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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사회

운영자 2018.12.24 17:16:35
조회 252 추천 7 댓글 0
우연히 ‘상류사회’라는 드라마를 봤다. 재벌아들 딸과 신분상승을 갈망하는 가난한 집 자식들이 얽힌 통속적인 내용으로 출발하고 있었다. 재벌 첩의 입을 통해 세상은 돈이 계급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가난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 보다는 재벌의 첩이 높다고 파출부 앞에서 선언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돈만 있으면 고졸도 스펙이 없는 것도 얼마든지 포장할 수 있다고 소리친다. 재벌 집 아들이나 딸을 황금사다리로 알고 가난한 집 아이들이 목숨을 걸고 매달린다. 대사 중에 ‘혼텍’이란 용어가 있었다. 결혼으로 신분을 상승한다는 의미 같았다. 재벌 아들딸의 자세도 만만치 않았다. 주위에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 경계하고 있었다. 자본주의시대의 재벌내부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경전 대신에 매뉴얼 북을 활용하고 깨달음이나 낙원 대신에 출세와 고임금을 약속하는 실용주의 시대의 신흥종교가 만연하고 있다. 재벌은 자식들 사이에도 경쟁을 붙였다. 수치로 표현된 판매실적에 의해 자식들의 능력을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재벌 집 자식들 사이에 면도날 같은 섬찟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통속적인 것으로 시작한 드라마는 순수한 사랑이 그 모든 허물들을 덮고 승리한 것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화면에 나오는 인물들의 고민과 눈물 분노와 싸움을 보면서 씩 웃어버리는 나이가 된 것 같았다. 급히 올라가려 하지 말고 탁 놓아버리면 자유롭고 평안할 텐데 젊은 날 왜 그렇게 조급한 마음을 가졌었을까 돌이켜 보게 된다. 자기 그릇의 크기를 알고 거기에 담길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알고 홀로 천천히 여유롭게 인생을 산다면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말 잘 듣는 개처럼 절대 굴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다. 돌고 도는 게 돈이어도 아무나 부자가 되는 게 아니었다. 탁한 세상물의 어느 지점에 물고기가 많다는 걸 알아차리는 어부처럼 돈도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버는 것 같았다. 어떤 면으로는 영혼을 팔아야 들어오는 존재가 돈이었다. 그래서 예수님도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30대말 무렵 나는 자신의 무능력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나는 공무원 조직에서 출세하기 불가능한 인간이었다. 꿈으로 현실을 부인하려고 해서 그렇지 자신을 잘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나는 돈을 버는 능력도 없는 걸 깨달았다. 사업능력이 출중한 주위 친구들의 예견력과 그들이 쓰는 화두같은 단어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때로는 책을 통해서 진리를 알려주기도 했다. 그 무렵 읽은 어떤 정신세계에 관한 책을 읽다가 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은 세일즈맨이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역 광장을 뛰고 있었다.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노숙자가 무심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실적을 올리는 세일즈맨에게 노숙자는 집도 차도 아무것도 없는 한심한 거지였다. 그런데 노숙자의 시선으로 세일즈맨을 보는 부분도 글에 나와 있었다. 그냥 모든 걸 내려놓으면 당장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하얀 구름이 보이고 편안할 텐데 왜 저렇게 진땀을 흘리며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사는 것일까? 노숙자나 거지라도 그 마음의 중심에 진리가 있으면 그는 더 이상 거지가 아니라 도인(道人)이었다. 부처는 아침에 일어나면 한 끼 밥을 얻으러 다녔다. 예수는 여우도 굴이 있지만 자신은 머리를 둘 곳조차 없이 가난하다고 했다. 마음속에 진리만 담으면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때 사표를 내고 작은 법률사무소를 차렸다. 사람마다 부지런 하면 제 한 입 먹을 재주는 하늘이 내린다고 했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의 딱한 사정을 글로 만들고 거기에 양념을 치듯 약간의 법률지식을 가미해 서류를 만들어 주는 게 생업이었다. 그 재주만으로도 가족의 입에 밥은 들어왔다. 정작 생존하는데 필요한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낮이면 법정에 나가 일을 하고 저녁이면 돌아와 책을 읽고 틈틈이 작은 글들을 써서 개인블로그에 올렸다. 골방에서 쓴 잡문이라도 몇 몇 사람은 보고 즐거워 해 주면 좋았다. 변호사를 하면서 느낀 깨달음을 귀가 열린 소수의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얼마 전 재벌가 땅의 매매 계약서를 써 준 적이 있다. 수백억을 받는 거래인데도 그 회장은 요즈음 너무 골치가 아프고 불행하다고 했다.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은 고민을 하기 마련이다. 엊그저께는 노숙자들이 묵는 합숙소에서 만난 인물의 전화를 받았다. 가난한 그는 떠돌다가 탈북자모양으로 오히려 북한으로 넘어갔다. 살기가 힘들다는 단순한 동기였다. 북한당국은 그가 쓸모가 없다고 여겼는지 판문각을 통해 다시 그를 남쪽으로 쫓아냈다. 그는 몇 달간 감옥에 있었다. 법원은 그를 감옥에서 공밥을 먹이는 게 싫었는지 그곳에서도 내쫓았다. 그가 몇 년 만에 내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요즈음 어떻게 살아요?”

내가 안부를 물었다.

“합숙소에서 나와 변두리에 방을 얻었어요. 살만해요.”

“혼자서 살죠? 밥은 어떻게 먹어요?”

내가 물었다. 그는 벌써 칠십대 중반을 넘은 노인이다.

“정부에서 주는 돈이 한 달에 칠십 만원정도 되요. 그 돈이면 혼자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행복의 총량이나 고통의 십자가의 분량은 대충 비슷한 것 같다. 상류사회는 또 하나의 신기루 같은 허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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