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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은 무엇을 쓴 책인가

징갤러(14.32) 2023.11.13 15:58:24
조회 497 추천 23 댓글 7


징비록은 임진왜란을 극복한 류성룡의 전략을 쓴 책 입니다.


류성룡은 이러한 사실을 3번에 걸쳐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 국가대계라는 표현을 통하여 임진왜란 극복전략(=>국가대계)이 있었음을 설파하였습니다.(강영순 임진왜란 34~38쪽 참조)


국가대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쟁초기에는 최선을 다하여 적을 막는다.

만에 하나 중과부적으로 한양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 경우에는 잠시 평양으로 파천하여,

임금이 포로로 잡혀 조선을 일본에 헌납하는 대재앙 만은 피한다.

그리고는 조선수군(이순신장군)을 통하여 바다를 통한 보급로를 차단한다. 또한 명나라에도 지원을 요청한다.

왜적이 부산에서 평양까지 길게 늘어짐으로서 허리가 약해진 틈을 노려서 흩어진 지방관군과 의병.승병의 궐기를 도모한다.

그리하면, 다소 희생을 치르더라도, 마침내는 왜적을 몰아 낼 수 있다.


징비록은 전쟁과정을 순차적으로 비교적 상세히 기록한 것은 맞지만 , 이순신 압송 전까지의 기록은 전쟁이 자기가 세운 국가대계에 의하여 극복되어 가는 과정을 쓴 것이기도 합니다.

즉 류성룡은 전쟁의 진행과정과 자신의 전쟁극복과정을 합쳐서 하나의 책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 입니다. 이는 류성룡의 탁월한 글솜씨 입니다.


***


둘째로는 : 징비록 녹후잡기 "왜적은 최고로 간교하고 교활하다"로 시작되는 글에서 "왜적의 전략 실패는 우리(조선)에게는 다행이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전략이 실패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상대방의 전략이 성공했다는 뜻 입니다. 즉 일본의 전략이 실패했다 함은 조선의 전략이 성공했다는 표현입니다. 조선의 전략은 류성룡이 만든 국가대계를 말합니다.

특히 "왜적의 전략 실패는 우리에게는 다행이었다" 라는 글 앞에 송나라 장수 장숙야 등을 인용하여 쓴 글은 자신이 어떻게 일본의 거센 공격을 누그러뜨려 왜적을 물리칠 수 있었는가를 설명한 글 입니다.


***


셋째로는 : 징비록 맨 마지막에 심유경을 소환하여 우회적으로 썼습니다. 잠시 보겠습니다.

심유경이 마침내 무기나 군사가 아닌 구설(口舌)로서 수많은 왜적들을 몰아내고 수천리 땅을 되찾았다.

그런데 마지막 하나의 일이 잘못되어 큰 화를 면하지 못하였으니 애석하도다.


===> 심유경을 류성룡으로 바꿔보겠습니다. 그리하면...


나 류성룡은 마침내 무기나 군사가 아닌 구설(口舌)로서 수많은 왜적들을 몰아내고 수천리(삼천리 금수강산) 땅을 되찾았다.

그런데 마지막 하나의 일(이순신의 압송)이 잘못되어 큰 화(정유재란)를 면하지 못하였으니 애석하도다.

{口舌=임진왜란 극복전략인 국가대계를 실행하는 일은 말로써 하는 것이므로 이를 口舌이라고 표현함}


===> <심유경이 수천리 땅을 되찾았다>고 쓴 위 글은 상당히 어려운 글 입니다. 류성룡은 왜 갑자기 심유경을 극찬하면서 징비록을 마무리 했을까요? 누구나 한번쯤은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삼천리 금수강산을 찾은 것은 심유경이 업적이 아닙니다.

류성룡은 왜적이 심유경과의 화해를 핑계로 물러날 때마다 조명연합군이 합심하여 왜적을 몰아쳤다면 전쟁을 조기에 끝낼 수 있었음을 매우 안타까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징비록과 선조실록을 교차 검증해 보면 삼천리 금수강산을 되찾은 것은 류성룡의 임진왜란 극복전략(국가대계)이 가져온 업적임이 분명합니다

(강영순 임진왜란 208쪽 참조).

무엇보다도 징비록이라는 일생일대 회심의 대작을 최종적으로 마무리 하면서 심유경을 칭찬할 이유가 없습니다. 특히나 바로 직전의 글에서 심유경의 편지를 논평하면서 심유경의 공과 죄는 서로 덮고 가릴 수 없다고 썼습니다. 그 뜻은 심유경은 공도 약간 있지만 잘못이 더 크다는 뜻 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심유경의 잘못은, 1593년에 심유경이 적극적으로 화해협상에 응하면서 수시로 쌍방간에 전투를 금지하는 바람에, 수세에 몰려 퇴각하는 일본군이 큰 피해 없이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퇴각한 것을 의미 합니다. 뿐만 아니라, 왜적들은 심유경과 화평을 논의하면서도 부산포를 중심으로 끝까지 남아 재침을 위한 교두보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지적한 말이기도 합니다. <심유경의 공과 죄는 서로 덮고 가릴 수 없다>라고 한 말은, 바로 다음에 쓴 <수천리 땅을 되찾은 것>이 심유경의 공이 절대 아니다 라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는 류성룡의 글 쓰는 스타일 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류성룡 자신은, 장수가 아닌 참모이기 때문에, 무기나 군사가 아닌 전략(국가대계)으로서 나라를 구했으나, 이순신의 압송이라는 돌발 악재를 만나서 정유재란을 초래하여 매우 안타깝다는 심정을 우회적으로 쓴 글 입니다.


이 말 한마디 하려고 뜬금없이 심유경의 긴 편지까지 동원한 것 입니다.


류성룡은 징비록을 최종적으로 마무리 하면서 이 말을 얼마나 쓰고 싶었을까요 ?

그렇다고 이러한 사실을 직설적으로 쓰자니... 자기를 믿고 키워 준 선조의 잘못을 드러내야 하고...

이를 어떤 식으로 써야만 하나?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영의정 류성룡의 고민을 생각하면 저도 눈물이 납니다.


결국, 직설적으로 쓸 수 없다면, 자신을 누군가에 비유하여 쓰긴 써야겠는데...

심유경은 장수가 아니므로 자기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여겨 심유경을 소환하여 그토록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자신이 미리 전략을 세워 임진왜란을 극복함)를 클로징 멘트로 남긴 것 입니다.


그러나 막상 심유경을 소환하여 쓰고 보니 또다른 걱정이 생겼습니다. 만약 아무도 내 진의를 알아 보지 못하고, 정말로 심유경이 수천리 땅을 찾은 것으로 생각하면 어쩌나?

안되겠다 ! 심유경의 잘한 점과 잘못한 점을 상세하게 써서 독자들이 내 진의를 알아보도록 해야겠다...그래서 등장한 것이 심유경의 편지와 그에 대한 논평 입니다.


류성룡이 세운 공은 남의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류성룡이 하는 일은 왜적을 물리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는 일이므로 비밀 유지가 최대의 관건이기 때문 입니다. 임진왜란 내내 선조임금 말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혼자만이 비밀입니다. 훗날 낙향하여 밤마다 소쩍새 우는 소리를 들으며 이렇게도 썼다가 지우고, 또 저렇게도 썼다가 지우고... 그 고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심유경을 소환하여 쓴 위 글은, 한편으로는 징비록 전체를 단 두줄(원문 기준)로 압축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단 두줄로 압축한 대단한 문장입니다.


제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은 류성룡 선생의 글 쓰는 스타일을 알기 때문입니다. 류성룡은 자신의 업적을 쓸 때마다 매우 어렵게 썼지만 그 앞에다 자신의 진의를 알아 볼 수 있도록 미리 부연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대계를 쓸 때도 그랬지만, 안주에서 육탄방어를 할 때도 혹시나 못 알아볼까 싶어 앞에다 <인심이 동요할까 염려되어>라고 부연 설명하였고, 정유재란 당시 미리 왜적의 퇴각을 예측할 때에도 앞에다 <왜적을 두려워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라고 부연 설명을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최종적으로 징비록을 마무리 하면서 너무나 큰 일을 쓰려다 보니, 자신의 마지막 회심의 글(최종 멘트) 앞 뒤로 심유경의 잘못을 3번에 걸쳐 명백하게 씀으로서, 자신이 마지막으로 심유경을 칭찬한 글이 심유경을 칭찬한 것이 아님을 암시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징비록을 마무리 하면서 맨 마지막에 별도로 한 페이지를 할애하여 ( 심유경에 대한 류성룡 스스로의 평가와는 180도 다르게) 심유경이 수천리 땅을 되찾았다고 칭찬했기 때문입니다.


류성룡의 국가대계는 본인의 기대보다, 그리고 본인이 알았던 것보다, 훨씬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 이유는 왜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라고 보낸 이순신장군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것처럼 전대미문의 활약을 펼쳐줬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순신장군의 한산도대첩 덕분에, 일본 육군은 가장 필요한 탄약을 보급 받을 수 없게 되어 전쟁 3개월만에 퇴각 절차를 시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전쟁은 시작한지 3개월만에 승패가 갈린 것 입니다. 물론 그후에 명나라 지원군이 오고, 의병.승병들이 자발적으로 궐기함에 따라 생각보다 빨리 왜적들을 일본으로 몰아낼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합니다. 이상은 어느 것 하나 류성룡의 작품(전략)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임진왜란 전부터 오늘날 까지 류성룡의 국가대계를 알고 있던 사람은 단 한사람 선조임금 뿐 입니다. 류성룡이 (극비의 전략이라서) 선조임금에게만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선조실록을 두루 살펴보면 선조는 류성룡에게 수시로 감사의 마음을 표명하고 있으며, 실제로 국가대계가 있었음을 엿 볼 수 있는 선조의 발언도 3차례 이상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선조실록(1594.05.28 : 영의정 유성룡이 병으로 사직을 청하다)을 보면 선조임금이 직접 "류성룡만 있으면 왜적의 평정쯤은 걱정거리도 못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한 시기는 마침내 일본군 병력의 대부분이 일본 본토로 퇴각하고 일부병력만 남해안에 성을 쌓고 버티던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선조의 이 말은 남해안 일부를 제외한 수천리 강토를 되찾은 것이 류성룡의 업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선조는 심지어 영의정 류성룡을 약 20일간 궁궐에 감금한 적도 있었습니다(선조실록 1594.01.14, 1594.02.02 참조). 류성룡이 퇴근 후 궁궐 밖에서 자다가 일본의 자객들에게 테러라도 당할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류성룡이 답답함을 참지 못하여 스스로 궁궐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기네스북에 오를 뻔 했습니다. 선조가 류성룡의 국가대계를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들 입니다.


***

류성룡은 징비록 맨 마지막에 추가로 한마디 글을 남겼습니다.


심유경이 한양에서 고니시를 찾아가 말했다. "내가 너와 친해서 특별히 말해준다. 곧 명나라 대군이 서해를 통하여 충청도에 상륙하여 너희들의 퇴각로를 끊을 것이다. 그리되면 퇴각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고니시가 두려워하며 한양성에서 퇴각했다. 이 일은 심유경이 우의정 김명원에게 말해주고, 김명원이 다시 나에게 말해 주었다.


이 글 역시 상당히 어려운 글 입니다. 이 글을 이해하려면 당시의 전쟁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이 당시 일본군은 남해 바다가 이순신 때문에 막히자 탄약을 운반할 방법이 없어, 탄약고가 있는 부산포로 신속히 퇴각해야만 했었습니다. 그러자 고니시는 꾀를 내어 심유경과의 화해협상을 최대한 이용합니다. "자! 우리가 화해를 위한 성의 표시로 부산으로 퇴각해 줄테니 조명연합군으로 하여금 우리를 추격하지 못하도록 해 주시오."

심유경은 자신이 고니시에게 이용당한 것은 까맣게 모르고, 오히려 자기가 고니시를 협박하여 일본군을 몰아낸 것처럼 김명원에게 떠들어 댔던 것 이었습니다.


당시 류성룡은 명나라 장수들에게 한양에서 부산으로 퇴각하는 일본군을 추격하여 모조리 섬멸하자고 열심히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명나라 장수들이 요리 핑계 조리 핑계를 대면서 끝내 일본군을 고이 보내 주고야 말았습니다. 이는 심유경이 내가 화해를 성립시켜 일본군이 철수하기로 했으니 약속대로 일본군을 추격하지 말라고 명나라 장수들에게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일본군들은 급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듯,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여유롭게 부산까지 퇴각하였다고 징비록 본문에 썼습니다. 결국 류성룡은 울화병이 나서 1593년 4월 23일 몸져 눕고야 말았다고 썼습니다.


***

징비록의 이 마지막 글을 읽고 저는 처음에는 뭔 뜻인지 모르고 씌여 있는 그대로 생각하여 (심유경,김명원,류성룡은 고니시의 마음속 진짜 고민은 몰랐던 것 같다)고 썼습니다(책 234쪽 참조).

이제서야 곰곰히 살펴보니 이 글은 (고니시의 화해전략에 넘어간) 심유경이, (탄약을 보급 받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부산으로 퇴각하는 일본군의 추격을 금지하도록 조명연합군에게 지시하는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거꾸로 일본의 퇴각이 마치 자신의 공 인양 떠들어 대는 심유경의 어처구니 없음을 류성룡이 우회적으로 지적한 글 이었습니다.

정말 어렵죠 ? 혹시 저만 아둔하여 이제야 알아본 것인가요? 정식으로 류성룡님에게 사죄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전에 이미 제 책을 보신 독자분들께도 용서를 구합니다.


그렇다면 류성룡은 왜 징비록 맨 마지막에 이 글을 올렸을까요 ?

그것은 바로 앞에 쓴 "심유경이 수 많은 왜적들을 몰아내고 수천리 땅을 되찾았다"란 글이 정말로 심유경을 칭찬한 것이 아니고, 자기(류성룡)를 심유경에 빗대어 쓴 글이니, 이를 알아 달라는 류성룡 특유의 글솜씨 입니다.


***

류성룡은 (먼 훗날 심유경을 논하는 사람들은) 심유경의 편지를 보고 판단하라고 적었습니다. 류성룡의 깊은 뜻을 모두 알 수는 없으나 심유경의 편지 속에 금방 눈에 띄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일본이 부산포를 중심으로 재침략의 교두보를 끝까지 고수한 것을 두고, 자신(심유경)이 왜장들을 구슬려 부산에 묶어 두었다는 표현입니다.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더 가관인 것은 사명대사 송운스님이 가토 기요마사와 회담하고 국왕에게 보고한 내용을 보고 마치 송운스님이 조작한 것처럼 오해하고, 오히려 가토 기요마사를 두둔하고 있는 점 입니다. 사명대사는 가토가 하는 말을 듣고 그 느낌 (왜놈들이 기어코 다시 쳐들어오려고 하는구나)을 제대로 전달했습니다. 말하자면 정유재란이 곧 시작될 것임을 미리 예측하여 보고한 것 입니다. 대단한 경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 가토 기요마사는 정유재란을 일으키기 위하여 조선에 먼저 건너 와서, 반간계를 이용하여 이순신을 압송하게 만든 다음, 화해 협상의 한 축인 심유경을 제거하기 위하여 그를 모함하고 있었습니다(책 274~276쪽 참조). 가토 기요마사가 자기(심유경)를 제거하기 위하여 한 발언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오히려 가토를 추켜 세우고 있으니, 심유경의 수준(기대 이하)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글 입니다.


결국 류성룡은 명나라가 대군을 보내주어 감사의 마음을 표하면서도, 어찌된 일인지 협상 대표만은 (대국 답지 않게) 다소 수준이 낮은 심유경을 보내 결국은 정유재란을 막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하고 있는 것 입니다. 조금만 더 당차고 사려깊은 인물을 협상대표로 보내줬다면 적어도 정유재란 만은 막을 수 있었다는 아쉬움을 적고 있습니다. 물론 일차적인 책임은 왜적의 꾀임에 넘어가 이순신을 압송한 선조와 간신배들의 책임이지만, 심유경이 조금만 더 학식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심유경 차원에서 정유재란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1596년 당시의 상황을 보면 명나라 황제로부터 봉작을 받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갑자기 돌변하여 조선을 다시 침략하겠다고 하면서 사신들을 모두 돌아가라 하자, 심유경이, 일본에서 조금이라도 더 지체하다가는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리나케 조선으로 돌아 왔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류성룡은 사자성어를 동원하여 단어 한마디로 설파하고 있습니다. 류성룡은 심유경의 편지를 소개하면서 그 서두에서 일본에 간 심유경이 요령을 얻지 못하여 그냥 돌아 왔다고 적었습니다. 워낙 중요한 말이라서 징비록 원문을 소개합니다. 심유경이 終不得要領而回(종부득요령이회=끝내 요령을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아주 중요한 말이자 매우 흥미로운 표현입니다. 류성룡이 말한 요령이란 무엇일까요? 류성룡의 깊은 뜻을 제가 모두 헤아리기는 어렵습니다. 제 나름의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1593년에 일본은 이순신이 지키는 한산도를 끝내 돌파하지 못하자, 제2차 진주성 공격을 끝으로 4만의 병력만 놔두고 일본으로 철수합니다. 이는 이순신 격파전략을 연구하기 위한 작전상 후퇴입니다. 그러던 찰나에 히데요시에게 엄청난 일이 생겼습니다. 히데요리가 탄생한 것 입니다. 어린 히데요리를 보는 순간 그의 생각은 완전히 뒤바뀐 것 입니다. 어린 히데요리에게 정권을 물려줘야 겠다고 생각한 것 입니다. 조선에게는 큰 변화가 아니지만 히데요시에게는 엄청난 변화입니다. 결국 히데요시는 1596년에 히데요리를 새로운 관백으로 임명하고 자신은 태합이라고 칭합니다. 어린 히데요리에게 정권을 물려주려면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야 합니다. 그러나 명나라는 급할 것이 없다는 듯 봉작 외에는 아무것도 양보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순신을 잡을 묘책은 나오지 않고, 명나라는 요지부동이고... 할 수 없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명나라로부터 일본의 국왕으로 봉작만을 받고 전쟁을 끝내려고 합니다. 그래야만 히데요리에게 무사히 정권을 물려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갑자기 히데요시가 조선이 일본을 깔 본다는 등의 핑계로 다시 쳐들어오겠다고 돌변하였습니다. 이는 마침내 이순신함대를 격파할 묘안(반간계)이 나왔기 때문 입니다. 바로 <가토의 조선 상륙일자 가르쳐주기 작전> 입니다.


만약 심유경이 담력이 있고 사리판단에 능했다면 정유재란의 숨겨진 진실을 몰랐다 하더라도... 한마디만 전하면 되는 타임이었습니다.

"태합 전하! 그렇다면 히데요리에게 정권을 물려주는 일은 포기하시겠다는 것 입니까? 지금 전쟁을 끝내더라도 갈 길이 먼데, 또다시 전쟁을 하겠다면, 그리하여 히데요리를 지켜줄 군사들이 전쟁에 나가 줄줄이 희생이 된다면, 장차 누가 히데요리를 지키겠습니까? 나 하나 일본에서 죽는 거야 명나라가 나의 가족을 책임질 것이니 그리 두려운 일이 아니지만, 히데요리는 누가 장차 보호해 줄 수 있겠습니까?"라고 어필했다면 정유재란은 막을 수 있었다는 아쉬움을 <심유경이 요령(要領)을 얻지 못했다>고 표현한 것 입니다. 왜냐하면 히데요시는 <가토의 조선 상륙일자 가르쳐주기 작전>이 히데요시 가문을 멸망시키려는 이에야스측의 음모인 줄 모르고, 다만 이순신을 격파할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 정유재란을 일으킨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득요령이라는 한마디 속에는 엄청난 의미와 안타까움이 들어 있습니다. 특히나 부득요령(不得要領)은 사자성어로서 중국 한나라에 기원을 두고 있다 하니, 류성룡은 그 뜻을 정확히 알고 심사숙고하여 썼다고 봅니다. 류성룡이 정유재란의 숨겨진 진실(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가토 기요마사를 앞세워 히데요시를 충동질 함)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책 242쪽 이하에서 설명하였습니다.


자! 이제 심유경 관련 글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1596년 심유경은 화해를 종결시키기 위하여 일본으로 갑니다. 일이 잘 끝나는가 싶더니 갑자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다시 침략하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심유경은 이를 해결할 요령은 얻지 못하고 서둘러 조선으로 돌아옵니다. 그러자 조선과 명나라가 심유경이 일을 그르쳤다고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심유경이 조선 조정에 자기를 구원해 주기를 바라는 장문의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편지의 내용이 평양에서의 공적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왜적이 부산으로 퇴각한 후의 일은 앞뒤가 맞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에만 급급합니다. 그래서 류성룡은 심유경의 공과 죄는 서로 상쇄할 수 없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류성룡이 갑자기 돌변하여 심유경이 삼천리 금수강산을 되찾았다고 극찬을 합니다. 심유경이 조선인도 아닌 명나라 사신임을 감안할 때 최고의 극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라! 그런데, 마지막에는 또다시 돌변하여 <심유경이 고니시에게 속은 것도 모르고>, 자기가 고니시를 협박하여 왜적을 한양에서 몰아냈다고 김명원에게 자랑하니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다고 썼습니다.


류성룡의 글을 더 요약해 보면 1. 일본에 간 심유경의 잘못 , 2. 편지에서 자기를 변명하기에 급급해 하는 잘못, 3. 수천리 땅을 되찾았다는 극찬, 4. 한양에서 일본군이 수세에 몰려 퇴각한 것을 자기의 공으로 내세우는 어처구니 없는 잘못, 순으로 서술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시간순으로 바꿔보면 평양에서는 어느 정도 공적 인정, 한양에서 부산까지는 스스로 도망치는 왜적을 추격하지 못하게 만든 큰 잘못, 부산에서는 왜적을 완전히 철수시키지도 못하면서 일본으로 퇴각하는 일본군을 고이 돌려 보낸 큰 잘못, 일본에 가서는 요령이 없어 빈손으로 돌아온 큰 잘못이 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거의 끝 부분에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이 "심유경이 수많은 왜적들을 몰아내고 수천리 땅을 되찾았다"고 극찬을 하였습니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징비록에서 마지막으로 심유경에 관하여 장문의 편지를 비롯하여 긴 글을 올린 이유는 수천리 금수강산을 찾은 것이 결코 심유경의 업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류성룡의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 것 입니다. 그래야만 삼천리 금수강산을 찾은 것이 자신(류성룡)이 세운 전략(국가대계)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심유경의 긴 편지로부터 시작되는 징비록 마지막 글의 핵심 포인트는 <심유경이 수천리 땅을 되찾았다>는 글을 류성룡이 과연 진심으로 이를 인정하여 쓴 것이냐? 아니냐? 하는 점 입니다.

저는 징비록 전체를 여러번 읽고 또다시 심유경의 편지를 인용한 마지막 글을 수차례 정독하고, 이를 선조실록과 교차 검증한 결과, 류성룡 스스로 <수천리 땅을 되찾은 것은 심유경의 공적이 절대 아니다.>라고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근저(바탕)에는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류성룡의 탁월한 전략(국가대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문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영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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