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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원 천사

운영자 2017.03.10 14:55:24
조회 144 추천 0 댓글 0
37년 전 결혼을 하고 신촌역 부근의 쪽방을 얻어서 살 때였다. 한집에 열 가구 이상이 세 들어 사는 집이었다. 층계참에 석유풍로를 놓고 아침이면 노란 양은찜통을 들고 보일러실에 물을 가지러 가곤 했었다. 낮에는 도서관에 공부를 하러갔다가 땅거미가 질 무렵이면 새색시가 된 아내한테 돌아오곤 했다. 


​어느 날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입구에 있는 구멍가게 앞에 빨갛게 익은 탐스러운 사과가 보였다. 사과에 붙은 금딱지가 알전구의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았다. 달랑 오백원짜리 동전하나가 가진 돈의 전부였다. 다행히 사과 한 개가 오백원이었다. 그 사과 한 개를 사가지고 쪽방에서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에게 내놓았다. 아내의 얼굴이 사과같이 붉게 피어올랐다. 돈이란 이렇게 작은 행복을 만드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을 했었다. 


​이따금씩 우리 부부는 명동으로 나가 갈비집 으로 들어갔다.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석쇠위에 노릇노릇 구워지는 갈비가 지나가는 손님에게 다 보이도록 한 집이었다. 고기가 구워지는 달콤하고 기름진 냄새가 문틈으로 흘러나왔다. 우리 부부는 돈이 없었다. 벼르고 별러서 가서 일인분을 시켜놓고 함께 먹었다. 나는 그때 갈비 일인분을 먹을 수 있는 돈의 위력을 알았다. 그런 날이면 저녁이 온통 행복의 색깔로 물들곤 했다. 


​삼십대 초반에 변호사가 됐다. 30년이란 세월저쪽의 그 시절은 나름대로 변호사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변호사라고 하면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으로 인식되던 때였다. 어머니는 길가의 변호사사무실 간판을 보면 합장을 하고 아들이 그렇게 해달라고 빌었다. 


​돈이 두둑하게 들어온 어느 날 저녁이었다. 아내를 불러 함께 명동의 유명의상실을 찾아갔다. 디자이너가 이름이 난 여자였다. 쭈빗 거리는 젊은 부부를 보면서 얕잡아 보는 눈치였다. 의상실 마담은 아내에게 어울릴 듯한 몇 벌의 옷을 내놓고 선택하라고 했다. 아내는 이 것 저것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내가 의상실 마담에게 말했다.


“저 옷들 다 포장해 주세요.”


의상실 마담의 얼굴에 경악하는 빛이 서렸다.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닌 것 같은데 다 달라고 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갑자기 태도가 달라졌다. 동시에 그녀의 얼굴에서는 굴욕감 같은 게 엿보이기도 했다. 어울리지 않게 돈을 쓰는 나에 대한 저항감 같았다. 사실 주눅 든 아내의 기를 살려놓고 싶었던 것이다.


 그 시절은 접대문화가 만연했었다. 더러 일을 도와준 판검사들을 고급음식점이나 술집에서 접대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겉으로는 내가 고개를 숙이는데 모든 사람이 돈을 쓰는 내게 마음으로 숙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룸 쌀롱의 여사장은 높은 놈이 아무리 많이 와도 자기네한테는 돈 내주는 사람이 왕이라고 표현했다. 그 시절 선배 한분이 이런 말을 내게 했다.


“여러 종교가 있고 여러 신(神)이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신이지. 그 돈에 대한 욕망을 절제할 수 있으면 바로 신에 가까이 되는 거야. 그런데 그 어떤 사람도 돈 앞에는 무릎을 꿇어 권력은 사람을 겉으로만 굽게 만들지만 돈은 그 사람의 영혼까지 마비시켜 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 선배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교회도 절도 앞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고 부처가 점잖게 앉아 있지만 돈을 섬기는 신이 들어와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돈이라는 게 그냥 들어오지 않았다. 그 속에 낚시 바늘이 숨겨있거나 악마가 섞어놓은 독이 들어있었다.


 한 대기업 사장이 밀수로 걸렸다면서 변호를 부탁했다. 미꾸라지 같은 그의 법망 빠져나가기는 완벽했다. 이미 검찰을 매수해 놓았다. 회사 자재부장이 대신 감옥에 들어가도록 속죄양도 만들어 놓았다. 밀수는 이중삼중의 무거운 형이 부과되던 시절이었다. 그 사장은 내게 변호료로 억대를 넘는 거액을 내놓았다. 청와대 사정비서관이나 그를 소개한 국회의원과 절친한 나의 배경을 이용하려는 댓가인 것 같았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감옥에 들어간 자재부장 부인이었다.


“변호사님 제 마음이 이상해요. 사장님은 우리 남편의 모든 일이 잘 될 거라고 말씀하시지만 제 깊은 마음속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느낌이 일어요. 변호사님을 찾아가 사정을 물으면 사택에서 쫓아내고 회사에서 주는 모든 혜택을 없애버리겠다고까지 하세요. 우리남편 입사해서 지금까지 새벽에 일어나 회사에 다니던 성실한 사람이예요. 지금도 사장님에게 충성하는 것 밖에 몰라요.”


그 한마디가 나의 양심의 호수에 커다란 바위를 던진 것 같았다. 심하게 양심이 출렁거렸다. 마음속에서 두 개의 내가 싸웠다. 변호사가 다 그런 거지 뭐. 남들이 하는데 어때. 그런 사정까지 봐주면 언제 돈을 벌어. 돈은 맛은 마약 같았다. 


​그러나 또 하나의 나가 영혼을 가시같이 쿡쿡 찌르고 있었다. 이 순간을 적당히 넘어가면 너는 돈에 팔려 영혼이 없는 인간이 되는 거야. 그리고 물 저쪽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네가 낚시 바늘을 삼키기만 기다리는 자를 한번 생각해 봐. 현실에서 악마의 유혹을 이기기는 정말 힘들었다. 


​일주일간을 고뇌하다가 그 돈을 돌려주었다. 그에 대한 댓가는 철저한 욕설과 비난이었다. 그렇지만 하늘이 주는 또 다른 댓가가 있었다. 그것은 자유였다. 나는 다음부터는 억대의 돈이라도 현혹되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사탄과 싸운 소중한 경험을 작은 수필집 속에 담아 내놓은 적이 있었다. 


​고위직 판검사를 하고 나와 전관예우라는 이름으로 거액에 팔려 법의 창녀가 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혹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돈보다는 정의가 앞서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소망이었다. 솔직히 혼탁한 세상에서 나의 어리석고 순진한 글을 읽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비양 거리고 입을 비쭉거리고 무시하는 게 세상이기도 했다. 세월이 이십년쯤 흘렀다. 우연히 내가 하는 블로그에서 이런 댓글이 실려 있는 걸 봤다.

  

‘변호사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나라면 거액의 수임료를 돌려줄 수 있을까? 그것도 내 형편이 어려운데, 아마 저라면 지그시 눈을 감고 그 돈을 받았을 겁니다. 하나님 한번만 눈감아 달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어쨌든 변호사님의 영향으로 저 역시 보육원에 지금까지 대략 2억원을 후원했습니다. 그때마다 제 맘에 느끼는 것은 하나님이 저를 돌보신다는 겁니다. 변호사님의 귀한 글 항상 음미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댓글을 읽으면서 눈이 촉촉해져 왔다. 나는 너무 큰 보수를 받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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