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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편소설] 소설가의 죽음 3

운영자 2018.09.17 09:58:41
조회 199 추천 0 댓글 0
소설가 정을병씨의 죽음

3


나는 법원에 가서 수사기록을 모두 복사해 와서 보기 시작했다. 뉴스를 들은 수많은 소설가들이 그를 엄벌에 처해 달라고 진정서를 써 보냈다. 수사기록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두꺼운 분량이었다. 범죄의 핵심내용은 간단했다. 국가에서 작가들을 위해 원고비를 지원하는 보조금이 협회로 나왔다. 협회의 여직원이 그 돈을 빼내서 차도 사고 애인의 신용카드대금도 대 준 것으로 드러났다. 그 위에 있는 남자직원은 국고보조금으로 아파트를 사고 주식에 투자했다. 그리고 회장은 그 명의의 통장으로 매달 고정적인 금액이 이체된 것으로 밝혀졌다. 여직원이 비자금 통장을 따로 만들어 관리하고 있었다. 조사를 받은 여직원이 담당 형사에게 진술한 내용은 대략 이랬다.

“돈 관리는 단돈 천원까지 정을병 회장의 결제를 받았습니다. 입금, 출금 및 영수증까지 전부 회장님이 꼼꼼하게 챙기면서 싸인을 했죠. 그 분은 자기가 쓰는 소소한 경비까지 협회공금에서 받아갔어요. 말단 직원인 저는 그 돈을 맞추기 위해 정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회장님은 나라 돈은 떼어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형사는 여직원의 옆자리에 정을병 회장을 불러 대질신문을 했다. 

“여직원 말 들으셨죠? 회장님 주도로 거액의 횡령사건이 벌어졌는데 빨리 자백 하시고 사건을 끝내시죠”

“나는 단 한 푼도 횡령한 적이 없소. 내 원고료나 저작권료도 다 돌려 받지 못했는데 무슨 그따위 소리를?”

“여직원이 원고료가 아니고 국고보조금을 횡령했다고 하잖아요?”

형사가 다구 쳤다.

“국고에서 나오는 돈은 바르게 쓰라고 오히려 주의를 줬죠.”

그 말에 여직원이 되받아 쳤다.

“회장님 그런 말씀하시면 안 되죠. 수시로 국고금에 대해 같이 의논하고 따로 비자금으로 챙겨 쓰는 걸 알고 묵인하셨잖아요? 회장님은 그런 사실 다 알면서 왜 그러세요?”

이번에는 형사가 증거를 들이댔다. 

“여기 통장을 보세요. 국고금을 횡령한 비자금 통장에서 바로 정을병이라는 이름의 통장으로 매월 돈이 간 게 분명한데 이게 횡령이 아니면 뭡니까?”

형사는 계속 막다른 골목까지 밀어붙이고 있었다. 

“여직원에게 허위의 결산 보고서를 만들라고 했다면서요?”

형사가 다시 추궁했다.

“그런 적 없어요. 결제가 올라오니까 그렇게 지출된 걸로 알고 싸인해 줬을 뿐입니다.” 

“국고보조금을 횡령하고 말썽이 생기니까 허위자료들을 폐기시키라고 명령하셨다면서요?”

형사가 다시 물었다.

“그런 사실 없다니까요?”

“여직원이 폭로하는데 그런 사실이 없다니?”

덫에 걸린 듯한 그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보였다. 돈이 매달 들어온 그 명의의 통장과 송금영수증은 결정적인 증거였다. 남자직원의 진술도 여직원과 거의 일치했다. 회장의 범죄는 톱니바퀴같이 빈틈없이 맞아 떨어졌다. 


변호사의 시각에서 너무 증거가 명확한 것은 오히려 의심해 볼 필요가 있었다. 정을병 회장이 국고보조금을 횡령하려고 했다면 자기명의의 통장을 만들어 그렇게 받았을까? 바보라도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명계좌나 현찰로 받아야 법망을 피해 갈 수 있다는 건 상식이었다. 더 이상한 건 횡령죄를 저지른 여직원이 구속을 면하고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는 사실이었다. 여직원의 횡령사건은 사회적으로 흔한 경미한 사건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원로소설가이고 사회명사인 정을병씨의 범죄라면 언론의 특종보도를 유발하는 대형사건이다. 피라미를 이용해서 거물을 파괴하고 싶은 수사기관의 욕심이 들어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사기관의 공명심과 승부욕은 없는 범죄사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약점을 잡힌 여직원은 수사기관의 노예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불구속이라는 미끼를 던지면 어떤 모략도 서슴치 않는 게 세상이다. 여론은 이미 최악이었다. 외고집인 정을병씨는 판사에게도 대든 것 같았다. 그는 반성할 줄 모르는 파렴치한 횡령범으로 낙착됐다. 이상한 점이 있었다. 남자직원이 횡령한 돈으로 아파트를 사고 주식에 투자할 정도로 돈을 썼다면 회장인 정을병은 그 이상이어야 했다. 그런데 자기통장으로 송금되어 온 돈을 쓴 액수는 그의 말대로 얼마 안 되는 밥값과 기름 값 정도였다. 고지식한 그가 이용당했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수사서류보다 그와 얼굴을 맞댔을 때 느낀 그의 당당함이 오히려 더 정확한 것 같았다. 사회적 유명인이 파괴되는 과정은 대중들에게 야릇한 쾌감을 주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연예인 최진실도 죽었고 꽃동네의 성자도 쓰러졌다. 그는 모략에 걸렸을 가능성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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