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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변호사에게 2천원짜리 짜장을 먹이면서

운영자 2017.11.06 10:14:59
조회 476 추천 0 댓글 1
후배 변호사에게 2천원 짜리 짜장면을 먹이면서
  

탑골공원 뒤쪽 무료급식소 앞에 ‘무료변호’를 한다는 전을 펴고 젊은 김변호사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가난한 골목도 올수록 보이는 게 조금씩은 달라졌다. 길바닥에 싸구려시계나 몇 개의 낡은 옷이나 구두를 놓고 파는 노인도 있다. 나름대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목적 없이 사람들의 물결을 다라 길을 걷는 사람도 있고 노숙자가 되어 바닥에 뜯은 상자를 깔고 종일 자는 사람들도 있다. 

늙고 돈 없는 노인들이 혈관 같은 지하철을 타고 사방에서 탑골공원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초등학교 전 50년대 기억이 떠오른다. 취직을 못해 백수이던 고모부는 어린 나를 끌고 탑골공원에 벤치에 와서 하루 종일 서성이다 해가 어둑어둑해지면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아마도 마음이 더 어두웠을 것이다. 사람들은 5원짜리 수제비 한그릇 점심으로 사먹고 벤치에서 하루를 보냈다. 없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옆에 있는 젊은 김 변호사가 잠시 상담객이 없는 틈에 이렇게 말한다.

“변호사가 거리로 나와 전을 펴고 무료상담을 한다니까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 같아요. 말을 해 주다가 파산신청을 하거나 소송을 하라면 펄쩍 뛰면서 안한다고 그래요. 자기는 건강보조식품을 파는 사람들한테 몇 번 사기를 당했다는 거예요. 저를 그런 사기꾼으로 보는 거죠. 무료상담을 미끼로 소송으로 끌고 가 돈을 받아먹으려는 것으로 아는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무료변호라는 간판이 대개는 변호사들이 낚시 밑밥으로 사용했거든,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도록 무료상품을 정하는 게 어떨까?”

“뭘로요?”

“상담하고 ‘탄원서’라는 작품이야. 얼마 전 작가 게오르규가 끈 ‘25시’를 읽었어. 거기 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탄원서를 써주는 탁월한 작가가 있어. 그 탄원서 속에 살아있는 개인의 아픔과 고뇌 사람이 있고 역사와 철학과 인권이 있었어. 여기서 사람들과 얘기하다가 그런 ‘탄원서’를 무료로 써 주면 아름다운일이 아닐까.”

이제 에너지가 떨어진 노인이 된 나는 젊은 변호사에게 지난 세월의 경험을 조금은 알려주는 게 나의 일이란 생각이다. 내가 말을 계속했다.

“이렇게 거리에 전을 펴고 가장 낮은 곳에서 변호사를 시작하는 김 변호사는 여기서 분명히 많은 걸 얻어갈 거야. 철학을 얻을 수도 있고 병든 노인으로 위장을 한 천사나 예수도 볼 수 있겠지. 나는 그렇게 믿어” 

“아직은 그런 여유가 없습니다. 로스쿨에 다니면서 학자금 융자로 진 빚만 6천만원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결혼할 여자를 깡촌의 우리 마을로 데려가 보여줬어요. 시골에서 끝없이 일을 해도 가난한 집의 모습이 어떤가 그대로 생생하게 보여줬어요. 그걸 꺼리면 같이 살 수 없는 거죠. 다행히도 그렇지않더라구요. 이런 집에서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아들이 나왔나 하고 생각해 주는 것 같더라구요. 감사 하죠”

“나도 신촌의 1.5평 쪽방에서 석유풍로와 코펠로 시작했는데 뭘. 아내가 가지고 있던 200만원 보증금이 재산의 전부였어. 그런데도 그 시절은 그 시절대로 행복했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소설을 읽다가 하이면 한 그릇 끓여 먹으면 내겐 그게 천국이던데. 옆에 예쁜 아내가 있고 말이야. 더 필요한 게 없었어.”

“그래도 그 시절은 다 절대적 가난하니까 고통이 덜 했을 것 아닙니까?” 

“아니지 그때도 빈부격차가 더 심한 걸 나는 보고 살았지. 내가 살던 집 뒤가 낙산이었는데 판자집들이 게딱지 같이 암벽언덕에 붙어 있었지. 아래쪽 청계천 뚝방은 몸을 파는 창녀들이 득실거리고. 그런데 동대문만 지나 시내로 나가면 빌딩과 고대광실 같은 기와집이 많았지. 사대문의 벽 하나를 두고 문 밖과 문 안이 달랐지. 그런데 내가 지금 생각해 보니까 감사한 건 하나님이 그런 가난의 고통을 느끼는 신경줄을 아예 잘라 놓았던 것 같아. 주머니가 항상 비어 있어도 그런 가 보다 했거든. 부잣집 아이들이 짜장면을 사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어.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해 주신 게 큰 축복이라고 생각해.” 

그 때 우리 앞에 풍채 좋은 영감이 다리를 절면서 다가와 김변호사를 보면서 물었다. 

“변호사가 무료상담을 해 준다고 옆에 써있는데 맞아요?”

“맞습니다.”

김 변호사가 힘 있는 소리로 상냥하게 손님을 받았다. 그의 어조에서 나는 이 일을 기쁘게 하고 있구나를 느낀다.

“우리 며느리가 아들하고 이혼을 하려고 해요. 그걸 물어보고 싶어”

“아이고 저는 아직 결혼도 하지 못한 미혼의 변호사입니다. 그 인생 상담은 옆에 있는 나이 드신 변호사님에게 물어 보시죠”

김 변호사가 손님을 내게 넘겼다.

“왜 며느님이 이혼하려고 하는 겁니까?”

내가 미소를 지으면서 물어보았다.

“우리 며느리가 직장을 다니는데 바람이 난 것 같아. 아들이 펄펄 뛰고 안 살겠다고 해서 우리 부부가 말렸어. 그래도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살아왔는데 한번 실수 했다고 헤어지면 되느냐고 말이지. 용서하고 살라고 했지. 그런데 이번에는 며느리가 안 산다고 나가려고 하는 거야. 이런 때 어떻게 하면 돼?”

“영감님 훌륭하시네요. 보통 사람 같으면 바람난 며느리를 내쫓아 으려고 하는데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시니까 말이죠. 자꾸 아들을 타이르세요. 그리고 아들의 애정문제는 관여하지 마시고 모르는 체 하세요. 저도 아들 딸 사위와 손자 손녀를 두고 있는데 젊은 사람들 애정문제는 모르는 체 하고 그들에게 맡기는 게 좋습니다.”

상담은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칭찬해 주는 게 방법이다. 마음속에 이미 답을 결정하고 확인하기 위해서 오는 경우가 많다. 영감의 마음이 열린 것 같다. 자기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군대에 오래 있던 사람이요. 지금 나이가 팔십여섯인데 집에 있으면 답답해, 그래서 매일 아침 공짜 지하철을 타고 나와 종묘 앞에 있기도 하고 탑골공원 여기 뒷길을 걸어 다니기도 하지.”

“왜 이 동네로 노인들이 몰리죠?”

“인사동 거리에서 문화행사도 하고 근처 밥값도 싸고 그래요. 그래서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참 별일이네, 우리 때는 변호사 사무실이 얼마나 문턱이 높은지 보통 사람들은 들어가지도 못했어. 그런데 이렇게 길거리까지 변호사가 나오니까 말이야, 정말 세상 좋아졌어.”

영감이 활짝 기분이 좋아진 표정으로 지팡이를 짚고 다리를 절룩이며 갔다.

“11월인데 이제 날씨가 추워지면 우리는 어떻게 하죠? 이렇게 길바닥에서 법률상담을 할 수도 없구요”

김 변호사가 말했다.

“그건 그러네”

“제가 생각해 둔 게 있는 데요 추워지면 뒤의 무료급식소 구석을 빌려 상담을 하는 거예요. 지금은 길바닥이라 물어보는 사람이 많이 오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주눅 든 노인들은 오지 않아요. 그래서 생각한 게 무료상담이라는 전단지를 만들고 어깨띠를 두르고 돌아다니면서 상담할 사람을 구해 안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면 점쟁이 같이 우리 둘 중 한 사람은 삐끼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안에서 손님을 받는 거네”

“그렇죠.”

“그럼 내가 삐끼역할을 하는 게 낫겠네”

“아니죠, 젊은 내가 삐끼역할을 하고 나이 드신 선배님은 안에서 상담을 하시는 거죠.”

“그런데 어깨띠는 마음에 들지 않아,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어깨띠를 띠고 선거 때가 되면 이런 데 돌아다니잖아? 우리도 그런 부류로 오해받을 거 같아. 우리는 그 전혀 반대쪽을 추구하는 거잖아?”

“그러면 어깨띠는 관두죠. 그 대신 ‘거리의 변호사’라고 지어주신 그 이름은 좋겠습니다. 무료변호라는 말은 딱딱하고 그 개념이 참신한데요?”

“나도 미국의 작가 존 그리샴의 소설을 읽고 낸 아이디어야. 거기에 그런 변호사들이 있어.”

전을 걷을 시간이 됐다. 김 변호사와 나는 접이식 플라스틱 상과 의자를 걷어 뒤쪽 무료급식소 창고에 넣고 근처 밥집으로 들어갔다. 작고 우중충한 공간에 서너개의 낡은 나무탁자가 놓인 집이었다. 구석 탁자에 영감 세 명이 돼지머리와 막걸 리가 담긴 양재기를 앞에 놓고 있었다. 우리가 그 옆 탁자에 앉았다. 육십대 말쯤의 얼굴이 검은 여자가 다가왔다. 

“짜장면 두 그릇 주세요”

내가 음식을 주문했다.

“선불이예요, 돈 주세요”

무전취식도 많은 느낌이다.

“짜장면 한 그릇에 얼마죠?”

“2천원요”

“정말 싸긴 싼데요, 다른 데서 먹으면 8천원인데 4분지1값이잖아?”

서민음식도 양극화 된 가격이다. 소설가 김훈은 자기 동네에서 2천6백원짜리 짬뽕과 8천원 짜리 짬뽕으로 음식이 양극화 되어 있다고 강연장에서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짜장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젊은 김 변호사와 종로거리를 걸어 동묘 옆의 벼룩시장으로 데리고 갔다. 

“여기서는 옷부터 시작해서 어떤 물건도 값싸게 구할 수 있어. 이런 시장이 있으니까 돈 없는 사람도 살 수 있지. 얼마전 여기서 기모바지를 싸게 샀어. 오늘 같은 음식을 각오하고 이런 시장에서 옷을 사 입을 각오만 한다면 법의 창녀가 되지 않고 칼러가 확실한 거리의 인권변호사가 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호텔 레스 트랑에서 스테이크와 와인을 먹고 고급빌딩 양탄자 위에서 밤새 부자의 탈법을 궁리하는 변호사도 있는데 과연 거기서 향기가 나올 수 있을까?”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이제 나는 후배 변호사에게 말 한마디라도 해 줄 나이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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