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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한 국민

운영자 2020.07.27 10:08:57
조회 199 추천 2 댓글 0
지난해 세계 일주 크루즈 선을 중간항구인 싱가포르에서 타서 베네치아까지 간 적이 있었다. 이십 명 가량의 한국인들이 타고 있었다. 사람들이 두 패로 갈려 있었다. 재벌의 아들이나 부자들이 한 편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이 있었다. 세계일주 크루즈 선을 탈 정도의 형편을 가난한다고 하면 조금은 역설적이지만 그렇게 말을 해도 무리는 아닐 것 같았다. 평생 동사무소에서 하급공무원을 하면서 조금씩 저축해 오다가 퇴직을 하고 여행길에 오른 여성이 있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나이 칠십이 넘자 평생소원이던 세계여행길에 오른 노부부도 있었다. 나이를 먹고 돈이 없어지자 서울의 아파트를 팔고 지방으로 옮기면서 그 차액으로 남는 돈을 과감히 마지막 여행에 투자한 부부도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배를 탔을 때 그들은 이미 여행일정의 중간쯤 지난 후였다. 천국 같은 여행을 꿈꾸던 한국인들은 모두 지옥에 빠져 물고 뜯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파트를 팔아서 여행을 온 노부부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왕년에 경찰청장을 했다는 사람이 있는데 어찌나 교만한지 모르겠어요. 여기서도 권력과 돈 자랑을 하는 거예요. 그거 다 옛날이 경찰 하면서 돈을 먹은 걸 거예요.”

여행길의 그 노인 부부는 증오와 한이 가득 차 있었다. 배의 갑판에서 인도양을 보면서 감상하고 있을 때 동사무소의 하급공무원으로 지냈다는 독신여성이 와서 이렇게 말했다.

“재벌 아들이라는 사람에게 제가 먼저 인사를 했어요. 그런데 인사조차 받지 않는 겁니다. 어떻게 저렇게 건방질 수가 있습니까? 제가 한번 따지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무시당했다는 감정이 미움으로 변해 있는 것 같았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평생소원인 세계일주 여행길에 오른 부부는 이렇게 말했다.

“높은 경찰청장님을 했다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겠슈. 그냥 밥을 드실 때 마다 우리 부부가 그 앞에 얌전히 앉아서 말씀을 들어유.”

그 부부는 진짜 그런 것 같았다. 또 다른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집단에서 스스로 떨어져 외국인들 하고만 상대하고 있었다. 그 남편이 되는 사람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부자인 셈입니다. 그리고 철저한 보수죠. 진보세력이나 좌파를 미워해요. 저는 책도 많이 읽은 사람입니다.”

그는 자랑을 하지만 공허해 보였다. 그에게 믿음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제 앞에서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걸 증명하면 내가 믿도록 하죠.”

그렇게 말했다. 잠시 탄 외국 배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모습이 고스란히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지금의 젊은이들 중에는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저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장 먹고 살 게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 상태들이 지옥인지도 모르겠다. 대중들은 누군가 제단에 올릴 증오의 대상을 찾는다. 대통령이 그 대상이었다. 노무현 때 엘리트 그룹은 심하게 자존심을 다친 것 같았다. 그를 인정하지 않고 싶어 했다. 국회에서의 탄핵도 결국은 그런 질투와 시기심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광우병 사태 때 선동방송을 만든 작가의 이메일에서는 이명박에 대한 증오가 하늘을 찔렀다는 내용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온갖 모략의 가짜 소문이 감돌고 대중들을 분노하게 했었다. 요즈음은 문재인을 증오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많이 보인다.

삼성의 이재용을 사법 처리 하자는 주장 속에 그를 파멸시키고 싶은 시기와 질투가 한 방울도 없는 것일까. 개인이나 국가나 외부의 고난만 있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 오는 고난도 있는 것 같다. 미움, 질투, 불평, 교만 이 모두가 명백한 고난이다.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는 것도 고난이지만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도 고난이다. 나는 나이를 먹고 뒤늦게야 행복해지는 방법들을 배우고 있다. 요즈음은 절대로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음악과 그 박자대로 걷고 다른 사람은 그들의 음악과 박자에 따라간다. 왕이 있으면 문지기 병사도 있는 법이다. 자기가 하는 일이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면 불평할 일이 적어진다. 이 세상에 절대적 평등은 없다. 불공평과 불공정이 악마가 지배하는 이 세상의 속성일 수 있다. 인간이 빵만으로 살 수 없듯 국가도 마찬가지다. 경제만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개인이나 사회에 가득 차 있는 미움, 질투, 불평, 교만이라는 내부적인 고난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이 나라가 정신적으로 성장해야 진짜 일류로 진입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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