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노년에 맞이하는 친구들

운영자 2024.03.19 10:23:53
조회 120 추천 1 댓글 0

바닷가로 내려와 살면서 친구가 생겼다. 십오년 전에 옥계의 해변가로 내려와 작은 집을 짓고 거기서 시를 쓰며 사는 분이다. 바닷가 산책길에서 만나 친구가 됐다. 내가 글을 보냈더니 그가 이런 시를 보내왔다.

‘석양은 끝도 없이 아름다운데 다만 석양이 너무 가까이 있구나’

나이 팔십이 넘은 그의 감상인 것 같았다. 아름다운 글이었다. 노년에 만났지만 진정한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영혼의 친구인 것 같다.

또 다른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지리산 자락에 낡은 집을 구해 십이년간을 참선수행을 하고 명상을 하며 지내는 분이었다. 그는 차박을 하면서 전국을 흐르기도 한다. 그가 보낸 카톡 내용은 이렇다.

‘어떤 남자가 주차장에서 멋진 차를 타려는 순간 노숙자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차가 멋지네요

남자가 말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세요?

노숙자는 이렇게 되물었다.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은가요?’

도를 닦는 사람의 의미있는 메시지였다. 삼년전 그가 쓴 수필집을 보고 찾아가 만났었다. 그리고 친구가 됐다.

나는 새로 생긴 노년의 친구들과 영혼을 교류하는 게 즐거움 중의 하나다. 그들의 겉모습만 보고 팔자 좋다고 경솔히 판단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 분들은 평생 깨끗한 노동으로 감사한 밥을 만든 사람들이다. 가족에 대한 의무도 성실하게 수행했다. 정년퇴직을 한 후 자기를 찾아 산속이나 바닷가로 가서 사는 분이었다.


나는 또 다른 친구들이 생겼다. 나는 거의 매일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린다. 탈랜트나 배우들이 아름다운 얼굴을 화면에 올려 세상에 알리지만 나는 글이라는 도구로 세상에 마음을 전한다. 그것은 동시에 세상에 말을 거는 행위이기도 하다. 많은 분들이 자신의 속 깊은 얘기를 글로 보내온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한 적은 없지만 마음과 마음이 흐른다. 그 분들은 노년에 맞이하는 새로운 친구가 아닐까. 나는 새로운 친구들과 마음을 교류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나는 또 다른 많은 친구들을 가지고 있다. 바닷가에서 나는 진지한 노년의 독서를 한다. 책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소설가, 철학자, 수도사, 정치인등 다양하다. 죽은 지 오래되어 한 줌의 흙으로 남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들은 글로 남아 지금도 나의 마음의 벗이 되고 있다. 친구란 꼭 몸을 가지고 유형적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질문하고 그들은 책 속의 글로 대답한 친구들이 많다.

오늘 아침 혼자 찬송을 부르다가 문득 이런 가사가 가슴으로 다가왔다.

‘이 땅 위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예수도 아주 가까운 친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남에게 다가서지 못했다. 마음을 열지도 못했다. 오히려 꽁꽁 닫아 걸었다. 내게 다가오는 사람도 밀어내는 성격이었다. 사람들이 모여 영양가 없는 잡담을 하는데 끼어 있다가 돌아올 때면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직장에서의 회의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때면 차라리 내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는 게 더 좋았다. 그게 개인적인 성향인 것 같았다. 그런 속에서도 친구는 하늘이 보내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그런 친구는 내가 위기에 처해있을 때 그 모습을 드러 냈다. 내가 경제적으로 힘들 때가 있었다. 돈을 꾸러 다녔다. 오랜 세월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에게 냉정하게 거절당했다. 여유 돈이 있는 걸 분명히 아는데도 내게는 빌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그의 친구가 아니었던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때 별로 친한 것 같지 않았는데 선뜻 돈을 꾸어준 사람이 있었다. 또 아파트의 옆집에서도 아뭇소리 하지 않고 돈을 빌려주었다.

내가 모략을 당하고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하이에나 무리같이 모두 나의 파멸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위기에는 적들이 자신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때 한 사람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나를 구해줬다. 이게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희귀병에 걸려 고생할 때가 있었다. 중동지역에 갔다가 독충에 물린 것이다. 대학병원의 전문의도 치료방법을 모르겠다면서 손을 놓았다. 나는 단지 그의 논문의 소재로 호기심의 대상인 것 같았다. 그때 발표된 논문까지 모두 찾아보면서 내게 치료의 길을 찾아준 의사가 있다. 아주 오래전 그가 법망에 들어와 몸부림칠 때 약간 도와준 적이 있는 의사였다. 어쨌든 그런 사람들이 하늘이 내게 보내 준 친구가 아니었을까. 그런 친구들은 교제한 기간의 길고 짧음에 상관이 없었다. 나는 그 때 그 때 하나님이 보내주는 다양한 친구들이 있다. 이해관계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영혼을 교류하는 것은 노년의 즐거움중 하나다.


추천 비추천

1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연인과 헤어지고 뒤끝 작렬할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22 - -
3330 인권변호사의 첫걸음 운영자 24.04.22 41 0
3329 깨어있는 시민의 의무 운영자 24.04.22 31 0
3328 죄수가 전하는 사회정의 운영자 24.04.22 44 1
3327 이민자의 슬픔 운영자 24.04.22 39 1
3326 강도에게 성질을 냈었다. 운영자 24.04.22 38 0
3325 외국의 감옥 운영자 24.04.22 39 0
3324 벗꽃 잎 같이 진 친구 운영자 24.04.15 68 1
3323 조용한 기적 운영자 24.04.15 70 2
3322 감옥은 좋은 독서실 운영자 24.04.15 54 0
3321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 운영자 24.04.15 52 0
3320 미녀 탈랜트의 숨겨진 사랑 운영자 24.04.15 61 1
3319 두 건달의 독백 운영자 24.04.15 55 1
3318 명품이 갑옷인가 운영자 24.04.15 48 1
3317 나는 될 것이라는 믿음 운영자 24.04.15 53 1
3316 오랜 꿈 운영자 24.04.08 72 2
3315 그들은 각자 소설이 됐다. 운영자 24.04.08 80 1
3314 나이 값 [1] 운영자 24.04.08 110 1
3313 검은 은혜 [1] 운영자 24.04.08 93 3
3312 실버타운은 반은 천국 반은 지옥 [1] 운영자 24.04.08 107 2
3311 늙어서 만난 친구 운영자 24.04.08 56 1
3310 그들을 이어주는 끈 [1] 운영자 24.04.01 212 2
3309 그가 노숙자가 됐다 [1] 운영자 24.04.01 130 3
3308 밥벌이를 졸업하려고 한다 [1] 운영자 24.04.01 139 2
3307 허망한 부자 [1] 운영자 24.04.01 150 2
3306 죽은 소설가가 말을 걸었다. [1] 운영자 24.04.01 134 2
3305 개인의 신비체험 [2] 운영자 24.04.01 142 2
3304 나는 책장을 정리하고 있다. [1] 운영자 24.04.01 125 2
3303 노인의 집짓기 [1] 운영자 24.04.01 124 1
3302 똑똑한 노인 [1] 운영자 24.03.25 159 2
3301 곱게 늙어간다는 것 [1] 운영자 24.03.25 168 4
3300 두 명의 교주 [1] 운영자 24.03.25 160 1
3299 영혼이 살아있는 착한 노숙자 [1] 운영자 24.03.25 146 1
3298 팥 빵 [1] 운영자 24.03.25 139 0
3297 얼굴 [1] 운영자 24.03.19 170 1
3296 이별의 기술 운영자 24.03.19 126 1
노년에 맞이하는 친구들 운영자 24.03.19 120 1
3294 노년의 진짜 공부 운영자 24.03.19 112 0
3293 주는 즐거움 운영자 24.03.19 103 1
3292 장사꾼 대통령 운영자 24.03.19 128 1
3291 나는 어떻게 크리스챤이 됐을까. 운영자 24.03.19 144 1
3290 태극기부대원과 인민군상좌 운영자 24.03.19 112 2
3289 결혼관을 묻는 청년에게 [4] 운영자 24.03.11 316 0
3288 손자의 마음 밭 갈기 운영자 24.03.11 143 1
3287 어떤 여행길 운영자 24.03.11 149 2
3286 나의 돈 쓰는 방법 [5] 운영자 24.03.11 2266 12
3285 순간 순간 몰입하기 운영자 24.03.11 148 1
3284 먼지 덮인 수필집으로 남은 남자 운영자 24.03.11 137 1
3283 아버지 제사 운영자 24.03.11 139 2
3282 속을 털어놓기 운영자 24.03.04 156 1
3281 반전의 묘미 운영자 24.03.04 143 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