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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인 사법부

운영자 2017.07.06 11: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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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인 사법부

  

1980년대의 일이다. 독재에 반대하는 투쟁이 살벌했다. 로마군단 같이 열과 오를 지어 거리에 선 시위대의 눈에서는 막바지에 몰린 짐승의 눈같이 파란 독기가 흘러나왔다. 그들의 손에 들린 쇠파이프가 아스팔트 위를 끌리는 금속음은 메마른 전율을 느끼게 했다. 조폭이 집단패싸움을 하듯 무술경찰로 조직된 백골단과의 싸움은 전쟁이었다. 법정은 두 번째 전쟁터였다. 잡혀온 운동권들은 판사 앞에서 장황하게 세상과 민주 그리고 독재투쟁에 대해 연설했다. 재판부는 실정법을 운운하며 그들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그들은 체제의 도구가 된 사법부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신고 있던 검정고무신을 벗어 재판부를 향해 던지곤 했다. 지난 50년간 사법부의 역사를 보면 사법부는 국민에 대한 관계에서 가해자였다. 특히 1972년10월17일 유신선포부터 최소한 1987년6월29일의 민주화 선언까지는 가해자가 틀림없었다.1988년 노태우 대통령 취임 후 소장 판사들은 이런 선언문을 공표했다.

‘돌이켜 보면, 우리 국민은 자신의 기본권을 보장해 줄 것을 위임한 사법부에 기대어 기본권을 보장받기 보다는 오히려 많은 부분을 국민들 자신의 희생과 노력으로 스스로 쟁취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국민들이 사법부를 불신하고 심지어는 매도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일부 의식이 깨인 판사들의 외침일 뿐이었다. 사법부는 여전히 개인의 기본권침해에 대해 외면하는 경우가 많았다. 1998년경이다. 변호사인 나는 교도소내의 가혹한 살인을 전해 들었다. 악질 교도관 몇 명이 재소자 한명을 자루에 집어넣은 채 두들겨 패서 죽였다. 지역의 의사는 사망원인을 심장마비라고 적당히 썼고 담당검사는 매장을 명령했다. 죽은 사람은 교도소 인근 야산에 묻혀버렸다. 나는 그 사실을 떠들어댔다. 권력은 강했다. 언론이 침묵하자 나는 월간지 ‘신동아’에 그 사실을 직접 썼다. 인권단체와 기자들이 확인 작업을 벌였다. 교도소장은 기자들 앞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변호사가 도둑놈 말만 믿고 잡지에 기고했다며 반격했다. 교도소장은 티켓다방의 아가씨들을 동원해 기자들을 나이트클럽에 데리고 가 밤새 향응을 제공하면서 입을 막았다. 한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법무장관에게 내가 쓴 글을 보이며 교도행정의 문제점을 질책했었다. 며칠 후 검찰에서 내게 전화가 왔다. 

“근거도 없이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합니까?”

“진실을 규명하고 증거를 찾는 게 검사가 할 일 아닙니까? 변호사에게 수사권이 있나요?” 

“변호사 계속 하실 생각이십니까?”

검사의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검사가 변호사자격증을 줬습니까?”

“변호사가 너무 공명심으로 설치는 거 같습니다.”

“한 영혼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해주는걸 공명심으로 보는 군요. 더 할 말 없습니다.”

검사는 영혼이 없는 조직의 부속품이었다. 법무부에서 보도 자료를 신문사로 보냈다. 다음날 나는 공명심에 들떠 근거 없는 말을 퍼뜨린 형편없는 변호사가 되어 기사에 떠올랐다. 법무장관 실에 초청(?)이 되어 갔다. 법무장관은 교정공무원의 사기를 위해 입을 다물어 달라고 했다. 내가 고발하는 것은 선량한 대부분의 교정공무원이 아니라 관복을 입은 살인자였다. 몇 년 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생기고 거기서 내가 말한 사실들을 진실로 판정했다. 대한민국의 인권은 법원에서 취급하지 않는 것 같았다. 1993년6월 서울민사지법판사들은 ‘사법부 개혁에 관한 우리의 의견’이란 문건을 통해 이렇게 의견을 나타냈다.

‘지난날 사법부의 비겁함을 꾸짖는 역사 앞에 참담한 심정으로 속죄한다. 과거 사법부는 마땅히 그것은 법이 아니다라고 선언하여야 할 때 침묵하기도 했고 판결로서 말해서는 안 될 것을 말하기도 하였으며 판결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진살에 등 돌리기도 했다’ 

2009년5월에 내려진 소위 아람회사건 재심판결에서 재판장인 이성호 부장판사는 “평범한 시민들이 국가기관에 의해 저질러진 불법을 법정에서 절규했음에도 법관들이 이를 외면하고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 걸 사과하며 고인이 된 분들이 하늘나라에서 평안하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직도 법정에 가보면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 속에 갇힌 판사들이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가해자로서의 사법부를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이 세상을 보는 눈을 뜨고 머릿속에 법원실무서 보다 인문학적 소양이 충만해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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