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뇽. 언갤에는 처음 와보는 뉴비야. 사실 언텔도 사흘 전에 깸 ㅋ
이 소설은 불살엔딩 다음에 리셋해서 몰살루트를 시작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글이야. 일부 설정 (LV 상승량) 중 게임과 다른 부분이 있고, 특히 차라 설정은 거의 AU급으로 달라. 여기 차라는 좀 욱하는 기질이 있지만 정상인이라는 설정.
이 소설은 그런 차라가 살인마로 각성하게 되는 과정을 다뤘어. 첨엔 가볍게 쓰려고 했는데 다 쓰니 40kb가 넘네 ㅋㅋ 너무 길어서 업로드가 안되길래 상하로 짤랐음.
고어적인 묘사도 있으니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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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녀석은 첫인상부터 어딘가 미덥지 못했다.
길게 찢어진 실눈. 만사 태평해 보이는 얼굴 표정. 도저히 눈 뜨고 봐 줄 수 없을 정도로 촌스러운 파란색 줄무늬 티셔츠. 물론 나도 줄무늬 옷을 입고 있긴 하지만, 그건 아이는 줄무늬를 입어야 한다는 지하세계의 빌어먹을 요상한 룰에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녀석처럼 지상에서부터 그런 옷을 입고 다니진 않았다. 게다가 암만 강요로 입는대도 파란색이 뭐냐, 파란색이? 최소한 초록색은 되어야지.
... 외모만으로 평가하는 건 좀 그러니 넘긴다 치더라도, 행동거지라는 측면에서도 녀석은 영 똑부러지질 못했다. 이를테면 지금같은 경우다. 암만 꽃침대가 편하다고 해도, 정체모를 곳에 떨어졌는데 편하게 늘어져서 잠이나 자는 게 말이 되나? 빨리 일어나서 출구나 식량 같은 걸 찾아봐야 할 거 아냐? 뭐 출구는 바로 눈앞에 있긴 하지만.
"야, 일어나."
녀석의 얼굴을 발로 툭툭 찼다. 물론 내 발은 너무나도 쉽게 녀석을 통과해 허공을 갈랐지만.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내가 유령이라는게 새삼 실감난다.
"......?"
녀석이 눈을 비비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소리가 들려온 곳을 찾고 있는 듯 한데, 영 어리버리한 움직임에 괜시리 또 기분이 나빠졌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잘못 들은 거 아냐, 멍청아."
"...!"
두근, 하고 겁먹은 심장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녀석이 아까보다 훨씬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도중에 내 쪽이 있는 방향 역시 쳐다보았지만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내가 보이지 않는 걸까?
"누, 누구...?"
연약한 새끼고양이 같은 목소리군.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답했다.
"옛날에 이 근처에서 뒈진 인간이다. 방금 전 네가 떨어졌을 때 어째선지 잠에서 깨어났고, 지금은 니 왼쪽 위 1미터 상공을 둥둥 떠다니고 있지. 그렇게 손 휘휘 저어도 난 안 잡혀. 아무래도 제대로 된 실체가 없는 모양이니까."
"...그래..."
여전히 흐리멍텅~한 표정. 제대로 듣고는 있는 건가?
"여긴 어디야?"
"괴물들이 사는 지하세계."
일부러 에봇 산까지 올라온 녀석이니까 이 정도 말하면 이해하겠지... 싶었는데, 녀석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다. 대체 여기는 왜 온거야?
어째서인지 두통이 찾아와 잠시 머리를 짚었다. 유령인데!
"......나머지는 가면서 설명하지. 일단 저기 출구로 나가."
"아, 응."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굼벵이같이 느릿한 태도였다.
녀석이 움직이자, 내 몸도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 탄 것처럼 자동으로 앞으로 움직였다. 이건 나름대로 꽤 재미있다. 조금 멀미가 날 것 같은 기분이긴 해도, 익숙해지면 괜찮아지겠지.
"...그러고 보니."
녀석이 발걸음을 멈췄다.
"유령 씨는 이름이 뭐야?"
유령 씨라니, 작명 센스 하고는... 잠시 심술궂은 마음이 차올라 알려주지 말까 하는 충동이 일었지만, 그랬다간 영원히 유령 씨라고 불릴 것 같아서 그만뒀다. 냅스타블룩 같은 녀석이랑 동격이 된다니 소름끼쳐.
"차라(Chara). 차라라고 불러."
"그렇구나."
뭐가 그리 좋은지 녀석은 연신 고개를 끄덕여댔다. 그만 꾸물대고 앞으로 움직이기나 하라고 타박하려 할 때, 녀석이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말했다. 여전히 실눈이긴 했지만, 처음으로 밝은 미소를 짓고서.
"내 이름은 프리스크(Frisk). 잘 부탁해."
...프리스크라.
옷차림부터 성격까지 뭐 하나 맘에 드는 게 없는 녀석이었지만, 이름만큼은 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0.
단언컨대, 이 녀석은 천하에 둘도 없는 둔탱이다.
나는 설마하니 프로깃한테 빈사 상태에 몰리는 녀석이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괴물들이 쏘아대는 탄막에 익숙치 않으면 몇 번 정도는 맞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걸 겪고도 네다섯 번 연속으로 처맞는다니, 상상이 되냔 말이다. 대체 얼마나 운동치인 거야?
"...아파..."
"그러게 잘 좀 피하지."
"으... 이게 다 차라 때문이야."
"또 왜 내 탓인데?!"
녀석은 토리엘의 말을 무시하고 방을 뛰쳐나온 게 못내 맘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난 토리엘을 잘 안다. 저 여자는 은근 건망증 환자에 덜렁이라 가만 냅두면 여기에 방치시켰다는 사실조차 까먹을 거라고.
그래서 이 주변에 딱히 위협적인 괴물들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푹 쉬는 편이 나을 거라는 생각에서 한 말이었는데... 설마 프로깃한테 발릴 줄이야!
"그치만, 차라가..."
"그치만이고 저치만이고! 난 니가 평균적인 수준의 반사신경을 가졌다는 전제에서 한 조언이었다고! 그렇게 쏘는 대로 처맞을거면 그냥 돌아가든가!"
실제로 프리스크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스웨터는 완전히 너덜너덜해져서 걸레짝에, 마법 탄환에 명중당한 상처에선 피가 배어나왔다. 끽해봤자 열두 살 정도 되어보이는 꼬마가 언제 이런 고통을 겪어봤을까?
"아오, 그래. 내 잘못이라고 해줄게. 됐냐? 방에 돌아가서 사탕이라도 까먹으면서 기다리자고."
"응..."
결국 우리는 발걸음을 돌려 오던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근데 너도 참 답답하다. 아니 그렇게 처맞으면서 반격할 생각은 못하냐? 아까 그 이상한 꽃 말대로 죽거나 죽이거나- 할 필요까진 없더라도, 선빵 맞았는데 가만~히 멍때리는건 대체 뭐야?"
"......"
프리스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눈빛으로 녀석이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래, 바로 이거야말로 녀석의 가장 이상한 점이었다. 녀석은 적이 아무리 공격해와도 반격하지 않았다. 피를 철철 흘리며, 혹은 가쁜 호흡을 몰아쉬면서도 늘 괴물들에게 상냥하게 대했다. 마치 자기방어 본능이라는 게 아예 없는 것처럼.
"그야 걔들이 악의가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잖아."
"그건 사실이긴 하지만... 니 몰골이나 보고서 그런 말을 해."
물론 괴물들이 딱히 상처입히려는 의도로 마법 탄환을 주고받는 것은 아니다. 녀석들에겐 이게 일상적인 대화법일 뿐. 물리적인 실체가 없기에 육체적 고통이라는 개념에도 공감하지 못해, 눈앞에서 피를 흘려대도 덤덤하다. 그저 만나서 반갑다며 의래적으로 탄환을 쏘는 게 인간들의 육체에는 푹푹 박힐 뿐이다.
그러니, 적대할 필요가 없다는 프리스크의 주장도 틀리진 않다. 틀리지 않지만...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해도, 실제로 실행하는 건 완전히 별개 문제지. 보통 온몸이 걸레짝이 되면서까지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다고."
"......"
"아니면 뭐야. 너는 감정이란 게 아예 없는 거야?"
"...차라, 예의없어."
프리스크는 대답을 회피했다. 진짜 사사껀껀 사람의 성질을 긁는 꼬맹이다...
나는 얼굴을 찌푸린 채 프리스크를 바라봤지만, 이내 생각을 그만두고 고개를 돌렸다. 둔하고 약한 주제에 고집은 또 더럽게 쎄다. 알아서 하라지... 내가 아픈것도 아니고.
"앗...!"
녀석이 발걸음을 멈췄다. 놀란 숨소리가 들려왔다.
"또 뭐가...?!"
심드렁하게 앞을 쳐다본 나도 이내 경악했다. 눈 앞에 프로깃과 윔선 콤비가 떡하니 길을 막고 서 있었다.
척 봐도, 이건 안 좋다고 생각했다. 프로깃 한 마리에도 고전하는 기적의 운동치인 이 녀석이 둘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지금은 온몸이 너덜너덜해져 거의 빈사 상태. 한 대라도 더 맞았다간 아마...
나는 재빨리 프리스크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예상 외에 사태에 심히 당황한 듯,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쯧, 하고 혀를 차며 황급히 속삭였다.
"야, 상황이 안좋으니까 지금은 빨리 튀는게..."
그러나 그렇게 말한 순간.
너무 늦었던 걸까. 내가 말하는 것보다도 빨리 프로깃은 겨자씨 탄환을 쏘아냈다. 하얀색 마법 가루들이 방 안에 가득 흩뿌려지고...
안 그래도 상처로 온몸이 둔해져 있던 프리스크는 그대로 전신에 탄환을 격중당해 쓰러졌다.
그렇게 너무나도 순식간에, 우리들의 짧은 모험이 끝났다...
1.
"...어라?"
나와 프리스크는 동시에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니 풍경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바위들이 늘어선 퍼즐 구간에 있었는데, 어느새 방 앞까지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게 대체 무슨 현상인가 싶어 프리스크를 쳐다보니 상처투성이이었던 몸도 멀쩡하게 바뀌어 있었다.
"너 무슨 짓 한거야?"
"나, 나도 모르겠는데..."
프리스크가 당황하며 말했다. 연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분명, 쓰러지기 전에 '돌아가고 싶다'라고 속으로 생각하긴 했는데..."
녀석은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하세계에 떨어지며 무언가 새로운 능력에 각성하기라도 한 건가? 이곳은 본질이 마법으로 가득 찬 세계라 어쩌면 그런 일도 가능할 수 있겠지만... 나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나저나 '돌아가고 싶다' 라... 무슨 시간을 되돌리는 힘이라도 얻었나? 몸이 멀쩡하게 변한 걸 보면 그것도 맞는 것 같긴 한데... 뭔가 난데없이 각성한 능력치고는 너무 사기가 아닌가 싶다. 뭐 프리스크의 절망적인 신체능력을 생각하면 이 정도가 딱 적절한 밸런스일 수도 있지만.
"뭐 잘 됐네. 안에 들어가서 토리엘이나 기다리자."
"...응."
프리스크가 한쪽 손을 가슴에 댄 채 꼼지락대며 말했다. 나는 방으로 향하는 녀석의 뒷통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남 배려하는 것도 좋지만 니 몸부터 좀 아껴. 니가 뒈져버리면 기껏 깨어난 나는 뭐가 되는데?"
그 말대로다. 내가 살아있었다면 녀석 따위 죽든 말든 아무런 상관 없었겠지만, 현재 나는 녀석에게 빙의? 비슷한 것을 하고 있는 모양이라 녀석이 죽어버리면 좀 곤란해진다. 기껏 다시 세상을 보게 됐는데 3분만에 도로아미타불이라니, 그런 맥빠지는 전개는 거부하고 싶다.
"알았어, 몰랐어?"
"...아, 응."
멍하니 손을 꼼지락거리다 화들짝 놀라 대답하는 프리스크. 그러더니 녀석은 얼굴을 붉힌 채 그대로 방 안으로 뛰어갔다.
저새낀 또 왜 저래... 를 되뇌이며 눈을 가늘게 뜬 나는, 이내 눈치챘다. 어째서 아까부터 대답에 얼이 빠져 있었는지. 그리고 아까부터 왜 손을 움찔대고 있었는지.
프리스크는 아까 관통당한 심장 주위의 가슴께를 - 마치 그곳에 격통이 남아있기라도 한 양 - 무의식적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1.
"그렇게 나가고 싶다면, 아가야... 네 강함을 증명해보렴. 바깥 세상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토리엘이 그렇게 말하며 마법 주문을 영창했다. 그녀의 양손에서 작열하는 불덩이가 피어올랐다.
나는 흘끗 프리스크를 보았다.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녀석은 그저 담담한 표정이었다. 어쩐지 조금 슬픈 기색은 느껴졌지만.
나는 뒤에서 속삭였다.
"어쩔래? 봐줄 생각은 전혀 없어보이는데. 마침 무기는 있으니 그걸로 공격해."
아까 장난감 칼을 주워둔 게 다행이었다. 장난감답게 날은 예리하지 않지만, 물리적 실체가 있는 것은 마법 생물을 벨 때 도움이 되니까.
엄마같이 대해주던 토리엘을 공격하라고 말하는 건 나로서도 조금 가슴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다. 저쪽의 의지도 보통내기가 아니다. 극단적인 결과까지 갈 필요는 없더라도, 여기서는 그녀의 말대로 바깥 세상에서도 꿋꿋이 살아나갈 힘이 있다는 걸 증명할 필요가...
"......"
"프리스크?"
대답이 없었다. 무뚝뚝하기만 한 뒷모습. 갑자기 오싹한 한기가 내 등을 타고 흘렀다.
"야... 너 설마 이것도 비폭력적으로 해결할 생각은 아니지? 설마? 설마?"
"......"
"야, 진짜 아니지? 토리엘은 아까 만난 개구리나 눈깔괴물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거든? 게다가 그녀석들하고는 달리 진심으로 널 공격하려 하고 있고!"
"......"
"물론... 죽이려 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저 화염은 실수로 스치기만 해도 죽을 수 있어! 여기선 얌전히 내 조언대로..."
"......"
덜그렁.
프리스크가, 칼을 버렸다.
...이런 미친 자식!
"......"
토리엘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 녀석은 미쳤다.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 제 정신이 아니고서야 저런 행동을 할 리가.
프리스크는, 놀랍게도 칼을 버린 뒤 양손을 활짝 펼쳤다. 마치 자신이 안아주겠다는 것처럼. 작렬하는 화염구가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와중에도, 그렇게 계속 팔을 펼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화염에 격중당한 녀석의 전신은 그대로 불타올랐다.
"으, 아아악...!"
순식간에 전신이 불로 둘러싸이게 된 프리스크가 비명을 질렀다.
예전에 누가 말했더라?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죽음 중에서 가장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은 소사(燒死)라고. 그 말대로, 프리스크의 몸은 온갖 기괴한 뒤틀림을 보이며 그대로 움츠러들고, 펴지고, 바닥을 굴렀다. 끔찍한 괴성이 복도를 통해 메아리쳤다.
"아, 아가...!"
토리엘이 당황해 소리친다. 그녀도 설마 이런 전개를 예상하진 못했겠지.
불타오른다. 내가 악평했던 그녀의 줄무늬 티셔츠도, 떨어질 때 난 다리 상처에 붙인 낡은 반창고도, 푸석푸석한 단발 갈색 머리도, 모든 것이 불타오른다. 한때 프리스크였던 것은 그렇게 점점 타오르고, 타올라서 이내 형체도 없는 검은 무언가로 변해간다.
이미 축 늘어진 프리스크. 그런 녀석을 감싸안은 채 울부짖으며 어떻게든 불을 끄려고 노력하는 토리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나.
"...대체 왜?"
나는 그 광경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2.
"그렇게 나가고 싶다면, 아가야... 네 강함을 증명해보렴. 바깥 세상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토리엘이 다시금 마법 주문을 영창했다.
아까와 완전히 똑같은 대사. 역시 그녀는 이전 분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녀로서는 다행인 일이지. 상대를 자신이 한번 태워죽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 연약한 그녀의 정신은 견디지 못할 테니까.
나는 프리스크를 보았다. 오히려 신경쓰이는 것은 이쪽이었다. 분명 아까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죽었을 텐데, 토리엘 앞에 선 녀석은 아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자세히 보면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프리스크."
"......"
"그러지 마. 프리스크. 하지 마. 난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요만큼도 모르겠지만. 하지 마."
나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반복해서 경고했다. 이쯤 말하면 알아듣는 기색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프리스크는 내 말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건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호소했다. 아무리 나라도... 그런 걸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넌 죽는 게 좋냐? 혹시 고통을 겪으면서 희열을 느끼는 체질? 그게 아니면 내 말대로 해! 물론 토리엘도 아프겠지. 잘못해서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러면 그때야말로 시간을 되돌리면 되잖아?"
"......"
"대체 뭐가 문젠데? 토리엘은 아까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해! 널 다시 죽이는 건 일도 아니라고! 대체 뭐가 문젠데 자꾸 칼을 버려!? 시발 무기를 들고 나섰으면 휘둘러라도 봐야 할거 아냐!"
나는 거의 절규하듯이 외쳤다. 하지만 프리스크는 전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
녀석은 - 정말 믿을 수 없게도 - 다시금 칼을 떨궜다.
그리고 양 팔을 활짝 펼쳤다.
아까 그 포즈 그대로.
"...세상에..."
이해할 수 없다. 정말로.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왜 같은 짓을 반복하지? 대체 왜? 어째서? 왜 굳이 죽으려고 작정한 듯이 구는 거야?
그런 짓까지 당해놓고, 대체...
"읏...!"
화염이 녀석의 팔꿈치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행히 아까처럼 순식간에 전신이 불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저것도 큰 고통인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실제로 현재 녀석의 주변을 위협적으로 돌고 있는 화염덩이들은 토리엘이 조금만 움직임을 실수하면 언제든지 녀석을 태워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프리스크 역시 겁먹었을 것이다. 실제로 녀석의 손끝이 아까부터 보다 격렬하게 떨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산 채로 불타죽었으면서 그게 트라우마로 남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스크는 그 모두를 받아들이겠다는 듯 눈을 감았다.
"공격해... 공격하란 말야!"
토리엘이 절규하며 화염덩이를 더욱 세차게 회전시켰다. 일부가 프리스크의 살갗을 스치고 지나가고, 그때마다 녀석은 비명을 질렀다. 엄청난 열기에 하얬던 녀석의 피부가 몇 초만에 갈색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녀석은 그저 꿋꿋이, 그 자리에 서서, 양팔을 활짝 벌렸다. 아직 괜찮다는 듯. 이 정도로 굴하지 않겠다는 듯.
결국 먼저 포기한 쪽은, 놀랍게도 토리엘이었다.
".......하하."
토리엘은 허탈하게 웃으며 그 자리에 무너져내렸다.
폭풍처럼 복도를 메우던 화염의 속도가 줄어들더니, 이내 하나둘씩 꺼져갔다. 토리엘이 전의를 상실한 것이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더니 그대로 프리스크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래, 이해해. 이곳에 갇혀 있으면 불행하겠지... 너무 좁아서 자라기도 좋지 않을테고..."
그녀가 독백하듯이 말했다.
"나의 기대, 나의 공포, 나의 고독... 아가야, 너를 위해, 잠시 접어두마."
프리스크를 안는 그녀의 팔이 떨려왔다.
...설마 했는데, 녀석은 정말로 이루어냈다. 자기 자신을 제외한 누구도 상처입히지 않은 채... 폐허를 빠져나가는 데 성공한 것이다. 비록 그걸 이루기 위해 끔찍한 경험을 해야 했다지만.
설마, 녀석은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나아갈 생각인 걸까? 악의 없는 괴물들의 공격에 몇 번이고 죽어나가면서도, 계속 그들을 향해 손을 내밀어가며?
"...아니, 그게 될 리가 없잖아."
나는 서로를 따뜻하게 껴안는 둘을 바라보며 툭 내뱉었다. 이게 녀석의 방식인 건 알았다. 요는 진심으로 다가가면 통한다는 거겠지. 실제로 녀석을 공격한 괴물들 중에 딱히 녀석을 해치려는 의도를 가진 괴물은 없었다. 대화를 시도하면 충분히 마음이 통할 수 있었다는 거다.
하지만, 그렇다면.
"만약 정말로... 너한테 악의를 가진 자가 나타나면 어떻게 할 건데?"
대답은 없었다.
13.
원하지 않는 바램은 늘 현실이 된다.
"자, 인간! 바로 지금, 이곳에서 끝장을 보자! 괴물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 주마!"
강철 갑옷을 입은 기사는 그렇게 호기롭게 외치며 10미터 아래 바닥을 향해 점프했다. 대체 어떻게 거기까지 올라갔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던 과묵 컨셉은 어따 팔아먹었는지 여러가지로 태클걸 부분이 많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야, 어떻게 할 거야?"
나는 흘깃 녀석을 쳐다보며 물었다.
폐허에서 빠져나온 뒤로도 꽤나 시간이 흘렀다. 시계가 없어서 정확히 얘기는 못하지만, 체감상 일주일은 흘렀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 "걸린" 시간은 하루 남짓밖에 되지 않지만.
그동안 녀석은 죽고, 죽고, 죽고, 또 죽었다. 어떨 때는 극한의 찬 바람에 꽁꽁 얼어붙어서, 어떨 때는 근위병의 거대한 도끼에 찍혀서, 어떨 때는 무언가를 주렁주렁 매단 사슴의 뿔에 박혀서. 녀석과 만난 괴물들 중에서 녀석을 해치지 않은 건 그 이상한 해골뼈다귀 형제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만나는 모두에게 상냥하게 대했다. 찬 바람을 견디며 썰렁개그에 웃어주었고, 거대한 도끼에 찍히며 근위병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줬으며, 날카로운 뿔에 박힌 채 그 끝에 걸린 장식들을 떼주었다. 몇 번이고 죽음이 반복되자 둔했던 녀석의 움직임도 조금씩 조금씩 재빨라졌고, 지금은 평균 수준의 움직임은 보일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내게는 한참 못 미치지만.
그러나 그녀가 죽어가면서도 그런 행동을 계속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행동에 기본적으로 적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잘 대해주면 그대로 물러갈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
"......"
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잘만 대화하면서, 이런 민감한 질문을 할 때마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진짜 짜증나기 이를 데 없는 성격이다.
"좋아, 더 도망갈 곳은 없다! 간다!!!"
언다인이 호쾌하게 창을 내질러왔다.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필사적이겠지. 동족의 이상, 모두의 꿈, 그 모든 것을 짊어진 채 그녀는 프리스크에게 창을 겨누고 있다. 상쾌하기까지 할 정도로 명료하고 확고한 악의.
당연하지만, 이번만은 껴안는 걸로 해결할 수 없다.
어떻게 할 거지? 나는 프리스크를 보았다.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프리스크는 또 칼을 떨궜다. 저럴거면 대체 왜 들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안 쓸 거면 그냥 버리라고...
나는 시큰둥하게 이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펼쳐질 전개가 눈 앞에 선명히 보이는 듯했다. 이 참치처럼 생긴 괴물은 꽤나 강해 보이니, 둔해빠진 녀석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뚫기 위해선 아마 한 100번... 혹은 그 이상?
녀석은 죽을 것이다. 죽고 또 죽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계속 대화를 시도할 테고... 그리고 또 죽겠지. 이런 패턴이 반복된다면 녀석은 어떤 태도를 취할까? 이대로는 안된다고 여기고 조금은 생각을 바꿔 맞서 싸울까? 아니면 그대로 그 영원한 똥고집을 유지할까?
...설마, 아무리 녀석이라도 그 정도로 죽으면 교훈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필연적으로, 대화가 아닌 싸움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관계도 있다는 걸.
"으, 아...!"
생각하는 도중에 역시나, 프리스크가 창에 꿰뚫렸다. 관통당한 구멍으로부터 피가 분수처럼 솟아나왔다. 생생한 죽음은 그녀 역시 익숙치 않은지, 언다인도 얼굴을 찌푸린다.
열 네번 째. 나는 속으로 숫자를 더했다.
14.
프리스크는 다시 언다인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예정된 수순대로 팔을 벌리고, 예정된 수순대로 죽었다.
여기까지는 예상한 바였다. 녀석의 개같은 고집은 고작 두 번만에 꺾일 정도가 아니니까. 피웅덩이 속에 잠긴 녀석의 시신을 보며 나는 조용히 숫자를 한번 더 더했다.
열 다섯에 둘.
22.
프리스크가 또다시 창에 꿰뚫렸다. 이번에는 왼쪽 눈.
...끔찍하다는 생각보다, 이걸로 쟤랑 똑같은 애꾸가 되었군- 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반복되는 죽음에 내 마음도 서서히 무뎌지고 있는 것 같다. 적응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스물 셋에 열.
35.
프리스크가 또 죽었다.
서른 여섯에 스물셋.
두 자릿수가 되자 슬슬 계산이 힘들어진다.
63.
또 죽었다.
예순 넷에 쉰하나.
89.
...아흔에 일흔일곱.
101.
"......."
113.
프리스크가 다시 깨어났다.
녀석은 지치지도 않고 동굴로 향하려고 했다. 첫 결전 이후 체감상으로 약 8시간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나는 녀석을 불러세웠다.
"야."
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내 말 씹냐? 뒤질래? 장난치는 거 아니니까 들리면 말해."
"...왜, 차라?"
프리스크가 마지못한 듯 뒤를 돌아봤다. 찌든 피로가 눈가에 그득했다.
"깨닫지 못한 것 같으니 말해줄게. 너 아까 그걸로 정확히 100번째였어. 이 녀석한테만 100번 연속 죽었다고. 알고 있어?"
".......응."
"알아? 안다고? 아는 녀석이 그래?"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분노로 소리질렀다.
"시발, 그쯤 되면 벌레새끼라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차리겠다! 넌 대체 뭔데? 성장이란 걸 하긴 하는거야? 저 녀석은 진심으로 널 죽이려 한다는 걸 아직도 모르겠어?!"
"......"
"지금까지와는 경우가 달라! 쟤도 쟤 나름대로 필사적이야! 지금까지 대체 뭘 들었어? 얘들이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 네 목숨이 필요하다잖아! 평화적으로 타협할 여지 따윈 없다고! 맞서 싸워! 저항해!"
가슴이 답답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물론 이 녀석이 죽고 돌아오지 않으면 나도 곤란해진다든가, 같은 핑계가 있긴 하다. 하지만 절대 그런 합리적인 이유에서 화가 나는 게 아니었다.
사람은 반복되는 경험에서 배운다. 그 배움을 살려 다음번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더 나은 선택을 한다. 그렇기에 사람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열 번, 스무 번을 넘어 백 번이나 똑같은 경험을 했는데도 행동을 바꾸지 않았다.
늘 똑같이 무기를 버리고 대화를 시도하고, 그러다 늘 똑같이 꿰뚫린다. 살아나가려는 의지가 없는건가? 싶다가도, 곧장 죽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오는 걸 보면 그것도 아니다. 대체 뭘 원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당혹, 분노, 답답함. 숱한 감정이 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그러나 프리스크는.
"...안돼..."
고개를 숙인 채, 그저 꺼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안돼... 저 사람들은... 죽이면 죽어버리잖아... 나랑 달리..."
"하아?"
"그러니까... 나는..."
프리스크가 무어라 작게 속삭인 다음 순간.
녀석은 그대로 땅바닥 위에 풀썩 쓰러졌다.
"?! 야! 프리스크! 프리스크?!"
내가 당황해 외쳤지만 대답이 없었다. 아니, 대답은 고사하고 미동조차 없었다.
설마 죽은 건가? 왜? 정신적 스트레스로? 온갖 의문이 바삐 뇌리를 스쳐간 순간.
'...색...색...'
...자세히 보니 자는 거였다.
잠시 어처구니가 없어져 할 말을 잃었지만, 이내 그럴 수도 있다고 납득했다. 녀석은 벌써 8시간 넘게 죽음을 되풀이했다. 육체야 시간을 돌렸으니 멀쩡하다 치더라도, 정신적인 피로는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지금까지 버틴 게 기적이 아닐까.
그렇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 태평하게 쳐자는 녀석의 얼굴을 보니 짜증이 급속도로 치솟아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대로 전력으로 녀석의 얼굴을 걷어찼다. 물론 통과했지만.
"......"
지쳐 쓰러져버린 녀석을 보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과연 프리스크는 언다인을 넘어갈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보기에 그 확률은, 제로에 가까운 정도도 아니고 그냥 제로다.
언다인이 루프를 기억한다면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죄책감이 쌓이면 그 틈을 파고들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언다인에게는 모든 죽음이 '첫 번째'다. 당연히 몇 번을 반복하든 사정을 봐주는 일 따위는 없다.
그렇다면...
"...후우."
하늘을 올려다보며, 적당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동정?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 툭하면 내 말을 씹어대고,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짜증만 불러일으키는 이 녀석에게 동정은 무슨 동정이야. 다 지가 자초한 일이고 자업자득이지.
다시 살아있는 실감을 느끼기 위해서? 나쁘지 않지만, 지금부터 내가 들어가려는 세계는 발랄한 동화가 아니라 치열한 전쟁이다. 저 언다인이란 년은 되게 쎄보이는데, 죽을 확률도 높고. 이쪽 측면의 수지는 마이너스 고정이다.
...이곳을 돌파하지 못하면 영원히 여기 묶여있게 될 테니까?
"이건 나쁘지 않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에서 깨어난 프리스크는 또다시 승률 0%의 도전을 계속할 것이다. 그럼 녀석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나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장면을 영원히 반복해서 봐야 할 테고... 그건 끔찍한 일이니까.
좋아, 이걸로 해야지.
"그럼..."
패턴은 기억하고 있다. 100번이나 계속 봤으니까 싫어도 기억할 수밖에 없다. 실전에서 적응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라고 쳐도.
한 번. 딱 한 번 해보고 안되면 깨끗이 포기해야지.
나도 죽는 건 싫으니까.
116.
"......하으..."
프리스크가 졸린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사실 평소에도 실눈이라 졸린 눈과 아닌 눈이 구분이 잘 안 가긴 하지만...
녀석은 천천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얼굴에 물음표가 가득 차올랐다.
"여긴 어디...?"
"이제 일어났냐? 참 팔자 좋~으시다."
일부러 한껏 비아냥대는 어조로 말했다.
"그 목소리는... 차라? 나 분명 동굴에서 쓰러지지 않았어?"
"그랬지. 그래서 내가 여기로 옮겼고."
나는 스노우딘 여관 책상에 걸터앉은 채 말했다. 사실 걸터앉았다는 표현은 조금 어폐가 있다. 나는 녀석의 의식 속에서만 존재하는 혼령이라 주변 사물에는 간섭할 수 없으니까. 어디까지나 기분상의 이야기다.
"어떻게? 차라는 유령이잖아."
"니 몸 안에 들어가서 조종했지.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한 듯 싶더라고."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라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까지 사용이 가능했다. 아무래도 나는 단순히 이 녀석에게 붙어다니는 게 아닌, 일종의 빙의 비슷한 걸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번엔 그 덕을 좀 봤다.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프리스크.
"뭘 멍청한 표정 짓고 있어? 침대에서 나와. 바로 떠나게."
"...언다인은?"
"걔는 이제 안 쫓아와."
프리스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죽었거든."
"...왜?"
"내가 죽였으니까."
프리스크가 입을 다물었다. 녀석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나는 녀석이 무언가를 시도하기 전에 먼저 딱 잘라 말했다.
"야, 미리 경고하는데 시간 되돌리지 마. 나 그러면 진짜 존나 빡칠거니까. 걔 상대하는 데 나 3번 죽었거든? 다시 유령 모드 된 지금도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 정도야. 내 죽음을 헛고생으로 만들고 싶지 않으면 돌리지 마."
"...왜."
"아까부터 왜, 왜, 는 지랄. 왜무새냐? 니가 무슨 짓을 해도 총대 메기 싫다니까 내가 대신 메준거 아냐. 아니면 영원히 거기서 죽는 생활을 반복하고 싶어?"
"......."
"이걸로 된 거야. 애초에 상대도 진심인 이상 이런 결말밖에 나올 수 없었어. 알았으면 짐이나 싸."
프리스크는 슬픈 듯 고개를 숙였다.
...어째서 저렇게까지 자신을 죽이려 든 상대를 생각할 수 있는 건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실제로 난 두 번째 죽음부터는 거의 오기와 증오로 싸웠다. 당한 걸 생각하니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고작 세 번 죽은 나도 그 정도였는데, 백 번 넘게 죽은 녀석은 어째서 화를 내지 않는 걸까?
"아, 좀! 자꾸 쳐 꾸물대지 좀 말고 움직이라고!"
"......응..."
내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자, 프리스크는 느릿느릿 주저하듯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지금까지 들고 다니던 장난감 칼이며 장갑 등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내게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의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비쳐보였다.
아오 썅, 됐어. 알아서 하라 그래. 나는 포기하고 머리 뒤로 깍지를 꼈다.
이후, 나와 프리스크 사이의 대화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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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딘-워터폴에서 10번 죽는 기적의 발컨 프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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