가라앉았다. 유카리는 떨떠름하게 레이무를 쳐다봤다. 레이무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계통은 조금 다르더라도 신님이야 있지만... 목성이 피탄 당한 게 문제 아니었어?”

파츄리가 으응, 하고는 말했다.

“확실히 그러네. 특히 이 상징은 왕의 목성이 야훼의 토성과 합쳐지는 게 핵심이니까. 그렇다면 역시 전통적인 혜성밖에 없나...”

레이무는 윽, 하고는 말했다.

“또 이즈노메야? 기분 나쁘다고. 이번엔 어떤 식으로 소환해야 되는데?”

요리히메가 말했다.

“지상의 인간들이 혜성이 돌아온다는 걸 깨닫고 각각의 혜성을 개체로 인식한 건 몇 백 년밖에 안 된 일이야. 그 전에도 돌아온 혜성과 사라진 혜성은 많았지만 인간들은 그랬는지 알지도 못했지. 그 후의 혜성들 중 그 전까지 인간의 인식이 거슬러 올라가는 건 핼리 혜성 하나밖에 없다고 보는데.”

“핼리 혜성은 확실히 별 후보들 중 하나야. 하지만 현재까지도 건재해서 환상들이가 곤란해.”

파츄리가 이렇게 말하자, 유카리는 잠시 생각을 이어가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 할 수 있어.”

“응?”

“핼리 혜성 환상들이. 할 수 있어. 레이무, 가자.”


모두가 나가고 어두운 대도서관. 파츄리만 홀로 등을 켜고 책을 소리내 읽고 있었다.

“‘유다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파츄리는 누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읽기를 멈추었다. 등에 가까이 다가오며 점점 드러난 형체는 다름 아닌 요리히메였다. 파츄리를 무시하진 않았지만 눈을 맞추지도 않았다.

“왜 돌아왔어? 그것도 혼자?”

요리히메는 파츄리의 말엔 대꾸하지 않은 채 도리어 물었다.

“뭘 읽고 있는 거야?”

파츄리는 약간은 도발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크리스트교의 신화. 주문 같은 느낌이라고. ...그것보다 궁금한 게 있어. 당신은 핼리 혜성의 환상들이 방법이 뭔지 알고 있겠지?”

요리히메는 파츄리를 경계하듯 비껴보고는 말했다.

“본 쪽이야.”

파츄리는

“훗, 역시 달의 백성이시네.”

하고는,

“나도 경배할 테니 알려주시오.”

하고 운을 띄우고 요리히메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나 요리히메는 망설였다. 입을 몇 번 떼었으나 그때마다 애꿎은 숨만 약간 들이마시고 다물어 버리다가, 결국 답을 않고 나가버렸다. 파츄리는 속의 아쉬움을 거의 얼굴에 올리지 않고 문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자문자답의 답시를 읊었다.

“별이 그들 앞에 가 거기 멈추다.”


소녀와 스미레코는 여전히 찻집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스미레코는 취기가 약간 오른 듯 했지만 소녀는 왠지 취하지 않았다.

“벌써 3월 후순이네. 올해도 시간 참 빨라.”

스미레코가 벽에 걸린 달력을 보고 말했다.

“3월 후순?”

“아, 응. 며칠 전에 춘분이었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스미레코의 대답에 소녀는 턱을 괴고 무언가 기분 좋은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말했다.

“그럼 고향에선 곧 축제를 하겠네.”

“축제?”

“누가 부활한 걸 기념하는 축제야.”

“아아, 크리스트교 얘기구나. 부활절.”

“응, 응. 한 달쯤 남았나보다.”

“어, 한 달?”

스미레코는 약간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웃으며 말했다.

“뭐, 그래. 그건 그렇고, 유물론 어쩌구 하면서 내 초능력은 안 믿고, 크리스트교는 믿는 게 뭐야!”

소녀는 능청스럽게 받아쳤다.

“그건 어쩔 수 없어. 초능력은 보여주면 유물론에 입각해서 검증 후에 믿어줄게.”

“보지 않고 믿는 자 행복함이라.”

스미레코가 시구처럼 대꾸하자 소녀도 받아쳤다.

“곧 로도스 섬이니 뛰어보아라.”

스미레코는 킥킥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소녀도 옅은 미소와 함께 술을 한 모금 삼켰다.


하쿠레이 신사 내부. 레이무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의식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리하는 거 아냐?”

천장으로부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든 레이무에게 보인 것은 미마였다.

“그렇게까지 무리하면 당분간 누워서만 지내야 할 거라구.”

미마의 말에 레이무는 차분히 대꾸했다.

“안 한다 해도 누워있어야 하잖아?”

미마가 질렸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렇게까지 틈새 요괴에게 협력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네.”

“환상향을 온존하는 건 내 일이기도 하고, ...또 내가 그걸 바라니까.”

“바라는 대로 될 거야.”

“그걸 어떻게 아는데?”

“나는 지옥 출신이야. 그새 잊은 거야?”

그리곤 미마는 레이무 앞으로 내려와 두 손으로 레이무의 얼굴을 감싸 어루만졌다.

“얼굴이 반쪽이 됐네. 환상향 보존을 위해 스펠카드 룰을 만들었건만 문제는 여전히 일어나는구나. 그럴 바엔 옛날이 낫지. 내가 그래서 탄막 놀이를 안 해.”

레이무는 미마의 손을 잡아 천천히, 하지만 단호하게 볼에서 떼어냈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서 문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내 일이야.”

“뭐?”

미마의 물음에 레이무는 그녀를 돌아보며 다시 말했다.

“내가 해야할 일이야.”

미마는 누가 알겠냐는 듯 쓴웃음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레이무는 다시 앞을 보고, 인요들이 바깥에 기다리고 있는 신사의 문을 열었다.


[기원전 1400년 경, 핼리 혜성, 궤도 이탈 후 현 궤도에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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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스타시스]


나흘 뒤. 지옥 사태가 종결된 일요일 초저녁. 소녀는 언덕에서 막 해가 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을 보고 있었다. 금성도 태양 뒤에 있을 터였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스미레코가 돌아오자 소녀는 뒤를 돌아보더니 먼저 말을 꺼냈다. 처음이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나서, 한 번도 별들을 올려다 본 적이 없었어. 볼 수도 없었지만.”

소녀는 고개를 내리고 마을의 거리를 보았다. 스미레코도 따라 시선을 돌리고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쳐다보기도 싫었거든. 저 알량한 불빛에 대한 부모님의 목표 때문에 내 인생이 소비됐고, 또 온갖 안 좋은 감정들이 응축된 기억이 있었던 게 싫었어.”

소녀는 말을 멈추고, 하늘을 다시 올려 보았다. 별들이 하나 둘씩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 이렇게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알량한 건 아니었던 것 같아. 멀리서 빛나는 별들은 충분히 낭만적이잖아. 저건 부모님의 목표였지만,”

소녀는 다시 뒤를 돌아 스미레코를 돌아보았다.

“또 내 꿈이었어.”

소녀는 밝게, 또 활짝 웃음 지었다. 그리고 스미레코에게 말했다.

“고마워.”

붉은 빛이 맴도는 하늘을 뒤로 한 소녀를 바라보며, 스미레코는 생각했다. 지금에야말로, 소녀에게, 소녀의 이름을. 잠시 생각하던 스미레코는, 그러나 이내 질문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소녀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홍마관 대도서관. 레이무를 제외한 인요들과 요리히메가 모여 있었다. 레이무는 완전히 앓아누워 신사에 있었다. 모두들 심각한 표정으로 누구 하나 입을 먼저 열려하지 않았다. 그러다 드디어 파츄리가 입을 열었다.

“어제 지옥 정복이 이뤄졌고 오늘 크리스트교의 신이 부활해서 지옥 사태가 끝났어.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마리사가 대답했다.

“베네라를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하지만...”

“이즈노메를 불러내려면 레이무가 있어야 한다는 거지.”

파츄리가 말했다. 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유카리님, 어떻게 하실 건가요?”

란의 속삭임에 유카리는 평소답지 않게 고민하는 티를 냈다. 힐끔 쳐다본 요리히메는 다른 데를 보면서 딴 생각은 하는 냥 가만히 있었다. 가볍게 한숨을 쉰 유카리는 일어나 모두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신사로 가자.”

“하쿠레이 신사로? 가서 어쩌겠다는 거냐?”

“일단 가 보자고.”

유카리가 그렇게 나가버리자, 다른 인요들도 따라 나섰다. 모두가 나가고 마지막으로 천천히 걸어 나가던 파츄리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는 요리히메에게 물었다.

“뭐하고 있는 거야?”

요리히메는 파츄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피하기만 했다. 파츄리는 그런 요리히메를 노려보다가,

“좋을 대로 해. 불은 끄고 나오고.”

한 후 인요들을 따라 나갔다. 요리히메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생각에 잠겼다.


하쿠레이 신사 경내. 인요들은 강신의 준비를 모두 해두고 모여 있었다. 란이 유카리에게 물었다.

“유카리님. 이제... 어떻게 하나요?”

“이즈노메를 불러내야지.”

“하지만 누가요?”

유카리는 입을 꾹 다문 채 말이 없었다. 마리사도 란을 거들었다.

“그러니까. 누가?”

그때였다. 신사의 문이 드르륵 열렸다.

“내가 해야지.”

레이무였다. 순간 인요들 사이에서 반가움이 퍼졌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대나무 막대를 잡고 몸을 의지한 레이무의 상태는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아니, 넌 안 돼. 환상향 관리를 포기할 셈이야?”

“그럼 누가 하는데...”

레이무의 몸이 단을 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유카리와 마리사가 서둘러 달려가 부축해 신사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눕히고 나왔다.

“...아무튼 레이무는 안 돼.”

“유카리님, 하지만 그럼 정말 누가 합니까? 설마...”

“내가 하지.”

신사 입구로부터였다. 모두가 그쪽을 돌아보자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요리히메였다. 란은 약간 놀랐고, 다른 인요들이 안도의 한숨을 몰래 내쉬는 것을 보곤 한 번 더 놀랐다.

“너도 어쩔 수 없는 컴퓨터구나, 란.”

유카리는 란에게 속삭인 후 요리히메에게로 다가가 능글맞게 말했다.

“달의 백성께서 우리 좋을 일을 하시다니 의외네.”

“달의 백성들 간에도 너희가 멸망하길 바라는 백성이 있는가 하면 바라지 않는 백성들도 있어. 그리고...”

요리히메는 말을 골랐다. 그리고 말했다.

“난 바라지 않으니까.”

유카리는 풋, 하고 웃었다. 그리고 요리히메를 잠시 바라보다, 길에서 살짝 비켜 경내로 안내했다.

요리히메는 준비된 제단 앞에 섰다. 그리고 잠시 마음을 추스린 후, 시작했다.

“황천에서 돌아온 이자나기께선

지닌 것을 버리고 몸을 씻으니

버려진 것들에선 십이 위 신이

몸에서는 십사 위가 태어났도다.

『이즈노메』여! 그 옛날 지상을 쓸어내던 그 빗자루로 이 하늘을 수놓으시오!”


[기원전 2000년 경, 초대형 혜성 원형 엔케,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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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따르면 1577년의 대혜성은 낮에도 보이고 밤에도 그림자가 질 정도로 밝았다고 한다. 그만큼이나 밝게 환상향을 비추는 원형 엔케 또한 에이린의 그림자를 영원정 지붕에 드리웠다.

“스승님! 그 위에서 뭐하세요?”

지붕 위의 자신을 올려다보는 레이센에게 에이린은 말했다.

“몇 천 년 만의 장관이란다. 너도 볼 가치가 있지. 아, 테위. 올라와서 봐봐. 사천 년 만에 처음이야.”

죽림에서 막 나온 테위는 하늘을 힐끔 올려다보더니 손을 휘휘 내저었다.

“됐어, 됐어. 당신들한테는 추억인지 몰라도 지상에서는 아주 질려버렸다구.”

“테위! 스승님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레이센, 그만하렴. 너도 올라와서 보려무나.”

유유히 다시 사라지는 테위를 뒤로 한 채 올라온 레이센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혜성은 지평선에서 머리끝까지 뻗어있었다. 레이센은 뒤로 넘어갈 듯 고개를 꺾으며 나지막히 탄성을 질렀다.


그렇게 인요들, 요정들, 인간들, 소녀와 스미레코까지, 환상향의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 본 밤이 지나갔다. 그리고 해가 뜨고 아침. 소녀와 스미레코는 향림당에 있었다.

“이거랑 그거랑 같은 건가?”

“맞긴 한데 그건 엄청 오래된 거야.”

“유카리도 그렇게 말하더군.”

땡그랑. 이야기하던 린노스케와 스미레코는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태를 파악한 린노스케가 그쪽으로 가서 지동의를 조심스레 들고 나왔다.

“지동의라고, 지진을 알아내는 도구야. 하지만 지진은 못 느꼈는데...”

“어느 쪽이야?”

소녀가 물었다. 린노스케는 지동의 주위를 둘러보더니 대답했다.

“서북쪽.”

그때, 덜컹하고 문이 열렸다.

“여기 있었구나.”

유카리였다.


산 중턱의 서쪽으로 트인 공터. 레이무는 없었지만 인요들은 모여 조촐한 연회를 열었다. 아침에 합류한 스미레코와 소녀는 트인 쪽의 벼랑에 걸터앉아 저녁을 맞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느껴지는 인기척에 스미레코가 뒤를 돌아보니 파츄리와 유카리였다.

“이럴 거면 진작 찾지.”

파츄리가 소녀의 좀 옆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으니까.”

유카리는 그렇게 말하고 구석의 요리히메를 발견했다.

“신님의 화살 하나 내리꽂으니.”

요리히메는 복잡한 표정으로 유카리를 바라보다가, 결국 고개를 다시 돌려 버렸다. 유카리는 가볍게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돌아서서 소녀와 파츄리 사이에 걸터앉으며 스스로 시구를 이었다.

“재앙에도 민담과 살아남았네.”

파츄리가 이어서 운을 떼었다.

“해가 멈춰 하루를 머물렀으니

이런 날은 전에도 후에도 없네.”

소녀는 석양을 바라보며 나직이, 하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남위 십삼도하고 동경 삼백십

이곳은 바다 속과 비슷하외다.”

스미레코는 시구를 떠올렸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파츄리도 잠시 기다렸다가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시를 읊었다.

그렇게 넷이 생각과 작시에 열중하는 동안 시간은 훌쩍 흘렀다. 문득 지평선을 바라본 스미레코는 해가 이미 진 것을 알아차렸다. 날은 아직 잔광에 밝았다. 스미레코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몇 시야?”

유카리가 틈새에서 시계를 꺼내 보고 대답했다.

“아홉시.”

날은 아직 밝았다.

소녀가 두둥실 떠올랐다. 스미레코는 소녀의 손을 급히 붙잡았다. 계속 올라가려는 소녀를 계속 붙잡으려 팔을 뻗은 스미레코의 손을 잡고, 소녀는 스미레코와 마주 보았다. 그리고 애틋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점점 희미해지던 소녀는, 마지막 순간 손을 놓고 미소와 함께 허공으로 사라졌다. 스미레코는 손을 내민 채로 망연히 소녀가 사라진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다만 순간을 위해 살아왔건만

꿈을 잃고 외로이 스러졌구나.

다시 살아 즐거이 어울렸지만

또한 순간만 더해 돌아가는가.

안녕,

“가엾은 나의 베네라...”

마지막 생각은, 가슴에서 입으로 올라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 되어 조그맣게 흘러나왔다.

“알고 있었구나?”

갑작스런 유카리의 질문에 스미레코는 무심코 말을 했음을 알아챘다. 그리고 애써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그럼. 그렇지 않다면 오컬트에 관심도 없는 사람을 사귈 리가 없잖아?”

그러나 감정을 채 숨기지 못한 채 다시 서쪽을 바라보는 스미레코를, 유카리는 바라보았다. 그리고 보이지 않게 다정한 미소를 짓고, 역시 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


그날 밤은 환상향 전역이 빛의 홍수에 잠긴 듯 했다. 실내에서도 신문을 읽을 수 있었고 축구를 하기에도 충분했다. 그러한 밤, 인요들은 호숫가에 모여 있었다.

“벌써 가려고? 스승이라도 보고 가는 줄 알았는데.”

유카리가 요리히메에게 말했다.

“원래는 다음 보름에나 가려고 했는데 굳이 부르네. 언니까지 동원해서.”

“그게 정상이지. 애초에 당신을 여기 혼자 보낸 거 자체가 의심이 너무 없는 거야. 반역자인 당신 스승이 여기 있는데.”

“그쪽 의심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유카리는 입을 삐죽이며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의심을 흩뿌리며 살고 있으니.”

요리히메는 잠깐 반응이 없다가, 이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허무한 쓴웃음과 함께 말했다.

“의심하지 않고는 남지 못하리, 인가.”

유카리와 요리히메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요리히메가 내려왔을 때와 피차 별 차이는 없었다.

“그래... 시간이 됐네. 가볼게.”

요리히메는 호수 가운데로 나아갔다. 얼마 안 있어 요리히메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약 1의 확률로 달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아마노카가세오노미코토의 기운은 가셨다. 그리고 레이무도 씻은 듯이 나았다. 하쿠레이 신사에 들어선, 스미레코를 포함한 인요들은 마당을 쓸고 있는 레이무를 보고 놀랐던 것이다.

“그럼 이제 끝난 거지?”

레이무가 쓸기를 마무리하며 말했다.

“그럴 거야.”

파츄리의 말에 유카리가 검지를 세워 까딱까딱 해보인 뒤 말했다.

“할 일이 남았어.”


인요들은 유카리를 따라 마법의 숲으로 갔다. 베네라가 있는 곳이었다.

“돌려놔줘야지.”

이렇게 말하고 유카리는 경계를 열었다. 그러나 넣지 않고 미적거리더니, 경계를 다시 닫아버렸다.

“렌즈 뚜껑이 없는 게 좀 신경 쓰이는데.”

“왜?”

레이무의 물음에 유카리는 찬찬히 대답했다.

“빼주는 정도는 해줄 수 있잖니.”

레이무는 별 일이라는 듯 유카리를 바라보았다.

“아무튼 있는 지나 잠깐 찾아봐도...”

“그럴 필요 없어.”

스미레코의 말이었다. 모두가 그쪽을 돌아봤을 때, 스미레코는 렌즈 뚜껑을 들어보였다. 유카리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보다도 먼저 봤나보네. 알고 있던 이유가 있었구나?”

“보자마자 빼줘야겠다고 생각했어. 만날 줄은 몰랐지만.”

유카리는 슬쩍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자, 이제 돌려놓자.”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줘.”

스미레코는 그렇게 말하고 베네라의 곁으로 다가갔다. 렌즈 뚜껑을 분석기 옆의 땅에 조심스레 내려놓은 스미레코는 베네라의 선체에 손을 얹었다. 스미레코는 지난 일주일을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태양과 혜성이 떠있는 하늘을 올려 보았다. 금성도 거기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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