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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뭐

운영자 2017.07.18 15:23:42
조회 165 추천 0 댓글 1
“그렇지 뭐” 

  

변호사를 개업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업을 하는 친구가 찾아와 보증을 부탁했다. 거절하기 힘든 입장이었다. 내가 힘들 때 그 친구는 여기저기 다니며 돈을 만들어 한밤중에 찾아와 돈을 건네주기도 했다. 그 감사함을 생각하면 보증이 아니라 더 한 것이라도 도와줘야 했다. 그런데 내면 깊은 곳에서 경고신호가 울리고 있었다. 나는 보증대신 현금을 꾸어주기로 했다. 내게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보증의 공이 증권회사지점장을 하는 다른 고교동기에게 넘어갔다. 얼마 후 사업을 하던 친구는 부도를 내고 미국으로 도주했다. 보증을 섰던 증권회사 지점장이던 친구는 파멸의 길로 들어섰다. 그 보증은 상한이 없었다. 단번에 수십억의 빚쟁이가 됐다. 아파트를 날리고 직장에 있을 수가 없었다. 전문적인 채권 추심회사가 그의 가족들을 추적했다. 도망자가 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이들도 학교에 제대로 갈 수가 없었다. 세월이 흐르고 육십대에 그를 만났다. 그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인생 전체가 물거품 같이 허망하게 꺼져 버렸다고 했다. 그의 불행이 사실은 먼저 내게 다가왔었다. 보증을 서 주었다면 평생 변호사를 하지 못했을 게 틀림없었다. 인생이란 언제 어디서 악마가 나타나 뒷머리 채를 잡고 끌어갈지 모른다. 그런 불행을 당한 사람 중에 천사도 있다. 사업가친구의 보증을 서 준 법대교수가 있었다. 사업가는 역시 부도를 내고 필리핀으로 도망을 갔다. 보증을 선 교수는 아파트를 날리고 부모한테서 물려받은 농토가 경매되고 이십년 가까이 월급이 압류되어 반밖에 받지 못했다. 마지막에는 몇 억 원을 추가로 만들어 주고 간신히 보증채무를 면제받았다. 26년 만에 부도를 내고 해외로 도주했던 친구가 국내로 잡혀왔다. 늙고 빈털터리가 되어 있었다. 그와 대학동창인 나는 무료변호를 맡았다. 그는 가족한테서도 버려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내도 아들도 변호사인 내게 전화 한번 하지 않았다. 평생 가족들을 고생만 시킨 아버지에 대한 원망인지도 모른다. 동생도 형에 대해 냉냉했다. 그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늙은 엄마는 치매로 정부에서 나오는 돈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검사는 그에게 징역 11년을 구형했다. 나머지 인생을 감옥에서 살다가 죽으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보증을 서주고 평생 고통을 받았던 교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역시 대학친구였다. 

“구치소에서 그 친구 만나 면회를 하고 나오는 길이야. 안 됐더라구.” 

나는 깜짝 놀랐다. 그가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그에게서 동정의 말이 쉽게 나올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어조에는 진심이 배어 있었다.

“보증을 서 줬다가 평생 고생했으면서도 그런 말이 나와?”

내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그렇지 뭐”

그는 인생의 고통을 한마디로 압축하고 끝냈다. 그는 재판장에게 탄원서까지 냈다. 살인죄도 공소시효가 지나면 봐주는데 도망자 생활 26년의 고통이면 됐지 않느냐고 했다. 법대교수다운 논리였다. 나는 그의 진면목을 발견한 것 같았다. 그는 성인이 틀림없었다. 세상 사람들 모두들 자기만 아프다고 울고불고 징징거린다. 자기만이 고민을 가지고 가장 불행한 운명의 주인공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속에서 진짜 아픈 사람들은 말이 없다. 인내하며 침묵 속에서 인생 순례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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