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판사가 목이 잘리지 않으려면

운영자 2017.10.09 10:43:41
조회 333 추천 4 댓글 0
판사가 잘리지 않으려면 

  

판사들도 십년마다 평가를 받는다. 재임용심사위원회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법원에서 나가야 한다. 위원회에 위원으로 들어갔던 친구가 나에게 그가 봤던 얘기를 해 주었다.

“자기는 잘릴 이유가 없는데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면서 이의신청을 한 판사가 왔더라구. 내가 위원회에서 주는 그 판사에 대한 자료를 보니까 근무평가가 상중하로 평가되는데 지난 십년동안 ‘하’라는 평가가 다섯 번이나 있더라구. 법원장이 임기가 2년인데 그런 평가면 법원장끼리 그 놈은 꼭 쫒아내야 한다고 자기네끼리 인수인계가 되어 있었던 거야.”

문제가 된 판사는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원칙을 중요시하는 고지식한 성격이었다. 타협을 하거나 굽실대지 않았다. 겉으로는 딱딱하고 차가운 것 같지만 속은 순진한 사람이었다. 

“왜 그런 평가를 받았을까?”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

“판사에 대한 평가도 주위에서부터 나오는 것 같아. 우선 매일 지켜보는 밑의 서기가 있어. 법원서기의 의견은 상급법원 사무국장을 통해 올라가는 것 같아. 또 법원에 와서 도와주는 지방유지인 조정위원도 있어. 또 자주 대하는 그 지역의 변호사들이 있고 재판과정에 불만인 민원인들의 진정이 있지. 몇 군데의 의견이 공통되면 그 판사는 그런 사람이 되는 거야. 그러니 판사를 해도 말을 잘 들어주고 설명도 친절하게 해야 쫓겨나지 않는 거야.”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해서 재판한다고 하지만 판사도 세상과의 얽힘에서 자유롭지 않다. 상급자의 평가가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결국 내가 아는 그 판사는 고지식한 딱딱한 태도 때문에 배척된 것 같았다. 법대위에서 검은 법복과 굳은 표정의 뒤에 있는 내면을 보기는 불가능하다. 진짜 사람이 아니라 바위를 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판사가 있다.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법대위에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분명 성실한 사람이었다. 사건기록을 미리 꼼꼼하게 챙겨 읽고 법정으로 나오는 것 같았다. 그는 사건마다 심리해야 소비될 시간을 계산하고 정밀한 기계같이 심리를 진행했다. 그는 변호사들이 신청하는 증거마다 “기각합니다.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라고 차디차게 대답했다. 기록에 대한 모범답안인 판결문을 쓰는데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변호사들의 불만이 대단했다. 나도 법정에서 증인신청을 했었다. 

“증인이 법정에 나오려면 절차가 필요하고 시간이 끌리니까 대신 공증진술서를 제출하시죠.”

시간에 쫓기면서 기계적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재판장다운 발상이었다. 그 역시 증인진술의 필요성을 깨달은 것 같았다. 사기죄의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의 내면인 고의성을 파악하는 과정이었다. 그게 ‘아니다’라는 공허한 짧은 문장으로 증명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었다. 내가 재판장에게 물어보았다.

“재판장님께서는 공증진술서를 읽고 그 짧은 행간에서 얼굴과 얼굴을 맞댄 것 같이 그의 내면을 읽을 수 있습니까?”

변호사인 내게 사건은 한 의뢰인의 삶 자체였다. 그게 나와 인연을 맺으면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법률에 관련된 것이 아닌 군더더기가 많은 인생얘기도 들어주어야 하는 게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판사들에게 사건은 기계같이 처리하는 기록에 불과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사람을 대하지 않고 기록을 보고 정답을 쓰기가 더 우선인 것 같았다. 시간에 쫓긴다는 것도 변명으로 들렸다. 노후를 보내는 전직판사들은 파트타임이라도 다시 재판할 기회가 있으면 정말 사람을 마주 대하고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소수가 직위와 일을 독점하다 보면 당연히 시간이 부족하다. 딱딱한 모습이던 그 판사가 불행한 일을 당했다. 분노한 피고인의 석궁화살에 맞고 병원에 실려 가는 모습이 뉴스화면에 보도되었다. 딱딱하게만 보이던 그도 사실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한 결혼식 모임 식사테이블에서 그를 보았다. 그는 전혀 다른 성실한 인간이었다. 그가 화살을 맞게 된 배경을 우연히 다른 법조인에게 들었다. 교수의 자격을 심사하는 재판에서 교육적 자질이 부족하다고 판결문에 명시한 게 평생 개결한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온 교수의 원한을 샀다는 것이다. 법정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짧은 시간에 본 것을 가지고 그렇게 전능자같이 심판할 수 있는 것일까. 내면을 보지 못한 채 결론을 내는 판사들은 절대 진실을 알 수가 없다. 

판사들은 국민이 자신들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국민들은 판사가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기를 요구한다. 겸손한 태도로 인간을 대하고 잘 들어주고 현명하게 판단하는 법관들이 많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이미 소크라테스가 오래전에 그렇게 지적했었다.

추천 비추천

4

고정닉 0

2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SNS로 싸우면 절대 안 질 것 같은 고집 있는 스타는? 운영자 24/05/06 - -
3344 재판을 흥미성 보도자료로 만듭니다. 운영자 24.05.06 24 1
3343 부자들의 비밀금고 운영자 24.05.06 25 1
3342 죄 값 이상을 강요할 권리가 있나? 운영자 24.05.06 20 0
3341 입을 틀어막히는 분노 운영자 24.05.06 17 0
3340 변호사로 정상이라고 생각합니까 운영자 24.05.06 20 0
3339 도둑 일기 운영자 24.05.06 20 1
3338 숯불 나르는 청년의 외침 운영자 24.05.06 21 1
3337 당신은 꽂히면 바로 내 지르는 사람이야 운영자 24.04.29 55 1
3336 아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세요 운영자 24.04.29 41 1
3335 도대체 저의가 뭡니까? 운영자 24.04.29 43 1
3334 기억 사진첩 속 어떤 재판광경 운영자 24.04.29 36 1
3333 내가 체험한 언론의 색깔 운영자 24.04.29 40 1
3332 변호사란 직업의 숨은 고뇌 운영자 24.04.29 43 1
3331 저세상으로 가는 법 운영자 24.04.29 47 1
3330 인권변호사의 첫걸음 운영자 24.04.22 70 1
3329 깨어있는 시민의 의무 운영자 24.04.22 62 1
3328 죄수가 전하는 사회정의 운영자 24.04.22 69 1
3327 이민자의 슬픔 운영자 24.04.22 71 1
3326 강도에게 성질을 냈었다. 운영자 24.04.22 64 1
3325 외국의 감옥 운영자 24.04.22 61 1
3324 벗꽃 잎 같이 진 친구 운영자 24.04.15 96 1
3323 조용한 기적 운영자 24.04.15 95 2
3322 감옥은 좋은 독서실 운영자 24.04.15 78 1
3321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 운영자 24.04.15 76 1
3320 미녀 탈랜트의 숨겨진 사랑 운영자 24.04.15 92 1
3319 두 건달의 독백 운영자 24.04.15 81 1
3318 명품이 갑옷인가 운영자 24.04.15 71 1
3317 나는 될 것이라는 믿음 운영자 24.04.15 76 1
3316 오랜 꿈 운영자 24.04.08 93 2
3315 그들은 각자 소설이 됐다. 운영자 24.04.08 106 1
3314 나이 값 [1] 운영자 24.04.08 144 1
3313 검은 은혜 [1] 운영자 24.04.08 138 3
3312 실버타운은 반은 천국 반은 지옥 [1] 운영자 24.04.08 147 2
3311 늙어서 만난 친구 운영자 24.04.08 86 1
3310 그들을 이어주는 끈 [1] 운영자 24.04.01 262 2
3309 그가 노숙자가 됐다 [1] 운영자 24.04.01 168 3
3308 밥벌이를 졸업하려고 한다 [1] 운영자 24.04.01 174 2
3307 허망한 부자 [1] 운영자 24.04.01 188 2
3306 죽은 소설가가 말을 걸었다. [1] 운영자 24.04.01 172 2
3305 개인의 신비체험 [2] 운영자 24.04.01 176 2
3304 나는 책장을 정리하고 있다. [1] 운영자 24.04.01 165 2
3303 노인의 집짓기 [1] 운영자 24.04.01 164 1
3302 똑똑한 노인 [1] 운영자 24.03.25 199 2
3301 곱게 늙어간다는 것 [1] 운영자 24.03.25 205 4
3300 두 명의 교주 [1] 운영자 24.03.25 200 1
3299 영혼이 살아있는 착한 노숙자 [1] 운영자 24.03.25 185 1
3298 팥 빵 [1] 운영자 24.03.25 177 0
3297 얼굴 [1] 운영자 24.03.19 207 1
3296 이별의 기술 운영자 24.03.19 149 1
3295 노년에 맞이하는 친구들 운영자 24.03.19 144 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