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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순간들

운영자 2020.07.27 10:09:19
조회 236 추천 2 댓글 0
예전에 감옥에서 한 사형수를 만났었다. 그 때문에 여러 명의 생명이 희생됐다.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내가 교회에 미쳤습니다. 집안은 돌보지 않고 새벽부터 예배당에 나가 살고 일주일 내내 교회 사람들하고만 어울렸어요. 일하고 저녁에 집에 가면 밥도 해 놓지 않은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밤에 집에 돌아와 보니까 애들이 밥도 먹지 못한 채 구석에서 잠들어 있는 거예요. 너무 화가 치밀었죠. 그래서 석유통을 들고 그 교회로 가서 불을 질러 버렸어요. 그런데 입구에 불이 붙는 바람에 윗층에 있던 여러 명이 다 불에 타 죽은 거예요. 그래서 저는 사형을 선고받았죠. 지금은 정말 그렇게 후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의 분노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분노가 자신과 남을 불태워버렸다. 그가 덧붙였다.

“역대 대통령들이 사형집행을 지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럭저럭 감옥안에서 목숨을 부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은 성격이 모진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퇴임하기 전에 우리 사형수들을 모두 죽일 거라는 흉흉한 소문이 이 안에서 돌고 있습니다. 저는 영원히 이 감옥 안에 있더라도 살고 싶습니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말도 안되지만 재심을 신청하면 그 처리기간 동안은 사형집행이 연기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단 한 달 아니 며칠이라도 더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 같았다. 나는 그가 분노의 순간을 참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조직폭력배들 중에는 분노가 폭발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앞에 시체가 있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사람이 분노하는 순간 자기는 없어지는 것 같았다.

이십여년 전 탈주범으로 유명하던 신창원을 변호한 적이 있었다. 그는 감옥에서 소년범으로 살던 시절의 혹독한 고통을 얘기했었다. 교도관들이 그를 수갑에 채워 철창에 대롱대롱 매단 적도 있다고 했다. 또 재래식 화장실의 똥통 구멍에 머리를 쳐박게 하기도 했다고 했다. 악질이 되기는 너무 쉬웠다고 했다. 그렇게 고통을 당하면 누구라도 금세 눈에 핏발이 서고 살기가 돌기 마련이라고 했다. 그는 감옥을 탈주해서 찾아간 곳이 있다고 했었다. 자기를 가장 괴롭히는 교도관의 집이었다고 했다. 그를 죽이려고 그 집에 스며들어 방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와 아이들이 곤하게 자는 모습을 보면서 살인을 할 마음을 접었다고 내게 고백한 적이 있었다. 무참한 가족 집단살인의 위험이 있던 순간이었다. 나의 개인법률사무실에도 여러 명의 악마가 찾아왔었다. 평범한 주부같이 보이는 여자였다. 남편이 전에는 판사였고 지금은 변호사라고 했다. 그녀의 사건을 맡아 내용을 살피다가 속으로 기겁을 했다. 밤에 자는 남편을 칼로 찌른 독한 여자였다. 남편의 변호사 사무실에 있는 사건기록이나 증거물을 모두 차에 싣고 가서 불을 질러버렸었다. 그런 행동을 할 동기가 남편에게 있는지 살펴보았다. 남편의 불륜이나 학대가 없었다. 여자의 원인모를 정신적 증세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나는 그 여자의 속에 악령이 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 거짓이었다. 나는 아예 사건을 맡기를 거절했다. 그러자 그 여자가 사정하는 얼굴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변호사가 도중에 사임을 하면 판사들이 나쁘게 봅니다. 제가 판사 부인으로 있었기 때문에 알아요. 그러니 법정에 나가시지는 않아도 그냥 서류상 변호사로 있어 주세요.”

나는 그녀의 사정에 말려들고 말았다. 별 손해는 없을 것 같아 허락한 것이다. 그 일 년 후 법원에서 소장이 내게 날아들었다. 그 내용을 보면 나는 사건을 맡고도 법원에 단 한 차례도 나가지 않은 악덕 변호사였다. 그렇게 당했다. 화가 나고 그녀가 미웠다. 돈을 받고 그녀의 기계가 된 변호사도 미웠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오는 악마가 제법 많았다. 그런 악마를 만날 때마다 분노가 치밀고 미움이 속에서 들끓었다. 나도 모르는 순간 나의 속에 악령들이 수없이 떼를 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성내고 남을 미워하는 건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는 일이었다. 또 그것은 악령을 초청해서 나도 악마가 되는 일이기도 했다. 기도로 마음의 방을 청소하려고 애를 쓰는데 잘 되지를 않는다. 그래도 먼지가 쌓이는 것 보다는 수시로 닦아 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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