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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략을 이기는 기술

운영자 2018.03.12 09:38:40
조회 307 추천 1 댓글 1
세상의 모략을 이기는 기술
 
“변호사님 상대방 로펌에서 법원에 이런 자료를 제출 했는데요”

사무실의 여직원이 내게 서류들을 보여주었다. 인기 가수의 사건을 맡아 몇 년간 민형사소송을 담당해 왔다. 이미 법정에서의 재판이 끝나고 선고만 남은 상태였다. 이건 분명 반칙이었다. 소송은 법정이라는 링 위에 올라가 규칙에 따라 하는 시합과 유사하다. 그런데 파이팅을 끝내고 판정을 기다리는 순간 심판들에게 상대선수를 모략해서 귓속말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자료들을 보았다.

나의 의뢰인인 가수를 헐뜯는 스캔들 기사들을 모은 것도 있었다.

가수와 기획사와의 싸움이었다. 이제는 중년의 가수로 접어든 그가 고교시절부터 그 아버지와 잘 알았기 때문에 그의 성장과정을 옆에서 지켜봤었다. 독실한 믿음을 가진 그의 아버지는 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노래와 춤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걸 못마땅하게 여겨 내게 더러 얘기하곤 했다. 아직 미성년자인 시절 그 아이는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변호사 아저씨 내가 노래하고 춤춘다고 해서 남들은 그냥 놀기 좋아하는 거로만 알아요. 노래한곡 잘 부르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나는 천 번을 연습해요. 한번 같은 노래를 백번만 불러보세요. 그게 쉬운 일인지? 그런데 나는 천 번을 부르거든요? 춤도 그래요. 체육관을 빌려서 매일같이 밤에 일곱 시간 이상을 격렬하게 연 습해요. 안무동작을 암기하고 같이 댄스하는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고 끝이 없이 연습해요. 하룻밤에 운동화가 닳아버릴 때도 있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예능의 뒤에 존재하는 피땀 어린 노력들을 알았다. 그렇게 노력한 아이는 기획사의 눈에 띄어 스카웃이 되고 몇 년 되지 않아 스타가 되었다. 만들어진 음반마다 백만장 소리가 나오고 이미 그 아이는 유명스타가 됐다. 화려한 무대 뒤에도 또 어려움이 많은 것 같았다. 한번은 아이의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내게 와서 이런 하소연을 했다.

“너무 힘들어요. 기획사 사장님이 짜준 스케쥴대로 움직이는데 도대체 무대에서 무대로 이동할 시간조차 없는 거예요. 한 무대에서 공연이 끝나고 방송국으로 가는데 차는 막히고 이삼십 분도 안될 때가 많아요. 뒤에 기타를 메고 퀵서비스를 하는 오도바이 뒤에 매달려가기도 해요. 더 급할 때는 앰블런스를 빌려서 환자를 싣고 가는 것처럼 위장해서 가기도 했어요. 앰블런스를 타고 방송국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죠. 멀리 세워놓고 거기서부터 뛰는 거예요. 헐레벌떡 방송국으로 들어가면 몇 분 늦을 때가 있었어요. 저를 보는 사람들의 눈길들이 얼마나 냉냉한지 몰라요. 이제 떴다고 건방을 떠느라고 늦는다는 거죠. 밥도 무대 뒤에서 김밥 몇 줄로 때울 때가 대부분이예요. 밤에도 하룻밤에 나이트 클럽 여섯 군데를 가라고 해요. 이제 제 소원은 말이죠. 맹장염이라도 걸려서 병원에 입원했으면 좋겠어요. 정말 그게 제가 바라는 거예요.”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오래지 않은 세월 전에만 해도 그랬다. 기획사는 그들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가수를 노예로 만들 수 있는 족쇄 같은 여러 계약서나 무기들을 이중삼중으로 가지고 있었다. 무대를 잃을 것을 겁낸 친구의 아들은 소송을 제기할 용기가 없었다. 나는 친구와 그 아들을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법정에서 그동안 가수가 하지 못한 말들을 재판부에 대변했다. 기획사 대표는 심리가 끝난 후 법관들의 인상이 나빠지도록 하는 자료들을 냈다. 내가 전화로 그 사실들은 가수에게 알려주었다.

“어떻게 하죠?”

마음이 극도로 약해진 가수가 호소했다. 나는 그 자료를 받고 고심했다. 기획사대표인 상대방의 비리들을 폭로하는 자료들을 제출할 것인가를.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그런 ‘귀신수’를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내면에 계시는 그분에게 물어보았다. 미세한 어떤 응답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다. 변호사로서 또 감정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는 바로 대응을 해야 하겠다는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내 의가 커질 때 나는 그 분의 뜻을 알게 하는 감이 마비될 우려가 있었다. 나는 모든 일에 어떤 섭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판사가 자기 권한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의 영혼을 지배하는 어떤 존재가 뒤에서 조종을 한다는 게 그 분을 믿는 변호사로서 법정을 드나들면서 느낀 또 다른 감각이다. 판사들이 하는 일이 아니다. 마지막 재판 때 재판장이 나를 보고 말했다.

“재판부에서 제시하는 중간 타협안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거기에 응하시지 않으시면 이 재판에서 지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응하지 않겠습니다.”

“왜요?”

“이건 타협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와 불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실 수 있는 데 두요?”

“재판에서 질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내가 옳다고 확신하는 데도 억울하게 지는 아픔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재판장님 저는 변호사입니다. 세상의 불의를 법정에 가져와 심판대 위에 올려놓고 그 판단을 해 달라는 것 까지가 저의 역할입니다. 그 다음은 법관의 책임일 것입니다. 오판을 하면 그건 판사들의 문제이자 책임일 것입니다. 왜 재판에서 지고 이기는 걸 변호사에게 말해서 압박을 가하십니까? 무엇이 옳은지 아닌지 확인 작업을 하는 게 사법부 아닙니까.”

상대편의 대리를 맡았던 로펌의 변호사가 때를 만난 듯 일어서서 재판장의 비위를 맞추었다.

“지금 변호사가 자기의 주관을 앞세워 중간에서 바른 조정을 하려는 재판장님을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좋지 않은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재판이 끝났었다. 그런 다음에 뒤에서 그런 자료들을 재판부에 제출한 것입니다. 내가 하는 전화 저쪽에서 가수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 동안 내 변호자세를 말하면서 다른 대형로펌에 가서 변호사들을 고용할 테면 하라고 의견을 말하기도 했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가수와 가족은 마지막까지 나를 해임시키지는 않고 있었다. 내가 가수에게 말했다.

“상대방이 귀신수를 쓴다고 똑같이 대응하는 것은 주님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온가족이 모여 하나님께 기도해 보시죠.”

“그럴께요 변호사님”

며칠 안 남았지만 그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면 찬송가를 틀어놓고 촛불을 켠 채 기도를 했다. 주님은 나의 이해관계에 관련된 기도는 잘 들어주지 않으신 편이었다. 그러나 남을 위한 순수한 기도는 반응을 잘 보이셨다. 기도의 응답은 엉뚱하게 그 문제 자체를 나의 뇌리에서 망각시키는 것이었다.

며칠 후였다. 소파에 누워서 잠시 쉬는데 갑자기 번쩍하고 어떤 게 떠올랐다. 그랬다. 선고가 있는 날이었다. 핸드폰 액정화면의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오후 두시였다. 한시 반이 선고시각인데 이미 선고가 있었을 게 틀림없다. 사무실의 여직원한테서 내게 보낸 신규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승소판결을 받았다는 것이다. 내가 가수에게 바로 핸드폰을 했다. 그와 가족은 며칠 동안 피가 말랐을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 일분 일분이 속이 바짝 탓을 것이다.

“우리가 이겼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가수는 더 이상 말을 못 잇고 오열하고 있었다. 뒤에서 그의 아버지가 울고 있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세상에서 움직여지는 단순한껍데기 아바타에 불과했고 나의 내면으로 영으로 다가오신 그분이 모든 일들을 연출하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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