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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편소설]허망한 인생 5 - 참회

운영자 2018.05.07 10: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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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참 회

  

오후 3시의 태양이 오금역 주변에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저는 구치소를 가는 길을 몰라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죄송하지만요, 성동구치소로 가려면 어디로 갑니까?”

형사사건을 맡아 본 지 오래되었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철조망과 담쟁이덩굴이 무성한 블록담이 보였습니다. 그 뒤로 눈에 익은 우중충한 구치소의 회색건물이 보였습니다. 오랜만에 들어간 구치소의 철문 옆에는 경비교도대원 대신에 출입카드를 인식하는 전자기기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유리박스로 된 접견실에서 허기천을 만났습니다. 갈색의 수인복을 입은 그의 얼굴은 수염이 듬성듬성 자라고 볼이 홀쭉했습니다. 

“지내기가 어때?”

위로하는 마음으로 물었습니다. 

“신체검사를 했는데 혈압이 높고 당이 있으니까 바로 병동에 배치하더라구. 그런데 같은 병동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예수를 믿는 사람이야. 나한테 성경을 주면서 같이 읽고 기도하자는 거야. 그래서 그 사람들을 따라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어. 그런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 거야. 감옥에 들어와서 그런지 조금만 읽어도 거기에 나오는 게 바로 나의 얘기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야. 그 성경속의 말들이 살아서 나한테로 튀어나오는 것 같아. 법원에 소환되어 갈 때였어. 아침에 일어나 성경을 읽는데 그 속에서 ‘흔들리지 말라’라는 말이 튀어나와 내 심장으로 쑥 들어오는 거야. 그래서 그런지 재판을 받아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어. 성경이 살아서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 이상해.”

절망으로 가장 어두운 시절 그에게 빛이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 주고 싶었습니다. 

“맞아 일제시대 오산학교를 설립한 이승훈 선생은 감옥 안에서 신약을 백번 이상 읽었고 구약도 마흔 일곱번 읽었어. 어려서 머슴 살 때 경험을 살려서 감옥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남들이 싫어하는 똥통을 청소하고 빈 시간이면 간수들이 주는 재료로 봉투 만들기나 새끼 꼬기를 열심히 했다고 하더라구. 그렇게 감옥을 살다가 석방될 때 쯤이 되니까 새로운 맑은 영혼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해. 간디 자서전에서 본 건데 간디나 그 제자들은 정식 수행처인 아슈람보다 감옥 안이 더 좋은 수행 장소였다고 해. 거기서 성경도 읽고 바가바드기타도 읽었지.”

“이제 그럭저럭 적응이 되어가는 것 같아. 병동에 있다가 방을 옮겼는데 같은 방에 있는 다섯 명이 모두 육십이 넘었어. 내가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데 나보다 위인 사람은 횡령죄로 들어오고 나같이 사기가 한명 더 있고 다른 한 사람은 폭력 그리고 또 한사람은 음주운전이야. 같이 잘 지내고 있어.”

그의 일상이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면 방을 청소해. 그런 다음 감방에 있는 모두 성경을 펴들고 예배를 봐. 전부 믿는 사람들이야. 그리고 아침을 먹지. 그 다음은 책을 보던지 하다가 오후 한시가 되면 한 시간 운동을 할 수 있어. 그리고 오후에 다시 책을 보고 저녁이면 텔레비전을 보다가 자는 거지.” 

“밥이나 반찬은 먹을 만해?”

“우리끼리 박근혜 대통령도 이 밥을 드시는데 뭘 하고 서로 위로해. 먹을 만 해. 그리고 저녁에 틀어주는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이 방송을 서울구치소에 계시는 박근혜 대통령도 보시는데 우리는 그저 감사하고 봐야지 하고 위로를 받아.”

그가 씩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는 도망자생활을 할 때보다 차라리 마음이 편한 것 같았습니다. 그가 말을 계속했습니다. 

“오늘 네가 올 줄 알았어.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데 오늘 네가 온다고 내면에서 누가 가르쳐 주는 거야. 그런 느낌이 오는데 교도관이 와서 변호사 접견이라고 대기하라고 하는 거야. 요새 그렇게 내면에서 내게 가르쳐 주는 존재가 있어. 감옥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생활이 오히려 마음이 정화되고 즐거운 것 같아. 틈이 나면 오히려 남을 위로해 주기 시작했어. 어제 옆방에 나같이 필리핀으로 도망갔다가 잡혀와 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있었는데 중형이 선고됐어. 다른 구치소로 이감을 가는데 운동시간에 내가 만나 위로를 해줬어.”

그에게 성령이 들어간 것 같았습니다. 성령이 흘러오면 우리의 영혼은 필라멘트같이 환히 빛을 발하고 마음이 밝아진다고 합니다. 말하는 그가 연신 하얀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눈물은 슬픔도 원망도 아닌 기쁨의 눈물 같았습니다. 그 때 저에게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내가 시키는 거 한번 해보지 않을래?”

“뭐?”

“성경속의 시편 23편을 천 번을 써 봐. 그러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몰라.”

그 소리는 예전에 모 부장판사로부터 들었던 얘기였습니다. 지방의 고등학교에 다녔던 그는 어느 날 담임선생으로부터 시편 23편을 천 번 쓰면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는 소리를 듣고 그렇게 했더니 그 고등학교가 생긴 이래로 처음으로 서울법대에 합격을 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사법연수원을 다닐 때 역시 시편 23편을 천 번을 쓰게 했더니 연수원을 수석졸업하고 판사가 되어 서울에 근무하게 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방법으로 간절히 염원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미신 같은 얘기 같지만 종교란 그런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키는 대로 할 께”

그가 순순히 대답했습니다. 얼마 후 하얀 공책에 그가 성경속의 시편 23편을 또박또박 단정한 글씨로 천 번을 써서 보내 왔습니다. 그동안 쉬지 않고 쓴 것입니다. 다음번 그를 봤을 때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음속에서 기쁨이 올라오는 것 같아. 이제 이 감옥생활도 아무렇지도 않아. 그리고 이미 인생을 다 허비했는데 더 이상 삶에 아무 미련이 없어. ‘새벽기도’라는 작은 잡지를 다른 사람이 주길래 봤어. 시편 23편에 대한 해석이 나와 있는데 그 중에 주의 지팡이와 채찍이 나를 지켜주신다는 말이 있잖아? 그게 바른 길로 가지 않을 때 하나님이 지팡이와 채찍을 사용해서 안전한 곳에 가게 해서 보호하신다는 뜻이래. 엄변호사 네가 쓰라고 해서 시편23편을 천 번 쓰면서도 그 걸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아. 주님은 채찍을 써서 나를 이 감옥에 들어오게 하시고 이 안에서 나를 만나주신거야. 친구가 이렇게 무료변호해 주는 것에 대해 그동안 감사인사가 없었어. 미안해. 정말 고마워.”

그의 몸은 고목같이 늙어가지만 영혼은 이제 파릇한 연두색 새싹을 틔우며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그가 마지막 소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재판이 확정되면 따뜻한 남쪽의 교도소로 갔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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