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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편소설]함정 19 - 판결

운영자 2018.04.30 09:45:32
조회 189 추천 0 댓글 0
소설 함정의 마지막입니다.​



판 결

  

재판부에서 예고했던 선고가 한달이 연기됐다. 심교수의 부인이 안절부절 못하며 내게 왜 연기가 됐느냐고 이유를 물어왔다. 재판부에서 결정을 하지 못하고 고민을 하고 있다는 표시였다. 이 재판이 어떤 방향으로 갈까 내가 오히려 호기심이 일었다. 방득만 회장은 로펌의 법률기술자들을 사고 수사권력이 자기 쪽으로 기울에 하는 세상적인 돈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심현기교수는 자기 방어를 할 수 있는 변호능력도 없었다. 말을 하면 할수록 걸려드는 타입이었다. 과학자의 가족답게 아내나 아들도 법정에서 하는 진흙밭의 개싸움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미 진실 싸움이 아니었다. 방회장이 기획을 하고 로펌은 그걸 연출했다. 검사는 그들이 무대 위에서 뛰게 하는 인형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한 건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을 팔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나는 나름대로의 신앙관을 가지고 있다. 모든 인간의 행동의 이면에는 뒤에서 그걸 조정하는 영적인 요소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판사의 결정은 외면적으로는 그의 의지에 따라 결론이 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어떤 영적인 요소가 판사의 마음에 들어가 명령을 내린다는 생각이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를 지켜주는 신이나 악마의 아바타일수도 있다는 인식이다. 심 교수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이쯤해서 하나님의 영이 판사의 마음을 움직일 것 같았다. 순간순간 나는 기도하면서 변론을 한다. 인간인 나의 생각으로 판사를 설득시키는 건 힘들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하늘에 간절히 빌고 변론을 하면 그 기도가 통할 때가 많았다. 성경 속의 욥같이 사탄이 아직도 그를 시험할 게 남았다면 판사들의 마음은 유죄 쪽으로 갈 수도 있었다. 나는 하늘에 계신 그 분의 섭리가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했다.

  

선고일이었다. 지난 30년간 이런 경험을 했다. 내면의 깊은 곳에서 어떤 존재가 계시같이 오늘의 결과를 알려주었다.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가만히 속에서 나오는 세미한 느낌을 감지하려고 애쓴다. 마치 속에 연기가 피어 오르거나 탁한 느낌이면 실패였다. 평안하고 차분한 느낌이면 성공이었다. 마음이 전혀 동요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컸다. 선고시간이 지나자 법정에 갔던 직원한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무죄선고였다. 심교수 부인에게서 감사하다는 전화가 왔다. 감격적인 목소리였다. 판결문을 받아 보았다. 무죄판결의 주요내용은 이랬다. 

‘심현기 교수는 그가 경영하는 회사 토라 명의의 통장에 100억원이 입금된 이후 그 돈을 인출하기 위한 어떤 행동도 취한 바 없다. 만일 피고인에게 편취의 범의가 있었다면 통장의 분실신고와 함께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재발급신청을 해서 그 돈을 찾아가는 게 통상적이라고 할 것인데 당시 피고인은 그런 행동을 전혀 취한 바 없다. 오히려 피해자라고 하는 방득만 회장이 투자금을 자기앞 수표로 인출해 감으로써 결과적으로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했다.’

이어서 재판부는 기술부분에 대해서는 이렇게 판단했다.

‘토라는 방득만이 투자하기 전에 이미 롤투롤 플랫폼 생산라인을 개발하는 정부과제에 참여해 23억원을 배정받아 롤투롤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 과제는 사빅이 요청하는 기술의 수준을 넘어 더 고도화된 기술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토라는 이런 기술들을 별다른 문제없이 사용해 온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방득만 회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답을 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이랬다. 

‘방회장에게 토라가 ALD공정기술도 보유하고 있는지가 관심사였다면 심교수에게 그 기술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그런 사실도 확인되지 않는다.’

당연한 사실의 확인이었다. 그걸 확인하는데 왜 이렇게 멀고 먼 길을 돌아와야 하는지 모르겠다.

  

방회장은 검사를 통해 대법원에 다시 상고를 했다. 항소심이 기술력에 관한 추가심리가 전혀 없었다고 했다. 항소심 내내 기술력에 대한 철저한 심리와 증인신문 그리고 프레젠테이션이 검찰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비전문가인 검사는 열심히 과학자가 되어 기술의 역학적인 구조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검사 본인도 모르면서 쓴 것 같았다. 검사의 주장은 더 이상 먹히지 않을 게 분명했다. 

    

     

대법관님께 

  

존경하는 대법관님, 이것으로 변호인인 제가 항소심에서 진행했던 일들을 대부분 정직하게 말씀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십팔년 만에 약촌 오거리 사건이 마무리됐습니다. 경찰과 검찰이 살인범으로 지목한 16세의 배달원소년의 결백이 증명된 것입니다. 검찰은 수많은 무죄의 증거를 묵살했습니다. 살인현장을 지나갔던 소년이 논리적으로 살인범이어야 한다는 의식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법원은 그 소년에게 징역 십년을 선고했습니다. 소년이 징역생활을 하던 중 진범이 잡혔습니다. 진범은 범행을 자백했습니다. 친구들의 확실한 증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진범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수사번복을 검찰의 치욕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년은 십년을 다 살고 만기출소를 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사회는 그에게 살인범이라는 딱지를 붙였습니다. 이 사건도 형태는 다르지만 같은 구조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심교수가 가진 기술력은 그가 아니라 같은 공과대학교수나 학계 전자제품 업계에 확인하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었습니다. 그 상업화나 사업화의 단계도 업계나 당장 매장에 가기만 해도 알 수 있는 사항이라고 판단합니다. 비전문가이고 적대적인 감정을 가진 한 사람의 모략으로 유죄판결을 할 사항이 아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항소심에서 의 무죄선고에 대해 검사는 항소심에서 기술력에 대한 심리가 전혀 없다고 주장합니다. 증거조사에도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피고인 심교수가 기술력이 없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떤 배경과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검사의 마음은 객관적 증거나 논리보다 처음부터 심 교수 너는 사기범이어야 해. 그리고 징역을 살게 만들거야 하는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다른 말은 들어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사건에서 정말 죄인은 생사람을 사기꾼으로 만들어 감옥에 가게 한 방회장과 그가 산 로펌의 변호사들 그리고 검사와 일심에서 경솔한 판단을 한 판사들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법적인 책임도지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수사나 재판을 하는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경솔한 판단으로 한 인생을 파멸시킨 완장들이 엄한 책임을 져야 하는 세상이 와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대법관님, 당신들은 기록만 보고 재판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선입견을 가진 검사가 쓴 3류 조서문학을 보고 올바른 판단을 하실 수 있습니까? 현실 재판의 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아십니까? 그래서 법의 제단의 뒤쪽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이렇게 장황하게 써 봤습니다. 삼십년전 변호사를 시작할 때 저는 영화속의 빠삐용을 떠올렸습니다. 절대고도에 갇혀 있는 그런 억울한 사람을 자유의 땅으로 건네주는 뱃사공의 역할을 몇 번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습니다. 저의 기나긴 변론서는 심교수를 태우고 건네주는 쪽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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