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youtu.be/KOaCMyphU3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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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보름달이 검은 강물을 타고 흘러간다.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린 그 모습은 마치 밤하늘이 달빛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
이놈의 강도 누구네의 눈물을 실컷 들이키고 취한듯 비틀비틀 흐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텁텁한 가슴이 더욱 답답해졌다.
하아..
얼마 남지 않은 카드의 잔고를 털어 사온 싸구려 캔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오징어를 씹는다.
봄임에도 아직 차가운 바람은 냉정한 현실을 자각시키는 것만 같다.
작은 동네에 딸린, 강이라고 부르기도 살짝 민망한 개천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 나는 술을 마신다.
운동하신다고 나오시는 아주머니도 다 집으로 들어가 조용하고 그저 소리라곤 가로등 딱딱대는 소리밖에 안 나는 시간.
고요에 몸을 맡기고 가만히 있으니 또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남은 맥주를 마저 들이키고, 텅 빈 캔을 바닥에 던진다.
난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난 대체 지금까지 뭘 한 걸까?
앞으로 얼마나 사랑하는 이들을 바라볼 수 있을까?
난 서랍 속의 실을 잃어버린 바늘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같은 끈적끈적하고 우울한 질문들이 끈적한 진흙처럼 몸에 달라붙어 오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 내 얼굴은 지금쯤 우울과 슬픔으로 가득하겠지.
이런 모습, 그녀에게는 보여줄 수 없다.
전화기도 꺼 두었고 딱히 주변에 알리지도 않았으니 아마도 내가 여기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저 신나게 마시고 감정은 강가에 두고 오면 되는 일이었다.
난 마지막 남은 캔맥주를 조심스럽게 땄다.
딸칵.
팍,팍,팍,팍.
맥주가 따이는 소리의 뒤로 이 시간에는 결코 나지 않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에 이 길을 뛸 사람이 대체 누가 있을까?
아직 벚꽃이 피는 시기도 아닌데.
나는 신경쓰지 않고 맥주를 목으로 기울였다.
그러자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 하고 울린다.
"헉, 헉.. 겨우 찾았네. 너 여기서 뭐하냐?"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 또다시 나에게 노크했다.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돌리지 않았더니, 곧 단단한 주먹이 내 머리를 빡 하고 때린다.
나름대로 힘조절을 한 것 같지만 강렬한 그 타격에 난 맥주캔을 놓치고 머리를 움켜쥐었다.
"으..으으.."
"사람이 말하면 좀 봐라!"
아픈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돌리니 푸른 피부의 아리따운 어인 아씨가 눈에 들어온다.
나보다 조금 더 근육질이고, 조금 더 키가 크며, 조금 더..
화가 나 있는 것 같다.
"하루종일 전화도 안 받고 말이야..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 엉? 이게 다 뭐야?"
그녀는 상당히 화가 난 듯 나에게 다그친다.
투덜거리는 목소리 속에서 걱정이 뚝뚝 묻어나왔다.
"윽, 술 냄새.. 너 술도 약하면서 이게 다 뭐냐? 야, 야, 그만 마셔!"
몸을 휘청이며 맥주캔을 기울이려고 하니, 그녀의 손이 꽈악 하고 내 팔을 쥐어 저지한다.
순간적으로 힘이 빠진 내 손은 멍청하게도 맥주캔을 떨어뜨렸다.
땡그랑, 꼴꼴꼴..
바닥에 떨어진 맥주캔이 누런 내용물을 흙에 토해내고 있다.
"아아.. 저게 마지막인데~ 아깝다아.."
나는 바보처럼 헤실헤실 웃으며 언다인의 팔을 잡고 투정을 부렸다.
취객들이 행인을 붙잡고 주정을 부리듯 한심스러운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쓰레기 그 자체.
은근슬쩍, 잡은 팔을 끌어당기며 그녀를 안으려고 시도한다.
찰싹.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순식간에 내 뺨이 얼얼해지며 술기운이 달아났다.
얼굴을 바라보니 내 죽음을 내가 자초한 것 같다.
"야."
"네."
"죽을래?."
"아니요."
"정신줄 꽉 잡아라. 확 죽인다 진짜."
그녀의 진심이 가득한 협박에 내 가슴은 창이라도 박힌 듯 따끔따끔해졌다.
알딸딸한 정신을 부여잡고, 난 홀로 술파티를 벌인 자리를 정리했다.
빈 캔맥주 캔과 안주거리들을 봉지에 싹 쓸어담고 봉지의 끝을 손에 묶어서, 혹시라도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고정한다.
벤치 앞은 곧 흘린 맥주 자국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잠시 나를 노려보던 언다인은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픽 쉬더니 마치 보따리를 메듯 날 들쳐멘다.
단단한 어깨와 등근육이 배와 가슴에 닿아서 조금 아팠지만, 불만을 토로했다간 강에 던져질 것 같았다.
"집에 가자."
"네."
보름달 아래의 밤거리를, 연인의 어깨에 올라탄 채에 한참 걸어가고 있다.
지켜보는 이 하나 없지만 왠지 부끄럽다.
낭만적이라고 해야 하나 바보같다고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으니 그녀가 말을 걸어온다.
무뚝뚝한 목소리는 걱정이 배어 있어 촉촉하다.
"너 무슨 일 있냐?"
"..그냥, 생각이 많아서."
"무슨 생각?"
"으음.."
산 아래에서 근위기사를 하던 그녀였기에 추상적인 느낌으로 설명하면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근위기사와 문학쟁이의 코드는 110v와 220v의 코드보다도 달랐다.
그녀가 쉽게 이해하도록 표현을 고르고 있으니 들썩, 하고 어깨가 한 번 움직였다.
마치 으쓱하는 것 같다.
"..고민 있냐?"
"뭐.. 그렇지?"
"나한테도 얘기 못 할 고민이야?"
산의 결계가 무너지고 지하에서 찾아온 천사처럼 다가온 그녀.
너무 소중했기에 오히려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이 많았다.
실망해서 도망갈지도 모르니까.. 유치했지만 그런 이유는 내게 압박적으로 다가왔다.
잠시 숨을 고르고 혀를 입안에서 굴리다가 난 말한다.
"그건 아니지만.. 조금 한심해서."
"뭐가?"
"고민의 내용이.. 너에게 들려주기에는 조금 그래서."
"하아.. 뭔데?"
언다인은 재촉하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숨기면 오히려 역효과일 것 같아서 난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응?"
"이런 행복한 순간이 언제까지 계속 될까, 부모님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아 계실까. 난 어디까지 썩어들어갈까.
난 대체 지금까지 뭘 해온 걸까? 난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
"자신이 없어.. 솔직히, 지친 기대조차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아."
말하고 나니 부끄러워졌다.
역시 말하지 않는 쪽이 나았던 걸까.
"..나 한심하지?"
언다인은 여전히 대답이 없다.
난 문득 저벅저벅 걷던 발걸음이 멈춰선 것을 깨닫는다.
파란 손이 나를 부드럽게 잡고 다치치 않게 어깨에서 끌어내린다.
다시 땅에 발을 디디자 살짝 어지러웠다.
잠시 숨을 고르며 중심을 잡고 있자 그녀가 다시 저벅저벅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아무 생각도 못 하고 있던 나를, 그녀는 진심으로 꼬옥 끌어안았다.
가슴과 가슴이 맞닿고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몸이 가까워진다.
당황해서 살짝 버둥거리지만 그녀는 그런 것은 가볍게 무시하고 날 끌어안고 잇었다.
변온동물에 가까운 몸이면서..
피부에 와닿는 그녀의 체온은 낮의 봄바람처럼 따스했다.
날 끌어안은 채로, 그녀가 속삭인다.
"바보야, 그런게 있으면 말하란 말이야. 바보처럼 혼자 끙끙대지 말고.."
"하지만.."
"하지만은 뭐가 하지만이냐! 그런 것도 나누는게 사귀는 거 아니야?"
"그..그렇지."
"혹시 날 못 믿는거야?"
"아, 아니. 그건 절대 아닌데.."
"그러면 됐어. 다음부턴 이렇게 해결하지 말고 꼭 나한테 말해."
그녀답지 않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난 무뚝뚝한 그녀의 진심 어린 목소리를 마음에 새겼다.
울거나 웃거나 줄줄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그녀는 우두커니 서서 날 기다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따스해졌다.
"으..응."
"그리고 하나 더."
쪽, 하고 이마에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닿았다.
그렇게 무골이면서 혹시 몰래 따로 관리라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부드러웠다.
바람에 떨어진 꽃잎이 닿는 듯한 느낌.
"넌 한심하지 않아. 그러니까 내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마."
아무런 장식도 없는 투박한 말이 가슴을 채운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돌아서서 다시 걷기 시작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따라 걸어갔다.
지옥 끝이라도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도록.
글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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